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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향연 - 광우병의 비밀을 추적한 공포와 전율의 다큐멘터리 ㅣ 메디컬 사이언스 7
리처드 로즈 지음, 안정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뉴기니동부 고지대 사우스 포레, 1950년. 북소리 잠잠한 산속의 깊은 밤. 죽은 여인의 여자 친척들은, 벌거벗은 채 차갑게 식은 여인의 시신을 고구마 밭으로 날랐다. 아기와 어린아이들을 대동한 60여명의 여자들이 모였다. 땔감을 모아 요리를 위해 불을 피웠다. … (중략)그들은 돼지를 잡을 줄 알기 때문에 시신을 분리하는 법도 알고 있었다. …(중략)여자와 아이들 무리가 살점을 바삐 찢고 뜯는 동안 죽은 여인의 몸은 점점 줄어들었다. 시신을 해체하던 딸들 중 하나가 목 주위에 대나무 칼을 대고 후두와 식도를 절단한 다음, 척추를 이어주는 연골을 썰어 머리통을 떼어냈다. 다른 딸이 두개골에서…."
1950년 당시 뉴기니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야생지역으로 1000여개의 부족이 700언어를 사용했다. 이들은 100명 기준 매년 5~10명의 성인 사망자의 시신을 획득하여 섭취, 돼지고기보다 사람고기를 통해 더 많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었다. 책 <죽음의 향연>은 8페이지에 달하는 뉴기니 포레족의 식인풍습 묘사부터 시작하는데 책을 읽는 동안 속이 미식거릴 정도였다(위의 인용은 극히 일부일 뿐).
광우병, 신의 저주인가 인간의 오만인가
1957년 3월. 소아과 의사이자 세균학자인 34세의 가이듀섹(Daniel Carleton Gajdusek)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연구 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뉴기니에서 우연히 포레부족의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에게서만 주로 발병하는 '쿠루'에 대해 듣게 된다.
당시엔 쿠루를 남성주술사에 의해 발병, 즉 신의 형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이듀섹은 '쿠루' 사망자의 뇌를 해부하여 미세하게 엉켜있는 단백질 덩어리 '아밀로이드 반'을 발견하고 주술이 아닌 포레부족의 식인풍습에 의한 전염성뇌질환의 일종이라고 단정한다.
나아가 100만 명당 1명 정도의 산발적인 발생이지만 치사율이 100%에 이르는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과 '양'에게서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스크래피'가 쿠루와 유사함을 간파하고 쿠루에 대한 연구를 계속함과 동시에 이들 질환을 연구해오고 있던 과학자들과 네트워크 연구를 모색한다.
결국 가이듀섹은 인간에게서 발병되는 쿠루와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양에게서 발병되는 스크래피, 밍크에서 발병되는 전염성 밍크 뇌증, 소에게서 발병되는 광우병의 공통점을 발견해내기에 이른다. 이들 질환은 모두 전염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망자들 뇌에는 모두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려 있었다. 또 포레부족의 식인풍습처럼 동족섭취의 결과라는 공통점이었다.
즉 쿠루는 포레부족의 식인풍습, 스크래피와 밍크 뇌증·광우병은 동물성 사료 섭취에 의해,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은 인체 성장 호르몬 투여나 조직 이식과 같은 하이테크 식인주의에 의한 전염이었던 것이다. 가이듀섹은 이들 '전염성 해면상 뇌중'의 실체를 밝혀 서로 고리를 연결, 바이러스의 가면을 쓴 신의 정체를 밝혀낸다(이 연구로 노벨의학·생리학상수상).
저자 '리처드 로즈'는 칼턴 가이듀섹 박사의 연구 경로를 따라가며 이들 질환, 즉 '전염성 해면상 뇌증 질환들이 인간 세상에 언제 어떻게 모습을 드러냈는지, 세계 각지의 과학자들이 이들 질환을 어떻게 연구했는지를,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는 또 영국정부의 오만하고 안일한 대책의 허술함이 광우병을 전 세계에 퍼지게 하는 결과를 야기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기 훨씬 전인 1985년 영국에서 발견, 과학자들은 영국정부에 위험을 경고했지만 영국 당국은 "인간이 광우병에 걸릴 위험은 거의 없다"며 안일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또 1976년 광우병과 관계되는 '프리온' 발견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거머쥔 '스탠리 프루지너'에 의해 광우병 연구가 주춤하게 되었음을 과학적 이론과 결과를 토대로 설명한다. 아울러 지식과 명예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과학계 내부에서 노벨상이라는 영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권모술수와 암투 등 과학자들의 추악한 이면까지 낱낱이 밝혀냄으로써 인간들의 오만과 탐욕을 고발한다. 이 모든 과정을 담은 <죽음의 향연>은 논픽션 소설이다.
지구상 그 어떤 종도 광우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은 전 세계 194명. 음식물 속에 숨어 있는 광우병은 감염 후 몇 달에서 길게는 몇 십 년까지 몸속에 잠복, 뇌손상이 상당부분 진행된 후에야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낸다. 구체적인 증상이 나타나 광우병이라고 판단이 되면 1년 안에 사망. 현재로서는 약이 없다.
현재로선 감염에도 무방비다. 자외선 멸균 등과 같은 방법으로 위험을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 하고 있는 '육류 검사 시스템'만으로는 대장균과 살모넬라균을 죽이듯 광우병의 병원체인 '전염성 해면상 뇌증 감염원'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가축 사육과 도살 시스템은 여전히 광우병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다.
발병 인자가 들어 있는 부위도 뇌와 안구를 포함한 두개골, 척수, 척추, 장간막, 근육, 혈액, 젤라틴, 우유 등 동물의 거의 모든 부위로 확대됐다. 돼지가죽지갑, 닭의 분변으로 만든 비료, 수술용 봉합실,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환자의 조직 이식, 인체 성장 호르몬, 치료수술기구, 도축장의 작업용 전기톱과 칼, 음식물 쓰레기 등에도 발병인자가 들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세계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제까지 알려진 사실보다 광우병의 실체와 인류의 현실이 훨씬 끔찍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뼛조각이 든 소고기 수입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에겐 훨씬 더 민감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뼛조각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살코기에 미세한 뼛가루가 튀었다는 증거다. 0.01g의 뼛조각으로도 감염은 충분하다. 게다가 이 책 속에서 만나는 과학자들은 입 모아 말한다. "모든 포유류의 뼈는 물론 모든 근육에 광우병은 존재한다"고.
병원체는 전염매개체가 바뀔 때마다 살아 남기위해 무섭도록 빠르게 진화하는 특성을 가졌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이를 잘 말해준다. '조류인플루엔자'라는 말 그대로 조류를 위협하던 병원균이 조류와 많은 접촉을 하는 사람에게 슬며시 상륙,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수많은 시도 끝에 사람의 몸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병원체로 진화해 결국 사람의 목숨까지 노리게 된 것 아닌가. 병원체의 이런 특성을 고려하면 광우병의 위험과 공포는 훨씬 충격적이다.
광우병은 젖소에게서 많은 양의 우유를 짜 내고자, 소에게서 더 많은 고기를 얻고자 하는 인간들의 욕망이 가속화 한 질병이며, 이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죽음의 향연>을 통해 광우병의 실체에 다가가는 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육식을 하지 않으면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할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은 얼마나 안전한가? 인간에게 보장된 안전은 어느 정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