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판가에는 비슷한 주제를 가진 저작이 서로 경쟁하듯이 진행되고 있어 기획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한국문학에 나타난 성풍속도’다. 몇몇 시인출신 소설가들이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보다 먼저 한 경영학 박사가 같은 주제의 책을 펴냈다.’우리의 사랑과 성,어디까지 왔나’(얼과알)란 제목의 책을 펴낸 김진씨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바니아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기업컨설턴트다.

책은 이문열에서 장정일, 하일지, 김한길, 양귀자, 구효서에 이르는 현역작가의 작품에 실려 있는 성묘사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중소설에 나타난 성묘사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잘 알려지지 않는 ’첫 남자의 마지막 여자’, ’깜부기’같은 소설도 참고목록일 정도다. 목차도 다분히 자극적이다. 각 사랑의 형태별로 모았다. ’자위와 수음’, ’첫키스 첫 경험’, ’섹스와 사랑’ 등의 항목으로 나눠 각 분야별 소설에 등장하는 묘사만 간추렸다.

저자는 이문열씨의 소설 ’전야,혹은 이 시대의 마지막’이란 소설에 등장하는 사랑의 시간에 대해서도 분석을 가한다. 그 소설에서 남녀가 ’방으로 올라간 시간은 어느새 열한시’였지만 ’침대 머리맡 탁자의 전자시계로 새벽 두시를 확인하고도 한참이나 더 서로에게 빠져 있던 우리는 어느 순간 미리 합의라도 한 것처럼 떨어져 누웠다’라는 부분을 인용하며 ”어느 정도의 과장이 섞인 듯하다”라고 촌평을 붙인다.

물론 책은 자료모음 성격이 강하다. 드러난 자료를 통해 이를 관통하는 문제를 정리하는 것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가 내놓는 평가도 단선적인 수준에서 그친다. 이를테면,유명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섹스회수를 놓고 ”4회 정도가 상식적이지 않을까”라는 평까지 내놓는다.

예를 들어 ’자위와 수음’이란 장에서는 김한길의 ’여자의 남자’, 송기원의 ’열하홉 살의 시’, 이순원의 ’19세’ 장정일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이 등장한다.

”머리를 완전히 비우던가, 아니면 여자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혹은 풍경을 그려 넣는거야. 일테면 복잡한 도심이 교통체증이라든가, 빠르게 하강하고 있는 엘리베이터, 그것도 아니면 창 밖으로 펼쳐지고 있는 음산한 가을의 하늘.하하하!” 이것이 저자가 찾아낸 하창수의 소설 ’차와 동정’에 실린 자위에 대한 부분이다.

자료로서도 약점이 있다면, 등장작가군이 현대소설가에서 머문다는 점이다. 앞에서 말한 ’한국문학에 나타난 성풍속도’기획은 고전을 섭렵하고 있는 중이다.

기사 게재 일자 200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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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에서 양귀자 검색어로 넣고 조사하다가 찾은 7년 묵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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