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달린다 - Running turtl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최동훈 감독의 영화 <타짜>에서 지독한 '아귀'를 인상깊게 연기해 주목받았던 배우 김윤석은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를 통해 명실공히 그해 최고의 배우로 거듭나며 그해 시상식의 남우주연상을 독차지했다. 화제의 중심에 섰던 그는 차기작으로 <거북이 달린다>를 선택했다. 그렇게 <거북이 달린다>는 <추격자> 김윤석이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나 역시 그런 이유로 이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러나 <거북이 달린다>의 시놉시스를 보고는 곧 궁금증이 일었다. <추격자>에서 전직 형사 출신의 보도방 주인 역을 맡았던 김윤석은 차기작 <거북이 달린다>에서 또 형사였다. 물론 도시의 전직 형사가 아닌 시골의 현직 형사지만 형사라는 직업이 겹쳐지면서 은연중에 캐릭터도 겹쳐졌다. 게다가 또 누군가를 뒤쫓는다. 이번에는 연쇄살인범이 아닌 탈주범이다. 이야기의 세부 사항이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뒤쫓는 형사'라는 것만으로도 <거북이 달린다>는 여러모로 김윤석의 전작이자 출세작인 <추격자>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추격자>에서의 연기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거북이 달린다>는 <추격자>와의 비교를 면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왜 연이어 비슷한 캐릭터를 선택한 걸까? 의문이 사그러들질 않는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면 그 의문은 너무나 쉽게 풀린다. 어쩌면 그런 의문을 풀고자 영화관을 찾은 사람도 있지 않을런지(그게 바로 나다;;). <거북이 달린다>에서 김윤석이 연기하는 조필성은 틈틈이 뒷돈도 챙기고 적당히 농땡이도 치는 세상 때묻은 형사다. <추격자>의 악질적인 전직 형사보다는 <투캅스>에서 안성기가 연기한 유들유들한 형사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에 농촌이 배경이다 보니 시골 사람 특유의 느릿하고 약간 어수룩한 사람 냄새가 더해진다. 결정적으로 그의 곁에는 가족이 있다. 빚에 찌들려 늘 그를 구박하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아빠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믿는 딸도 있다. 가족은 그에게 힘이고 살아갈 이유다. 직업은 같은 형사지만 속은 전혀 다른 사람인 것이다.

<거북이 달린다>에서도 누군가를 뒤쫓는다. 이번에는 자신의 돈가방을 가로챈 탈주범이다. 간만에 못난 남편에서 벗어나 가족들에게 떵떵거리며 큰소리 칠 기회가 생겼는데 탈주범이 그걸 홀라당 뺏어가버렸다. 자신의 피같은 돈을 죄다 빼앗기고 다시 찾을 방법이 묘연해지자 거액의 보상금으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형사로서의 사명감이라기 보다는 잃어버린 돈가방을 찾기 위해 악착같이 탈주범을 뒤쫓는다. 동료 형사들을 피해 다니고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도 멈추지 않는다. 탈주범에게 잃어버린 돈가방은 단순히 돈 그 자체가 아니라 가족에게 잃어버린 신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을 번번이 작은 실수로 놓쳐버린다. 그러나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끈질긴 추적은 계속된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도, 더불에 그에 따른 어떤 기대도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러 갔다. 단지 아는 것은 김윤석이 출연하고, 그가 시골 형사로 나오며 탈주범을 뒤쫓는다는 것 정도? 탈주범을 뒤쫓는 시골 형사라길래 전작 <추격자>처럼 살떨리는 스릴러는 아닐까 걱정하며 조금 심드렁하게 영화관으로 들어섰는데 이게 웬 걸, 액션을 가장한 유쾌한 코미디였다. 덕분에 상영 시간 내내 박장대소하다 유쾌한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설 수 있었다.

<거북이 달린다>는 배우 김윤석의 차기작,이라는 이유로 가장 먼저 관심을 받았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잘 만든 영화다. 논과 밭이 펼쳐지고 소싸움 축제를 벌이는 한가롭고 단조로운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장진식 유머가 생각나는 듯한 엇박자 유모들이 적제적소에서 빛을 발해 빵빵~ 터져주고 스토리의 흐름도 자연스럽다. 인터뷰 기사를 보니 이연우 감독이 자신의 고향에서의 경험들이 시나리오에 많이 투영되었단다. 그래서 <거북이 달린다>는 충남 예산이라는 지역적 색깔이 영화와 잘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낸다.


감독의 연출 못지 않게 이 영화에서 배우 김윤석을 빼놓을 수 없다. 오히려 가장 먼저 그를 주목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거북이 달린다>는 <추격자>로 떠오른 김윤석의 차기작이라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작들에서 자신의 연기력을 충분히 과시한 그는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전작의 강렬한 카리스마를 걷어낸 김윤석은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와 어수룩하고 허점많은 시골 형사로 완벽하게 변신한다.

김윤석 못지 않게 이 영화를 빛낸 인물들은 바로 필성의 어린 딸과 필성을 도와 탈주범을 함께 뒤쫓는 친구 용배 패거리들이다. 그들의 천연덕스런 연기는 이 영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부분의 웃음을 생산해낸다. 특히 하는 행동마다 웃음을 던져주는 용배 패거리들은 오랜 연기 경험이 있는 배우들이라 더욱 실감난다. 탈주범 송기태로 악역으로 나선 정경호의 연기 또한 나쁘지 않다. 절제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그의 연기는 정경호라는 젊은 배우의 가능성을 가늠해보게 한다. 김윤석의 상대역이라는 이야기에 출연을 결정했다는 견미리의 연기 또한 그녀의 오랜 연기 경력을 생각해보게 했다. 앞으로 스크린에서 그녀를 좀더 자주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처음에 제목이 <거북이 달린다>라길래 거북이처럼 느리게 가면 어쩔려고 저런 제목을?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트랜스포커2가 전체 스크린의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보이는 지금도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끈질기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느리지만 끈질기게 나아가 마침내 토끼보다 더 먼저 정상에 닿았던 거북이처럼 <거북이 달린다>도 대형 헐리웃 블록버스터라는 토끼에게 귀죽지 않고 계속 끈질기게 버텨주어 계속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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