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식, 탐욕, 나태, 음란, 교만, 시기, 분노. 성서에 등장하는 이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악(seven deadly sins)’ 가운데 이탈리아인이 가장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탐식(貪食)’. 반면 배우자 몰래 외도를 저지르는 음란(淫亂)은 최하위다. 이는 지난해 1월 이탈리아의 한 심리학 전문잡지가 25∼55세 이탈리아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과식을 간통보다 나쁜 행위로 여긴다? 전설적인 바람둥이 카사노바의 조국답게 흥미로운 결과다.
만일 똑같은 질문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던진다면 어떨까. 모르긴 해도 음란이 수위를 다투지 않을까.
요즘 다시 뜨겁게 달아오른 간통죄 존폐 논란만 봐도 그렇다. 현직 판사들의 잇단 간통죄 폐지 문제제기로 불붙은 이번 논란은 간통죄라는 해묵은 논쟁거리를 또 한 번 공론의 장(場)으로 끌어냈다.
최근 서울북부지법 형사2단독 도진기 판사와 대구지법 경주지원 이상호 판사가 잇따라 간통죄 규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제청한 주된 이유는 △일부일처제 부부관계는 법적으로 계약성을 띠므로, 간통죄는 그 본질상 계약위반 책임 또는 불법행위 책임을 묻고 이혼법정이나 민사법정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이지 형사법정에 세워야 할 문제는 아니라는 점 △간통죄가 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프라이버시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점 등이다.
‘배우자가 있는 자가 간통할 때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 현행 형법 제241조가 규정한 이 간통죄 조항에 대해 위헌 여부를 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헌재 재판관 9명 중 6대 3 합헌)과 93년(6대 3), 2001년(8대 1)에도 간통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헌재는 한결같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는 모든 재판관이 동의한 ‘전원일치’ 판결은 아니었다.
세 차례 위헌 제청·헌법소원에선 모두 합헌 결정
게다가 2001년 헌법소원심판 당시 헌재는 “세계적인 간통죄 폐지 추세와 사생활 개입 논란을 고려할 때 폐지 여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요구된다”면서 입법자(국회) 차원의 검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합민주신당 염동연 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이 2005년 간통죄 조항을 삭제한 형법 개정안을 제출했고, 이는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몇몇 국가에만 존재한다는 간통죄는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다. 즉,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는 정도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지게 된다. 현행법상 최고 징역형은 2년. 더욱이 벌금형은 없이 오로지 징역형만 선고된다.
그러나 징역 1년형 선고가 기본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간통죄의 실형 선고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도진기 판사 역시 “최근 1년간의 간통죄 판결을 분석한 결과,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6%도 채 안 된다”면서 “실무적으로 수명이 다한 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간통죄 고소는 이혼을 전제로 하므로 혼인관계의 원상회복과 거리가 멀고, 여성과 가정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구실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개인의 사생활에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이 때문인지 법학계에서는 ‘이불 속까지 들어온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간통죄 존폐 문제가 헌재까지 간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간통죄 논란은 1953년 형법 제정 당시와 1985~92년에 걸쳐 형법 개정안이 마련될 때도 시끄럽게 일었다. 올해 6월부터 다시 형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앞으로 간통죄 논란은 여론상 문제에 그치지 않고 입법 과정상의 문제로 확대될 전망이다.”
허일태 동아대 교수(형사법)는 “헌법이 인간 존엄성과 본질적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했음에도 본질적 권리 가운데 하나인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간통죄를 존치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간통죄를 폐지한 나라 가운데 이를 부활시킨 곳은 단 하나도 없다”고 강조한다.
허 교수는 또 “간통죄가 피해자를 위한 민사상 손해배상 담보기능이 강하긴 하지만, 그것을 위해 반드시 법적 최후 수단인 국가 형벌권을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회의가 든다”며 “법 집행에 있어서도 간통죄를 엄격히 적용한다면 수십, 수백만 쌍이나 되는 불륜 커플들을 모두 전과자로 ‘낙인’찍어야 한다. 그럴 경우 이것이 과연 간통죄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덧붙였다.
허 교수는 이번 간통죄 존폐 논란과 관련해,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비단 허 교수의 말이 아니더라도 엄연히 간통죄가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성 관념은 이미 문란할 대로 문란해진 상태다. ‘불륜 공화국’이라는 자조(自嘲)가 나올 정도로 간통 사례가 도처에 널렸다. 그만큼 간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다음은 최근 두 달 사이에 들은, 간통에 대한 지인(知人)들의 생각이다.
간통죄 있는데도 성 관념 지나치게 문란
“바람피우는 ‘절대 원칙’이 두 가지 있다고들 하죠. 한 상대와는 아무리 길어도 2년 이상 사귀지 말 것, 번듯한 직장이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상대만 사귈 것.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대는 틀림없이 질척거리게 마련이니까요.”(28세 여성 회사원 A씨)
“유부남 만나는 게 어때서요? 서로 쿨(cool)하면 되지. 인터넷에 ‘유부남 애인은 절대로 만들지 말라’는 교훈조의 글들도 떠돌지만 만나면 편하고 좋기만 한데요, 뭐.”(30세 여성 회사원 B씨)
“얼마 전 친한 선배와 술자리를 가졌는데, 아무런 예고 없이 유부남인 그가 자신의 애인이라며 한 여자를 데려와 깜짝 놀랐습니다. 두 사람은 무척 자연스럽게 행동하더군요.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말입니다.”(41세 남성 회사원 C씨)
이 같은 간통의 일상화에도 간통죄 존폐 논란이 쉽게 종지부를 찍지 못하는 이유는 간통이라는 행위가 가진 무게감이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해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적 관계를 맺는 행위’를 뜻하는 ‘간통(姦通)’에 대한 형벌은 곧 선량한 성풍속의 유지, 결혼제도 보호, 부부의 성적 성실의무를 지키는 보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간통죄 폐지에 대한 세인들의 시선은 아직 부정적이다. 이번 논란이 불거진 이후 나온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자의 60~70%가 간통죄 처벌을 위한 형법조항의 유지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구조법인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2005년 3월부터 1년간 실시한 간통죄 존폐 설문조사 투표 결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응답자 1만2516명 중 ‘간통죄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6451명, ‘원칙적으로 없어져야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가 1170명, ‘간통죄는 없어져야 한다’가 4895명으로 존치 의견이 폐지 여론을 앞섰다.
“간통이 범죄인지 아닌지에 대한 시각 차이는 매우 크다. 간통죄를 둔 근본 취지는 간통이 개인적 법익에 관한 죄가 아니라, 사회적 법익에 관한 죄이기 때문이다. 간통죄가 존재함으로써 사회풍속이 보호되는 실효성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간통 행위가 계약상 성적인 성실의무 위반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개인적이고 부차적인 문제다.”
간통죄 존치 입장에 서 있는 최병록 서원대 교수(민법)는 “헌재의 위헌법률심판 결정엔 재판관 9명 중 6인의 동의가 필요한데, 개인적 견해로는 이번에도 6대 3 정도로 합헌 결정이 내려지지 않을까 전망한다”면서 “설령 위헌 쪽에 무게가 실린다 해도 간통죄를 즉각적으로 무효화하기보다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 개정 때까지 한시적으로 효력을 존속시키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번 간통죄 존폐 논란은 예전의 그것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해석도 없지 않다.
먼저 현재 제4기 헌법재판소를 구성하고 있는 재판관들의 국회 인사청문회 자료에 따르면, 재판관 9명 중 6명이 간통죄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데다, 여성계도 간통죄 폐지에 대해 찬반 양론으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여성계도 간통죄 폐지 찬반 양론 ‘팽팽’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진보 성향의 여성단체들은 간통죄 폐지에 대체로 찬성하지만, 다른 단체들은 그렇지 않다”고 귀띔했다.
헌재에 따르면, 도진기 판사와 이상호 판사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접수된 것은 각각 7월30일과 9월17일로, 현재 이 심판사건들에 대한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38조(심판기간)는 ‘헌법재판소는 심판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終局決定)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간통죄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대한 선고가 이 기간 안에 제대로 내려질지는 미지수다. 헌재 관계자는 “심판기간 조항은 훈시규정이어서 통상적으로 이 기간 안에 선고가 이뤄지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고 답했다. 빨라야 내년, 아니면 내후년에야 간통죄 존폐 문제의 결론이 내려지리라는 것이다.
네 번째 되풀이되고 있는 이번 간통죄 존폐 논란이 존치와 폐지라는 제각기 팽팽한 두 논리 사이의 ‘간통(間通·간격)’을 얼마나 좁힐 수 있을까. 시대착오적 법규인가, 최소한의 성도덕을 담보하기 위한 보루인가. 간통죄가 사라진다고 해서 도덕적 책임까지 면할 순 없는 법. ‘인간의 죄 중 가장 달콤한 죄’, 간통죄의 앞날이 궁금해진다.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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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zine.media.daum.net/weekdonga/200710/08/weekdonga/v18390393.html?_RIGHT_COMM=R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