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는 좀 늦었지만, <차우>를 본 건 개봉날이었다. 식인 멧돼지가 나오는 괴수 영화라는 점 외에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단지 엄태웅이나 정유미, 장항선 등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온다는 것 정도의 정보만 알고 영화관을 찾았다. 예상외로 사람들이 좀 있었다. 개봉작이니 당연한 건지도. 여튼 영화가 처음 시작하자마자 조금 후회를 했다. 혼자서 괴수 영화를 보러 오는 게 아니었는데, 공포 영화도 안 보면서 웬 괴수영화!하며. 초반에 멧돼지가 잘근잘근 씹는 소리를 내며 점점 피를 튀기는 장면은, 으, 그 소리만 생각해도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조금은 힘을 준 첫장면이 지나면 살인사건 수사가 진행중인 한가한 시골마을과 음주단속을 하느라 정신없는 서울의 풍경이 교차된다. 장난삼아 '아무데나'라고 써넣었던 것이 발단이 되어 서울에서 시골로 발령이 난 김순경 엄태웅은 치매 걸린 엄마와 임신한 아내와 함께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한다. 시골 경찰서에 가서 한가하게 시간이나 죽이라던 주위 사람들의 말과 달리 김순경이 도착할 때쯤 마을은 원인 불명의 살인사건으로 뒤숭숭하고, 손녀를 잃은 천 포수는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 그것도 거대한 짐승이라고 경고한다.
수확철에 이른 주말 농장으로 도시 사람들이 물밀듯 밀려오면서 조용한 시골 마을 전체가 들썩이고 있을 때 엄청난 크기의 멧돼지가 나타나는 사고가 발생한다. 마을 유지인 농장 주인은 유능한 백 포수를 기용해 거대 멧돼지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암컷을 잃은 수컷이 곧 마을로 내려올 거던 천포수의 경고는 얼마후 그대로 재현된다. 손녀의 원수를 갚고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하려는 전직 포수인 천 포수와 한때 그의 제자였던 백 포수, 살인 사건을 맡았던 신형사와 논문을 위해 그들에게 끼여든 동물 생태 연구가가 추격대를 이루고,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으려는 김 순경이 합류하면서 그들의 아슬아슬한 모험이 시작된다.
<차우>의 가장 큰 볼거리는 아무래도 제목처럼 차우, 거대 식인 멧돼지일 것이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등치에서부터 관객을 압도하는 변종 식인 멧돼지는 영화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영화 속 사람들과 관객들을 공포로 밀어넣는다. 차우 혼자 나오는 장면에서는 무척이나 자연스럽지만, 한 화면에 사람과 겹쳐지면 어느 정도 CG티가 난다. 몇 장면들은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그렇지만 한올한올 생생하게 움직이는 차우의 털들이나 움직임 등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아쉬운 장면이 없진 않았지만 식인 멧돼지라는 괴수 차우의 모습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알았는데, 차우를 잡으러 추격대가 들어서는 산속 풍경은 미국 로케이션이란다. 산속 풍경이 조금 특이하다 싶긴 했지만 설마 그곳이 미국숲일 줄이야! 그런 평범한 풍경을 찍기 위해 굳이 미국까지 로케이션을 했다는 것과 정작 로케이션을 했으나 화면상 돈들인 티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 황당했다. 그럴 돈이 있으면 CG에 조금 더 신경을 쓰지, 싶은 생각도 들고 말이다. 조금 이국적인 풍경을 내는 산속 풍경은, 오히려 시골 마을의 그것과는 이질적인 느낌만을 남긴 게 아닌가 싶다.
스토리는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스케일이 큰 영화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부실한 드라마는 <차우>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다. 특히 강력한 포스를 뿜으며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는 장항선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도 빛난다. 엄태웅과 정유미, 박혁권 등의 연기도 괜찮았다. 윤제문 또한 독해 보이면서도 어눌한 백 포수를 잘 표현했다. 다만 전체적인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그림자 살인>과 좀 비슷하다 싶었다. 물론 나만의 느낌인지도 믈겠지만.
<차우>는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낸 변종 식인 멧돼지라는 괴물이 다시 인간을 습격하는 참극을 통해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욕심에 대해 경고한다. 또한 인간에게는 괴물이지만 자신의 새끼를 위해서는 위험까지 무릅쓰는 모습을 통해 부성애를 부각시킨다. 차우 또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을 습격했을 뿐, 인간이 만들어낸 피해자일 뿐인 것이다.
이런 약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차우>는 전체적으로는 그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이자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줄 괴수 영화다. 영화는 공포감 만큼이나 웃음을 이끌어낼 만한 장치들을 전반에 해두었는데, 그것들이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썰렁했다. 분명 웃긴다고 넣은 장면 같은데 이걸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마지막에 실소하게 되는 그런 장면들이 당황스러웠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에서 구사하는 유머들이 좀 촌스럽다고나 할까.
그런데 영화평을 보니 다들 정말 웃겼단다. 나의 유머 코드가 특이한 건가, 생각해 봤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걸. 이 영화의 유머들이 촌스럽다고 생각한 것은 정작 나뿐이었을까.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쨌거나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내겐 영화속 유머들이 별로 웃기질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 본 후에 알았는데 <차우>의 감독이 <시실리 2km>를 만들었던 감독이란다. 공포물은 거의 안 보는 터라 그 영화도 보질 않았는데, 웃음 코드가 조금 독특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다. 어쩌면 전작을 봤더라면 감독의 유머 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 유머들이 내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