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강 하나를 건너다..
오래전에 상대적으로 키는 작았지만 남달리 용감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어느 축제날 그 소년은 모여고 퀸카로 통하던 자기보다 한뼘이 더 큰 한 소녀에게 고백을 했더랬다..
키 큰 소녀는 대답했다..
'미안.. 내가 크기 때문에 내 남자친구도 키컸으면 좋겠어..'
세월이 지나 그 소년은 또다른 소녀에게 고백했던 날이있었다..
이번에는 나보다 작으니 잘될거야라고 스스로에게 화이팅을 전하면서..
하지만 키 작은 소녀는 대답했다..
'어머 어쩌죠 선배.. 제가 작아서 제 남자친구는 꼭 키 큰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요..'
그 때 그 소년은 앞으로 키작은 남자는 대체 뭘 어찌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로 몇달간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 거렸었다..
그리고 그건 곧 나의 외적인 컴플렉스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어릴땐 어깨에 꽤나 힘주고 다녔었다. 지금의 키가 중3때 키니 말이다. '남자키 170만 넘으면 되죠 뭐 호호..'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세월은 변했다. WWF 프로레슬링에나 볼 수 있었던 190이 넘는 장신들이 신입생으로 들어오곤 하더니. 10년 사이에 대한민국 여성들이 인정하는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키는 175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키를 물어볼때면 매번 고민을 하곤한다. 한 3센치 더 올려도 되지않을까..? 들킬라나..? 뭐 이러면서 말이다.
우리가 자라던 시절에는 보릿고개란게 있어서 말이야.. 내가 어릴때 보약을 잘못 먹어서 말이야.. 등등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아도 언제나 변하지 않던 175의 벽.. 키에 대해선 유난히 겸손하셨던 아버지의 유전자를 원망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상처였던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거부받을 정도로 못생긴 아가씨와 잘생기고 번듯하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는 두 명의 청년은 백화점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다.'라는 이 문구만 보고 바로 주문을 했더랬다.
물론 '지구영웅전설'에서 보았던 참신함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짜릿함.(필자는 유년시절 지독한 야구광이었다.) 그리고 바쁜 업무에 밀려 채 다 보지못하고 반납했던 '핑퐁'의 아쉬움 등등이 어우려져 내겐 꽤 특별한 작가로 기억되었던 박민규씨의 책이라 우선 기대가 되었던 탓도 있었다.
알고보니 모 도서 사이트에 6개월간 연작했던 소설이라고 한다. 그 사이트에 블로그를 꾸며놓았는데도 몰랐던걸 보면 지난 몇달간 내가 참 책을 안보긴 안봤구나하는 뒤늦은 반성. 현실의 세상 뿐만 아닌 가장 접근성이 용이한 인터넷의 세상에서도 관심을 놓고 혼자만의 벽에서 살았구나하는 그러한 씁쓸함이 순간 떠올랐다.
아마 인터넷을 통해 봤더라도 난 책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봤을것이다. 다음 회를 언제기다리나.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워낙에 바빠 매일 야근을 하고 밤 아홉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일인데도 밤을 새다시피하며 다 봤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좋았으며 느꼈던' 책이었으니 말이다.
작가의 말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 책의 집필의도는 이러하다.
힘이 쎈 놈이 항상 집단에서 우위에 서듯 여자들에게 있어서 '미모'란 것 즉 '아름다움'이란 가치는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인류가 설정한 진화의 방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래서 그 권력과 아름다움을 가지지 못한 대다수는 끝없이 그것을 욕망하고 부러워해왔다.
왜? 그것은 '좋은 것'이라는 불변의 진리이기에. 그 불변의 진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시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시한 세계를 말그대로 시시하게 볼 수 있는 네오 아담과 네오 이브를 만들고 싶었다. 가능성의 열쇠는 우리가 쥐고있다. 바로 우리가 절대다수이기 때문에.
(중략)
이 진화의 계단을 밟고 올라서며 저는 아름다움에 대해, 눈에만 보이는 이 아름다움의 시시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인간의 얼굴에 대해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에 들려진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 P.416~417 요약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이 책의 큰 줄거리는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지닌 세 남녀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나에게는 아버지의 배신이, 그녀에게는 못생긴 얼굴이,그리고 친구이자 형인 요한에게는 어머니의 자살이.. 도시에서 가장 화려한 공간인 백화점에서 만나게 된 이 세남녀간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헤어짐과 해후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전개와 특히 종국에 가서의 멀티 엔딩 때문에 책을 아직 못 본 독자들을 위해서 내용은 여기까지만 간략하게 기술해야겠다.
본인이 그러했듯 끊임없이 순서를 맞추어 나가고 전개에 대한 상상을 하는 즐거움을 뺏을 수는 없기에..
그것이 지식이든 어떠한 정보이든 우리가 습득하는 방법에 있어서 다른 매체에 비해 독서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그것이 가장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게 한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눈으로만 인쇄된 활자를 쫓아가는 이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우린 끊임없이 책을 통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며 영화를 찍 듯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그래서 각각의 책들마다 자기자신만의 캐스팅이 이루어지고 로케이션이 정해진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순간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던 것이 왜 이 책의 '그녀'만의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을까 였었다. 예를들어 요한의 모습은 '존 레논과 은행원의 중간쯤' 이란 이 한마디로 금방 떠오르고 주인공인 '나'까지도 쉽게 그 모습이 그려지는데.. 왜 유독 '사회생활이 불가할만큼 지독하게 못생긴 여자'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었는지.. 그렇게 끝까지 희미한 형체로만 내머릿속을 거닐다 끝이 났는지..
그것이 어려서부터 돈 쥬앙을 통해 배웠던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저마다의 매력이 한가지씩은 꼭 있다'란 조기교육의 영향덕인지 아니면 난 그 속된 '절대다수'와 다른 심미안을 가졌다는 자기위안을 통한 공범의식으로부터의 회피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난..
어찌되었든 꽤 잘생긴 남자와 지독하게 못생긴 여자의 로맨스는 그런 편견과는 상관없이 참으로 아름답고 잔잔하게 전개된다. 얼마만이었던가 요란스럽지 않고 고즈넉한 이 느낌은.. 마치 쥬얼리S의 통통튀는 '데이트'를 하루종일 듣다가 우연히 이소라의 '데이트'를 듣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 속에서 스치듯 만나 본.. 왜 평범한 회사원이 쓰는 글과 소설가가 쓰는 글이 다른지를 스스로 느꼈던 '우산을 벗어난 어깨가 젖은 것은 알았지만, 겨드랑이에 낀 책이 젖은 사실은 느끼지 못하던 밤이었다.'와 같은 문장들.. 이런걸 발견할땐 기분이 참 좋아지곤 한다 난.. 주인공들 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했던 요한이란 인물이 명쾌하게 전해주는 삶의 진실들을 소설책의 '나'처럼 듣고 있노라면 맥주가 없어도 취할것만 같았던 그 상쾌함.. 그런것들이 꽤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만원 지하철에 흑인이 탔었다. 사람들이 모두들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그 흑인을 피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흑인이 그들에게 또렷한 한국말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안 묻어..'
그런 우스개가 있었다.
편견이다.
우리는 과연 무슨 권리로 '그렇게 태어난' 사실밖에 없는 이들을 폄하하는 폭력을 자행하는 것인가. 왜 우리는 못생긴 여자의 사랑은 그것도 외모만큼 예쁘지 못할것이라고 섣부른 예상부터 하는 것인가. 결혼적령기의 대한민국 여성들이 임의로 정해놓은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키에 약 3센치 모자라는 외모 컴플렉스를 지닌 필자는 그래서 그 여자의 두툼한 마지막 편지가 그렇게 슬프고도 아프게 그리고 또 아름답게 다가왔었나 보다.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환하게 빛나는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극소수는 그 빛이 그러지 못한 '절대다수'의 빛이 모여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그 환하고도 아름다운 빛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뿜어내는 것이라고 교만에 빠지면 결국에는 필라멘트가 끊어져 빛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절대다수'도 서로 사랑을 하게되면 빛을 발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 사랑받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빛을 발하게 되는것이라고..
자.. 이제 편견을 버리고 자신의 몸을 바라보도록 하자. 필자는 샤워를 하다가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하느님은 공평하시어 내게 조금 작은키와 함께 우윳빛깔 속살을주셨음을.. 속살을 어따 쓰라고 주신건지는 알 수 없으나. 괜히 빙긋이 웃었던 기억은 난다.
강 하나를 건너 온 느낌이다.
그 강의 이름은 편견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적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혜안'이란 산도 넘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책을 덮으며 난 생각해보았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 P. 419 작가의 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