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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동물행동학사전 - 내 아이 생각을 키우는 책 01
오쿠이 카즈미츠 지음, 문창종 옮김, 신태균 감수 / 함께읽는책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동물들의 이야기는 편견을 깨거나 생명의 신비로움과 소중함을 느끼기에 좋은 소재라서 자주 찾아 읽는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른, 아이 구분 없이 공감대를 같이 할 수 있어 흥미롭다.
사람이 사람고기를 먹는 식인풍습을 일컫는 말에서 시작된 '카니발리즘'도, 어린 제 자식을 죽이는 살해를 뜻하는 '인펀티사이드'도 우리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끔찍하고 비정하기 이를 데 없지만 야생의 동물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나아가 그렇게라도 종족을 번식해야만 하는 생명의 순리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지구에 사는 200만종의 모든 동물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살아간다. 이런 필요성에 의해 생김새도 달라지고 먹이나 교미 등의 습성이 달라지는데, 이처럼 동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활동(행동)을 학문적으로 발전, 동물을 종합적으로 관찰하여 분석하는 학문 분야가 '동물행동학'이다.
<어린이 동물행동학 사전>은 이와 같은 '동물행동학' 시각으로 동물들의 다양한 행동에 대해 들려주는 책이다. 한 동물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동물들의 수많은 행동 중에서 먹이와 짝짓기는 그 동물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인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동물들의 수컷은 대부분 암컷보다 몸집도 크고 힘도 세지만 종족번식과 깊은 관계인 교미 앞에서는 암컷 앞에서 맥을 못 춘다는 사실이다. 아니 이 책에서 만나는 몇몇 동물들의 수컷은 암컷 앞에서 애교덩어리가 되는 것 같다.
부성애로 유명한 '큰 가시고기'가 그렇다. 녀석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자인 또 다른 수컷에게 위협적인 '물구나무서기 헤엄'을 쳐서 이겨야만 암컷을 차지할 수 있다.암컷을 차지한 수컷은 암컷을 위하여 집을 지은 다음, 집 입구에 서서 물구나무서기 헤엄으로 암컷에게 교미를 허락받는다. 말하자면 청혼이다.
곤충도 암컷은 선물을 좋아해!
큰 가시고기 수컷은 암컷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집을 지어 암컷을 유혹한다. 그런데 교미의 대가로 처음부터 아예 선물을 요구하는 동물들도 있다. '밑들이 벌레'와 '각다귀붙이', '춤파리' 등은 수컷이 선물을 주어야만 비로소 교미를 허락하는 동물들. 이들은 수컷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마음에 들어야만 교미를 허락하는데 이것을 '혼인증정'이라고 부른다.
밑들이벌레는 잘 익은 열매나 작은 동물 시체의 뼈에 긴 주둥이를 넣어 과즙이나 체액 등을 빨아먹고 사는데, 이 밑들이벌레 수컷은 나무딸기나 뽕나무 등의 열매위에서 암컷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암컷이 나타나면 차지하고 있던 먹이를 양보한 뒤에 바로 교미에 들어간다.
밑들이벌레는 우리들에게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11종이 살고, 사람에게 어떤 경우든 해를 끼치지 않는 자연청소부라고. 이 책에서는 혼인증정 교미 외에는 별도로 다루고 있지 않지만 자연청소부인 이들의 생태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알아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밑들이벌레와 비슷한 종류인 각다귀붙이는 먹이(사냥감)를 미리 준비하여 입에 물고 유인물 질을 내어 암컷을 유혹, 암컷이 나타나면 사냥감을 건네주고 바로 교미에 들어간다. 이때 먹이가 크면 클수록 교미시간이 길어지는데, 교미시간이 길수록 수컷 각다귀붙이의 유전자가 살아남을 확률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교미가 끝났는데도 암컷이 자신이 준 먹이를 계속 먹고 있으면 수컷은 먹이를 빼앗아 다른 암컷과의 교미에 써먹는다는 것이다. 또한 암컷 흉내를 내어 먹이를 물고 암컷을 기다리고 있는 수컷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먹이를 가로채는 녀석들도 있다는데 말하자면 사기꾼이다.
춤파리 종류들은 종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써서 암컷에게 선물을 준 다음 교미를 하는데, 자신의 분비물로 선물을 싸서 선물하기도 하고 아예 자신의 분비물만 선물하는 종류도 있다. 꽃잎이나 꽃받침 조각으로 먹이를 싸서 암컷에게 건네는 종도 있다고.
전문가가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쓴 동물 이야기
일부 동물들의 이와 같은 혼인증정은 우리 인간들의 정략결혼 등과 같은 일면의 세태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들이 이런 방식의 교미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혼인증정이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한 호기심과 흥미로만 보는 것보다, 동물행동학적 시각으로 보면 의미는 훨씬 커진다. 암컷이 수컷에게 교미의 대가로 먹이를 요구하는 절대적인 이유는 알을 건강하게 키워내려면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혼인증정은 수컷과 암컷의 유전자에 흐르는 생명의 약속인 것이다.
이처럼 동물들의 모든 행동은 그럴만한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때문에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우리 인간 역시 넓게는 동물의 한 축이고 야생의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자연계의 일부이다. 동물들을 제대로 아는 것은 건강한 자연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동물행동학이 꼭 필요한 이유다.
이런 점에서 <어린이 동물행동학 사전>은 아이들이 동물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어 줄 그런 책이다. 책속에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 자연계와 동물을 계속 탐구해나가게 하는 동기가 될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이 책의 저자는 1960년부터 동물행동학을 깊이 연구해 온 사람. 동물들의 다양한 행동에 대해 아이들이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 썼다. 도시에 사는 까마귀는 딱딱한 열매를 주차장의 차가 들락거리는 곳에 둔 다음 드나드는 차가 열매를 깨뜨리면 주워 먹는다는 이야기도 책속에서 만난 재미있는 이야기 중 하나다.
"동물이 하는 모든 행동에는 모두 그럴만한 이유와 근거가 있는데, 초등학교에서 동물과 식물의 겉모습만 배운 어린이들에게는 이 책이 동물 행동의 이유와 습성을 알게 해 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중략)...이 책은 동물에 관한 여러 책이나 TV 등에서 본 동물의 습관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를 궁금해 하고 호기심을 가진 어린이들에게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리라고 믿는다."-역자 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