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개는 다르다 - 시간 속에 숨은 51가지 개 이야기
김소희 지음 / 페티앙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을 더듬어보면 사실 나는 개에 대한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상근이처럼 크고 하얀 개에게 엄청 쫓겨다녔던 기억이 있고, 초딩 때 방과 후 집으로 오던 길에 마구 날뛰던 작은 개에게 물릴 뻔한 아찔한 경험도 있다. 어린시절 겪은 그리 유쾌하진 않은 경험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아님 특유의 소심함 때문인지 지금도 난 개와 친밀한 스킨십을 하지 못한다. 개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애완동물들이 내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가끔은 길을 가다 예쁜 개를 만나면 스스럼없이 쓰다듬어 주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긴 하다. 내 친구처럼.  

나야 안 좋은 추억 때문에 아직도 개를 무서워하며 가까이하기를 꺼리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개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동물 중 하나다. 더구나 애견인구가 늘어나고 단순히 사랑하며 키우는 동물을 넘어 평생을 함께 할 동물이라는 뜻의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보편화되고 있는 것처럼 이제 개는 사람들의 친밀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동물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쓴 《모든 개는 다르다》(페티앙북스, 2010)는 개를 사랑하는 애견인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흥미로운 책이 아닐까 싶다.

《모든 개는 다르다》에서 저자는 개의 역할이나 쓰임새에 따라 품종이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400여 품종이 있는데,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스스로 만들어진 품종도 있지만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품종이 더욱 많단다. 역사적으로 개는 사람과 무척 친밀했던 존재였던 만큼 이해도 되지만 어째 인위적으로 품종을 만들었다고 하니 조금 미안해지기도 한다. 어쨌든 개의 품종이 다양해지면서 점차 분류를 시작했는데, 처음엔 사냥개와 사냥개가 아닌 개 두 그룹으로 단순하게 시작했던 분류작업은 현재 개의 역할이나 기질에 따라 크게 7개의 그룹으로 나뉜다고 한다. 동일 그룹에 속한 개들은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으니 그룹별 특성을 알아두면 거기에 속한 품종의 개들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7개의 그룹은 시각이나 후각을 이용해 포유동물 사냥하는 사냥개들의 하운드 그룹, 건장한 체격과 강한 체력으로 짐수레나 썰매처럼 힘쓰는 일을 주로하는 일하는 개들의 워킹 그룹, 새사냥을 돕는 조렵견들의 스포팅 그룹, 땅 속의 작은 동물들을 잡아내는데 탁월한 테리어 그룹, 장난감처럼 작고 귀여워 온전히 사랑받는 애완견으로 태어난 토이 그룹, 가축을 몰거나 지키는 양치기개로 활약한 허딩 그룹, 앞의 6개의 그룹에는 속하지 않지만 저마다의 특성을 갖고 있는 다양한 개들이 모여있는 넌스포팅 그룹으로 구분된다.

저자는 각 그룹의 전반적인 특성에 대해 먼저 설명한 다음 그 그룹에 속한 품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준다. 각 그룹이나 품종의 개에 대한 역할이나 기원, 기질 등 정보성 지식들이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에 등장한 유명한 캐릭터나 유명인사와 얽힌 에피소드들과 적절히 어우러진다. 《모든 개는 다르다》는 인기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의 마스코트로 활약했던 상근이가 속한 워킹 그룹의 그레이트 피레네, 인기 만화 '스누피'의 모델이었던 하운드 그룹의 비글, 미국 부동산의 여왕 리오나 헴슬리에게서 120억원의 유산을 물려받은 개 '트러블'이 속한 토이 그룹의 몰티즈, 영화 '래시'의 주인공이었던 허딩 그룹의 콜리, 그리고 그 등장만으로도 반가웠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개이자 워킹 그룹인 진돗개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개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물론이고 나처럼 그다지 개와 친하지 않은 독자들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재미를 제공한다.

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애견인구가 늘어나는 반면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 개들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유기견 문제가 그러하다. 물건은 필요가 다하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개는 물건이 아니다. 우리처럼 감정이 있는 엄연한 생명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너무 쉽게 잊는다. 쉽게 데려와서 키우다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물건 버리듯 쉽게 버리는 건 하나의 소중한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유기견 문제는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얼마나 가볍고 무책임하며 이기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개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주인에게 버려지고 상처받은 유기견들을 보면 참 미안하고 부끄러워진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에겐 불편할 수 있는 행동들이 입장바꿔 개들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개다운 행동'일 것이다. 숲에서 사냥을 하고, 초원에서 양을 몰고, 설원에서 눈썰매를 끌던 개들의 본능적인 기질들이 지금처럼 환경이 바뀌면서 문제적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얘기다. 때에 따라 적합하지 않은 행동과 기질들을 적절히 다스리고 고쳐나가는 건 어쩌면 개들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기로 한 사람들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개들이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나무라기 전에 먼저 내가 그 개를 진심으로 이해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개나 사람이나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말이다.

《모든 개는 다르다》는 다양한 그룹과 품종의 개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함께 각각에 얽힌 여러 일화들을 만날 수 있어 전체적으로 술술 잘 읽헜다. 더불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개들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시간 속에 숨은 51가지 개 이야기를 담은 《모든 개는 다르다》는 개를 좋아하는 애견인들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개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보통의 독자들에게는 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는 재미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 우리가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는 이유는 그가 말을 할 줄 알고 머리가 좋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똑같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동물 특히 개도 우리 인간처럼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과,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무한한 지성과 힘을 가진 유일한 존재는 우리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1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신은 만들어진다 - 여배우의 바디멘토 김명영의
김명영 지음 / 우린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 여신은 만들어진다 │ 김명영 │ 우린 │ 2011.04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시상식에 입장하는 여배우들의 모습은 언제봐도 참 매력적이다. 어쩜 하나같이 늘씬하고 탄력있고 볼륨감 넘치는 몸매를 갖고 있는지, 아름다운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꽃미남 조인성을 보며 '하루라도 저런 비주얼로 살아보고 싶다'던 꿀단지 길의 심정에 어느새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여배우들의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저런 몸매를 만들고 또 유지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싶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매일 힘들여 운동을 한다는 게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부러움과 감탄은 곧 이런 투덜거림을 동반한다. 몸이 재산이고 또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을 일이 많은 연예인의 특성상 그만큼 더 투자하고 신경쓰는 건 당연한 거라고, 직장인들에 비해 비교적 시간이 더 자유롭지 않냐고, 유능한 전담 트레이너가 일대일로 관리해주니 오죽 잘 봐주겠냐고 말이다. 아마 몸짱 연예인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두 번쯤은 해보았을 거다.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을 게다. 직업이 직업인 만큼 몸매 관리의 필요성은 더 크겠지만 그들도 사람인데 왜 힘들지 않겠나. 그러니 몸짱을 위한 그네들의 노력에 질투어린 비아냥보다 따듯한 찬사가 더 어울리지 않을런지. 그리고 부러우면, 우리도 당장 운동을 시작하면 된다!


최강희, 이나영, 김태희, 이지아, 홍수현, 구아라. 이름만 들어도 귀가 솔깃해지는 여배우들(아이돌 가수 출신인 구하라도 드라마에 출연했다니;)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책 《여신은 만들어진다》는 제목에서 이미 눈치챌 수 있듯이 스크린 또는 브라운관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는 여배우들처럼 건강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만드는 운동법을 소개하는 다이어트 운동책이다. 일명 '여신 만들기 프로젝트'라고나 할까(솔직히 개인적으로 '여신'이라는 칭호는 그다지 공감 안 되지만;;). 최근 노출의 계절을 앞두고 몸매 만들기에 돌입한 독자들 사이에 꾸준히 입소문을 타고 있는 '핫'한 책이기도 하단다. 

《여신은 만들어진다》는 '예쁜 몸매 만들기'에 중점을 둔 부위별 운동법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운동법들이 그럴듯한 몸매만 만드는 건 아니다. 소위 'S라인'의 명품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석구석 숨어있는 군살은 없애고 빈약한 부분에 근육을 키워주는 운동을 하는데,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불필요한 지방은 줄고 근육량이 늘어나면서 살이 빠지고 몸도 건강해진다. 즉, 건강도 챙기고 다이어트도 하면서 몸매를 더 예쁘게 만들어주는 운동법이라는 거다. 저자는 《여신은 만들어진다》에 소개된 운동법들은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을 빼고, 요요현상에 대한 걱정없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할 수 있는 트레이닝 방법이라고 말한다. 
 

 
《여신은 만들어진다》는 왜 운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과 함께 본격적인 운동에 앞서 먼저 '자세 자가진단'과 잘못된 자세를 교정해주는 '교정 운동법'을 소개한다. 제대로 운동하려면 그전에 내 몸을 먼저 파악해야 하는데, 잘못된 자세로 근육이나 골격이 틀어진 상태에서 운동을 하면 몸의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아 근육이 불균형하게 발달하기 때문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없단다. 그래서 저자는 자세 자가진단으로 자신의 자세를 살펴보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책에서 소개하는 교정운동법으로 교정 후 운동을 시작하길 권한다. 이제껏 궁금은 했으나 다른 책에서는 짚어주지 않았던 부분이라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꼭지였다.

본격적인 실전 프로그램 전에 저자는 먼저 여섯 여배우들의 고민과 신체적 장단점, 그리고 그것을 이겨낸 운동 스토리를 들려준다. 그리고 여배우들의 운동 사례를 바탕으로 힙, 다리, 종아리, 허리 라인, 등, 배(복근), 가슴과 쇄골 등 각 여배우들의 체형에 따라 중점을 두었던 부위별 추천 운동법들을 소개한다. 더불어 그 운동법을 권하고픈 신체 유형에 대한 설명들도 곁들여 놓았다. 예를 들면 힙업 운동으로 다리를 길어보이게 해주는 김태희 운동법은 키가 작거나 다리가 좀 더 날씬해 보이고 싶은 이들에게, 등 라인을 예쁘게 해주는 최강희 운동법은 어깨가 굽어 있거나 우아한 상체 라인을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식이다. 

 

 


《여신은 만들어진다》가 알려주는 운동들은 대부분 복잡하지 않아 따라하기 쉽다. 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이 동작들은 막상 직접 해보면 제대로 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동작은 단순하되 운동효과는 큰 동작들인 셈이다. 모델의 동작 사진 밑에는 운동 방법과 자세 잡을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을 적어두었다. 또 모델 사진에는 붉은색으로 어떤 부위가 땅기는지도 친절히 표시해 놓았다. 설렁설렁 대충 하면 운동이 되지 않으니 표시 부분이 확실하게 땅기도록 자세를 잡고 운동하라는 저자의 의도다. 무엇보다 운동보조기구나 장비 따위 없어도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맨손 운동법으로 구성되어 있어 좋다.

근육을 다듬어주는 부위별 운동 뒤에는 무산소 운동 후 여분의 칼로리를 소모해주고 몸속의 노폐물을 제거해주어 몸을 개운하게 해주는 유산소 운동법이 간단하게 실려있다. 더불어 앞에서 소개한 운동법들을 활용해 원하는 부위를 중점으로 효과적인 운동 프로그램을 짜는 방법을 설명하고 직접 참고할 수 있도록 샘플도 몇 개 실어두었다. 처음에는 다듬고 싶은 부위의 운동만 집중적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무식하게 생각했는데, 바디 멘토링 프로그램 샘플을 보니 그 부위에 비중을 두어 집중하되 다른 부위의 운동들도 골고루 포함해 전체적으로 몸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았다.

그외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에서도 틈틈이 짬을 내어 쉽게 할 수 있는 실용적인 오피스 스트레칭, 똑똑한 다이어트를 위해 알아야 할 먹거리 상식과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푸드 멘토링, 일상에서 건강한 음식을 똑똑하게 골라 먹을 수 있는 노하우를 담은 추천 식단과 외식할 때 메뉴별 선택에 대한 조언과 주의점 등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들을 곁들여 놓았다. 마지막에는 날씬한 몸매를 위해 건강식으로 구성한 푸드 멘토링 프로그램, 즉 식단표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다이어트를 목표로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엄마가 해주시는대로 먹는 나로서는 전혀 실현 가능성 없는 식단표지만;)


《여신은 만들어진다》는 여신이라 불리는 여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운동책이라 그런지 보통의 실용성을 강조한 운동책들보다 표지나 편집이 꽤 예쁜 책이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여배우들의 운동 사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어 마치 에세이마냥 흥미롭게 읽힌다. 다만 대표적 사례이긴 하지만 여배우들의 이야기에 적잖은 비중을 두다보니 생각보다 여타의 다른 운동책들에 비해 소개되는 운동법이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운동법을 많이 소개한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허전한 감은 없잖아 있다.

여섯 여배우들의 '바디멘토'이자 이책의 저자인 김명영 트레이너는 《여신은 만들어진다》에서 제목 그대로 '여신의 몸매'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눈부신 몸매를 뽐내는 여배우들도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고, 제각각 숨겨진 단점도 많이 갖고 있었다고, 그럼에도 오랜 기간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이 있는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 누구든지 포기하지 말고 그네들처럼 노력한다면 충분히 각자의 아름다운 명품 S라인의 여신급 몸매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여신은 만들어진다》는 건강, 다이어트도 좋지만 무엇보다 '예쁜 몸매 가꾸기'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운동책이다. 앞서 말했듯 별다른 보조기구 없이 맨손으로 언제 어디에서든 할 수 있고 동작 또한 많이 어렵지 않아 누구나 따라하기에 좋다는 점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명품 몸매를 뽐내며 여신이라 불리는 여섯 여배우들의 근사한 바디라인을 보고 있자면 예쁜 몸매 만들기에 대한 동기부여 효과가 한층 더 커지지 않을런지. 이제부터라도 똑똑한 운동법으로 건강과 멋진 몸매,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아보자.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도 피를 나눈 가족이 남보다는 낫다는 의미로 쓰이는 이 말은, 슬프게도 모든 가족에게 통용되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처럼 다양한 가족이 있는 법, 때로는 가족이 오히려 남보다 못할 때도 있다. 독립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박선희의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 오현종의 <사과의 맛>에 수록된 '헨젤과 그레텔의 집' 등에 나오는 주인공이 바로 그런 경우다. 그들에게 가족이란 차라리 생판 모르는 남보다 못한, 그저 벗어나고 싶은 무거운 짐 같은 존재일 뿐이다.

<불량 가족 레시피>의 가족들도 그렇다. 하루라도 쉬지 않고 잔소리를 퍼붓는 여든 넘은 할매, 가족을 무임금으로 착취하는 무능력한 아빠,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병까지 걸린 백수 삼촌, 고치기 힘든 선천성 고관절 병으로 젊은 나이에 기저귀를 차고 다녀야 하는 전문대생 오빠, 욕을 달고 다니는 입이 걸한 고3 수험생 언니, 그리고 자기를 버리고 간 댄서 엄마를 둔 태생이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소외당하는 고딩 주인공 권여울이 그 구성원이다. 아빠의 화려한 여성 편력에 이들 삼남매는 모두 각기 다른 엄마에게서 태어난 배다른 남매인 데다 사이까지 좋지 않다. 모이기만 하면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리는 이 가족은 기가 막히는 구성원에 가족의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무늬만 가족'이다.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는 가족을 둔 여고 1학년 여울은 자신의 암울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고스튬플레이에 빠져들고, 새로운 코스 옷을 장만하기 위해 매점 식권을 몰래 복사해 팔다가 걸려 된통 혼이 나기도 하고, 엄마가 나이트클럽 댄서 출신이라고 구박하는 할매와 언니에 대한 반항심에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고 뻗어 온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 누구도 여울이 왜 그러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각자의 삶이 너무 고단해 다른 이에게 위로를 건넬 여유도 마음도 없다. 그게 설령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잔소리 소리에 욕지기에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던 여울의 집은 아빠에게 대들던 언니의 가출에 이어 삼촌과 오빠마저 집을 나가고 할매마저 잠시 사라지자 순식간에 싸늘한 한기가 감돈다. 연이은 가족의 가출에 불곰 같던 아빠도 기세도 한풀 꺾이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잠깐의 반항일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가출은 그대로 이어지고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아빠의 사업이 쓰러지면서 남은 여울의 가족마저 큰 위기에 처한다.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지만 아직은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머무르는 곳, 여울에게 집이란 가족이란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여울은 가출이 아닌 '준비된 출가'를 위한 사항들을 챙기며 언젠가 그들을 떠나 멋지게 탈출할 날을 꿈꾸며 지긋지긋한 가족들과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나 막상 여울이 출가를 하기도 전에 다른 가족들이 먼저 떠나버렸다. 집을 나간 언니와 삼촌, 오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빠마저 구치소에 갇혔고 할매는 이모할매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날이면 날마다 아웅다웅하던 이 불량가족은 이제 완벽하게 해체되기 직전이다.

같이 있는 것조차 괴로운 가족들이 사라져 버리면 속이 다 시원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게 현실이 되자 아이러니하게도 여울은 알 수 없는 허전함과 쓸쓸함을 느낀다. 그리고 가족이 완벽하게 흩어진 후에야 여울은 그토록 미워하던 가족을 다른 눈으로 다시 돌아보게 된다. 최대의 위기는 또다른 기회라는 말처럼, 위태위태한 불량가족은 완전히 쪼개지는 위기를 겪고나서야 다시 시작할 이유를 갖게 된다. 그리고 가족이 일에는 무심한 방관자였던 여울이 그들의 가족임을 선언하면서 그들 불량가족은 다시 뭉칠 수 있는 새로운 구심점을 얻는다. 때론 위기가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불량 가족 레시피>는 그 제목에서처럼 심란한 가족구성원들이 모인 문제적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소설은 시종일관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간다. 자칭 범생이는 싫다는 주인공 여울은 약간의 불량기가 있지만 내숭없는 솔직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속도감 있는 문체 덕분에 어찌나 술술 읽히는지 지하철을 타면서 펼쳐든 첫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장을 향하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책이 좀 얇은 편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평소 책읽기랑 안 친한 아이들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청소년 소설인 듯싶다.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소설이지만 <불량 가족 레시피>가 다루는 소재는, 전하는 메시지는 마냥 가볍지 않다. 점점 가족의 해체가 잦아지는 현실에서 이 콩가루 집안과 그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더이상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 불량 가족인 여울이 가족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결국 '가족 간의 소통과 관심의 부재'였다. 각각 구구절절한 사연이 많은 그들은 각자 자신의 어려움만 토로할 뿐 다른 이의 아픔과 상처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고, 서로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려는 소통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같은 집에 사는 동거인 일 뿐 가족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잇달은 사건과 위기로 가족이 해체되자 무늬만 가족이었던 여울의 가족들은 조금씩 변화기 시작한다. 집을 나간 삼촌은 할매를 염려하고, 입만 열면 듣기싫은 잔소리만 쏟아붓던 할매는 여울의 곁을 지키기로 한다. 가족의 방관자로 살아왔던 여울은 지긋지긋한 존재였던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급기야 그 가족들을 기다리며 가족의 구심점이 되길 되길 선언한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불량가족은 큰 일들을 겪으며 서로를 돌아보게 되고 서투르지만 진심어린 소통을 시작한다. 더불어 여울 또한 한뼘 더 성장한다. 코스튬플레이를 통해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던 소녀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더이상 판타지 속에 숨지 않고 현재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방관자가 아닌 주인공이 되어 자기 앞에 펼쳐진 삶에 당당히 맞선다. 

<불량 가족 레시피>는 가족이 완전히 흩어지고 상황은 더할 나위없이 나쁜 극한의 상황에서 끝이 난다. 나름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나는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진화하는 거야(197쪽)'라는 꼴통 도덕쌤의 말처럼 가족 최대의 위기 앞에서 불량 가족들은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 조금씩 진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이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지금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조용히 일깨워준다. 문제 가족사를 통해 지금 우리들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불량 가족 레시피>는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앞으로 문학동네가 발굴해 나갈 청소년 문학이 사뭇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울기엔 좀 애매한 │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최규석 작가의 신작만화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주문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택배상자에서 책을 꺼내면서 조금 당황했다. 대략 A4 판형의 예상치 못한 크기였다. 책을 뭐 크기보고 사는 건 아니지만, 큼직한 크기 덕분에 눈이 시원해서 책읽기엔 좋지만, 무조건적인 규격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다행히 책장 높이를 넘어서진 않아 다른 책칸으로의 이사까지 감행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현격히 차이나는 높이로 인해 최규석의 신작 《울기엔 좀 애매한》(사계절,2010)은 '그의 전작과 같이 꽂아두기엔 책높이가 좀 애매한' 고민을 던져주었다.

6ㆍ10 민주항쟁을 생생하게 풀어낸 만화 《100℃》를 통해 최규석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전부터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대한민국 원주민》 등으로 이름은 익히 들어왔지만 좋아하는 몇몇 작가의 작품을 제외한 다른 만화책은 잘 보지 않았던 터라 그의 작품을 직접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접한 작품이 《100℃》였고, 첫만남의 강렬함이 오래 기억에 남아 그의 다른 작품을 하나둘 찾아보기 시작했다. 가난한 대학생들의 자취방을 무대로 한 《습지생태보고서》와 그의 이름을 주목하게 만든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차례로 만나면서 어느새 작가 최규석의 팬이 되었다. 

아직 남은 《대한민국 원주민》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신작을 먼저 만났다. 제목만으로는 그 내용을 쉬이 짐작하기 힘든 특이한 제목을 지닌 전작들처럼 《울기엔 좀 애매한》 역시 마찬가지다. 순박한 표정의 소년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고 있는 책표지가 더해져 대체 울기에도 애매한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엇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 마음이 움직였다. 평소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는지라 더욱 궁금해졌고, 책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다 읽어버렸다.



꽃미남 배우 원빈과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외모를 지닌 고3 강원빈은 그림에 재능은 있지만 부모님의 이혼 후 넉넉찮은 가정형편 때문에 선뜻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못한다. 없는 집 자식들이 선뜻 공부를 시작하기엔 미술은 너무 돈이 많이 드는 분야니까. 그런 아들을 위해 엄마는 고민 끝에 아들이 가고 싶어하는 미술학원 등록을 허락하고, 원빈은 엄마의 짐을 덜어드리고자 틈틈히 학원비 충당을 위한 알바를 뛰면서도 하고 싶었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겁다. 재능에 열정, 그리고 테크닉까지 더해지면서 원빈의 그림 실력은 나날이 좋아지지만, 세상은 매몰차고 가난은 결정적인 순간 그의 발목을 잡는다.

자신을 호구, 그것도 모태 호구 또는 내추럴 본 호구, 그리고 입 가볍고 귀 얇고 속 좁은 최강 찐따(은수의 성격이 드러나는 핵심 대사인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랴!)라고 칭하면서도 사람 좋은 웃음을 실실 흘리는 은수는 '어떻게든'의 실례로 불리는 미술학원의 재수생이다. 실력은 있지만 입학금을 낼 돈이 없어 대학에 합격하고도 재수를 하는 은수의 모습은 원빈의 서글픈 미래상이기도 하다. 모태 빈곤인 가정 형편 때문에 꿈(학원비)과 생계(생활비)를 위해 음식점 알바도 겸하고 있지만 삶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점점 더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현실 때문에 꿈을 버리고 싶진 않지만 팍팍한 삶은 은수의 어깨를 점점 더 짓누른다.



이책에는 입시 미술학원을 배경으로 만화가의 꿈을 키우는 다양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늘 붙어다니는 여고생 3총사가 있고, 실력은 있지만 돈이 없는 은수와 원빈이 있고, 그들과 반대로 실력은 그냥그렇지만 재력만큼은 빵빵한 지현이 있다. 그리고 시종일관 직설적인 대사와 촌철살인의 유머로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속내에는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학원강사 태식이 있다. 여담이지만, 유머감각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키크고 깡마른 체격의 장발머리 태식의 비주얼은 이책의 작가 최규석과 꽤나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물론 작가님이 훨씬 쾌남이지만. :)

원빈에게서 시작한 이야기는 은수를 거쳐 학원 아이들에게로, 그리고 다시 원빈에게 돌아온다. 대학 입시라는 모두의 공통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 그러나 그것이 자신들의 정당한 실력 외에 다른 어떤 외부의 개입에 의해서도 결정될 수 있다는 부조리한 현실을 목격하고는 분노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 현실에서 그들이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가지지 못한 자로서의 좌절을 안겨주면서 동시에 앞으로 겪게 될 현실의 녹록찮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가난하고 힘들지만 그렇다고 울기에도 좀 애매하다며 억지로라도 웃으려던 그들에게 현실은 기필코 눈물샘을 툭 하고 건드린다. 무심한 듯 덤덤하게 넘기는 듯 보이던 원빈의 눈에서 기여코 또르르 하고 눈물이 떨어지는 순간 내 코끝도 같이 시큰해졌다.



《울기엔 좀 애매한》은 입시만화반 아이들이 겪는 상황들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생생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풀어낸다. 대학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물어보려 하지 않거나, 그런 대학마저도 실력이 아닌 돈의 힘으로 들어가거나, 힘겹게 대학을 나와도 정작 일자리가 없어 비정규직을 연연하며 빈곤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다. 찌질하고 남루한 삶이 힘겹지만 그렇다고 울기엔 좀 애매하지 않냐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작가는 태식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울거나 웃는 것 외에 화를 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그러나 정작 누구에게 화를 내야할까. 그게 문제다.

작가는 헌책방 주인, 학원 원장과 강사 같은 인물들을 통해 위선적이고 자기 잇속만 챙기느라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부조리한 어른과 사회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운다. 동시에 그럼에도 힘든 현실을 살아내는 아이들에게 따듯한 위로와 작은 희망을 전한다. 결국 울어버린 원빈도, 울지도 웃지도 못한 은수와 태식도,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그 시간이 지나면 제각각 자신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울기에도 웃기에도 좀 애매한 무수한 상황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때 그들이 그저 웃어넘길 뿐만 아니라 때때로는 실컷 울거나 속시원히 화를 내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는 다시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만화를 그린 작가도 책을 읽은 독자도 모두 우리 아이들이 그러해주길 응원할 것이다.


만화는 끝났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뒷면에는 최규석 작가의 작업노트가 덤으로 담겨 있다.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된 동기부터 작업과정,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과정 등을 재미나게 들려준다. 특히 비교적 짧은 분량이라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수채화 만화를 해볼까 싶어 비싼 종이와 무려 32색의 비싼 물감까지 샀는데 채색 작업 해본지가 오래되어 채색 연습 결과가 개판이라는, 그러나 그 비싼 32색 물감을 버릴 수는 없어 계속 연습을 했다는 부분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나를 당황시킨 이책의 큼직한 판형은 이런 눈물나는 사연을 머금고 태어난 수채화 만화이기 때문이라고. 작가의 처절한 고생 덕분에 독자의 눈은 한층 더 즐겁다. 그러기에 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그전에 유일하게 아직 만나지 못한 그의 작품 《대한민국 원주민》을 얼른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산드라의 거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카산드라의 거울 1,2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임호경 옮김, 홍작가 그림 │ 열린책들
  



얼마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새책 《카산드라의 거울》이 출간됐다. 그리고 정말 오랫만에 그의 책을 다시 만났다. 베르베르를 처음으로 알게 된 책이 언니의 추천으로 읽었던 그의 데뷔작 《개미》였으니 그와 재회하기까지 어느새 적잖은 시간이 흐른 셈이다. 베르베르의 책 중에서 읽은 게 《개미》 밖에 없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 책이 전해준 신선한 충격 때문에 나는 베르베르를 생각할 때면 자연스레 《개미》를 같이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세밀한 관찰력과 치밀한 묘사, 놀라운 상상력으로 무장된 박학다식한 작가라는 베르베르의 이미지까지도.

다시 만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지식들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펼쳐내는 그의 이야기는 여전했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초반의 지루함 역시 그대로였다. 《개미》에서 또다른 세계와의 연결이라는 열쇠를 보여주기 전의 조용한 되풀이처럼 《카산드라의 거울》에서는 카산드라의 정체와 대속 주민들의 면면을 파악하기까지 펼쳐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조금 지난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으면서 앞으로 내달린다. 그리고 곧 베르베르가 선사하는 진짜 재미를 맛볼 수 있다.


'5초 후 사망 확률'을 알려주는 기묘한 시계를 지닌 의문의 청년이 210미터 높이의 몽파르나스 타워 옥상에서 뛰어내리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곧 이책의 주인공 카산드라 카첸버그에게 시선을 돌린다. 17세의 자폐증 소녀 카산드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고대 트로이의 카산드라가 받은 저주처럼 미래를 보는 비범한 능력을 지녔지만 아무도 그녀가 말하는 불안한 미래를 믿어주지 않는다. 어느날 꿈에서 본 테러 사건을 예언하다 이를 저지시키려는 기숙생과 난동을 부린 후 학교를 도망쳐 나온다. 자신을 찾는 경찰을 피해 [시쓰장(시립 쓰레기 매립장)] 울타리 안으로 숨어든 그녀는 곧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다가오는 들개 무리에 둘러싸이지만, 짐작했듯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을 죽일 수는 없는 법, 대부분의 주인공들처럼 카산드라 역시 절체절명의 순간에 짠~하고 나타난 구원자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난다.

쫓기는 신세에 갈 곳마저 없는 카산드라는 자신을 구해준 오를랑도를 따라 시쓰장 깊숙한 곳에 은폐된 마을 [대속(代贖)]에 이르고, 그곳에서 마을의 또다른 주민이자 노숙자인 에스메랄다, 김, 페트나와 대면한다.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자신들의 구역에 갑작스레 나타나 불길한 예언까지 쏟아내는 이방인에게 대속의 주민들은 격하게 당황하고 만장일치로 그녀를 마을에서 내친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점차 그들은 카산드라를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마침내 그녀의 꿈이 말하는 예지를 쫓아 테러 진압을 위해 나선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테러를 막아낸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전재산에 육박하는 벌금과 악취를 풍기는 노숙자를 향한 세상의 차가운 시선 뿐이다. 네 명의 노숙자들은 다시 냉소적으로 변하지만 카산드라는 암울한 미래를 바꾸기 위한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카산드라의 거울》은 미래를 보는 자폐증 소녀 카산드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세상의 똥구멍'이라 불리는 시립 쓰레기 매립장(시쓰장)에 쌓인 온갖 종류의 쓰레기산은 현대인의 이기주의가 낳은 환경 문제를 건드리고, 자신의 아이까지 실험 대상으로 삼는 카첸버그 부모를 통해 과도한 지성과 과학이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한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익명의 목숨을 담보로 삼는 테러가 끊이지 않거나 정의로운 일을 행하고도 겉모습으로 인해 찬사는커녕 오히려 비난을 받는 부당한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기도 한다. 대속의 노숙자들이 비공식 미래전망부를 세우고 가능성의 나무에 '그리고 만약'의 잎사귀를 달기 위해 토론하는 부분에서는 그들의 입을 통해 현대 사회의 온갖 부조리한 이슈들을 토해내며 일침을 가한다.

또한 베르베르는 카산드라와 함께 하는 대속의 노숙자들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규범과 관습에도 어퍼컷을 날린다. 온갖 쓰레기들이 내뿜는 악취로 인해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는 시쓰장의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노숙자들의 마을 대속은 그들만의 유토피아다. 학교나 직장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교통 체증에 시달리며 지각이나 해고 걱정을 할 필요도 없으며, 실컷 늦잠을 자거나 한껏 게으름을 피워도 괜찮다. 가래침을 뱉고 욕지기를 하며 거리낌없이 트림과 방귀를 방출하며 본능에 충실해도 나무라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똥은 자기가 치운다'라는 마을의 표어 아래 그들은 각자의 임무를 자발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공동체를 유지시킨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에서 버림받은 땅에서 그들은 오히려 가장 자유롭다.

전직 외인부대원인 오를랑도, 왕년에 에로 영화배우였던 에스메랄다, 아프리카에 온 흑인 주술사 페트나, 탈북자 출신의 컴퓨터 천재 김예빈, 그리고 비운의 미래 예언자 카산드라까지 대속 마을의 주민들은 모두 세상에 쫓기거나 버림받거나 소외된 이들이다. 같은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만 그 존재 자체가 너무나도 미미해 제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테러를 진압해 세상을 구하고 암울한 미래를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이들 또한 그들이다. 그들을 보며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지만 어쩌면 세상을 움직여 가는 이들은 바로 이런 작은 존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카산드라의 거울》은 한국인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출간 전부터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비운의 예언자 카산드라와 함께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는 대속 마을의 노숙자 4인방 중 컴퓨터 천재이자 입만 열면 속담이나 격언을 꿰어내는 김예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섣부른 짐작은 금물.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추측과 달리 김예빈은 앞머리 한 가닥을 파란색으로 물들인 건장한 17세의 소년이다. 책에서 베르베르는 카산드라를 비롯해 다니엘, 카첸버그, 필리프 등 온갖 이름의 어원을 파고들며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만 정작 김예빈이란 한국 이름의 늬앙스는 미처 고려하지 못한 모양이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예빈이란 이름을 중성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더불어 김예빈은 대한민국이 아닌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 즉 북한 출신의 탈북자다.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던 한국인이 아나키스트적 성향의 탈북자라는 점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 소외되고 불만을 가진 이들이 모인 대속 마을의 노숙자 멤버로 김예빈은 꽤 적합한 내력의 인물이기도 하고, 데뷔작 《개미》 이후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베르베르의 한국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캐릭터이기도 하기에 점점 그에게 애정을 갖게 됐다. 후반부로 갈수록 김예빈의 매력이 더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최근 연평도 포격 같은 안타까운 사건이 있긴 했지만 북한 역시 우리 민족이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모든 것을 확률로 계산해 내는 천재 수학자이자 미래를 아는 능력까지 지녔지만 다니엘은 자신의 노력이 암울한 미래를 결코 바꾸지 못한다는 비관적인 생각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세상을 등진다. 그러나 카산드라는 그러지 않는다. 자신의 오빠와 달리 그녀는 미래를 보는 특별한 능력 만큼 그에 대한 책임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성공하는 것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열정을 잃지 않는 것이다'라는 처칠의 격언을 되새기며, 78%라는 지배적인 확률의 비관적인 미래에 포기하지 않고 비록 1.3%의 낮은 확률에도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카산드라와 그녀의 노숙자 친구들의 그런 믿음과 행동들은 유토피아를 향한 확률을 1.5%로 끌어올린다. 베르베르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카산드라를 통해 앎에 그치는 것이 아닌 행동하는 지성, 그것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미미할지라도 옳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행동하는 용기를 강조한다. 카산드라와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의 작은 용기와 믿음이 유토피아를 향한 작은 발걸음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거울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의식하게 해주는 도구'라는 카산드라의 깨달음처럼 《카산드라의 거울》은 미래 세대를 생각하지 않는 우리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다시금 되짚어보게 한다. 집시 점성술사 그라지엘라는 '미래를 들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해내지. 예언이 실제로 실현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야. 그것이 바로 멋진 이야기의 힘이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 역시 카산드라의 예지몽을 통해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미래의 가능성을 향한 낙관적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책을 통한 베르베르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물론 행동하는 지성이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 맞아. 밖에는 여러가지 위험도 있어. 하지만 삶이란 그 위험들을 감수하는 거야. 삶은 모험이고, 실패하고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야. 모험을 하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너희는 좀비로 머물게 돼.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지 않으면 너희는 영원히 노예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단 말이야! (2권 149쪽)


《카산드라의 거울》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전개와 카산드라 내면의 독백이 교차되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인물의 내부와 외부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이야기는 교장 필리프에게 잡히고 도망치고 그에게 얻은 단서로 잃어버린 과거와 몰랐던 오빠의 존재를 찾아가고 대속 마을 노숙자들과 갈등하다 화합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 쏟아지는 온갖 언어학적 기원과 세상에 대한 비판과 수많은 정보들이 산만하고 다소 지루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카산드라가 예지력을 갖게 되는 과정과 그녀의 가족사는 여전히 흥미롭다. 결말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카산드라의 거울》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베르베르의 마르지 않는 기발한 상상력과 그것을 통해 세상에 대해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가 흥미로운 판타지 소설이었다. 다만 한국어판에만 삽입되었다는 삽화의 효용성은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여전히 의문이다. 







→ 예약판매로 주문한 책의 앞부분에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사말과 사인 인쇄본.
'미래에 대한 단 한 사람의 비전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 그가 남들의 경청을 얻어낼 수만 있다면.
그리고 기꺼이 책임지려고만 한다면'
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사인도 참 멋지다.  
근데 재밌는 건 베르베르가 이글을 쓴 날짜가 바로 내 생일이었다는 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