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김연수 작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과 요즘들어 도서관련 사이트들에 접할때 마다 종종 보이던 유시민씨의 '청춘의 독서'란 제목이 전해주던 낯익음.
그리고 무엇보다 컴퓨터 및 전산프로그래밍 서적과 업무관련 서적들 그 외 스펜서 존스의 책들처럼 스테디셀러가 된 유명한 자기개발서들이 주를 이루어 문학책이라곤 몇 권 보이지 않던 우리회사 사내문고 한귀퉁이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김연수라는 이름이 전해주던 반가움.

 

바로 그것들이 이유였다.

 

 

어떤이의 책을 처음 대할때면 딱 보는 순간 '앗! 이사람이야'라고 느끼는 경우가 있는 반면 또 어떤이는 보면 볼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는데, 내게있어 전자의 경우가 김영하였다면 김연수는 바로 그 후자의 대표적인 작가였었다.

 

아마도 내기억에 처음으로 보았던 김연수의 글들은..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란 한 4년전의 소설집을 통해서 남들보다는 좀 뒤늦게 접했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몇몇 작품들은 무슨 역사책 보는것 마냥 꽤 지루하게 봤던것 같다.

 

언제던가 '기다림'이란 책을 산적이 있었다.

하진이라는 중국 작가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쓴 책이라 특이하단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보다 더 눈길을 끈 건 그 책을 번역한 이가 김연수였던걸 발견하고 '어 이사람 번역도 하네?'란 생각을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 후 그의 책들을 몇권 더보았고 묘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곱씹는 맛이 있는 작가였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잡아가고 있었는데 우연히 보게 된 그의 5년전의 이 수필집은 그의 소설들 보다도 더 그만의 매력에 빠지게끔 만들었다고나 할까..
지극히도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말이다.

 

 

학교를 같이 다닌 말잘하는 어떤 친한 형이 어느 여름 여행길에서..
모닥불 옆에 둘러앉아 소주한잔 앞에 따라놓고 조곤조곤 자기의 옛날 이야기들을 들려주는것 같은 그런 느낌.

 

뭔가 열렬하게 되고싶은것도 없었고 글을 '좀' 잘쓰는 편일뿐 특별할것도 없었던 지방의 어느 빵집 막내 아들..


스스로가 이과가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서 또한 별이 좋아서 천문학과에 지원했다가 낙방을 한 뒤 좋아하던 시인의 권유 및 과이름이 천문학과와 비슷했다는 이유로 영문학과에 입학했던 김연수.

 

그런 그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우리들이 관통해온 시대들의 지난 이야기에 우리 옛시나 글들, 일본의 하이쿠등을 곁들여서 자유롭게 써내려간게 이 책의 주된 내용들이다.

 

재미나고 잠시 짬을 내어 우리 생을.. 그리고 지나쳐온 '청춘'을 곱씹으며 생각해 볼 만한 글들이 많다.

 

 

바로 위에서 거론했듯이 별다른 열정도 없던 그에게 지금과 같은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끔 한 일화가 소개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살아오는 동안, 그 누구도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한 사람은 없었다.
내 성적과 생김새를 지적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내 안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직접 가리켜 말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시를 쓰게 된 것도 그가 내게 던진 말 때문이었다.
한번은 내가 무슨 일로 약간 비꼬는 투를 섞어 "저도 시나 써야겠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정확하게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어떤 시를 쓸지 꼭 보고 싶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의 격려 덕분에 내 안에 가시덩굴처럼 쌓여 있던 수많은 두려움들,

예컨대 "이제까지 백일장은커녕"같은 것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P.193)

 


'유득공은 [부용산중에서 옛 생각에 잠겨]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직문 아래서 글 읽던 우리가 늙어가듯 가을 들어 연잎도 한 철이 지나누나!
세월은 흐르고 흘러 서리 내린 연잎은 그 푸르렀던 빛을 따라 주름져갈 테다.
연잎이 주름지고 또 시든다고 하더라도 한때 그 푸르렀던 말들이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도 그처럼 푸르렀던 말이 있었다.
예컨대 "글을 잘 읽었다" 라든가,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어떤 시를 쓸지 꼭 보고 싶다" 같은 말들.
그런 말들이 있어 삶은 계속되는 듯하다.
(P.196)

 


책장을 넘기며 필자는 그와 같이 튀니지 출신의 F.R. 데이비즈의 근황을 궁금해 하기도하고, 홀로 먼길을 떠난 가객 故 김광석이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지금의 나는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사무치게 그를 그리워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도 이내 '서쳐 필링 커밍 오버 미'나 '에빌바디 쿵푸 파이팅'을 흥얼거리며 입가에 지긋이 미소를 따라짓게 만들기도하는 그 글맛들이란..

 

 


책머리의 말처럼 그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그에게는 엿보이는듯 하다.
(아니.. 원래 있었는데 이제서야 필자가 느꼈다는게 올바른 표현일듯..)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책머리에)

 


할말은 많지만 더이상 무슨말이 필요하랴.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았던가.
우보 민태원의 '청춘 예찬'에서 말이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라고..

 


김연수 작가도 이제 다시는 이런 책을 쓰는 일은 없을 테니까라고 말하였다.
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라고..

 

 


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청춘'인지는 모르겠다.


예전 평균수명의 절반 정도를 살았으니 이제 청춘은 끝이 난 것이라고 생각이 들때가 솔직히 많은편이었는데..


이젠 마음을 좀 고쳐 먹어야겠다.

 

청춘이란..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삶 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또는 가장 치열할..


바로 그런 순간이 아닐까 싶다.

 

 

 


끝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일화 한토막을 옮기며 마무리 짓는다.


김연수 작가가 자신의 딸이 두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달렸던 그 해 여름의 이야기이다.

 


'열무와 나의 두번째 여름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열무에게 익숙하지 못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내게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그마저도 못할 뻔했다.
아이가 생기면 제일 먼저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싶었다.
어렸을 때, 내 얼굴에 부딪히던 그 바람과 불빛과 거리의 냄새를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것.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집이 있어 아이들은 떠날 수 있고 어미새가 있어 어린 새들은 날갯짓을 배운다.
내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열무를 위해 먼저 바다를 건너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물론 어렵겠지만.'

(P.30~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