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 - Ch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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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는 좀 늦었지만, <차우>를 본 건 개봉날이었다. 식인 멧돼지가 나오는 괴수 영화라는 점 외에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단지 엄태웅이나 정유미, 장항선 등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온다는 것 정도의 정보만 알고 영화관을 찾았다. 예상외로 사람들이 좀 있었다. 개봉작이니 당연한 건지도. 여튼 영화가 처음 시작하자마자 조금 후회를 했다. 혼자서 괴수 영화를 보러 오는 게 아니었는데, 공포 영화도 안 보면서 웬 괴수영화!하며. 초반에 멧돼지가 잘근잘근 씹는 소리를 내며 점점 피를 튀기는 장면은, 으, 그 소리만 생각해도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조금은 힘을 준 첫장면이 지나면 살인사건 수사가 진행중인 한가한 시골마을과 음주단속을 하느라 정신없는 서울의 풍경이 교차된다. 장난삼아 '아무데나'라고 써넣었던 것이 발단이 되어 서울에서 시골로 발령이 난 김순경 엄태웅은 치매 걸린 엄마와 임신한 아내와 함께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한다. 시골 경찰서에 가서 한가하게 시간이나 죽이라던 주위 사람들의 말과 달리 김순경이 도착할 때쯤 마을은 원인 불명의 살인사건으로 뒤숭숭하고, 손녀를 잃은 천 포수는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 그것도 거대한 짐승이라고 경고한다.

수확철에 이른 주말 농장으로 도시 사람들이 물밀듯 밀려오면서 조용한 시골 마을 전체가 들썩이고 있을 때 엄청난 크기의 멧돼지가 나타나는 사고가 발생한다. 마을 유지인 농장 주인은 유능한 백 포수를 기용해 거대 멧돼지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암컷을 잃은 수컷이 곧 마을로 내려올 거던 천포수의 경고는 얼마후 그대로 재현된다. 손녀의 원수를 갚고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하려는 전직 포수인 천 포수와 한때 그의 제자였던 백 포수, 살인 사건을 맡았던 신형사와 논문을 위해 그들에게 끼여든 동물 생태 연구가가 추격대를 이루고,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으려는 김 순경이 합류하면서 그들의 아슬아슬한 모험이 시작된다.

<차우>의 가장 큰 볼거리는 아무래도 제목처럼 차우, 거대 식인 멧돼지일 것이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등치에서부터 관객을 압도하는 변종 식인 멧돼지는 영화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영화 속 사람들과 관객들을 공포로 밀어넣는다. 차우 혼자 나오는 장면에서는 무척이나 자연스럽지만, 한 화면에 사람과 겹쳐지면 어느 정도 CG티가 난다. 몇 장면들은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그렇지만 한올한올 생생하게 움직이는 차우의 털들이나 움직임 등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아쉬운 장면이 없진 않았지만 식인 멧돼지라는 괴수 차우의 모습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알았는데, 차우를 잡으러 추격대가 들어서는 산속 풍경은 미국 로케이션이란다. 산속 풍경이 조금 특이하다 싶긴 했지만 설마 그곳이 미국숲일 줄이야! 그런 평범한 풍경을 찍기 위해 굳이 미국까지 로케이션을 했다는 것과 정작 로케이션을 했으나 화면상 돈들인 티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 황당했다. 그럴 돈이 있으면 CG에 조금 더 신경을 쓰지, 싶은 생각도 들고 말이다. 조금 이국적인 풍경을 내는 산속 풍경은, 오히려 시골 마을의 그것과는 이질적인 느낌만을 남긴 게 아닌가 싶다.

스토리는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스케일이 큰 영화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부실한 드라마는 <차우>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다. 특히 강력한 포스를 뿜으며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는 장항선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도 빛난다. 엄태웅과 정유미, 박혁권 등의 연기도 괜찮았다. 윤제문 또한 독해 보이면서도 어눌한 백 포수를 잘 표현했다. 다만 전체적인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그림자 살인>과 좀 비슷하다 싶었다. 물론 나만의 느낌인지도 믈겠지만.

<차우>는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낸 변종 식인 멧돼지라는 괴물이 다시 인간을 습격하는 참극을 통해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욕심에 대해 경고한다. 또한 인간에게는 괴물이지만 자신의 새끼를 위해서는 위험까지 무릅쓰는 모습을 통해 부성애를 부각시킨다. 차우 또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을 습격했을 뿐, 인간이 만들어낸 피해자일 뿐인 것이다. 

이런 약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차우>는 전체적으로는 그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이자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줄 괴수 영화다. 영화는 공포감 만큼이나 웃음을 이끌어낼 만한 장치들을 전반에 해두었는데, 그것들이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썰렁했다. 분명 웃긴다고 넣은 장면 같은데 이걸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마지막에 실소하게 되는 그런 장면들이 당황스러웠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에서 구사하는 유머들이 좀 촌스럽다고나 할까. 

그런데 영화평을 보니 다들 정말 웃겼단다. 나의 유머 코드가 특이한 건가, 생각해 봤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걸. 이 영화의 유머들이 촌스럽다고 생각한 것은 정작 나뿐이었을까.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쨌거나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내겐 영화속 유머들이 별로 웃기질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 본 후에 알았는데 <차우>의 감독이 <시실리 2km>를 만들었던 감독이란다. 공포물은 거의 안 보는 터라 그 영화도 보질 않았는데, 웃음 코드가 조금 독특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다. 어쩌면 전작을 봤더라면 감독의 유머 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 유머들이 내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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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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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기대작으로 꼽히는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가 개봉했다. 개봉을 꽤나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개봉하자마자 달려갔다. 사실 전날 시사회로 볼 수도 있었는데 귀차니즘에 그냥 돈을 내고 봤다. 사실 영화 보고 나오면서 조금 후회했다. 시사회로 봤더라면 본전 생각나지 않고 조금 더 가비얍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미녀는 괴로워>로 큰 성공을 거둔 김용화 감독이 3년간의 기획과 7개월 간의 촬영 끝에 완성한 영화 <국가대표>. 스키점프라는 조금은 낯선 종목을 소재로 한 스포츠 드라마다. 얼마전 역도를 소재로 한 영화 <킹콩을 들다>가 개봉해 꽤 좋은 성적을 보였는데, <국가대표>는 어떨지 모르겠다. 관객들이 <킹콩을 들다>만큼 울어주고 감동해 줄런지.

<국가대표>는 앞서 말했듯 '스키점프'라는 독특한 스포츠 종목을 소재로 한다. 종목 자체가 '눈'을 전제로 하고 있고, 동계올림픽을 무대로 하는 만큼 스케일은 훨씬 커졌다. 영화 후반부의 동계 올림픽 경기 장면은 <킹콩을 들다>와는 확연한 스케일의 차이를 보이며 왜 이 영화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갔는지를 두눈으로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경기 장면 만큼은 돈 들인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그 공포감과 짜릿함이란! 마치 점프대를 함께 뛰어오른 것 같은 생생함을 영화 곳곳에서 잡아낸다. 멋지다!

그러나 <국가대표>는 후반부의 멋드러진 경기 장면을 보이기까지 예상외의 엉성한 드라마로 일관한다. 엄마를 찾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와 국가대표가 된 입양아라는 설정 외에 다른 선수들의 캐릭터 또한 기존의 스포츠 영화에서 보여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눈에 쏙 들어올 만큼 빛을 발하지는 못한다. 다만 고생은 많이 했겠구나,라는 생각은 충분히 든다. 정말 고생 많이 한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국가대표>의 가장 큰 약점은 엉성한 드라마다. <미녀는 괴로워>의 감독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영화 내내 틀에 박힌 캐릭터들이 예상 가능한 일들을 펼쳐나간다. 뭔가 웃기려고는 하지만 제대로 포인트를 집어내지 못하고 겉도는 웃음은 <차우>를 볼 때의 그 어색함을 다시 느끼게 해줄 정도였다. 물론 주인공 차헌태를 통해 입양아에 대한 문제를 짚어내고, 모자간의 또는 가족간의 사랑을 찾아내는 것은 좋다. 그런데 이야기가 온전히 뭉치지 못하고 겉도는 게 아쉽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비인기 스포츠 종목의 선수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고된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적설량이 그리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눈 위에서 펼치는 종목 선수가 겪어야 하는 온갖 고생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스키점프에 비하니 역도 선수의 설움은 그나마 나아보일 지경이고, 인기 종목인 축구와 야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말은 오히려 배부른 투정으로 들릴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그 종목들 또한 아주 풍족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예전에 우연히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쿨러닝>을 보며 얼마나 많이 웃고 울었는지 모른다. 눈물나게 웃으면서도 마지막에 가슴이 짠해지는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였다. <국가대표>를 보기 전까지 아마 많은 관객들이 우리나라의 <쿨러닝>을 기대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웃음이나 감동 모두 기대치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씁쓸하다.

그럼에도 별 4개를 던지는 건,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동계 올림픽의 경기 장면 때문이다. 가장 많은 돈이 들었을, 또한 가장 공을 들였을 그 장면은 그런 노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공포감 최고의 높이에서 출발해 살인적인 속도로 점프대를 내려와 착지하기까지 선수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잡아낸 경기 장면은 단연 이 영화의 백미다. 그리고 내내 실망스러웠던 영화의 마지막을 후끈 ~ 달아오르게 하며 훈훈하게 마무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 장면 때문에 <국가대표>는 그냥 한 번쯤은 즐기며 볼 만한 영화로 마무리 됐다. 좀 더 개성있는 캐릭터들과 탄탄한 드라마로 엮어주었더라면 볼거리와 감동을 함께 전해주는 맛깔스런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영화관을 나서며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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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8-01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킹콩을 들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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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동안 거대 로봇들에게 온전히 점령당한 영화관에 두 편의 새로운 영화가 개봉했다. 초대형 블록버스터의 싹쓸이에 대부분의 영화들이 몸을 사리는 상황에서 틈새시장을 노린 용감한 두 편의 영화는 바로 역도를 소재로 한 우리 영화 『킹콩을 들다』와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 영화 『시네마 천국』의 두 거장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과 작곡가 엔리오 모리꼬네가 다시 손을 잡은 유럽 영화 『언노운 우먼(The Unknown Woman)』이다. 두 편 모두 보고 싶었으나 이곳에서는 『언노운 우먼』이 개봉조차 하지 않는 관계로 또다른 신작 『킹콩을 들다』를 만났다.

개봉날이 잡히기 전까진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스포츠를, 그것도 역도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이제껏 무수한 스포츠들이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었으나 역도는 처음이 아닐런지. 게다가 가녀려 보이는 조안이 역도 선수로 분했단다. 조안과 역도라, 쉽게 조합이 안 되었지만 몇 컷의 영화 스틸 사진에 담긴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영화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 영화, 개봉날 보고 왔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를 안타깝게 했던 이배영 선수를 연상시키는 영화의 첫장면이, 매번 올림픽 경기 중계를 볼 때마다 떠올리는 씁쓸함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그들이 그 자리에 서기 위해서 그동안 얼마나 땀 흘렸는지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승자에게만 환호하고 오로지 금! 금! 금!! 메달의 색깔에만 집착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영화의 첫장면에서 그대로 쏟아져 참 부끄러워졌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올림픽에 출전했다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한 이지봉(이범수)은 여러 곳을 전전하다 시골학교 역도 코치로 부임한다. 자신의 실패 때문에 역도를 하려는 아이들을 말리지만 아이들의 열정에 결국 마음을 열고 최선을 다해 소녀들을 지도한다. 그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감동 드라마도 잠시, 뜻하지 않은 역경에 부딪치게 되고 진심으로 제자를 위하는 이 코치와 그런 스승의 뜻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소녀들의 모습이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솔직히 <킹콩을 들다>는 다소 좀 빤한 스토리의 뻔한 감동을 담은 영화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킹콩을 들다> 또한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빠지지 않는 악역들의 훼방으로 곤경에 처하지만 그런 역경을 이기고 성공으로 나아간다는 예측 가능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도 그리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재미와 감동, 웃음을 제법 맛깔스럽게 이어가던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강도 높은 악역의 등장으로 갈등을 고조시키고 조금은 억지스런 상황 연출로 하면서 감동을 강요하면서 급격히 신파적인 면을 보인다. 초반의 즐거움을 후반까지 이어갔으면 좋으련만, 감동도 좋지만 너무 대놓고 울어봐!라고 하니 조금은 김이 빠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나쁘지 않은 건 제자를 생각하는 선생의 진심어린 마음 때문이다.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의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신경쓰는, 그리고 그들의 꿈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베푸는 멋진 조력자가 되어주는 스승의 마음, 그 진심이 뻔한 스토리를 이기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더불어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영화에 대한 나머지 감정까지 모두 순화시켜 버린다. 약삭빠른 이 시대에 진정 저런 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 세상은 살아갈만한 곳이 아닐까. 영화보다 더 진한 감동을 남겨주는 엔딩 크레딧이었다.

더불어 이범수와 조안을 비롯한 출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좋았다.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며 첫장면에서 역기를 번쩍 들어올리는 이범수도 멋졌지만, 무엇보다 화장기를 걷어내고 늘어진 티셔츠와 추리닝에 얼굴에 버짐 분장까지 하며 역도 선수로 분한 조안의 연기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드라마 <토지>를 잠깐 보다가 악녀 귀녀 역을 맡은 그녀의 연기가 기억에 남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 한 발 더 나아간 모습이 앞으로 기대를 갖고 지켜봐도 좋을 배우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녀와 함께 출연한 역도부원 소녀들 역을 맡으며 함께 땀흘린 배우들의 멋진 연기가 이 영화를 한층 빛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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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달린다 - Running turtl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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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의 영화 <타짜>에서 지독한 '아귀'를 인상깊게 연기해 주목받았던 배우 김윤석은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를 통해 명실공히 그해 최고의 배우로 거듭나며 그해 시상식의 남우주연상을 독차지했다. 화제의 중심에 섰던 그는 차기작으로 <거북이 달린다>를 선택했다. 그렇게 <거북이 달린다>는 <추격자> 김윤석이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나 역시 그런 이유로 이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러나 <거북이 달린다>의 시놉시스를 보고는 곧 궁금증이 일었다. <추격자>에서 전직 형사 출신의 보도방 주인 역을 맡았던 김윤석은 차기작 <거북이 달린다>에서 또 형사였다. 물론 도시의 전직 형사가 아닌 시골의 현직 형사지만 형사라는 직업이 겹쳐지면서 은연중에 캐릭터도 겹쳐졌다. 게다가 또 누군가를 뒤쫓는다. 이번에는 연쇄살인범이 아닌 탈주범이다. 이야기의 세부 사항이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뒤쫓는 형사'라는 것만으로도 <거북이 달린다>는 여러모로 김윤석의 전작이자 출세작인 <추격자>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추격자>에서의 연기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거북이 달린다>는 <추격자>와의 비교를 면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왜 연이어 비슷한 캐릭터를 선택한 걸까? 의문이 사그러들질 않는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면 그 의문은 너무나 쉽게 풀린다. 어쩌면 그런 의문을 풀고자 영화관을 찾은 사람도 있지 않을런지(그게 바로 나다;;). <거북이 달린다>에서 김윤석이 연기하는 조필성은 틈틈이 뒷돈도 챙기고 적당히 농땡이도 치는 세상 때묻은 형사다. <추격자>의 악질적인 전직 형사보다는 <투캅스>에서 안성기가 연기한 유들유들한 형사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에 농촌이 배경이다 보니 시골 사람 특유의 느릿하고 약간 어수룩한 사람 냄새가 더해진다. 결정적으로 그의 곁에는 가족이 있다. 빚에 찌들려 늘 그를 구박하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아빠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믿는 딸도 있다. 가족은 그에게 힘이고 살아갈 이유다. 직업은 같은 형사지만 속은 전혀 다른 사람인 것이다.

<거북이 달린다>에서도 누군가를 뒤쫓는다. 이번에는 자신의 돈가방을 가로챈 탈주범이다. 간만에 못난 남편에서 벗어나 가족들에게 떵떵거리며 큰소리 칠 기회가 생겼는데 탈주범이 그걸 홀라당 뺏어가버렸다. 자신의 피같은 돈을 죄다 빼앗기고 다시 찾을 방법이 묘연해지자 거액의 보상금으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형사로서의 사명감이라기 보다는 잃어버린 돈가방을 찾기 위해 악착같이 탈주범을 뒤쫓는다. 동료 형사들을 피해 다니고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도 멈추지 않는다. 탈주범에게 잃어버린 돈가방은 단순히 돈 그 자체가 아니라 가족에게 잃어버린 신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을 번번이 작은 실수로 놓쳐버린다. 그러나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끈질긴 추적은 계속된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도, 더불에 그에 따른 어떤 기대도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러 갔다. 단지 아는 것은 김윤석이 출연하고, 그가 시골 형사로 나오며 탈주범을 뒤쫓는다는 것 정도? 탈주범을 뒤쫓는 시골 형사라길래 전작 <추격자>처럼 살떨리는 스릴러는 아닐까 걱정하며 조금 심드렁하게 영화관으로 들어섰는데 이게 웬 걸, 액션을 가장한 유쾌한 코미디였다. 덕분에 상영 시간 내내 박장대소하다 유쾌한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설 수 있었다.

<거북이 달린다>는 배우 김윤석의 차기작,이라는 이유로 가장 먼저 관심을 받았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잘 만든 영화다. 논과 밭이 펼쳐지고 소싸움 축제를 벌이는 한가롭고 단조로운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장진식 유머가 생각나는 듯한 엇박자 유모들이 적제적소에서 빛을 발해 빵빵~ 터져주고 스토리의 흐름도 자연스럽다. 인터뷰 기사를 보니 이연우 감독이 자신의 고향에서의 경험들이 시나리오에 많이 투영되었단다. 그래서 <거북이 달린다>는 충남 예산이라는 지역적 색깔이 영화와 잘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낸다.


감독의 연출 못지 않게 이 영화에서 배우 김윤석을 빼놓을 수 없다. 오히려 가장 먼저 그를 주목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거북이 달린다>는 <추격자>로 떠오른 김윤석의 차기작이라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작들에서 자신의 연기력을 충분히 과시한 그는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전작의 강렬한 카리스마를 걷어낸 김윤석은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와 어수룩하고 허점많은 시골 형사로 완벽하게 변신한다.

김윤석 못지 않게 이 영화를 빛낸 인물들은 바로 필성의 어린 딸과 필성을 도와 탈주범을 함께 뒤쫓는 친구 용배 패거리들이다. 그들의 천연덕스런 연기는 이 영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부분의 웃음을 생산해낸다. 특히 하는 행동마다 웃음을 던져주는 용배 패거리들은 오랜 연기 경험이 있는 배우들이라 더욱 실감난다. 탈주범 송기태로 악역으로 나선 정경호의 연기 또한 나쁘지 않다. 절제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그의 연기는 정경호라는 젊은 배우의 가능성을 가늠해보게 한다. 김윤석의 상대역이라는 이야기에 출연을 결정했다는 견미리의 연기 또한 그녀의 오랜 연기 경력을 생각해보게 했다. 앞으로 스크린에서 그녀를 좀더 자주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처음에 제목이 <거북이 달린다>라길래 거북이처럼 느리게 가면 어쩔려고 저런 제목을?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트랜스포커2가 전체 스크린의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보이는 지금도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끈질기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느리지만 끈질기게 나아가 마침내 토끼보다 더 먼저 정상에 닿았던 거북이처럼 <거북이 달린다>도 대형 헐리웃 블록버스터라는 토끼에게 귀죽지 않고 계속 끈질기게 버텨주어 계속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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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표류기 - Castaway on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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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한강 다리의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다. 갚을 빚이 2억이 넘는다는 안내 전화를 끊으며 결심을 굳힌 남자 김씨, 다리에서 뛰어내린다. 그런데 이 남자,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다시 살아난다.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남자 김씨가 표류한 곳은 바로 한강의 밤섬. 생태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일명 '무인도'다. 바로 위 다리에는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한강에는 유람선이 지나가며, 강 건너 편에는 63빌딩을 비롯한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숲이 있건만 그 누구도 절박한 그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분명 도시 안에 있지만 그 누구도 없는, 그곳은 무인도다.

절망에 빠져 다시 자살을 시도하려던 남자 김씨는 극심한 복통과 설사, 배고픔, 그 상황에서 느껴지는 샐비어(사루비아)의 달콤함 등 동시다발적으로 밀려드는 상황과 감정 속에 목놓아 운다. 그러다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죽는 일'을 조금 미루고 일단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한강물로 갈증을 이기고(바닷물이 아닌 게 천만다행!) 먹을 것을 찾아 밤섬 곳곳을 탐험한다. 시행착오 끝에 물고기나 새 등을 잡아 오랫만에 단백질도 보충하고 강물에 떠밀려 온 온갖 쓰레기들을 재활용하는 센스를 보이는가 하면, 부서진 오리배로 오랜 내집 마련의 꿈을 대체한다. 아무도 없는 밤섬에서의 '완벽하게 심심한' 생활에 적응하던 남자 김씨에게 어느날 한 줄의 메시지가 날아온다. 'HELLO'


한 여자가 컴컴한 방구석에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마우스는 여러 개의 미니홈피를 순례하며 '모니터속 그녀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것들을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리며 리플을 살핀다. 하루종일 싸이질에 여념이 없는 그녀, 여자 김씨다. 현실의 그녀는 3년 째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은둔형 외톨이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다르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 미니홈피 메인에는 얼짱녀의 사진이 걸려있고 미니홈피 순례에서 발견한 명품 쇼핑 사진으로 순식간에 신상녀로 변신한다. 자신을 감출 수 있는 온라인은 여자 김씨에게 환상의 세계이자 또다른 현실이다.

미니홈피를 꾸미고 달사진을 찍는 일이 전부인 여자 김씨도 세상 구경을 할 때가 있다. 일 년에 딱 두 번, 사람들이 사라지고 온전히 조용해지는 그때, 바로 민방위 훈련 경보가 울리는 20분간이다. 경보가 시작되면 꼭꼭 닫아두었던 커튼과 창문을 열고 망원렌즈로 세상을 엿본다. 한산해진 길거리와 운동장, 한강 다리 등을 살피다 밤섬 어귀에 새겨져 있는 'HELP'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란다. 외계 생명체가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한 여자 김씨는 조심스레 밤섬을 관찰하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혼자 꼬물거리는 '변태' 외계인의 메시지가 'HELP'에서 'HELLO'로 바뀌던 날 그에게 리플을 달아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녀로선 큰 용기가 필요한 오랜만의 외출을 감행한다.


이해준 감독이 돌아왔다. 그것도 아주 괜찮은 영화 한 편을 들고서.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유쾌한 웃음에 찡한 감동으로 버무려낸 <천하장사 마돈나>를 첫 데뷔작으로 내놓으면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이해영, 이해준 감독. 이름도 비슷한 이 두 젊은 감독은 이후 각자의 영화를 준비했었다. 이해영 감독은 강풀의 인기 연재 만화 <26년>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를 준비중이라길래 언제 완성될까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얼마전 우익단체들의 압력으로 자금난에 빠져 촬영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전해져 참 안타까웠다. 다행히 이해준 감독은 자신의 새로운 영화를 들고 나타났다. 그것도 꽤나 참신하고 가슴 찌릿한, 남 이야기 같으나 사실은 우리들의 이야기인 그런 영화를 들고 말이다.

처음 <김씨표류기>의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 자연스레 톰 행크스의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 : Cast Away>가 떠올랐다. 무인도에 표류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두 영화는 꽤나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두 영화는 비슷한 듯 다르다. <캐스트 어웨이>의 척 놀랜드가 예기치 않은 비행기의 추락으로 문명과는 동떨어진 남태평양의 무인도에 떨어진다. 그저 망망대해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와 달리 <김씨 표류기>의 남자 김씨는 냉혹한 사회에 등떠밀린 채 자살을 시도하다 도심 한가운데 존재하는 무인도 밤섬에 표류한다. 돌아갈 방법이 없는 무인도이긴 하지만 바로 눈 앞에 도시의 그것이 그대로 펼쳐져 있다. 안 보여서 못 돌아가는 것과 눈 앞에 보이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분명 다르다.

또한 척은 무인도를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벗어나야 할 공간으로 여기지만, 남자 김씨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밤섬에 머물기를 원한다. 산더미 같은 빚과 떠난 애인과 점점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게 만드는 강 건너 세상에서 벗어나 완전한 심심함 그 자체인 밤섬에서의 느린 삶에 남자 김씨는 점점 적응해가며 행복을 느낀다. 물론 외롭기는 둘 다 마찬가지지만. 그러나 머물고 싶든 그렇지 않든, 자의든 타의든 결국 그들은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척과 김씨 모두 예전의 그들이 아니다.


'도심 무인도라이프'를 표방하는 <김씨표류기>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 무인도라는 기발한 소재에서 시작한다. 이해준 감독은 한강 다리 밑의 밤섬을 내려다보다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 시민이 아닌, 그래서 아직 한강 주변을 제대로 돌아본 적이 없던 나는 한강에 '밤섬'이라는 생태보전지구 무인도가 존재하는지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무인도라니. 영화를 보면서도 참 절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도심에 존재하고는 있으나 더이상 다가갈 수 없는 곳, 누가 있는지 알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는 곳. 무인도는 남자 김씨가 표류한 곳이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제각각 표류하고 있는 장소인 셈이다.

마냥 웃기는 영화일 거라 생각했는데 <김씨표류기>는 웃음과 함께 반성과 공감과 감동을 함께 버무려 주는 영화였다. 남자 김씨를 한강 다리의 끝으로 밀어낸 것은 무엇일까. 회사의 파산과 퇴직, 감당할 수 없는 빚과 대출 이자, 학력만 따지는 좁은 취업문 등 바로 우리 사회인 것이다. 이런 비정한 사회가 김씨로 대표되는 우리들을 하나씩 하나씩 벼랑 끝으로 몰아내고 있다. 한강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자신의 대출 빚을 듣거나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면서 애인의 이별 통고를 듣는 남자 김씨의 처절한 모습 위에 우리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그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밀려나 무인도 밤섬에 표류한 남자 김씨와 사회에서 따돌려져 온라인이라는 가상 세계를 표류하는 여자 김씨. 타인과의 소통을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두 김씨가 조금씩 서로에게 접근해 소통을 시도한다. 그리고 짜파게티의 짜장 소스가 전해준 짜장면이라는 이름의 희망이 남자 김씨를 일으킬 때 그 희망의 바이러스가 여자 김씨에게도 전해진다. 그리고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를 만나기 위해 드디어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다. 세상에서 밀려나거나 거부당한 두 김씨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장면을 통해 그들의 희망이 암울한 시대에 사는 스크린 밖의 우리들에게도 전해져 온다.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처럼 이해준 감독은 <김씨 표류기>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우리 삶의 아픈 면을 건드리면서도 웃음과 배려를 잃지 않는다. 벼랑 끝에 몰려 자살을 택하지만 도심 속의 무인도 밤섬에 표류된 채 격리된 삶을 살게 된 남자 김씨를 온몸으로 열연한 정재영은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다. 웃음과 눈물, 감동과 희망을 그만의 색깔로 녹여낸다. 은둔자 여자 김씨를 연기한 려원 또한 특유의 환자 포스를 제대로 발휘하며 제몫을 해낸다.


<김씨표류기>는 도심 속의 무인도와 가상 세계에서 표류하는 두 김씨를 통해 우리 시대의 문제점과 아픔을 집어내면서도 끝까지 두 주인공들을 통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감독은 두 김씨를 통해 이 시대를 표류하는 우리들에게 힘을 내라고,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고 살며시 어깨를 두드려준다. 기발하고 참신하며 웃기면서도 감동적인 따듯하고 착한 영화, 그게 바로 <김씨표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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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2009-07-01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봤는데 님의 리뷰를 보니 다시 그 때 생각이 나네요. 무척 즐거웠었는데 이 글 역시 무척 재미있습니다. 좋은 시선으로 리뷰를 완성하셨네요. 리뷰 당첨 축하드립니다.

simple 2009-07-20 01:20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인데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답댓글이 너무 늦어버렸네요. ^^;
영화 무척 재미있었는데 의외로 흥행이 크게 안 되서 아쉽더라구요.
7급 공무원의 코믹함과 박쥐의 화제성에 조금 처지긴 해도 작품성은 못지 않은 영화인데..
보다 많은 이들과 만나지 못한 점이 내내 아쉬워요.
아, 그리고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