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네 동네 시장 이야기 한이네 동네 이야기
강전희 글.그림 / 진선아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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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중에 바바라 매클린톡의 《아델과 사이먼》이라는 책이 있다. 누나 아델이 온갖 물건을 다 잃어버리는 동생 사이먼과 함께 학교를 마치고 파리의 이곳저곳을 지나 집으로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데, 매 장소에서 사이먼이 잃어버린 물건들을 찾는 숨은그림찾기의 재미는 물론이고 두 아이의 여정을 따라 등장하는 파리의 명소를 만나는 즐거움이 쏠쏠한 그림책이다. 그 책을 보면서 시끌벅적하면서도 친근한 정이 오가는 우리네 시장을 보여주는 그림책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책 《한이네 동네 시장 이야기》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이책의 줄거리는 한마디로 한이의 시장 구경으로 요약될 수 있지만, 우리는 '시장'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범위만으로도 주인공 한이가 얼마나 신나는 시간을 보냈을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꼬리를 흔들며 따라오려는 똘이를 뒤로 하고 한이는 엄마와 동네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길거리 가득 늘어선 온갖 다양한 물건들과 골목마다 북적이는 사람들이 뒤섞이면서 시장은 시끌벅적하다.


한이는 엄마 손을 꼭 잡은 채 장을 보는 엄마를 따라 콩 할머니네 가게에도 들르고, 어묵 가게에서 엄마를 졸라 어묵도 하나 먹고(엄마 따라나선 시장 구경의 묘미는 역시 주전부리!), 방앗간에서 변신 로봇을 닮은 온갖 신기한 기계들에 눈이 휘둥그레해지고, 물고기들을 보느라 횟집 앞 수족관에 얼굴을 묻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게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엄마가 사주신 금붕어 한 마리를 담은 봉지를 들은 터라 신이 났다. 그런 한이를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갔던 시장의 풍경과 들떴던 그때의 기분이 기억나 슬며시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한이네 동네 시장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와 재래시장의 풍경을 세심하게 담아냈다. 집을 나선 한이가 엄마의 동선을 따라 동네의 일상적인 풍경과 여러 물건과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만들어내는 시장의 익숙한 모습을 정감가는 그림체로 친근하게 표현했다. 시장에 존재하는 여러 공간들을 모두 잡아내려다보니 구성이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도 있지만, 반면 그 덕분에 시끌시끌하고 정신없는 재래시장 특유의 분위기가 더 잘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장 속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디테일하게 잡아낸 것이 인상적이다.



그림책 《한이네 동네 시장 이야기》는 현장감 넘치는 시장의 재미난 모습들과 함께 시장에서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지식들도 담겨있다. 엄마와 한이가 들렀던 콩할머니네, 참가름집, 생선가게, 애완가게 등을 통해 그곳에서 파는 물건들의 종류 및 생김새와 생김새, 사용되는 도구들, 판매방식과 단위 등이 어떤지 자세하게 그림과 글로 설명해준다. 더불어 시장 곳곳에 전시된 여러 물건들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게 생생하게 묘사된 재래시장의 공기와 풍경 덕분에 시장에 가보지 못한 어린이 독자들도 시장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느끼게 해준다.


시대가 바뀌고 생활패턴이 달라지면서 어느새 장을 보러 재래시장보다 대형마트를 찾는 게 더 익숙해진 요즘이다. 엄마 꽁무니를 따라 시장 골목골목을 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를 느끼기가 힘들어진 요즘 아이들에게 《한이네 동네 시장 이야기》는 생기 넘치는 시장의 모습들을 통해 시끌벅적 활기찬 재래시장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심 좋은 시장 사람들을 이야기를 더해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훈훈한 우리네 시장의 모습을 완성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을 따뜻하게 담아낸 그림책을 만나니 참 반갑고 뿌듯하다. 조만간 사람들로 북적이는 재래시장 나들이를 해볼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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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내가 죽었다 - 끌로드씨의 시간여행
이즈미 우타마로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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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내가 죽었다 | 이즈미 우타마로 | 예담 | 2011.09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면? 소설 《어느 날, 내가 죽었다》는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 끌로드는 가을비가 내리는 어느 저녁 사과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해 울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구하려고 나무를 타다 미끄러진다. 다행히 그가 구하려던 새끼 고양이는 멀쩡했지만, 불행히도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자신의 장례식이 끝난 뒤 혼의 세계에 들어선 끌로드는 그곳에서 세 명의 개성 넘치는 수호천사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이제 막 종착점에 다다른 584번째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슈퍼마켓 점원인 끌로드는 매일 손님과 점장 사이에서 전쟁을 치른다. 사적인 일까지 알고 지내며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손님의 존재는 이제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실적만 강조하는 점장은 그의 짖누른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집 대출금과 아이들 학비, 앞으로의 생활비 등을 생각하면 다시 원점이다. 오래된 꿈이 가끔씩 마음 속에서 꿈틀대지만 당장의 현실에 치여 애써 외면해왔다. 그러던 사이 아내와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났고 초라한 현실만이 그에게 남았다.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잊은 적 없는 꿈과 함께.

수호천사와의 시간여행을 통해 끌로드는 자신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된다. 숲에서 만난 소년에게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했던 일, 평생을 사랑했던 이레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일, 어린 시절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해 상처받았던 일, 그리고 기억할 순 없으나 이전에 자신의 삶이었다던 전생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재생된다. 각각의 일에 대한 끌로드의 생각과 달리 줄줄이 이어진 수호천사들의 해석은 그에게 새로운 놀라움을 전해준다. 그제야 끌로드는 그들이 안간힘을 다해 전하려고 했으나 끝내 눈치채지 못했던 숨은 삶의 메시지들을 뒤늦게 깨닫는다.

수호천사들과 지난 삶을 되짚어가며 반성과 깨달음의 품평을 마친 끌로드는 신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신과 함께 삶에 대한 꽤 다양하고 폭넓은 대화를 시도한다. 수호천사와의 시간이 개별수업이라면 신과의 만남은 삶에 대한 총정리인 셈이다. 부산하고 요란스런 신과의 산만한 대화를 통해 작가는 이전에 수호천사들과의 시간여행에서 계속 강조했던 삶에 대한 긍정, 꿈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 성실한 삶이 만드는 발전 등을 다시금 반복한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고, 실패는 좀더 나은 발전을 위한 밑거름일 뿐이라고. 그리고 끌로드는 전보다는 더 나은 삶을 희망하며 585번째 삶을 준비한다.

《어느 날, 내가 죽었다》는 소설의 형식을 띠지만 교훈적인 메시지를 강조하는 내용은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죽음을 삶의 끝으로 생각지 않고 시간 여행을 통해 지난 삶의 되짚어보고 다시 조금 더 발전된 새 삶을 준비한다는 소재는 참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매력적이고, 자포자기의 삶을 산 끌로드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자유분방한 수호천사 캐릭터도 나름의 재미를 준다. 그러나 남장여자로 등장해 궁극의 산만함과 수다스러움을 겸비한 경망스러운 신의 캐릭터는 가벼움의 선을 넘어 슬며시 짜증이 났다. 삶의 철학을 희화화된 캐릭터를 통해 가볍게 다루어보겠다는 의도는 알겠지만 재미는커녕 그나마 있던 감동마저 사라지게 만들 정도였다. 물론 그런 희화화 덕분에 더 재미있다는 이들도 있겠지만, 여튼 소재에 비해 구성이나 캐릭터 등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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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지마 정신줄!! - Naver 조회수 6,000만 베스트 웹툰!!
나승훈.신태훈 글 그림 / 이미지앤노블(코리아하우스콘텐츠)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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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놓지마 정신줄!! 1권 | 신태훈, 나승훈 글ㆍ그림 | 코리아하우스콘텐츠 | 2010.02



우연찮게 인터넷서점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웹툰 단행본 《놓지마 정신줄》 1권을 받았다. 원래 만화를 좋아하긴 하나 요즘은 웹툰을 챙겨보는 형편은 아니라 이책을 처음 받았을 때 작가며 제목, 그림 모두 생소했다. 그런데 제목이 은근히 흥미로웠다. 요즘도 그렇지만 그때도 툭하면 정신줄을 놓았다 되잡기를 반복하던 때라 그랬을테다. 이 웹툰이 네이버 베스트 웹툰이라는 카피를 달고 단행본으로 출간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나와 같은 독자들의 폭넓은 공감이 밑바탕되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그림체는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솔깃한 제목에 궁금증을 안고 책장을 넘겼다. 책장이 마구 넘어가는 웹툰이라 몇 번 낄낄대니 어느새 한 권이 끝나버렸다. 그리고는 책장에 곱게 꽂아둔 채 잠시 잊었는데, 얼마전 터져나갈 것 같은 책장에 숨통도 틔워주고 잠자던 책들에 날개도 달아줄 겸 책나눔 할 책을 찾다 이책과 다시 눈을 마주쳤다. 블로그에서 책을 신청한 분들께 보내주기 위해 책포장을 하다가 떠나보낼 책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에 책장을 넘기다 또다시 그만,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그런데 어째, 처음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놓지마 정신줄》의 캐릭터들은 각각의 머리에는 작은 손이 달려 있고 그 손이 밧줄(이라 쓰고 정신줄이라 읽는다)을 부여잡고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등장인물 머리의 손은 평소에는 밧줄을 꼭 잡고 있지만 캐릭터가 정신을 놓는 순간 머리의 손도 밧줄을 놓아버린다. 바로 정신줄을 놓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캐릭터와 그뒤에 접하는 곤란한 상황을 통해 반전의 웃음이 핵심인 만화인 만큼 《놓지마 정신줄》을 구상할 때 '정신줄을 놓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작가들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여러가지 시도가 이어진 끝에 머리 위의 손과 줄이 있는 지금의 기발한 캐릭터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책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정신'은 밤새 오락을 하느라 아침에야 잠자리에 들어 저녁에야 일어나는 정신줄 놓은 생활을 일삼는 대학생이다. 그는 동시에 시험공부에 한창인 동생 '정주리' 앞에 만화책을 내려놓고, 잔소리 하는 엄마에게 티비 드라마를 틀어드리고, 퇴근하는 아빠에게 풍성한 고스톱머니를 선물하는 등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 이르면 순식간에 상대의 정신줄을 놓게 만드는 주도면밀함을 자랑하는 정신줄계의 대부(?)이기도 하다. 웹툰 《놓지마 정신줄》에는 이렇게 툭하면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주인공 가족을 중심으로 그들의 주변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소소하지만 웃기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웃음을 위한 엽기적인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긴 하지만, 《놓지마 정신줄》 1권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학창시절 시험을 앞두고 도서관에 갔다가 시험공부는커녕 내내 퍼질러 잠만 자거나 또래의 이성친구들만 관찰하고 돌아온다거나, 시험이 끝난 후에 정신줄을 완전히 놓고 폐인모드에 돌입하거나, 또는 지름신을 참지 못해 인터넷쇼핑몰에서 충동구매를 했다가 도착한 물건을 보고 후회를 하는 등의 에피소드에서는 잠시 옛추억에 잠기며 개인적으로 격하게 공감하기도 했다. 

별난 듯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정신줄 실종사건'을 그린 웹툰 《놓지마 정신줄》은 주어진 상황과 그에 대한 나름의 반전으로 크고작은 웃음을 던져준다. 지극히 만화적으로 표현했지만 일상의 한귀퉁이에 발 담그고 있기에 낄낄대다가도 순간순간 그들의 삶에서 우리 일상의 조각들이 보여 가끔은 추억을, 가끔은 공감을, 또 가끔은 현실의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정신줄 놓은 상황을 통해 웃음으로 마무리된다. 박장대소하는 큰 웃음보다는 자잘한 웃음을 쉬지 않고 던져준다. 강추까지는 아니지만, 가끔 정신줄을 살짝 내려놓고 낄낄대고 싶을 때 읽기엔 수시로 실종되는 정신줄에 고군분투하는 한 가족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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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 전에는 깨달을 수 없는 것들 - 더 늦지 않게 나를 만나기 위한 마음 수업
존 E 월션 지음, 부희령 옮김, 이인옥 그림 / 행성B(행성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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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리기 전에는 깨달을 수 없는 것들 | 존 E 월션 글, 이인옥 그림, 부희령 옮김 | 행성B잎새 | 2011.09  



잘 지내시죠, 라는 오랜만의 인사에 불쑥 사실 요즘 조금 힘들어요, 라고 대답해 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이책을 선물 받았다. 마음의 평화와 진정한 행복을 찾는 힐링에세이라고, 이책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했음 좋겠다고, 게다가 완숙한 계절인 가을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책이라는 선정의 변을 달아서. 사실 언제부턴가 책을 읽을 땐 열심히 공감을 표하지만 막상 생활로 들어서면 여전한 나의 변화없음에 실망해 한동안 자신을 변화시키는 류의 책을 멀리했다. 허나 너덜너덜해져가는 내 마음을 나보다 더 걱정해주시는 그 마음이 감사해 외면하지 못하고 오랜만에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로의 조용한 여행을 떠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여정이 마냥 공감으로 가득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엇이든 그 나름의 보람은 있는 법. 그런 면에서 나를 생각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참 감사했다. 그게 깊은 마음이든 아니면 잠시 스쳐가는 마음이든, 덕분에 오랫만에 나를 돌아볼 기회를 마련했으니 말이다.

세상은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다. 그와 함께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욕망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라고 강요하고 그래야 더 행복하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졌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그에 비례해 더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최근 발표된 나라별 행복지수에서 1위를 차지한 나라는 소위 잘 나가는 선진국이 아닌,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부탄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반면 우리나라는 행복지수는 68위로 하위권에 그쳤단다. 우리보다 가난한 부탄 국민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함을 많이 느낀다는 건 물질적 풍요가 늘 마음의 행복을 수반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미워하면 결국 비참해지는 것은 우리 자신일 뿐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고귀한 본성인 자연스러운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능력을 거부하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가장 사랑하기 힘든 사람이라도,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10쪽)

지난 40여 년 간 여러 구루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다양한 형태의 명상과 수행을 통해 삶의 의미와 마음의 평화를 찾는 구도자로서의 길을 걸어온 저자는 이책의 서문에서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내는 비밀은 물질적인 성취나 보상에 있지 않다. 사랑의 경험을 확장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키워나가며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자각하고 인식하는 데 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원래 하나로 연결된 존재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서로 간의 관계를 단절하고 자신과 다른 이들을 배척하고 분리하면서 분쟁과 다툼, 폭력과 전쟁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고, 그 관계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연대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을 대하는 나의 변화는 곧 나와 연결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꾸고 그것이 이어져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우리는 분절된 각각이 아닌 하나의 존재라는 일체감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주 작지만 실은 큰 시작인 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으키는 문제의 많은 부분은 나와 상대방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변화를 바라는 욕구와 집착은 그렇지 못한 현실과의 괴리에서 불만을 낳고 마음의 분노로 이어져 관계를 삐걱대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미워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럴수록 비참해지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걸. 저자는 진정한 행복에 이르려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들려준다.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알코올 중독으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아버지와 사사건건 대립하던 저자는 너무 힘들어 구루를 찾아 조언을 구한다. 그런데 아버지를 구루라고 생각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밖의 조언에 당황하지만 고민 끝에 그것을 받아들였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저자는 아버지를 통해 타인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훈련을 하게 됐고 지옥 같았던 마음에 평안을 되찾았다. 그와 함께 삐걱대던 아버지와의 관계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에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과 자녀와의 관계가 떠올라 마음이 짠해졌다.


- 다른 사람에게도 그들만의 관점, 그들만의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치유 효과가 크다. 다른 사람의 관점은 틀린 게 아니다. 단지 우리와 다른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 즉 그들의 관점과 경험을 이해하고 귀 기울일 수 있게 되면, 상처는 치유되고 소통은 원활해지며 활기찬 교류가 시작된다. (75쪽) 

마음 속에 분노를 갖느냐 깨달음을 갖느냐에 따라 순식간에 지옥과 천국을 오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무라이의 일화처럼 진정한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를 속박하는 수많은 마음의 생각들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참된 자아, 즉 우리의 참된 본질에 다가가야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진정한 본질이란 바로, 우리의 큰 자아에 내재되어 있는 순수한 사랑이다. 너와 나라는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서로 이어진 거대한 하나라는 일체감은 서로를 향한 사랑에서 시작되고 사랑으로 유지된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행복으로 이어진다. 마음의 평화는 결국 '관계맺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는지에 달려있는 셈이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어느새 시원해진 바람이 깊어가는 가을을 알려주는 요즘이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 이책을 읽으며 올한해 나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생각해봤다. 힘들다고 투덜댔던 그 시간들이 실은 모두 내 마음의 지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바쁘다던 핑계로 미루기만 했던 일들이 사실 나의 게으름 때문은 아닌지, 누군가를 싫었던 이유가 어쩌면 그들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했거나 또는 나의 바람대로 그들을 바꾸길 원했으나 그러질 못했기 때문이 아닌지 말이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크게 와닿지 않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허나 《버리기 전에는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제목처럼 책장을 넘기며 그간 나를 괴롭혀왔던 욕심과 아집, 이기심 등을 하나둘 털어내며 복잡했던 마음을 닦아보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깊어가는 가을 마음이 힘들다면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힐링에세이 한 권 곁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


-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노력에 대한 건강한 대안은 마음을 열고 정직하게 진실과 마주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연민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자신의 불행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법을 배우라. 슬픔을 멀리하고 불행이 존재하지 않는 척한다고 해서 행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열고 삶의 모든 경험을 있는 그대로 포용해야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참됨과 광대함을 의식해야 가능하다.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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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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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작가로 주목받는 두 소설가 김연수, 김중혁이 뭉쳤다. 소설이 아닌 영화 에세이로. 《대책 없이 해피엔딩》은 고향 친구이자 28년지기 절친인 두 작가가 영화전문 잡지 『씨네21』의 한 꼭지인 ‘나의 친구, 그의 영화’에 지난 한 해 동안 연재했던 칼럼들을 묶어낸 책이다. 칼럼 연재 당시 김연수 작가의 열혈팬인 블로그 이웃님 덕분에 알게 돼 씨네21 홈페이지에서 종종 글을 접했는데, 바로 옆에서 수다떨듯 가볍고 정겨우면서도 때론 거침없는 글빨에 수시로 웃음을 머금었던 기억이 났기에 이책의 출간이 더욱 반가웠다.

《대책 없이 해피엔딩》은 두 절친 작가가 영화를 주제로 엮어낸 유쾌한 만담 에세이다. '김연수 김중혁의 대꾸 에세이'라는 카피처럼 책날개의 재기발랄한 작가 소개글은 물론 책의 서문과 서로가 서로를 패러디하는 작가의 인사글 정도만 봐도 이책의 분위기를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본문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영화 에세이이긴 하지만, 28년 우정의 두 작가가 워낙 허물없는 사이고 또 그것이 이 칼럼의 기본 전제로 깔리다 보니 《대책 없이 해피엔딩》에는 김연수 김중혁 작가의 서로에 대한 격의없지만 애정 넘치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전회에 연재된 친구의 글을 분석 또는 반박하며 서로를 적당히 씹어주시거나 가끔씩 상대의 과거사를 과감하게 폭로(?)하는 등 지면을 매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두 작가의 옥신각신 설전은 그들 우정의 끈끈한 내공을 과시하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는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덕분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입꼬리에 웃음을 머금게 된다. 그리고 이책의 재미는 바로 그들의 그런 유쾌함에서 비롯된다. 혹 두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이책은 필독서로 분류해도 좋을 듯하다. 

두 절친 작가의 만담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대책 없이 해피엔딩》는 영화 칼럼이라는 본분을 잊진 않는다. 영화 잡지 『씨네21』에 그들의 글이 연재되었던 2009년에 선보였던 신상 개봉 영화들부터 작가의 취향과 기억력에 따른 다양한 영화들이 함께 등장한다. 이미 본 영화도 있고 제목만 들어봤거나 아예 처음 듣는 영화들도 있다. 이미 본 영화라면 저자의 이야기에 좀 더 공감하거나 또는 나름의 기준으로 반박할 수 있겠지만, 이 칼럼 자체가 영화를 분석하고 비평하는 글이 아니기에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해도 글을 읽는데 별다른 불편함은 없다. 오히려 이런 영화도 있구나, 나도 한 번 봐야지 하는 호감을 가지는 정도랄까.

슬쩍 내려놓는 영화 이야기는 앞서 잡담처럼 늘어놓던 일상의 다른 이야기들과 교묘하게 섞여든다. 그리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글을 따라 가다보면 별 상관없어 보이던 삶의 모습과 영화 속 풍경이 어느 순간 접점을 만나고, 삶은 영화가 영화는 삶이 된다. 그것이 비록 청춘이 아닌 책의 '상실'이고 현금의 '상실'이며, 응구기와 시응고가 투네원(2NE1)과 유피(UP)로 이어지더라도(책을 읽어본 분은 무슨 말인지 아시리라! 이 부분 읽다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실실 웃으며 농담하듯 때론 무심하게 툭 이야기를 꺼내놓지만 그 속엔 삶과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두 작가의 시선이 존재한다. 우리 삶의 이야기도.

《대책 없이 해피엔딩》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수다 같은 두 작가의 유쾌한 글빨이 시종일관 웃음을 던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가벼운 이야기만 늘어놓는 건 아니다. 우리네 현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에 대한 관심도 켜둔다. 그래서 이책에는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와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 황지우 총장의 사퇴 등 사회ㆍ문화 전반에 걸쳐 유난히 격동의 시기였던 2009년에 일어났던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들도 담겨있다.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해의 여러 사건들이 그렇지 않았나 싶다. 딸과 함께 어린이 영화를 보러 갔다가 영화 속 세계에서 부조리한 현실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글은 그래서 더 공감이 갔다.

매스를 든 의사처럼 진지한 자세로 따지고 분석하며 영화 속으로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파고들기보다, 오히려 영화 밖에서 부담없는 시선으로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풍경과 영화 속 장면을 넘나들며 이어가는 이야기로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점이 이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대책 없이 가볍게 술술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작가의 시선도 함께. 죽마고우 두 작가의 '핑퐁 영화 수다 플레이'인 《대책 없이 해피엔딩》은 영화를 좋아하든, 김연수 작가 또는 김중혁 작가를 좋아하든, 아님 둘 다 해당사항이 없더라도 누구든 유쾌통쾌상쾌하게 읽을 수 있는 영화 에세이다. 아무리 기분이 꿀꿀해도 몇 번은 웃게 만드는, 읽다 보면 대책 없이 행복하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 





- 울고 있는 김씨와 엉거주춤한 그의 엉덩이와 엉덩이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샐비어를 천천히 보여주는 장면은 <김씨표류기>의 압권이다. 자살은 해야겠고 그런데 똥은 마렵고 샐비어를 빨아먹어보니 이건 또 왜 이렇게 달착지근한 것이며 일어나려니 다리는 저린데 똥 무더기는 엉덩이와 너무 가까우니 눈물이 날 법도 하다. 사는 게, 참, 그렇다. 가끔은 샐비어와 똥이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희망이란 게, 참, 그렇다. 희망은 거대할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을 자살하게 만드는 절망의 크기가 다른 사람이 보기엔 터무니없이 작아 보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희망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을 수도 있다. (144-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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