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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보그지만 괜찮아 - I`m a cyborg, But that`s o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 이글은 영화 개봉 직후 영화관 관람 후 쓴 리뷰입니다. ^^
매번 스크린을 피로 물들이던 박찬욱 감독이 로맨틱 코미디를 찍는다고?
그것도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거기에 박감독 영화를 함께 했었던 최고의 스텝들이 다시 뭉친데다 임수정, 정지훈(비)까지 가세했다고???
. . . 여기까지만 들어도 과연 어떤 영화가 탄생할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박찬욱 감독과 로맨스 영화라.. 이 얼마나 안 어울리는 조합인가;;
그렇지만 그는 이런 기대와 우려 속에 자신만의 아기자기 하면서도 기이한, 이상한 나라의 싸이보그 같은 싸이코 로맨스를 완성한다. 그것이 바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역시~ 박찬욱!!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그건 꼭 이 영화가 대단하다는 관점이 아니라 박찬욱 영화의 느낌이 물씬~ 전해진다는 얘기다. 어째 파스텔톤의 너무나 아기자기하고 이쁜 화면들이 펼쳐진다 싶더니.. 역시나~ 첫장면부터 박찬욱표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건 바로 강렬한 보색대비의 의상과 함께 녹색바닥에 붉게 번지는 피! 영군의 그 해맑은 표정과 함께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하듯 펼쳐지는 첫장면은,, 역시 예사롭지 않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로맨틱 코미디다.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자신을 싸이보그라고 믿는 영군과 그녀를 사랑하게 된 일순의 로맨스를 기둥으로, 그 주변의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감초역할을 톡톡히 한다. 또한 영화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기발하고 엉뚱한 상상력은 보는 재미를 키워주며, 인형의 집처럼 꾸며진 정신병원과 여러 배경들도 한 폭의 동화같은 모습도 눈을 즐겁게 한다. 겉보기 등급으론 무리없는 로맨틱 코미디인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역시 말랑말랑 로맨스만이 담긴 영화는 아니었다. 감독이 누군가. 바로 '복수 3부작'을 완성했던 박찬욱 감독 아닌가; 로맨틱 코미디지만 총알과 피가 보여주는 센쓰;; ㅡㅡ;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된다 싶었던 영화는, 자신을 싸이보그라고 착각하는 영군의 상상씬에서 온전히 싸이보그가 된 그녀의 손을 통해 총알과 피가 난무하는 장면들을 연출한다. 역시나 피가 샘솟는다.
물론, 자신의 딸과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박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기존의 박찬욱 감독 영화처럼 강도높은 폭력씬이나 직접적인 성적묘사는 없다. 그러나 영화 전체적으로 볼 때 12세 보다는 15세가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와는 다른 특이한 로맨스를 펼쳐가는 영화는 여러면에서 사랑스럽다. 정신병원이란 심상치 않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개성 뚜렷한 캐릭터들과 그들이 내뿜는 웃음이 사랑스럽고(특히 겸손함을 잃어버린 오달수의 거침없는(?) 변신은 너무 웃겼다!), 순간순간 예상치 못한 상상력이 동원된 장면들이 사랑스러우며,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이 겁나게 사랑스럽고, 박감독의 신선한 시선과 세련된 편집이 사랑스러우며, 쉽지 않은 캐릭터를 제 옷처럼 완벽히 소화해낸 임수정의 발군의 연기가 너무 사랑스럽다!!
특히~ 임수정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더벅머리에 노랗게 탈색한 눈썹, 할머니의 틀니와 중얼거리는 목소리, 뼈만 남은 앙상한 몸까지.. 그녀는 영화속에서 완벽한 영군으로 존재한다. 신인상을 휩쓸던 <장화,홍련>부터 눈물을 쏟게 만들던 <미안하다,사랑한다>를 거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 이른 임수정. 이 영화에서 보여준 그녀의 연기는 단연~ 올해 가장 눈에 띄는 연기로 꼽힘에 손색이 없다. 완전 최고다!!!
반면, 스크린 데뷔로 관심을 받았던 정지훈은 차지도 넘치지도 않는 무난한 연기를 선보인다. 사실 너무 무난하다. 그래서 주인공임에도 그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가수 '비'의 섹스어필한 기존의 이미지를 을 벗고 변신을 시도한 점은 마음에 들지만, 자신의 첫 스크린 데뷔작을 장악할 만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지 못함은 아쉬울 따름이다.
개봉전부터 특이한 소재와 박찬욱, 임수정, 정지훈의 이름만으로도 화제의 중심에 섰던 영화. 그러나 말랑말랑~한 로맨스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이들의 '특이한' 로맨스에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전반적으로 대중의 입맛에 착착~ 감겨드는 영화는 아니다. 더불어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지라 105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다소 길게 (때론 지루하게) 느껴지는게 무척 아쉽다. 그치만 이보다 더 짧으면 좀 고민스럽긴 하겠지만 말이다.
로맨틱 코미디도 박찬욱 감독이 만들면 이렇게 다르다는 걸 보여준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기존의 작품과 전혀 다른 품새의 영화를 만들면서도 자신의 흔적을 느끼게 해주는 박찬욱 감독. 대단~! 배우들의 연기와 영화 전체의 미장센과 상식을 벗어나는 엉뚱함과 박감독의 연출이 비교적 잘 어울어진, 특이하고 개성 넘치는 잘만든 '싸이코 로맨틱 코미디'다. 뭔가 색다른 재미를 찾는 관객이라면 박찬욱식 로맨스를 기분좋게 즐길 수 있으리라. 이런 특이하고 독특한 로맨스, 박찬욱이니깐 괜찮아!라는 너그러움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2006/12/10, 햇살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