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자. 영어로는 whistle-blower다.

호세 칸세코는 1988년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40-40클럽(홈런-도루)을 작성, 아메리칸리그 MVP를 수상했다. 한 때는 호타준족의 상징이었다. 그런 그가 2005년 8월 미국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 책을 발간했다. '약물에 취해(Juiced)'였다. 칸세코는 책 발간에 앞서 이 해 2월 자신과 마크 맥과이어가 오클랜드 '배시 브라더스' 시절에 금지약물을 복용했고 엉덩이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고 털어 놓아 충격을 던졌다.

이 책이 발간됐을 때 반응은 한마디로 '동료들을 팔아 돈을 벌자는 속셈이다'고 폄하했다. 실제 그런 소지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칸세코는 메이저리그 16년 동안 통산 타율 0.266 홈런 462, 타점 1407개를 남겼다. 당시 ESPN 라디오의 '댄 패트릭 쇼'를 진행했던 댄 패트릭은 " 호세 칸세코가 만약 500호 홈런 이상을 때렸다면 이 책을 발간했을까 " 라며 순수성에 의문을 달았다.

500호 홈런은 그 때까지 만 해도 명예의 전당을 예약하는 보증수표였다. 금지약물복용이 드러나고 90년대와 현재를 '스테로이드 시대'로 구분지으면서 500호 홈런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예전 500호 이상 홈런을 때린 슬러거들은 전부 뉴욕 쿠파스타운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다.

13일(현지시간) 금지약물 조사위원회(위원장 조지 미첼 전 상원의)이 발표한 '미첼 보고서'에는 전·현직 메이저리거 86명이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MVP를 7차례 수상한 타자 배리 본즈, 사영상을 7차례 받은 투수 로저 클레멘스의 이름이 나란히 포함되면서 현 메이저리그가 '스테로이드 시대' 한복판에 있음을 생생히 보여줬다.

패이 빈센트 전 커미셔너는 " 이번 약물 스캔들은 미국인들에게 191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블랙삭스 도박스캔들보다 더 충격을 줬다 " 고 개탄했다.

선수들 면면을 보게 되면 그동안 칸세코가 주장한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총망라 돼 있었다. AP는 금지약물복용자들로 올스타를 구성했을 정도로 메이저리그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포함됐다.

이쯤되면 칸세코를 동료나 팔아먹는 치사한 선수로 볼 수가 없다. 동기 자체는 불순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폭로로 메이저리그 스캔들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한 원인제공자가 된 셈이다. 요즘 칸세코의 주가는 한껏 올라가고 있다. '미첼 보고서'가 발표된 이날도 CNN 래리 킹 라이브쇼에 출연해 약물 관련 인터뷰로 메이저리그의 추악함을 폭로했다.

돈벌이를 하려고 했다는 단순 고자질쟁이에서 이제는 Whistle-blower가 된 칸세코다.

삼성의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조중동과 삼성에 매달려 있는 경제신문들은 처음부터 엉뚱한데 초점을 맞추며 김 변호사를 깎아 내렸다.

삼성의 법무팀에 몸담았던 김 변호사의 폭로도 애초에 순수성을 담보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김 변호사가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에 안겨 삼성 비자금에서 촉발된 수많은 차명계좌, 내부 비밀등이 잇달아 폭로되면서 내부고발의 파괴력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현재 김 변호사는 외롭게 싸우고 있다. 김 변호사의 폭로는 거의 사실에 가깝다.
대한민국은 실제 '삼성공화국'이다. 정계, 재계, 법조계, 언론계 등 어느 부문이건 삼성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삼성의 로비는 대한민국을 흔든다. 그러나 불의와 싸우고 정의를 지켜야 할 위치에 있는 자들은 삼성의 당근에 익숙해졌고,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공룡 삼성과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사회 전반이 '좋은 게 좋은 거다'로 만연돼 있다.

노무현 대통영 역시 국회에서 '삼성 특검법'이 발의됐을 때 사회정의 실현에 무게를 두지 않고 '대통령 흔들기'라고 깎아 내렸다. 물론 삼성 특검법이 '대통령 흔들기'를 겨냥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의는 그게 아니잖는가.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이른바 양심선언으로 터진 내부고발은 당시에는 전혀 힘을 얻지 못했다. 되짚어보라. 이문옥 감사관, 현준희 주사, 이지문 중위 등이 그렇다. 내부고발이 터지면 해당기관의 방해공작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대부분의 신상과 관련된 헐뜯기로 맞서 내부고발의 동기를 불순하게 만든다. '성격이 문제가 있다'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독불장군이다' '사생활이 복잡하다'등을 문제삼는다. 내부고발을 하고 불의와 싸우는 그들의 개인적인 물질적, 금전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생을 담보하는 고발이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한국 언론은 목숨을 걸고 불의와 싸우려는 내부고발자의 편을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 지금은 삼성 편이다. 지엽말단적이고, 본질과는 전혀 다른 기사로 물타기를 해버리는 게 한국 언론의 추악한 몰골이다.

호세 칸세코와 김용철 변호사. 동기는 불순했지만 내부고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여전히 하고 있다. 칸세코는 또 하나의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그의 발언에 무게가 실려 있다.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는 여전히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삼성과 검찰에 맞서고 있다. LA|문상열
http://sports.media.daum.net/nms/worldbaseball/news/general/view.do?cate=23790&type=&newsid=24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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