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일어나 루치아 아주머니가 갖다 주신 12조각에서 8조각으로 준 케이크를 6조각으로 줄이고 어머니 가게로 전화해서 집 화초에 물을 줄까요 하고 여쭸다. 그러라고 하신다. 끊고 잠시 있다 가게에서 전화하신 어머니 부탁대로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스위치를 올린 뒤 뛰러 나가서 도서관으로 갔다. 가서 책 8권인가 7권인가를 갱신하고 아버지 생신 선물로 드릴 로토 트리플 딥 13달러 어치 산 뒤 와서 다시 어머니 말씀대로 꽃에 물 줬다. 그 때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케이크를 3조각으로 줄이신 뒤 저녁 5시까지 설거지를 끝낼 걸 주문하신다. 빨래 널고 신문 보고 커티스 페이쓰가 쓴 웨이 오브 더 터틀이란 주식투자책 보니 5시가 가까워져 설거지 하고 밖에 나가 보니 나도 모르는 새 비가 내려 빨래가 젖은 채 그대로다. 안으로 들여 와 빨래대에 널려 있던 마른 옷들 정리하고 젖은 빨래를 널고 나니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어머니 가게로.

아버지랑 피너티 애비뉴와 쏘렐 크레즌트로 배달 갔다 도로 가게로.

다시 보타니 다운즈의 암포라 레스토랑으로. 이탈리아식인데 앙트레로 발싸믹 식초, 이름모를 어떤 풀을 다져 넣은 올리브기름, 역시 내가 모르는 풀을 다져 넣은 버터에 빵을 찍어 먹었다. 그 다음엔 계속 앙트레로 가리비, 연어, 왕새우를 먹었는데 맛은 왕새우, 가리비, 연어 순. 가장 맛없었던 연어도 나쁘지 않았고 가리비는 좋았고 왕새우는 꽤 좋았다. 메인으로 아버지 닭고기 파스타, 동생도 아버지랑 같은 거, 해민이는 무슨 아이 필렛 스테이크, 어머니는 무슨 스카치 필렛 스테이크, 나는 해산물 파스타. 닭고기 파스타 면이 해산물 파스타 면보다 넓었다. 해산물 파스타 면이 흔히 보는 스파게티면이라면 닭고기 파스타 면은 중국 면요리 일종이거나 우리나라 칼국수면 가운데서도 꽤 굵은 거 닮았다. 맛은 해산물 파스타, 닭고기 파스타, 스카치 필렛, 아이 필렛 순. 내가 가장 맛있는 걸 골라 괜히 기분 좋았다. 후식으로 해민이가 사 온 케이크를 또 먹고 너무 많이 먹어 몸이 둔해진 걸 느끼며 집으로 기어 들어와 지금 일기를 쓰고 있다. 조심하자. 이러다 진짜 살 쪄 버리겠다.

아! 오늘 있었던 한 가지 우스운 일. 5조각 남은 루치아 아주머니 케이크를 3조각으로 줄이려고 낮 두 시쯤 뚜껑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왜 5조각만 남았지? 어젯밤 동생이 둘, 내가 오늘 새벽에 둘, 아버지가 좀 전 하나 그러니 7조각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잠깐 아버지가 세 조각이나 드셨나 아냐 그럴 수는 없을 텐데. 무려 3시간 생각하고 아버지한테 점심으로 세 조각 드셨냐고 여쭌 끝에야 내가 늦게 일어나자마자 두 조각 먹어치운 생각이 났다. 이래서 남의 눈 속 티끌은 잘 보여도 자기 눈 속 뭐드라 하여튼 뭔가는 안 보인다는 말이 있는 거 같다.

신문을 보니 지난 주말 세찬 바람 때문에 전기와 수도가 나간 집들이 이제야 복구되나 보다. 뉴질랜드 정치판엔 집권당인 노동당 벤쓴 포프 장관 아래 고위공무원 하나가 야당 국민당 의원의 배우자인 게 드러나 사흘 만에 해고당한 거 때문에 좀 시끄러운 거 같은데 한국에 비하면 요런 건 애교지. 썬데이 스타 타임즈 가십 칼럼니스트랑 헤럴드 온 썬데이 가십 칼럼니스트 엄마가 싸우고 40대 아버지 하나가 제 아들이 다른 애한테 해꼬지받은 분풀이로 해꼬지한 애를 차로 들이받아 중태에 빠뜨려 일이 시끄럽다. 뉴질랜드 달러가 한국말로 뭔지 모르겠지만 플로팅한 뒤 미국달러 상대로 가장 강세를 보여 수출업자들이 힘들어한다고 한다. 로버트 아발로스 블로그에서도 몇 주 전 뉴질랜드 중앙은행의 행동을 칭찬한 기억이 그러고 보니 난다. 뉴질랜드 내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걸로 기억하는데. 만델라가 볼저 수상 때인 90년대 중반에 뉴질랜드 와서 열광적 찬사를 받았듯이 뭐든지 집안에서 인정받기가 가장 어려운 거 같다. 그러니 나도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이 자꾸 뭐라 그래도 너무 시무룩해 하거나 풀죽지 말도록 하자.

해외에선 중국이 올림픽 앞두고 음식물 망신 때문에 난리고 뉴욕에선 80년 묵은 파이프가 터지며 뉴요커들에게 911을 연상시켰다 한다. 최경주는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브리티쉬 오픈 첫날에 꽤 좋은 성적을 올린 거 같은데 어젯밤 난 투르 드 프랑스 보느라 브리티쉬 오픈은 부모님과 같이 앞머리만 좀 봤다. 투르 드 프랑스에선 마르쎄유에서 몽뻴리예 가는 구간 11이 한창 진행되는 참이었는데 오버롤 클래씨피케이션 10위 안에 있던 프랑스 챔피언 크리스또프 모로가 카자흐스탄 팀 아바싸다이든가가 주도한 고속질주에 제 때 합류하지 못하며 우승가능성을 사실상 놓치는 프랑스 사람들로선 가슴아픈 일이 벌어졌다. 아직 선두는 라보뱅크 팀 에이스 라스무센이고 구간 11 우승자는 남아공의 로비 무어라든가 하는 선순데 남아공 선수가 구간우승 한 건 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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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7-20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어젯밤 오늘 새벽에 걸쳐 투르를 보며 케이크를 10조각에서 8조각으로 줄였다. 우유 두 잔과 곁들여. 조심하자. 한 번 찌기 시작하니까 겉잡을 수가 없다.

심술 2007-07-20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포라는 술을 갖고 와서 마실 때 돈을 따로 안 내도 돼서 좋다. 오늘 쓴 돈은 약 200달러 쯤인거 같다. 메인은 평균 26달러 이쪽저쪽, 앙뜨레는 평균 17달러 이쪽저쪽. 동생은 해민이 바래다 준 뒤 정명이네 가서 팔머스톤 노쓰 갔다 온다고 한다. 정명이가 인터넷에서 산 차가 거기 있다고 한다.

심술 2007-07-2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관심 가는 책. 김준형-경제적으로 세상 읽기, 전봉관-경성 씨리즈, 미레유 길리아노-프랑스 여인들은 살찌지 않는다, 이엘더블유 완전정복-아마 주식책인 거 같다, 배터리-일본 야구소설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