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차세대 작가로 주목받는 두 소설가 김연수, 김중혁이 뭉쳤다. 소설이 아닌 영화 에세이로. 《대책 없이 해피엔딩》은 고향 친구이자 28년지기 절친인 두 작가가 영화전문 잡지 『씨네21』의 한 꼭지인 ‘나의 친구, 그의 영화’에 지난 한 해 동안 연재했던 칼럼들을 묶어낸 책이다. 칼럼 연재 당시 김연수 작가의 열혈팬인 블로그 이웃님 덕분에 알게 돼 씨네21 홈페이지에서 종종 글을 접했는데, 바로 옆에서 수다떨듯 가볍고 정겨우면서도 때론 거침없는 글빨에 수시로 웃음을 머금었던 기억이 났기에 이책의 출간이 더욱 반가웠다.

《대책 없이 해피엔딩》은 두 절친 작가가 영화를 주제로 엮어낸 유쾌한 만담 에세이다. '김연수 김중혁의 대꾸 에세이'라는 카피처럼 책날개의 재기발랄한 작가 소개글은 물론 책의 서문과 서로가 서로를 패러디하는 작가의 인사글 정도만 봐도 이책의 분위기를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본문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영화 에세이이긴 하지만, 28년 우정의 두 작가가 워낙 허물없는 사이고 또 그것이 이 칼럼의 기본 전제로 깔리다 보니 《대책 없이 해피엔딩》에는 김연수 김중혁 작가의 서로에 대한 격의없지만 애정 넘치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전회에 연재된 친구의 글을 분석 또는 반박하며 서로를 적당히 씹어주시거나 가끔씩 상대의 과거사를 과감하게 폭로(?)하는 등 지면을 매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두 작가의 옥신각신 설전은 그들 우정의 끈끈한 내공을 과시하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는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덕분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입꼬리에 웃음을 머금게 된다. 그리고 이책의 재미는 바로 그들의 그런 유쾌함에서 비롯된다. 혹 두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이책은 필독서로 분류해도 좋을 듯하다. 

두 절친 작가의 만담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대책 없이 해피엔딩》는 영화 칼럼이라는 본분을 잊진 않는다. 영화 잡지 『씨네21』에 그들의 글이 연재되었던 2009년에 선보였던 신상 개봉 영화들부터 작가의 취향과 기억력에 따른 다양한 영화들이 함께 등장한다. 이미 본 영화도 있고 제목만 들어봤거나 아예 처음 듣는 영화들도 있다. 이미 본 영화라면 저자의 이야기에 좀 더 공감하거나 또는 나름의 기준으로 반박할 수 있겠지만, 이 칼럼 자체가 영화를 분석하고 비평하는 글이 아니기에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해도 글을 읽는데 별다른 불편함은 없다. 오히려 이런 영화도 있구나, 나도 한 번 봐야지 하는 호감을 가지는 정도랄까.

슬쩍 내려놓는 영화 이야기는 앞서 잡담처럼 늘어놓던 일상의 다른 이야기들과 교묘하게 섞여든다. 그리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글을 따라 가다보면 별 상관없어 보이던 삶의 모습과 영화 속 풍경이 어느 순간 접점을 만나고, 삶은 영화가 영화는 삶이 된다. 그것이 비록 청춘이 아닌 책의 '상실'이고 현금의 '상실'이며, 응구기와 시응고가 투네원(2NE1)과 유피(UP)로 이어지더라도(책을 읽어본 분은 무슨 말인지 아시리라! 이 부분 읽다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실실 웃으며 농담하듯 때론 무심하게 툭 이야기를 꺼내놓지만 그 속엔 삶과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두 작가의 시선이 존재한다. 우리 삶의 이야기도.

《대책 없이 해피엔딩》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수다 같은 두 작가의 유쾌한 글빨이 시종일관 웃음을 던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가벼운 이야기만 늘어놓는 건 아니다. 우리네 현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에 대한 관심도 켜둔다. 그래서 이책에는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와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 황지우 총장의 사퇴 등 사회ㆍ문화 전반에 걸쳐 유난히 격동의 시기였던 2009년에 일어났던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들도 담겨있다.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해의 여러 사건들이 그렇지 않았나 싶다. 딸과 함께 어린이 영화를 보러 갔다가 영화 속 세계에서 부조리한 현실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글은 그래서 더 공감이 갔다.

매스를 든 의사처럼 진지한 자세로 따지고 분석하며 영화 속으로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파고들기보다, 오히려 영화 밖에서 부담없는 시선으로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풍경과 영화 속 장면을 넘나들며 이어가는 이야기로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점이 이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대책 없이 가볍게 술술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작가의 시선도 함께. 죽마고우 두 작가의 '핑퐁 영화 수다 플레이'인 《대책 없이 해피엔딩》은 영화를 좋아하든, 김연수 작가 또는 김중혁 작가를 좋아하든, 아님 둘 다 해당사항이 없더라도 누구든 유쾌통쾌상쾌하게 읽을 수 있는 영화 에세이다. 아무리 기분이 꿀꿀해도 몇 번은 웃게 만드는, 읽다 보면 대책 없이 행복하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 





- 울고 있는 김씨와 엉거주춤한 그의 엉덩이와 엉덩이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샐비어를 천천히 보여주는 장면은 <김씨표류기>의 압권이다. 자살은 해야겠고 그런데 똥은 마렵고 샐비어를 빨아먹어보니 이건 또 왜 이렇게 달착지근한 것이며 일어나려니 다리는 저린데 똥 무더기는 엉덩이와 너무 가까우니 눈물이 날 법도 하다. 사는 게, 참, 그렇다. 가끔은 샐비어와 똥이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희망이란 게, 참, 그렇다. 희망은 거대할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을 자살하게 만드는 절망의 크기가 다른 사람이 보기엔 터무니없이 작아 보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희망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을 수도 있다. (144-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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