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식객 요리 - 매일매일 먹고 싶은 엄마의 건강 밥상
허영만.권순애 지음 / 김영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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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엔 맛있는 음식들이 참 많고도 많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맛있는 건 엄마가 차려주시는 따듯한 밥상이다.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구수한 된장찌개, 금방 무쳐내 고소함이 묻어나는 나물 반찬까지 엄마의 밥상은 허기진 배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온기로 든든하게 채워준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의 이야기들이 더욱 마음에 와닿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집밥이 대세다. 먹방에 이은 쿡방의 인기에 의해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직접 만들어 먹는 집밥의 뜨거운 인기는 엄마가 차려주시는 따듯한 밥상을 받아먹기 힘든 바쁜 시대에 밖에서 사먹는 그저 그런 음식에 질린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엄마의 집밥이 그립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직접 그맛을 만들어 보리랏! 하는 마음에 요즘 요리책 홀릭에 빠져 있던 중 만화 <식객> 시리즈로 유명한 허영만 화백과 식객 요리팀이 함께 한 요리책 <우리 가족 식객 요리>를 만났다. 부제가 '매일매일 먹고 싶은 엄마의 건강 밥상'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만화 <식객> 시리즈야 두말 하면 입 아플 정도로 최고의 인기 만화이자 음식 만화인 만큼 <식객>이 완결되면서 그와 관련된 요리책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바로 <대한민국 식객요리> 1~4권이 그것인데, <우리 가족 식객 요리>는 그중에서도 요즘 집밥의 인기에 발맞춰 누구나 쉽게 만들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집밥 요리들을 선별해 새롭게 편집하고 내용을 보완해서 펴낸 책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식객요리>의 집밥 요리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화 <식객>을 읽으면서 입맛 다시던 집밥 요리들의 레시피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이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허영만 화백의 짧은 글이 나오는데, 만화 <식객>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이 짧은 글에서 다시 느낄 수 있다. '최초의 맛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에서 시작합니다. (중략)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합니다.' 이글에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번 추석 연휴 동안 집에서 먹은 엄마의 음식들이 다시 혀끝에서 하나둘 되새김되는 듯하다.








  <우리 가족 식객 요리>의 앞부분은 요리의 기본인 식재료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재철재료 캘린더와 식재료의 효능에 대한 이야기와 나 같은 요리 새내기에게 필요한 재료별 기본 칼질법과 재료 손질법 등이 실려 있다. 달걀 지단을 부칠 때 팬에 기름을 두르고 쓰고 남은 오이로 문지르면 기름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는 등의 간단하지만 유용한 팁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특히 재료 손질법은 익숙치 않은 재료들을 어떻게 손질할지 몰라 난감해하던 나 같은 요리 무식자들에게는 참 반가운 정보들이 가득 실려 있다. 물론 요리 좀 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




  집밥 요리를 내세운 요리책인 만큼 <우리 가족 식객 요리>의 메뉴들은 밥과 죽, 국과 찌개, 구이 조림 볶음 찜, 나물 무침 장아찌 김치 등의 평소 식탁에서 자주 만나던 익숙한 메뉴들로 구성되어 있고, 거기에 별미로 국수와 한 그릇 요리, 전통다과와 음료가 포함되어 있다. 책표지 한쪽에 적힌 '허영만과 식객이 함께 만든 맛있는 집밥 요리 154'란 카피가 무색하지 않게 아주 실한 메뉴들이라 목차들만 보아도 벌써 배가 든든해지는 느낌이다.






  이책에는 한 바닥에 한 가지 메뉴가 실려 있다. 왼쪽에는 맛깔스런 사진과 그 음식에 대한 짧은 설명이나 효능 등이 적혀 있고, 오른쪽에는 재료와 레시피가 작은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또한 조리시간과 1인분의 칼로리, 요리 용량을 한눈에 쏙 들어오는 이모티콘으로 표기해 놓았다. 오른쪽 윗쪽 공간에는 재료에 대한 설명, 재료를 고르는 방법, 요리할 때 특별히 주의할 점이나 또는 다르게 응용할 수 있는 조리법 등의 간략하지만 꽤 유용한 요리팁이 짤막하게 적혀 있다. 

  직접 이책의 요리를 따라해본 요리초보로서 아쉬웠던 건 재료의 용량을 표기하는 계량 기준이 조금 애매하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 식객 요리> 가장 처음 나오는 김치밥을 보고 군침이 꼴깍 넘어가서 가장 먼저 따라서 만들어 보았는데, 김치밥의 쌀 2컵과 물 1/2컵을 보고 보통 전기밥솥의 계량컵이겠거니 하며 따라했는데 그대로 하니 물량이 너무 적어 보였다. 불안하지만 그대로 만들었으나 결국 밥물이 적어 타고야 말았다. 1큰술, 1작은술이나 g 표기까지는 얼추 알겠는데, '컵'은 대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왕 친절하신 김에 나 같은 초보를 위해서 계량 기준에 대해서도 조금만 더 친절히 알려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쇄에서는 요 부분을 더 보완해주셨음 좋을 듯하다. :)




  책의 마지막에는 찾아보기가 있다. 이거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꽤 유용하다는 건 요리책 좀 찾아보신 분들은 아실 터! 책 전체는 분류별로 구성되어 있지만 내가 원하는 메뉴를 단번에 찾을 때 책 끝에 실려있는 찾아보기 꼭지 만큼 친절한 꼭지도 없다.






▲ '배숙' 만들기



  <우리 가족 식객 요리>를 넘기며 만들고 먹고 싶거나 나도 만들 수 있겠다 싶은 메뉴들을 포스티잇으로 표시하다 보니 어느새 한웅큼의 포스트잇이 책의 옆면에 붙었다. 그중에서도 쉽고 간단해 보여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이 바로 '배숙'이었다. 책에서처럼 예쁜 모양을 낼 수 있는 통후추도 없고, 절편으로 자를 생강도 없었지만, 엄마가 직접 말리신 생강가루로 물도 우려내고 배 위에 얹어 약간의 모양도 내니 꽤나 그럴싸했다. 달콤한 배와 알싸한 생강이 설탕과 만나 간단하지만 맛있고 건강한 후식이 완성됐다. 한 조각 맛보신 엄마도 인정! 다음에 통후추 한 통 장만하면 책과 같은 비주얼로 만들어 보아야겠다. :D




▲ 김치밥 만들기



  디저트 대신 처음 도전한 요리는 이책 가장 첫번째로 등장하는 김치밥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빨간 김치밥 사진이 너무 맛있어 보이고 했고 생각보다 재료나 만들기가 어렵지 않은 것 같아 도전했다. 그런데 막상 만들려고 보니 집에서 얻어온 김장김치는 똑 떨어졌고 굵게 채를 썰어야 하는 쇠고기는 잘못 사와서 깨알같이 다져진 상태였다. 잠시 절망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적당히 익은 마트표 김치와 다진 쇠고기로 김치밥에 다시 도전했으나, 아무리 찾아도 실마리를 찾지 못한 '쌀 2컵에 물 1/2컵'의 미스터리를 결국 풀지 못한 채 밥을 한 결과 결국 약간 탄내나는 밥이 되었다. 심지어 g을 잴 수 없어 눈대중으로 대충 맞춘 김치양이 적었는지 사진보다 희멀건 김치밥이 되어 잠시 눈 앞이 흐려지기도 했다. ㅠ



▲ 김치밥 만들기



  그러나 도전 정신과 좌절 속에서 완성된 김치밥은 요리책 속 사진에 비해 비주얼은 부족하지만 생각보다 맛은 그럴싸했다. 굵게 채썬 쇠고기 대신 이리저리 뭉친 다진 쇠고기지만 김치 양념과 어우러져 맛있는 한 그릇 밥이 완성된 것이다. 물론 풀지 못한 숙제인 밥물의 부족으로 생겨난 탄내와 밥알끼리 친하지 않은 된밥이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 한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결과라 자평하며 맛있게 먹었다. 다음엔 엄마표 잘 익은 김장김치와 굵게 채 썬 쇠고기로 무장해 제대로 만들어보리라 하고 도전욕을 다지고 있다. :D




▲ 북엇국 만들기



  김치밥 다음으로 만들어 본 음식은 바로 북엇국. 책에 있는 정식 이름은 무채북어탕이지만 일단 집에 콩나물은 있지만 무는 없고, 책의 팁에서 알려준대로 시원한 맛을 살리기 위해 쇠고기를 안 넣는 대신 북어를 참기름에 볶아서 국을 만들었다. 무가 들어갔으면 훨씬 더 시원한 맛이 더 살아났겠지만, 콩나물과 북어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한 북엇국 본연의 맛이 잘 우러났다. 이건 간단한 재료로 만들기도 쉽고 비주얼도 나름 잘 나와서 김치밥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웠던 메뉴였다. 추석날 다음 해장국으로도 좋을 듯하다. 참, 책에는 안 나오지만 울엄마표 레시피대로 두부를 같이 넣어주어도 맛있다. :)




▲ 매운 제육감자찜 만들기



  마지막으로 얼떨결에 도전하게 된 메뉴는 바로 매운 제육감자찜! 마트에서 돈육 코너를 지나다가 책 속 메뉴가 생각나서 삼겹살을 사왔다. 돼지고기 제육 양념은 처음 해봤는데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아서 뚝딱 만들어낸 내가 대견해졌고, 양념에 버무린 삼겹살이 제육감자찜으로 제법 모습을 갖추어가는 걸 보니 군침이 돌았다. 양념이 졸아들수록 '매운'이란 이름에 걸맞게 붉은 색의 양념이 삼겹살에 입혀져 가는 걸 보며 요리라는 게 생각만큼 그렇게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약간의 자심감이 생기기도 했다.



▲ 매운 제육감자찜 만들기



  완성된 매운 제육볶음은 책의 사진보다 훨~~씬 붉은 빛의 양념을 자랑하고 있어 순간 좀 당황했다. 붉은 양념인데 빨간 파프리카도 선택 착오였고, 책에서 감자만 넣고 당근은 언급하지 않은 이유를 완성된 음식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뭐 이렇게 실수를 거듭하면서 배워가는 것이지 괜찮아 괜찮아 혼자 위로하며 고기 한 점을 입 안에 넣었는데, 오! 맵다! 그리고 맛있다! 맛있쪄~♡ 내가 만들어도 제법 먹을만한 맛을 내는 걸 보니 왜 그렇게 뿌듯한 건지, 큭큭. 다만 돼지비계 안 좋아하는 나로선 다음에는 비싼 삼겹살 대신 살코기 부위가 더 현명한 선택일 듯하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예전엔 요리책을 볼 때 눈으로만 만족했는데, 책을 펼쳐놓고 직접 따라 만들어 보니 또다른 재미가 있었고 눈으로 볼 때와는 달리 약간의 자신감도 붙어 뭔가 뿌듯해졌다. 아직은 많이 서투르고 부족하지만 책을 보며 하나씩 따라하다 보면 나만의 요리 실력이란 게 조금씩 쌓여가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음식을 날름날름 받아먹기만 했는데 직접 만들어 보니 그 음식 하나에 이렇게 많은 정성이 간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좀더 연습해서 다음에는 부모님께 직접 요리를 만들어 드릴 날이 오길 바라본다. 

  허영만 화백의 인기 음식만화 <식객>에 등장했던 집밥 요리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우리 가족 식객 요리>는 집에서 자주 먹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특별함이 더해져 있고 친절한 사진과 설명으로 쉽게 따라 만들 수 있는 메뉴들로 꽉 차게 구성되어 있는 요리책이다. 이책을 따라 뚝딱 만들어낸 따듯한 집밥의 마술을 직접 느껴보시길. 엄마의 밥상 만큼은 아니더라도 꽤나 그럴싸한 모양의 맛있는 집밥 상차림을 완성해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책을 통해 식객의 요리들을 직접 맛보게 된 만큼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읽었지만 아직 전집 소장의 꿈을 이루지 못한 <식객> 시리즈를 <우리 가족 식객 요리> 옆에 나란히 두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D




최초의 맛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에서 시작합니다. (중략)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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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시간 - 왕비의 탄생 레인보우 스토리 컬러링북 2
위싱스타 지음 / 북에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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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열풍을 몰고 온 컬러링북의 인기는 아직 여전하다. 혹자는 나이께나 먹어서 어렸을 때 하는 색칠놀이를 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나 많은 어른들이 컬러링북에 빠져들었고, 그 인기가 유지된다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컬러링북만의 매력이 확실히 있다는 걸 게다. 많은 이들을 매혹시킨 그것이 궁금해 그동안 별달리 쓸 일이 없어 곱게 모셔둔 카버 카스텔 24색 색연필을 꺼내들고 뒤늦게 컬러링북 대열에 동참했다. 바로 어린날 꿈꿔오던 소녀감성 흠뻑 묻어나다 못해 뚝뚝 떨어지는 컬러링북 <황금의 시대 : 여왕의 탄생>과 함께. :)




  '어린시절의 꿈속으로 초대'하는 컬러링북 <황금의 시간>은 표지부터 소녀취향이다. 책만 펼치면 공주님과 왕자님이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특히 다른 컬러링북과 달리 고급스런 양장 제본이다. '황금'과 '왕비'가 등장하는 제목과 꽤 어울린다고나 할까. 솔직히 처음엔 컬러링북에 양장본은 좀 오버가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막상 컬러링을 해보니 그림 하나에 들어가는 정성이 장난이 아니어서 오랜 시간 정성들여 컬러링북을 다 끝낸 후에 소장용으로 보관하기에는 양장본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하자면 '책'으로의 기능이 강조된 컬러링북이라고나 할까. 나는 첫번째 컬러링북인 만큼 정성껏 완성해서 나만의 동화책으로 오래오래 소장할 계획이다. 훗.






  컬러링북 <황금의 시간>은 어린시절 읽은 동화 속 이야기인 '왕자를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컨셉을 가진 컬러링북이다. 그래서 책의 첫머리와 끝머리의 인사말과 맺음말도 동화 같다. 잠시 어린 시절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랄까. 동화책 읽던 어린 시절의 소녀감성 가득 충전하고 이책을 펼친다면 아마 더 즐겁게 컬러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시중에 나와있는 여러 컬러링북과 달리 <황금의 시간>은 '왕비의 탄생'이라는 부제에서처럼 '스토리가 있는 컬러링북'이다. 작은 소녀가 아름다운 여인이 되고 왕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통해 왕비가 되는, 어린 시절 많이 봐왔던 동화적 스토리에 맞춰 그림들이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어린 소녀와 아름다운 여인, 아내와 어머니가 된 왕비의 모습까지 한 여인의 일생이 이책의 그림을 통해 담겨 있다. 또한 소녀취향 컬러링북인 만큼 컬러링을 위한 일러스트 밑그림 또한 아름답다는 것도 이책의 장점이다.

  스토리가 있는 컬러링북이라고 해서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한두 줄로 구성된 단출한 글에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황금의 시간>의 스토리는 텍스트가 아닌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컬러링이 주인공인 만큼 애초에 신선한 스토리까지는 기대하지 않아 별다른 실망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컬러링에 새로운 스토리까지 갖춘다면 즐거움이 더 풍성해질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런지. 하지만 지금처럼 그림으로 보여주는 스토리도 나쁘지 않았다.


 



  <황금의 시간>을 다 훑어보고 본격적인 컬러링에 도전했다. 컬러링북을 선물한 적은 있어도 컬러링을 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눈으로 볼 때와는 달리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어렸을 때 크레파스로 쓱쓱 칠했던 색칠공부와는 달리 컬러링북은 섬세함과 조화로움을 요하는데, 너무 오랫만의 컬러링이라 도무지 어디에 어떤 색을 입혀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아 난감해졌다. 그래서 면적이 좁은 꽃다발부터 색칠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단조로운 나의 색채 감각에 다시 한번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나의 부족한 색채 감각과 함께 컬러링을 힘들게 한 건 바로 색연필! 나름대로 충분하다 생각했던 24색 색연필은 컬러링을 시작한지 십여분도 지나지 않아 원하는 색의 부재에 한숨을 쉬게 했고, 조만간 좀 더 더양한 색연필을 장만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져들게 했다. 다른 이들이 올려놓은 컬러링북 완성작을 보면서 가끔 어울리지 않는 색깔들에 놀라곤 했는데, 막상 칠해보니 그게 남일이 아니었다. 꽃과 기둥 등은 부족하게나마 색을 입혔으나 적당한 색을 찾지 못해 결국 주인공인 소녀의 피부색은 하얗게 비워둬야 했다. 본의 아니게 백인이 된 소녀를 보며 다음에는 공평하게(?) 흑인이나 홍인, 황인으로도 컬러링 해보고 싶은 도전 욕구가 생기기도. 큭.  




  컬러링북을 볼 때면 책이 너무 얇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이것 역시 직접 해보니 얇은 게 아니었다. 한 바닥의 그림에 색을 입히는데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초보라서 그렇겠지만 서너 시간 동안 색깔 고민하느라 1/4 바닥 밖에 채우지 못했다. 컬러링에 좀더 숙달되고 또 다양한 색깔의 색연필을 갖고 있다면 시간도 줄어들긴 하겠지만. 어쨌든 직접 해본 컬러링은 생각 이상의 긴 시간과 정성과 고민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처음엔 어디에 뭘 칠할지도 모르겠고, 또 어떤 색을 칠해야 할까 고르느라 재미보다는 고민의 강도가 더 컸었는데, 시간이 지나 컬러링이 조금씩 손에 익어가면서 점점 컬러링 특유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왜 다 큰 어른들이 컬러링북에 그렇게 열광하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 하나씩 색을 입혀 새롭게 탄생하는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고, 부족한 색으로 나름 응용해서 새로운 방법을 찾는 즐거움도 있다. 무엇보다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을 비울 수 있다는 것! 전에 친구가 생각이 너무 많을 때는 십자수를 한다고 했었는데, 컬러링북 역시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몰입할 수 있어서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이 어느새 다 사라져 버린다. 머릿속이 비워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니 힐링되는 느낌을 얻는 것 아닐까 싶다. 




  몇 시간 동안 열심히 고민하며 칠한 것치고는 완성된 결과물이 무척이나 미미한 컬러링이라 조금 머쓱하지만, 그래도 첫도전치고는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위로 중? ㅋ) 무엇보다 하면 할수록 점점 색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붙는 만큼 컬러링북의 남은 바닥과 그림들은 처음보다 한층 더 즐겁게, 그리고 실험정신을 담아 완성해갈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덕분에 <황금의 시간>의 컬러링을 완성할 쯤이면 아마 색감 만큼은 지금보다는 좀 더 향상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함께. 

  컬러링북 <황금의 시간> 덕분에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어렸을 때 읽었던 여러 동화들이 주르륵 생각났다. 지금의 비판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딴지 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구성이지만, 그래도 그책들을 재미나게 읽던 어린날의 추억이 오롯이 떠올라 추억돋는 시간이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그럴 일 절대 없겠지만 그럼에도 <황금의 시간>의 그림들에 색을 입히면서 잠시나마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도 이책을 즐기는 또다른 방법일 게다. <황금의 시간>은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동화풍의 아기자기함이 가득한 컬러링북이다. 소녀감성 충만한 여자사람들에게 추천하고픈 컬러링북이다. :) 







  아참, 책의 띠지 뒷면을 보면 12월에 진행될 '매우 특별한 이벤트'의 초대문구가 적혀 있다. 띠지가 곧 초대 티켓이라니, 난 원래 띠지까지 꼭꼭 챙겨서 보관하는 1인인지라 그럴 걱정 없지만, 혹시라도 책 받으면 걸리적거린다고 띠지 버리지 말고 잘 간직하셨다가 12월 이벤트에 짠~! 하고 참여해 보시길! :D





더불어 신간 무료배송에 오후에 주문해도 담날 도착하는 하루배송 알라딘 짱짱!!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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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몸 - 그동안 방치했던 내 몸과 하는 느린 화해
피톨로지 지음, 한동석 감수 / 청림Life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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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부터 반복되는 두통을 걱정하며 원인을 더듬다 보니 평소 뻣뻣하게 굳어있다며 염려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목과 어깨 근육이 떠올랐다. 목과 어깨 근육이 굳으면 머리로 올라가는 혈류가 원활치 않아 두통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길 이미 들은 터였지만, 그 간단한 스트레칭도 귀찮아 그냥 넘기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허리가 뻐근하다. 역시나 걱정은 되지만 여전히 편하다는 이유로 구부정하고 삐딱한 자세로 의자에 걸터 앉는다. 심지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다리를 꼬고 있기도 하다. 컴퓨터 앞에 한번 앉으면 그대로 몇 시간이 후딱 지나버린다. (리뷰를 쓰는 지금도 그렇다 ㅜㅜ)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허리 뿐만 아니라 다리까지 뻣뻣하다. 이러다 언제 큰일나지 싶은 걱정이 들다가도 이내 잊어버리곤 같은 상황을 반복한다. 이런 자신이 스스로 한심해 자책도 하지만 '어떤 운동'을 시작한다는 건 나 같은 귀차니스트에겐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몸소 실천하진 못하지만 나의 삐뚤어진 '나쁜 자세'에 대해 늘 일말의 죄책감을 안고 있었는데, <다시, 몸>의 저자는 그것이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며 또한 때로는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몸을 틀어지고 아프게 만드는 요인인 나쁜 자세를 묵과하자는 건 아니다. 일상을 살다보면 더 중요한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쁜 자세를 취하게 되더라도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틈틈이 잠깐씩이라도 바른 자세를 하려는 내 몸을 위한 관심어린 마음이 우선될 필요는 있음을 강조한다. 




 - 머리를 쓸 일이 많으면 '바른 자세'는 자연히 무너진다. 허리에 힘을 빼고 편하게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긴장감을 늦춘 편안한 자세는 에너지를 아끼려는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본능일 뿐이다. 바른 자세가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나쁜 자세'의 '어쩔 수 없음'도 이해해 주어야 한다. (중략) 일도, 공부도, 성공도 내 몸이 따라줘야 가능하다. 당장의 효율보다 중요한 건 오래오래 함께 살아갈 내 몸이다. 살아갈 날은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32-33쪽)

- 따지고 보면 우리 머릿속의 운동이라는 건 너무 부담스러운 술자리나 인간관계 같은 게 아니었을까. (중략) 여전히 마음속에서는 운동이 너무나 멀다. 소원해진 관계 회복의 첫걸음은 거나한 술판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 잠시라도 건네는 안부인사다. 그러니까 지금의 우리의 몸을 위해 정말 필요한 건 태릉선수촌의 국가대표들이나 할 법한 운동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몸의 경직을 풀어 주는 안부 인사 같은 작은 움직임이다. 시작도 없이 클라이막스로 넘어가는 영화는 없다. 우리 몸도 당장 뛰고 구르는 운동이란 클라이막스를 시작하기 전에 내 몸에 건네는 작은 소통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14쪽) 




 몸의 어딘가가 찌뿌듯하게 아파오면 우리는 운동을 다짐하곤 하지만 곧 게으름과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한다. 다른 운동책들과 달리 이책 <다시, 몸>은 독자들에게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부담 따위는 주지 않는다. 니 몸이 아픈 건 너의 게으름 때문이라고도 지적하지 않는다. 그저 이제까지 우리가 생각해 온 운동이 너무 거창했고 부담스러웠을던 것 뿐이라고, 니탓이 아니라고 토닥인다. 그렇게 접근하는 저자의 관점이 참 신선했고 무척 공감됐다.

 <다시, 몸>의 저자는 '본격 운동'이 부담스러운 평범한 우리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조금씩이라도 몸의 경직을 풀어주는 안부인사 같은 작은 움직임'이라고 말한다. 하다못해 자전거도 풀린 나사를 조이고 틀어진 프레임을 맞추는 등 꾸준히 잔손질을 해주어야 오래 탈 수 있듯이, 우리 몸도 '늘어진 근육을 조이고 굳은 곳은 크게 움직여 풀어주는 활성화 관리'가 필요하다. 몸을 풀어주는 활성화 관리를 통해 주변조직에 혈액을 원활히 공급해주고 뼈를 잡아주어 자세를 바로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굳이 본격적이고 거친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굳어가는 근육만 활성화해주어도 우리 몸은 최소한의 자기 기능을 잃지 않고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이 이책을 통해 저자가 전하고픈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다시, 몸>에서 소개하는 운동들은 일상에서 흔히 반복되는 잘못된 자세로 인해 굳어지고 틀어진 근육을 풀어지고 활성화시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쉽고 간단한 스트레칭들이다. 일상 중 잠깐씩 벌어지는 틈새 시간을 이용해 특별한 기구 없이도 맨손으로 쉽게 할 수 있는, 단순하지만 효과만점인 운동들이 우리 몸의 중요한 부위인 목, 어깨, 코어, 사지 네 개의 꼭지에 맞춰 실려 있다.

 당연히! 이책은 단순 운동법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몸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또한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하며 내 몸에 대한 이해를 우선으로 한다.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글이 어찌나 맛깔스러운지 운동법을 소개하는 건강책임에도 술술 읽혀서 마치 에세이를 펼친 듯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쉬우면서도 핵심을 콕 짚어주는 덕분에 쏙쏙 이해가 됐고, 동시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 내 몸의 증상을 본 듯한 처방에 폭풍공감하며 운동을 따라하기도 했다. 




 <다시, 몸>을 읽는 동안 증상별로 소개된 운동법들을 그냥 넘기거나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대부분 따라해 가면서 읽으려고 노력했다. 눈으로만 보는 것과 몸으로 직접 해보는 것은 몸이 기억한다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평소 근육이 뻐근하고 뭉친 것 같아도 귀차니즘에 그냥 넘기곤 했는데, 이책의 운동법을 따라해보니 몇 가지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몸이 한결 개운해지는 게 느껴졌다. 

 부채 모양으로 목을 돌리거나 고개를 뒤로 젖히고, 문 양 옆을 잡고 몸을 기울이며 등근육을 조이고, 등을 바닥이나 벽에 강하게 밀착시키거나 의자에 한발을 얹어 기울이고, 의자에 앉은 채로 다리를 펴고 발끝을 접고 펴는 것 같은 간단한 동작으로 목과 어깨, 허리와 골반, 종아리 근육의 긴장을 풀어줄 수 있다. 이 정도의 작은 움직임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그동안 내 몸에게 너무 무관심했구나 싶어 미안해졌고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동안 방치했던 내 몸과 하는 느린 화해'라는 이책의 부제는 나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이야기였던 거다. 




 이책에서 지적하는 머리를 지탱하느라 뻐근한 목과 구부정한 자세로 굳어버린 어깨, 중력의 압박에 틀어진 허리와 골반, 그리고 팔다리 허벅지까지 하나같이 전부 내 얘기 같아서 놀랍기도 하고 엄청 뜨끔하기도 했다. '우리의 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쪽의 조그마한 뒤틀림이 다른 쪽의 큰 이상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주변을 보면 골반이 틀어지고 허리가 삐뚤어져 어깨와 목을 타고 얼굴 비대칭까지 나타나는 크로스 신드롬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그렇기에 당장 아픈 곳만 보듬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우리 몸을 제대로 이해하고 뒤틀림의 시작을 잡아주어야 한다. 

 피톨로지의 건강책 <다시, 몸>은 단순히 운동법 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기대 이상으로 무척 흡족했던 책이었다. 이책을 통해 내 몸을 부족하게나마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무엇보다 몸이 원하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니라 관심과 배려를 담은 작은 움직임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읽은 보람이 있었다. 그동안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를 느끼면서도 운동에 대한 부담 때문에, 또는 못말리는 게으름 때문에 모른 척 무시해 왔다면 이제는 조용히 내 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리고 쉽진 않겠지만 꾸준히 내 몸에 관심을 갖고 다독여주자. 금세 지치지 않게, 틈틈이, 가볍게, 하지만 사랑을 듬뿍 담아서. 오래오래 나와 함께 살아가야 할 소중한 내 몸이니까 말이다. :)





자전거가 망가지기 전에 나사를 조이고 프레임을 맞추듯이 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첫 번째 단계는 늘어진 근육을 조이고, 굳은 곳은 크게 움직여 풀어주는 간단한 활성화 관리다. 한 시간씩 요가를 하고, 조깅을 하는 것과 비교를 할 수야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몸을 풀어주는 과정에서 주변조직에 혈액을 원활히 공급해 산책 같은 기분 전환을 할 수도 있고, 뼈를 단단히 잡아 구부정한 자세를 반듯하게 세울 수도 있다. 굳이 본격적이고 거친 운동을 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굳어가는 근육만 활성화해주어도 우리 몸은 최소한의 자기 기능을 잃지 않고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다. (16쪽)

단순히 머리를 앞으로 빼고 있었을 뿐인데 통증은 X자로 흘러 다리까지 내려간다. (중략) 크로스 신드롬이 찾아온 통증 역시 그때그때 아픈 곳만 매만져서 해결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방치했던 만큼 시간을 들여 애정을 갖고 다독거리는 관심이 필요할 뿐이다. 단기간의 격한 운동과 다이어트, 값비싼 영양제는 몸의 이상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아프다고 짜증을 내는 대신, 오랫동안 조용히 버텨온 우리의 몸을 차분히 다독거려주자. 틈이 날 때마다 안부인사를 하듯 가볍게, 하지만 자주. 지치고 약한 우리의 몸이 무너지지 않도록. (107쪽)

밑으로 고이는 피를 위로 올려 보내는 건 종아리를 두 개 층으로 덮고 있는 가자미근과 비복근이다. 이 근육들은 수축하면서 다리의 정맥을 짜내 끊임없이 피를 올려 보낸다. 즉, 종아리는 중력에 맞서는 제2의 심장이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우리에게, 매끈한 종아리만 찾는 우리에게 종아리는 더 이상 심장이 아니다. 핏줄이 흉물스럽게 도드라진 콤플렉스 덩어리일 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하지정맥류는, 우리가 두 번째 심장을 멈춰 놓아서 생긴 질병이다. (176쪽)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만들어내듯, 우리의 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쪽의 조그마한 뒤틀림이 다른 쪽의 큰 이상으로 나타나곤 한다. (중략) 우리가 쓰지 않아 균형을 잃은 종아리의 근육은, 같은 자세로 굳어버린 종아리의 근육은 유연성을 잃고 발목의 움직임을 제한한다. 뒤틀린 발목은 우리의 걸음걸이를 바꾸어놓고, 틀어진 걸음을 따라 돌아간 무릎은 걷는 순간순간마다 대퇴골의 각도를 바꾼다. 대퇴골과 연결된 골반도 따라서 틀어지고, 결국은 우리가 지겹게 떠들어댄 요통이 다시금 찾아온다. 그저 종아리 근육이 조금 굳었을 뿐인데! (176-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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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필사노트 : 메밀꽃 필 무렵 / 날개 / 봄봄 필사하며 읽는 한국현대문학 시리즈 1
이효석.이상.김유정 지음 / 새봄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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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작품을 그대로 따라 옮겨적는 필사는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건데, 요즘 들어 시나 소설을 옮겨 적는 필사 관련 책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필사라고 하니 학창시절 좋아하는 시 전체나 감명깊게 읽은 소설의 구절을 옮겨 적던 추억이 생각났다. 슬며시 떠오르는 미소 뒤에 그것들을 따라 적을 때의 마음이 생각나 갑자기 필사가 하고 싶어졌다.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따라 적으면 좋겠다 싶던 중 발견한 책이 바로 새봄출판사의 <나의 첫 필사노트>다. 이책은 책표지가 3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알라딘에는 '표지 3종 랜덤'과 '김유정의 봄봄' 두 가지가 올라와 있길래 나는 연초록의 느낌이 따듯한 '봄봄'으로 골랐다. 봄향기 물씬 풍기는 책표지 그림 덕분에 책이 더 친근해졌다.




 <나의 첫 필사노트>에서는 필사할 작품으로 세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친근하고도 익숙한 그 작품! 바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이상의 <날개>, 김유정의 <봄봄>이다. 주옥같은 단편소설 세 편을 이책을 통해 모두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갑다.  




 <나의 첫 필사노트>의 서문을 보면 같은 글이 두번 반복되어 인쇄되어 있다. '이건 뭐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보니 왼쪽 텍스트는 인쇄 활자 버전, 오른쪽 텍스트는 '필사노트'의 예시인 손글씨 버전이었다. 마지막 부분을 보니 새봄출판사 대표님이 직접 쓰신 손글씨인 듯.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직접적이고도 효과적인 책의 활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니! 필사의 좋은 예로 마음에 드는 구절에는 밑줄이나 별표도 넣고, 첨가사항도 적어 놓았다. 손글씨로 마주한 친절한 서문 덕분에 <나의 첫 필사노트> 사용법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첫 필사노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한쪽의 '일러두기'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먼저 이책에 실린 단편소설의 필사 버전에서는 문장과 단어를 최대한 현대식 표현으로 수정했고, 옮겨 적기 불편한 부분은 문장의 구조를 재배열하거나 첨삭하는 등 과감한 수정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과정은 아마도 작품을 옮겨 적는 독자들의 이해를 최대한 돕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반면 원문 버전에서는 최대한 원문을 살려서 실었다고 하니 원작 그대로를 만나볼 수도 있다. 




 이책은 세 편의 단편소설 모두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처음엔 필사 버전이, 그 다음엔 소설 원문이 실려 있다. '필사 버전'에서는 왼쪽에는 소설 텍스트가, 오른쪽에는 텅빈 백지가 마련되어 있다. (간혹 아랫부분에 주석이 적혀 있기도 하다) 앞서 출판사 대표님이 직접 시범을 보인 서문처럼, 본문에서도 왼쪽의 소설을 작품을 읽으면서 오른쪽 공간에는 마치 노트처럼 책에 바로 손글씨로 옮겨 적으며 필사하면 된다. <나의 첫 필사노트>라는 제목의 '필사노트'라는 의미가 책에 그대로 실현되어 있다. 




 소설의 '필사 버전' 텍스트가 끝나면 막간을 이용해 작가와 작품 정보가 간략히 실려 있다. 이름하야 '필사를 위한 몇 가지 도움말'. 필사 잘 하는 방법이 아니라 작품을 잘 이해하는 정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작품 원문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는 '원문 버전' 소설이 독자를 기다린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이상의 <날개>, 김유정의 <봄봄> 모두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애정하는 작품을 이렇게 옮겨 적으며 음미할 수 있는 책을 만나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문학작품의 필사는 단순히 따라 적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으면서 그 작품에 오롯이 집중하면서 더 깊게 이해하고 음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님이 아들과 며느리에게 모두 <태백산맥> 전권을 필사하게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데,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점점 스마트해지는 세상에 살다 보니 점점 펜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자판이 익숙해지는 요즘이다. 예전엔 반듯반듯 예쁘게 쓰던 글씨도 펜을 잡는 게 어색해지는 것 만큼 삐뚤빼뚤 못난이가 되어가고 있다. 어쩌다 메모라도 할라치면 내 글씨에 내가 놀라곤 한다. 손글씨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무언가를 계속 쓰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지라 필사책은 그런 면에서도 내게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이책을 통해 좋은 작품을 다시 만나는 행복과 함께 잊고 있었던 손글씨 쓰기의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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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다시, 유럽
정민아.오재철 지음 / 미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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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날 준비를 하는 이들에겐 다양한 정보로 여행 길잡이를, 마음은 굴뚝 같으나 일상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이들에겐 간접여행의 대리만족을, 떠날 생각 없는 이들에게조차 책장을 넘기는 동안 에세이의 재미를 넘어 저절로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매력을 품은 책이 바로 여행에세이다. 그런 점에서 이책 <함께, 다시,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사진작가의 향기가 느껴지는 멋진 사진들에 감탄하고, 부부가 제각각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에 공감하며, 하나씩 풀어내는 보석같은 장소들에 눈을 반짝이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은 그들을 따라 이미 유럽의 어딘가로 달리고 있다. 더불이 그들이 다녀온 여행 루트나 직접 준비하고 몸소 겪은 장기여행 꿀팁까지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으니 <함께, 다시, 여행>은 매력돋는 유럽여행 에세이다.





  이책을 알게 된 건 우연히 포털에서 클릭한 기사 덕분이었다. 신혼여행으로 414일 간 세계여행을 떠난 신혼부부, 그 흔한 커플링 하나 없이 결혼을 했고 그동안 모아둔 돈과 갖고 있는 물건들을 처분해 마련한 경비로 장기여행길에 올랐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세 개의 대륙에서 일년 넘는 시간을 함께 여행하는 동안 한 번도 안 싸웠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대체 이런 용기와 이해심을 가진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졌다. 그 호기심이 <함께, 다시, 유럽>을 펼치게 만들었다. 

  중남미 222일, 유럽 96일, 북미 96일로 총 414일 간 이어진 그들 부부의 신혼여행 루트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책의 앞부분에 공개되어 있다. 여행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여행은 중남미에서 시작됐는데 왜 첫 여행책의 장소로 유럽을 골랐을까 하고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앞서 저자 서문에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이 나와 있는데,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먼 남미보다 친숙한 유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란다. 그런 이유로 그들 부부가 여행한 세 대륙 중 유럽 여행이야기가 먼저 세상에 나왔다. 


  남미를 여행하고 왔다고 하면 용기가 대단하다며 다들 놀라워하지만 그뿐입니다. 그러나 정작 유럽 여행 얘기를 풀어내면 눈을 더 반짝이며 빠져 듣곤 합니다. 질문도 훨씬 많고요. (중략) 아직 멀고 멀게만 느껴지는 남미보다 언제고 한 번 갈 수 있을 것 같은 유럽이 더 친근하게 와 닿나 봐요. 그래서 이책에는 조금 먼저 들려주고 싶은 유럽 여행에 대한 기록을 담았습니다. (22~23쪽, '그녀'의 서문 중)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있었더라도 여행은 각자에게 다르게 기억된다. 일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개의 대륙을 여행한 그들 부부 역시 마찬가지였고, 서로의 다른 기억을 함께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 이책을 쓴 동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함께, 다시, 유럽>은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함께 담겼고, 그들의 유럽 여행을 관통하는 스무 개의 테마에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담긴 마흔 개의 이야기 보따리로 채워졌다. 

  비밀장소, 마을, 섬, 낭만, 드라이브, 영화, 축제, 건축, 사람, 공연, 아침, 밤 등의 테마별로 여행자의 궁극의 추억들만 골라 공유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이책의 장점이다. 또한 책의 순서나 흐름에 관계없이 관심있는 주제를 찾아 읽어도 좋다. 주제별로 담긴 그와 그녀의 이야기 모두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라 (묵직한 책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면) 들고 다니며 틈틈이 한 꼭지씩 읽기에 좋다. 그들 여행 경로의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여행하듯 따라가고 싶었던 독자라면 이런 주제별 구성이 다소 아쉬겠지만, 이책의 집필 동기 자체가 서로의 다른 기억을 함께 풀어내는 것에 있었으니 그런 점에선 의도에 충실한 구성이라 하겠다.


  사람들의 얼굴이 제각각인 것처럼 성격도 다르고, 보고 싶은 것, 경험하고 싶은 것도 제각각 다르다. 또, 그날그날의 기분이나 몸 상태에 따라서 여행지에서 받는 느낌과 감동도 각자 다른 게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 좋았다고 극찬하는 그곳에 대해 난 별로였다 말하기를 꺼린다. 남들과 다른 의견을 내고, 다른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모두가 똑같을 수 없고, 똑같이 살 수 있다 해도 그게 진짜 행복은 아닌데 말이다. (15쪽, '그'의 서문 중)






  <함께, 다시, 여행>은 시작부터 한 장의 동굴 사진만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스무 개의 주제 중 처음으로 말을 건 테마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만의 비밀장소였는데, 그가 꼽은 포르투칼 베나길의 해식동굴인 히든비치는 사진만으로도 감탄사를 뽑아내며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 역시 웅녀히 본 한 장의 사진에 반해 물어물어 어렵사리 찾은 곳이라는데, 그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만으로도 그런 고생을 할 가치가 충분히 있어 보였다. 이런 멋진 곳에 온전히 둘의 시간을 보내다 왔다니 그들 부부의 여행이 한층 더 흥미로워졌고 책장 넘어가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들 부부가 꼽은 유럽의 곳곳은 익숙한 곳도 있고 낯선 곳도 있었는데, 각각 나름의 인상을 남겼다. 작년에 다녀온 남해의 독일마을이 떠오르는 파스텔톤의 그림 같은 풍경의 스페인 네르하에서는 두 손 꼭 잡고 길을 걷는 노부부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인상적이었고, 열 갈래쯤 뻗은 화살표 표지판이 안내하는 스위스 체르마트는 컨디션에 따라 원하면 언제든지 트레킹 코스를 바꿔 걸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 체력을 길러 마터호른이 지키고 있는 체르마트 트레킹 코스에 도전해보고픈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어디일까 궁금했던 책표지는 그녀의 드라이브 장소로 꼽힌 야생의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사진이었고, 나에겐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로맨틱한 공간으로 기억되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그에겐 살고 싶은 유럽의 도시로 꼽혔다.

  그가 고요한 아침을 만끽했다던 이탈리아의 치비타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델이라는 말에 책에는 없는 치비타의 전경을 보려고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했고, 니스에서 마티스와 샤갈의 작은 미술관을 찾거나 꼭 가보고 싶었던 이탈리아 폼페이나 스페인의 가우디 건축물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부러움에 침을 꼴깍 삼켰다. 반면 그 즐거움이 상상이 되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끄의 거꾸로 집 이야기는 웃음을 머금게 했다. 사진만으로 로망이 되어버린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수상 오페라도 기억에 남지만, 느린 여행자가 누리는 카페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은 내가 직접 경험해 봤기에 더 공감이 됐다.





  저자인 '그'의 직업이 사진작가인 만큼 <함께, 다시, 유럽>에 담긴 여행사진들은 참 좋다.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름다운 유럽의 모습을 담아낸 사진들이 마치 그곳에 같이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때론 한 장의 사진이 긴 글보다 더 강렬하고 생생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가. 이책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풍성하게 실린 여행사진들은 <함께, 다시, 유럽>의 또다른 주인공이다. 이책이 이런 묵직함을 자랑하게 된 것 역시 고퀄의 사진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다만 개인적으로 실려있는 사진에 설명이 전혀 없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물론 장소를 먼저 정하고 글이 진행되는 방식이라 굳이 코멘트를 요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지만, (나만 그랬는지는 몰라도) 간혹 어디쯤인지 지명이 뭔지 궁금해지는 사진들이 있는데 알 방법이 없어 답답할 때가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우고 읽어내려 갔기에 더 여행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으로 여행을 따라가는 독자를 위해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몇 사진에는 약간의 설명을 달아주었음 어땠을까 싶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면 생각지도 않았던 꼭지가 나오는데, 여행의 준비부터 도착까지 장기여행의 꿀팁들을 따로 모아놨다. 여행경비 마련부터 배낭고르기, 짐싸기, 여행 정보 모으기,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사진을 위한 카메라와 데이터 보관법 같은 준비과정 등이 그들의 실제 준비과정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다. 여행 준비가 막막했던 이들이라면 저자 부부의 경험에서 나온 친절한 조언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또한 이동 수단의 선택, 리스와 렌터카의 차이점, 렌터카 고를 때 유의점, 숙소 고르는 법, 돈 아끼는 식사법 등 여행 현장에서 필요한 여러가지 팁들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식비 항목에서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거지처럼 때우기'라는 소제목에서 빵 터졌는데, 가장 큰 지출을 요하는 외식 대신 직접 장을 봐서 요리한 경험에서 비롯된 깨알같은 장보기와 초간단 요리 팁들을 소개한다. 그외 레포츠, 문화 관람, 축제 등 여행의 큰 즐거움인 여러 체험거리에 대한 부분도 함께 곁들여 놓았다. 





  <함께, 다시, 유럽>은 유럽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부담없이 읽기 좋은 여행에세이다. 사진 작가가 찍은 유럽 분위기 물씬 풍기는 멋진 사진들이 많아 보는 재미가 있고, 글 또한 술술 잘 읽히고 길이 또한 길지 않아 금방금방 넘어간다. 무엇보다 그들 부부가 소개하는 마흔 개의 추천여행지 중 잘 몰랐던 유럽의 반짝이는 장소를 많이 알게 되어 좋았다. 다음에 언젠가 유럽을 가게 된다면 이책을 길잡이 삼아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벌써 몇 곳이나 생겼고, 저자의 추천처럼 여행사진에 대해서 공부해 보고 싶어진 것도 나름 수확이었다.

 크고 묵직해서 휴대용 책으로 갖고 다니기엔 좀 부담스럽지만, 책장을 넘길 때 손에 착 달라붙는 종이의 질감이 좋고(나는 이런 것도 좀 중요한 편이라 ㅋ) 여행의 즐거움을 전해줄 여행사진의 색감도 좋다.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책이 참 예쁘다. 세련되고 간결한 표지 디자인의 첫 느낌이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곁에 두고 자주 손을 뻗고 싶어지는 책이다. 





  처음에는 각자 따로였지만, 이번에는 '함께' '다시' 찾은 '유럽'인 만큼 <함께, 다시, 유럽>에서 그들 부부는 예전과는 달리 '함께 하는 여행'의 묘미를 느끼고 경험한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에 더욱 행복했던 그들의 여행 이야기는 이책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나 글을 읽고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그래서 그들의 여행기가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기나긴 여행을 통해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한 관계의 성장은 물론 일상의 우리를 얽매는 소유 욕구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마음의 성장까지 얻었다니 이거야말로 정말 제대로 부러워진다.

  그들 부부가 다녀온 세계여행의 세 대륙 중 유럽이 첫 포문을 열었으니 그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은 중남미일지 북미일지 궁금해진다. 아름다운 사진과 그들만의 경험이 녹아든 이야기로 글을 풀어낸다면 어느 곳이든 좋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나는 중남미 대륙이 두 번째 책의 주인공이었으면 싶다. 너무 멀어 직접 날아가진 못하지만, 정말 가보고 싶은 곳들이 많은 신비로운 중남미의 매력에 다시 한번 빠져보고 싶기 때문이다. 용감한 도전을 아름답게 마무리한 그들 부부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














어쩌면 우리는 너무 앞만 보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정해져 있는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길이 외롭고 고달픈데도 숙명인 양 그길만을 고집한다. 빨리 간다고 해서, 멀리까지 간다고 해서 많은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아닐 텐데, 뒤처질세라 앞을 향해 열심히 걷고 또 걷는다.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가보면 어떨까? 내일을 바라보기보다 오늘을 둘러보면 우리 삶이 좀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89쪽)

한국으로 돌아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자 그저 한바탕 꿈을 꾸었던 것처럼 언제 세계 여행을 하고 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일상에 완벽히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길다고 생각했던 14개월은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마음가짐이겠지요. 떠나기 전에는 무엇을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주변을 신경 쓰며 전전긍긍 살았던 것 같아요. (중략)
세계 여행을 하는 동안에 길 위에서 우린 참 많이 웃고 행복했습니다. 물론 힘들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괴로워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그날의 작은 행복에 더 많이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중략)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우리가 가진 거라곤 내 몸뚱이만 한 배낭 하나뿐인데 왜 이리 행복할까?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구나!`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무언가를 넘치게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요. 이제는 모든 것을 가지려 집착하지 않고 그저 저희에게 필요한 만큼만 가지려 합니다. (386쪽)

여행의 감동은 봐야 할 것의 크기에 비례하진 않는다. 크고 대단한 것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그 여행이 결코 헛된 건 아니라는 사실! 먼 곳만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어 내리면 내 발아래의 반짝이는 은화 한 닢이 보인다. 몽트뢰의 조그마한 카페에서 되찾은 여유로운 일주일은 여행 중에 발견한 뜻밖의 행운이자 크나큰 행복이었다. (224쪽)

여행을 하면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이 있다. 잔뜩 기대에 부풀엇다고 해서 그에 부응하는 좋은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오, 항상 주위를 살핀다고 해서 나쁜 일을 모조리 피해갈 수 있는 것만도 아니더라. 여행이란 그야말로 `우연`과 `타이밍`이 만들어 내는 예측 불가능한 반전의 시나리오. 우연히 들른 한 평범한 마을에서 때마침 옆을 지나가던 꽃미남들에 이끌려 아름다운 한 쌍의 커플을 만난 것처럼. (299쪽)

여행의 추억이란 건 객관적인 기록보다는 그 이전 혹은 이후에 무엇을 했는지, 누구와 함께였는지, 당시의 기분이 어땠는지 등 지극히 주관적이고도 개인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눈은 호강했지만 결론적으로 손에는 쥘 수 없었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월드에서의 허무함 vs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마주보며 마음껏 웃고 즐기며 남긴 사진 한 장의 만족감.` 어쩌면 내가 경험한 것들 중 가장 보잘 것 없고 소소했던 거꾸로 집 체험이 내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인상적이었던 체험으로 기억된 것처럼 말이다.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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