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울렁증 때문에 이제껏 해외여행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던 내가 본격적으로 해외로의 여행을, 그것도 혼자 다니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였다. 다녀온 곳들이 대부분 짧은 영어로도 소통이 가능할 만큼 한국인들이 많이 찾고 여행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이긴 했지만, 어쨌든 뒤늦게 마신 외국물(?)은 색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그러다 올초 우연히 코타키나발루를 가게 됐는데 도시여행과는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비록 스노클링이나 호핑투어 등은 못했지만 시설 좋은 리조트에 느긋하게 앉아 하늘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며 지는 석양을 보고 있자니 이런 맛에 사람들이 휴양여행을 떠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코타에서 즐길 액티비티에 대한 정보를 찾던 중 스노클링은 역시 필리핀 섬들이 최고라는 댓글을 여럿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내 머리 한구석에서 필리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났다. 이름으로만 알던 필리핀을 지도에서 찾아보고는 온통 크고 작은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점에 한번 놀라고, 이름으로만 들어왔던 소문난 휴양지인 세부, 보라카이, 팔라완 등이 모두 필리핀의 섬이라는 사실에 다시 놀랐다. 몇년 전 라오스 여행을 가면서야 동남아시아 지도를 다시 보게 되었으니 학창시절 세계사 점수와 상관없이 나의 무식에 한탄할 수 밖에. 동시에 여행으로 인해 생생한 지식을 흡수하는 즐거움도 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ㅋ
코타키나발루에서 못해 본 스노클링을 비롯한 휴양지의 즐거움을 그 좋다는 필리핀 바다에서 누려보고 싶다는 욕망에 관련책을 찾다 만난 책이 <보라카이 세부 홀리데이>다. 얼마전 전면 개정 증보판이 새로 나와 따끈따끈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이 끌렸고, 한손에 쏙 들어오는 휴대하기 편한 책크기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지난번 홍콩 여행 때 동행했던 <홍콩 홀리데이>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터라 알찬 내용이 가득한 홀리데이 시리즈 브랜드에 대한 믿음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연상되는 시원한 책커버의 컬러가 책을 열기도 전에 바다를 만난 듯 설레게 한다.
<보라카이 세부 홀리데이>는 한 권의 책에 보라카이, 세부, 보홀의 정보를 함께 담았다. 마음 같아서는 주변에 있는 팔라완의 정보까지 몽땅 담아줬으면 싶지만, 그건 욕심일 뿐. 생각해보면 보라카이와 세부가 가깝다 해도 두 곳을 모두 다녀오기도 쉽지 않을텐데 그보다 먼 팔라완이 웬말인가. 필리핀 무식자의 욕심임을 수긍하며 책장을 넘긴다.
책장을 펼치면 가장 먼저 보라카이 세부 여행에서 꼭! 보고 체험하고 먹어야 할 베스트 항목들이 쭉 나온다. 아무리 필리핀 무식자라 하더라도 멋진 풍광과 맛있는 음식에 절로 마음이 설레기 마련! 특히 아름다운 화이트비치와 투명한 바닷속, 시리도록 파란 바다는 물을 무서워하는 나조차 당장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였다. 어쩜 바다가 저런 빛깔인지!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서도 여행 가는 나라에 대한 기본지식조차 모르고 가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두번째 꼭지에서는 필리핀과 보라카이 세부 보홀에 대한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정보들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필리핀 휴양여행의 포인트, 여행 레시피, 기념품 구입리스트와 인기 식당, 음식, 열대과일 등이 수록되어 있다. 여행 가기 전에 챙겨야 하는 여행 체크 리스트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 항목!
책장을 넘겨 본격적인 여행정보 탐험에 들어가면, 책은 제목에 등장한 보라카이와 세부, 그리고 나는 이번에 처음 들어보았지만 이미 입소문이 나고 있다는 보홀, 이렇게 세 개의 파트로 나누어 짜여져 있다.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휴양관광지인 보라카이와 세부는 비슷한 비중으로, 아직 사람들의 때가 덜 묻어 자연친화적이라는 보홀은 그에 비해 얇은 장수로 담겨 있다. 그럼에도 <보라카이 세부 홀리데이>를 읽으면서 가장 끌렸던 곳이 보홀이었다. 아직은 세련되지 않은 투박함이 남아있는 곳이 나랑 더 맞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물론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초콜릿힐도 보고 싶고. :)
가장 먼저 즐길거리 먹거리 살거리 숙소에 대한 개괄적인 브리핑과 베스트3를 보여준다. 여행의 큰 그림을 대략 그릴 수 있다. 여행의 첫 관문이자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주는 공항 도착 후 숙소 찾아가기는 친절하고 자세한 정보로 살뜰하게 챙겨준다.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보라카이에는 국제공항이 따로 없어 바로 옆에 있는 파나이 섬의 국제공항에서 내려 다시 보라카이행 배를 타야 한단다. 그 과정이 책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어쩐지 국제공항이 있기엔 섬이 너무 작다 싶었다. 세부는 보라카이에 비하면 훨씬 큰 섬일 뿐만 아니라 필리핀에 제2의 도시라는 위상에 걸맞게 국제공항이 있어 이런 번거로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보홀은 옆에 있는 세부에서 배로 이동이 가능하다.
각 파트 앞에는 해당 섬의 전도와 편의시설이 함께 기록된 세부 지도가 있어 아직은 낯선 여행지의 거리를 가늠해볼 수 있다. 보라카이의 경우 섬이 워낙 작고 화이트비치를 중심으로 편의시설이 몰려있어 헤맬 일은 없어 보였다. 세부는 생각외로 섬도 크고 무려 13개의 도시가 있는 큰 섬이라 놀랐는데, 사실 우리에게 알려진 세부는 세부시티와 그 옆에 붙어 있는 리조트가 가득한 막탄섬이란다. 뒤이어 여행지의 주요 포인트를 잘 살린 여행 일정이 나온다. 이걸 큰 틀로 삼아 자신의 일정에 맞춰 코스를 가감하면 또다른 훌륭한 여행계획이 완성될 듯하다.
'enjoy' 꼭지에서는 관광지 같은 볼거리, 액티비티나 클럽 마사지샵 같은 즐길거리에 대한 정보등을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해변 환상적인 바다를 가진 휴양지답게 세곳 모두 해양스포츠 같은 액티비티 체험이 주를 이루고 여행의 피로를 풀어줄 다양한 마사지샵들의 정보가 가득가득 빼곡하게 담겨 있다. 한쪽에는 위치 주소 연락처 이동시간 가격 웹사이트 등 기본정보가 실려 있고 군데군데 팁들도 같이 달려 있다. 아름다운 해변과 바다 외에 딱히 마땅한 관광지는 없는 보라카이에 비해 세부는 마젤란이 최초로 밟은 필리핀 땅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스페인 유적이나 대도시에 걸맞는 큰 쇼핑몰이나 시장 같은 볼거리들도 함께 소개되어 있다.
침샘을 자극하는 먹거리들이 가득한 'eat' 꼭지에서는 수많은 찜목록이 발생했다. 라오스나 말레이시아에서 동남아 현지 음식들을 이미 경험해봤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다양한 음식들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다시 침이 고인다. 경험상 가이드북에서 알려준 맛집이 항상 최선의 선택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는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저자가 소개해주는 여러 음식들을 미리 살펴보고 끌리는 식당 한두 개는 미리 찜해두고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는 신선한 해산물 요리도 먹고 싶지만 그것보다 달콤한 망고나 몸에 좋은 코코넛 같은 열대과일이 더욱 탐난다. 술은 안 마시지만 바에서 맥주 한 잔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buy'에서는 현지에서 필요한 물건이나 특산품 기념품 같은 것을 살 수 있는 쇼핑 정보를 실어두었다. 여행 가서 쇼핑하는 걸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현지의 재래시장 투어는 언제나 재미있기에 이번 꼭지에서도 재래시장 정보를 가장 열심히 봤던 것 같다. 'sleep'에서는 다양한 시설과 가격의 리조트와 호텔의 사진과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어 선택을 도와준다. 멋진 휴양지에 간다면 한번쯤 묵어보고 싶은 그런 숙소들도 많아 보는 재미가 있다. 다만 누군가 동행 없이 혼자 여행할 때는 숙소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는 편인데, 보라카이 세부는 휴양지라 그런지 저렴한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정보는 거의 볼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 (실제로 그런 숙소 자체가 많지 않다고 한다)
<보라카이 세부 홀리데이>는 마지막까지 완벽한 여행준비를 놓치지 않는다. 출발 40일부터 당일까지 준비하고 챙겨야 할 것들에 대해 조곤조곤 안내해준다. 한두 번 여행을 했던 독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이긴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고 했으니 이렇게 한번 더 확인해주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특히 짐꾸릴 때 필수준비물은 꼭 다시 확인하는 센스! 몇 번을 써도 매번 쓸 때마다 헷갈리는 입국신고서도 그림과 함께 실려 있어 좋다. 전압 같은 필수정보도 다시 한번 체크해 놓았다.
살짝 덧붙이자면 통화 정보에 페소 단위와 함께 한화와의 환율정보도 같이 실어주면 어떨까. 내가 미처 못 보고 지나친 건지도 모르겠지만 보통 가이드북 앞부분에 나오는 환율정보가 없어 조금 아쉬웠다. 물론 스마트폰을 열어 검색하면 금방 나오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정보인 만큼 같이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 더불어 현지에서 환율이 좋은 환전소 몇 곳도 같이 소개해주거나 아니면 지도에라도 표기해주면 아주 유용할 것 같다.
한눈에 찾기 쉽게 인덱스도 있는데, 특이하게 전체 가나다순이 아닌 지역별 항목별로 나눠 가나다순으로 정리해두었다. 또 책표지에 실린 것처럼 보라카이 세부 보홀 현지의 스파 펜션 맛집 호핑투어에 쓸 수 있는 쿠폰 16종도 보너스로 실려 있다. 해당 가게를 이용할 계획이라면 쿠폰으로 보다 저렴하게 이용하거나 별도의 사은품을 받을 수 있으니 꼭 챙겨가시길!
책이 제일 마지막 페이지에는 부록으로 휴대용 지도책이 붙어 있다. 살짝 잘라내면 여행지에서 간편하게 볼 수 있는 관광지도를 득템할 수 있다. 책을 들고 다니기에 무겁거나 부담스러울 때 이 별책부록 지도책만 살짝 떼어서 가지고 다니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스마트폰 덕분에 세계 어디에서도 구글맵을 사용할 수 있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저자의 노고가 담긴 정보들이 담긴 지도책은 든든한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보라카이 세부 홀리데이>는 아름다운 휴양지인 보라카이 세부 보홀의 정보를 한 권으로 만날 수 있어 반가운 책이었다. 친구나 가족에게 조곤조곤 알려주듯 친절하고 재미있는 가이드북을 쓰고 싶었다는 저자의 바람처럼 이책은 친절하고 상냥하며 재미있다. 평소 막연하게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던 보라카이와 세부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 좋았고, 아직은 생소한 보홀이라는 보물 같은 장소를 알게 되어 즐거웠다. 사실 이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보라카이 화이트비치를 너무 가보고 싶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보홀의 아름다운 해변을 느긋하게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가고 싶은 곳이 하나 더 생긴 만큼 설렘도 더 커진 셈이다.
올초 다녀온 홍콩 여행에서 나의 충실한 여행안내자가 되어 주었던 <홍콩 홀리데이>로 처음 만난 여행가이드북 '홀리데이 시리즈'는 가방에 쏙 들어가는 아담한 책크기, 컬러풀한 컬러의 책표지, 깔끔하면서도 상세하고 친절한 여행정보들이 가득해 먼 길 함께 하는 여행친구로 안성맞춤이다. 홍콩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보라카이 세부 홀리데이>는 보라카이나 세부 여행에서도 알찬 정보로 든든한 여행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다. :)
+ 덧,
- 131쪽: 마지막줄에서 '~놓치지 말'로 문장의 마무리가 안 된 채로 끝났어요. 꽉찬 지면 부족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편집부에서 놓치신 부분이라면 참고하시길 :)
- 284쪽: '초콜릿 힐' 첫번째 줄에 '세계문화유산'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보다는 '세계자연유산'이 더 정확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