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을 들다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한주동안 거대 로봇들에게 온전히 점령당한 영화관에 두 편의 새로운 영화가 개봉했다. 초대형 블록버스터의 싹쓸이에 대부분의 영화들이 몸을 사리는 상황에서 틈새시장을 노린 용감한 두 편의 영화는 바로 역도를 소재로 한 우리 영화 『킹콩을 들다』와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 영화 『시네마 천국』의 두 거장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과 작곡가 엔리오 모리꼬네가 다시 손을 잡은 유럽 영화 『언노운 우먼(The Unknown Woman)』이다. 두 편 모두 보고 싶었으나 이곳에서는 『언노운 우먼』이 개봉조차 하지 않는 관계로 또다른 신작 『킹콩을 들다』를 만났다.

개봉날이 잡히기 전까진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스포츠를, 그것도 역도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이제껏 무수한 스포츠들이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었으나 역도는 처음이 아닐런지. 게다가 가녀려 보이는 조안이 역도 선수로 분했단다. 조안과 역도라, 쉽게 조합이 안 되었지만 몇 컷의 영화 스틸 사진에 담긴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영화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 영화, 개봉날 보고 왔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를 안타깝게 했던 이배영 선수를 연상시키는 영화의 첫장면이, 매번 올림픽 경기 중계를 볼 때마다 떠올리는 씁쓸함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그들이 그 자리에 서기 위해서 그동안 얼마나 땀 흘렸는지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승자에게만 환호하고 오로지 금! 금! 금!! 메달의 색깔에만 집착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영화의 첫장면에서 그대로 쏟아져 참 부끄러워졌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올림픽에 출전했다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한 이지봉(이범수)은 여러 곳을 전전하다 시골학교 역도 코치로 부임한다. 자신의 실패 때문에 역도를 하려는 아이들을 말리지만 아이들의 열정에 결국 마음을 열고 최선을 다해 소녀들을 지도한다. 그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감동 드라마도 잠시, 뜻하지 않은 역경에 부딪치게 되고 진심으로 제자를 위하는 이 코치와 그런 스승의 뜻을 받들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소녀들의 모습이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솔직히 <킹콩을 들다>는 다소 좀 빤한 스토리의 뻔한 감동을 담은 영화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킹콩을 들다> 또한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빠지지 않는 악역들의 훼방으로 곤경에 처하지만 그런 역경을 이기고 성공으로 나아간다는 예측 가능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도 그리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재미와 감동, 웃음을 제법 맛깔스럽게 이어가던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강도 높은 악역의 등장으로 갈등을 고조시키고 조금은 억지스런 상황 연출로 하면서 감동을 강요하면서 급격히 신파적인 면을 보인다. 초반의 즐거움을 후반까지 이어갔으면 좋으련만, 감동도 좋지만 너무 대놓고 울어봐!라고 하니 조금은 김이 빠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나쁘지 않은 건 제자를 생각하는 선생의 진심어린 마음 때문이다.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의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신경쓰는, 그리고 그들의 꿈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베푸는 멋진 조력자가 되어주는 스승의 마음, 그 진심이 뻔한 스토리를 이기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더불어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는 영화에 대한 나머지 감정까지 모두 순화시켜 버린다. 약삭빠른 이 시대에 진정 저런 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 세상은 살아갈만한 곳이 아닐까. 영화보다 더 진한 감동을 남겨주는 엔딩 크레딧이었다.

더불어 이범수와 조안을 비롯한 출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좋았다.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며 첫장면에서 역기를 번쩍 들어올리는 이범수도 멋졌지만, 무엇보다 화장기를 걷어내고 늘어진 티셔츠와 추리닝에 얼굴에 버짐 분장까지 하며 역도 선수로 분한 조안의 연기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드라마 <토지>를 잠깐 보다가 악녀 귀녀 역을 맡은 그녀의 연기가 기억에 남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 한 발 더 나아간 모습이 앞으로 기대를 갖고 지켜봐도 좋을 배우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녀와 함께 출연한 역도부원 소녀들 역을 맡으며 함께 땀흘린 배우들의 멋진 연기가 이 영화를 한층 빛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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