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내가 죽었다 - 끌로드씨의 시간여행
이즈미 우타마로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 어느 날, 내가 죽었다 | 이즈미 우타마로 | 예담 | 2011.09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면? 소설 《어느 날, 내가 죽었다》는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 끌로드는 가을비가 내리는 어느 저녁 사과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해 울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구하려고 나무를 타다 미끄러진다. 다행히 그가 구하려던 새끼 고양이는 멀쩡했지만, 불행히도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자신의 장례식이 끝난 뒤 혼의 세계에 들어선 끌로드는 그곳에서 세 명의 개성 넘치는 수호천사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이제 막 종착점에 다다른 584번째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슈퍼마켓 점원인 끌로드는 매일 손님과 점장 사이에서 전쟁을 치른다. 사적인 일까지 알고 지내며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손님의 존재는 이제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실적만 강조하는 점장은 그의 짖누른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집 대출금과 아이들 학비, 앞으로의 생활비 등을 생각하면 다시 원점이다. 오래된 꿈이 가끔씩 마음 속에서 꿈틀대지만 당장의 현실에 치여 애써 외면해왔다. 그러던 사이 아내와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났고 초라한 현실만이 그에게 남았다.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잊은 적 없는 꿈과 함께.

수호천사와의 시간여행을 통해 끌로드는 자신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된다. 숲에서 만난 소년에게 자신을 화가라고 소개했던 일, 평생을 사랑했던 이레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일, 어린 시절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해 상처받았던 일, 그리고 기억할 순 없으나 이전에 자신의 삶이었다던 전생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재생된다. 각각의 일에 대한 끌로드의 생각과 달리 줄줄이 이어진 수호천사들의 해석은 그에게 새로운 놀라움을 전해준다. 그제야 끌로드는 그들이 안간힘을 다해 전하려고 했으나 끝내 눈치채지 못했던 숨은 삶의 메시지들을 뒤늦게 깨닫는다.

수호천사들과 지난 삶을 되짚어가며 반성과 깨달음의 품평을 마친 끌로드는 신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신과 함께 삶에 대한 꽤 다양하고 폭넓은 대화를 시도한다. 수호천사와의 시간이 개별수업이라면 신과의 만남은 삶에 대한 총정리인 셈이다. 부산하고 요란스런 신과의 산만한 대화를 통해 작가는 이전에 수호천사들과의 시간여행에서 계속 강조했던 삶에 대한 긍정, 꿈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 성실한 삶이 만드는 발전 등을 다시금 반복한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고, 실패는 좀더 나은 발전을 위한 밑거름일 뿐이라고. 그리고 끌로드는 전보다는 더 나은 삶을 희망하며 585번째 삶을 준비한다.

《어느 날, 내가 죽었다》는 소설의 형식을 띠지만 교훈적인 메시지를 강조하는 내용은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죽음을 삶의 끝으로 생각지 않고 시간 여행을 통해 지난 삶의 되짚어보고 다시 조금 더 발전된 새 삶을 준비한다는 소재는 참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매력적이고, 자포자기의 삶을 산 끌로드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자유분방한 수호천사 캐릭터도 나름의 재미를 준다. 그러나 남장여자로 등장해 궁극의 산만함과 수다스러움을 겸비한 경망스러운 신의 캐릭터는 가벼움의 선을 넘어 슬며시 짜증이 났다. 삶의 철학을 희화화된 캐릭터를 통해 가볍게 다루어보겠다는 의도는 알겠지만 재미는커녕 그나마 있던 감동마저 사라지게 만들 정도였다. 물론 그런 희화화 덕분에 더 재미있다는 이들도 있겠지만, 여튼 소재에 비해 구성이나 캐릭터 등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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