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티드 베일 - The Painted V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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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랫만에 영화를 봤다. <페인티드 베일>은 연기 잘하는 배우 에드워드 노튼과 영화 <킹콩>으로 내게 그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 나오미 왓츠가 만난 영화로, <달과 6펜스>로 유명한 서머짓 몸의 <인생의 베일>을 세 번째 영화화한 작품이다. 아직 원작인 <인생의 베일>을 읽어보진 못했는데, 영화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니 영화의 결말이 원작과는 좀 다르단다. 영화 결말이 조금 더 마음이 애틋한 것 같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펼쳐지는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영화는 아주아주 느린 화면으로 천천히 음미하듯 넘어가는데 이야기의 진행은 의외로 빠르다. 보통 영화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약간의 줄거리가 영화 초반부에 순식간에 흘러가 버리고 어느새 본론으로 들어가 그들 두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사랑 없인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키티는 점점 늘어나는 나이와 주변의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첫 눈에 반한 의사 페인과 사랑없는 결혼을 한다. 그리고 그의 직장을 따라 중국으로 가게 되는데, 활발한 성격의 키티와 달리 차분한 성격의 페인은 서로 간의 성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한 채 무료한 결혼생활을 이어 나간다. 그러다 키티는 사교모임에 만난 매력적인 외교관과 불륜의 관계에 빠져들고 진심으로 키티를 사랑했던 페인은 억제할 수 없는 배신감에 불타오른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미움으로 콜레라가 창궐하는 오지의 마을로 자원하며 키티를 억지로 데리고 간다. 콜레라라는 치명적인 위험 앞에서 둘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지만 그 위험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마지막 한 줄이 영화의 대부분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키티의 '내면적 성장'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원작을 아직 안 읽어봤으므로 주워들은 내용이다;) 원작과 달리 영화는 키티와 페인,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지만 페인을 사랑할 수 없었던 키티와 언젠가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해 줄 것이라 믿었으나 그녀의 배신에 고통스러워 하는 페인. 낯선 환경과 맞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생활을 지속해야 했던 키티의 고통도 공감이 가지만 그보단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신의 사랑에 괴로워하는 페인의 모습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페인은 자신의 사랑을 배반한 그녀에 대한 증오와 여전히 그녀를 향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자신에게 복수한다는 생각에 페인을 증오하던 키티도 그의 또다른 모습들을 발견하면서 어느새 점점 마음을 열어간다. 그리고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는 그곳에서 그들은 오랜 시련을 넘어 겨우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던 그날 밤의 그 뭉클함과 마지막 용서를 구하던 페인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아릿하다. 

내용만으로는 뻔하디 뻔한 러브스토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진부하다기 보다는 그들의 엇갈린 사랑에 가슴이 짠해졌다. 솔직히 처음엔 조금 지루해서 하품도 났지만 마지막 페인의 한 마디에 가슴이 무너져 눈물이 주르륵 흘러버렸다. 페인과 키티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사랑과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예전에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어떤 영화를 중간부터 보게 되었는데, 마지막 반전에서 선보이던 빛나는 그 소년(?)의 연기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훗날 제목도 모르던 그 영화에서 열연했던 배우가 '에드워드 노튼'이고, 영화 제목은 <프라이멀 피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영화가 노튼의 데뷔작이었다는 사실을 알곤 기절할 뻔 했다. 노튼은 그 영화로 각종 시상식에서 조연상을 휩쓸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게 신인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잘 생긴 외모와 현란한 학벌 보다 연기 잘하는 배우로 먼저 불리는 에드워드 노튼. 그가 출연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 영화는 왠지 믿음이 간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고. 다만, 오랫만에 본 그의 얼굴에서 나이의 흔적이 너무 많이 보여 조금 슬펐지만 그와 함께 더욱 깊어진 그의 연기가 나를 기쁘게 한다. 

빛나는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킹콩의 사랑을 받던 나오미 왓츠는 검게 물들인 짧은 머리의 키티로 돌아왔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킹콩> 밖에 없는지라 뭐라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연기는 참 좋더라. 그런데 볼수록 니콜 키드만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던데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나 뿐일까나. 어쨌거나 미인들은 얼굴에 진흙을 말라도 예쁘니 이것 참.. (지금 생각이 났는데 <21그램>에 숀 펜과 함께 연기했던 배우가 나오미 왓츠였다. 그리고 기사를 읽다 알았는데 나오미와 니콜은 친한 친구 사이라고. 또한 나오미가 니콜을 닮은 듯 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 뿐이 아니었나 보다. ^^;)

나오미 왓츠와 에드워드 노튼의 안정적 연기와 더불어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들은 이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더불어 영화에 완전히 녹아드는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까지.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이 영화는 마치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나 또는 서정적인 시를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절제된 러브스토리를 오랫만에 만났다.


영화의 초반과 마지막에 나오는 꽃가게, 꽃을 바라보며 그녀가 하는 말은 비단 꽃 뿐만 아니라 사랑에도 유효하다. 일주일도 못가서 시들어 버릴 꽃을 사는 돈을 아깝워 할 수도 있지만 그 꽃은 시들 때까지 우리에게 돈으로 책정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랑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오랫만에 만난 가슴 따뜻한 러브스토리, <페인티드 베일>. 사랑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는 따뜻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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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세계 - The Show Must Go 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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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강호와 감독 한재림이 만났다. 영화 <우아한 세계>는 그들이 함께 작업한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아낸다. <연애의 목적>으로 독특한 연애담을 선보이며 단숨에 주목받는 감독으로 떠오른 한재림 감독은 <우아한 세계>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한껏 선보이며 장르 비틀기의 재미를 보여주고,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송강호는 역시나~ 관객의 기대치를 가뿐히 뛰어넘는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다. 그들의 찰떡궁합에 <우아한 세계>는 한층 우아한 영화로 거듭난다.

직업만 조폭일 뿐인 여타 다른 아버지들과 다를 바 없는 강인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조폭의 옷을 입은 '가족영화'다. 정해진 러닝 타임 안에서 극적인 상황 연출과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해 선택된 직업이 조폭일 뿐, 이 영화는 확실히 그의 직업인 '조폭'보다 '생활인 아버지'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생활인 아버지'를 잡아내는 감독의 연출력은 가히 놀랍다.

그러나 주인공의 직업이 조폭이고 조폭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한 축을 차지하니 이 영화는 또한 '조폭영화'다. '40대 가장'의 피곤과 고단함에 중심을 둔 전반부를 지나면 조폭들의 칼부림이 스크린을 핏빛으로 적신다. 요즘 유행하는 개그처럼 '이건 조폭영화도 아니고 가족영화도 아니여'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은 조폭영화이면서 가족영화가 아닐까 싶다.


 

피곤에 찌든 40대 가장 강인구. 천톤도 넘어보이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리며 멍한 눈으로 졸음운전을 하는 그의 모습이 화면 가득 채우는 영화의 오프닝은 앞으로 <우아한 세계>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은근슬쩍 보여준다. 그리고 피곤하고 피곤하고 피곤한,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이 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이 운전대를 잡고 졸고 있는 강인구에게 겹친다.

들개파 중간 보스인 강인구는 물도 잘 안 나오는 낡은 아파트에 살면서 정원이 딸리고 채광이 좋은 멋진 전원주택을 꿈꾼다. 이번에 잡은 건설업에서 크게 한 몫을 챙기면 그런 집으로 이사해 우아한 생활을 즐기리라 마음먹고 있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다.

지금 당장 캐나다에 유학중인 아들의 학비에도 허리가 휘고, 직장(?)에서는 무능한 넘버 2인 노상무의 견제로 피곤하며, 거기다 강제 계약으로 접수한 아파트 건설건 마저 기존 이권자들로 버티기와 상대 조직들의 견제로 순탄치 않다. 거기다 조폭인 아버지를 소 닭 보듯 하는 딸과 조폭생활을 청산하지 않는 남편을 원망어린 눈으로 보는 아내로 인해 그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진다. 이런 조폭 강인구의 모습은 직장 상사에게 치이고, 동료들과 서로 견제하며, 행여 후배들에게 밀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평범한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우연히 펼쳐본 딸의 일기장에서 자신을 경멸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글을 발견하던 부분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딸에게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딸에게서 그런 소리를 듣는 아버지의 마음이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버림받은,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아버지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혀지지가 않았다.

또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엔딩씬이었다. 늘어진 런닝셔츠에 사각팬츠를 입은 강인구가 라면이 담긴 그릇을 들고 멍한 눈으로, 화면속의 행복해 죽을 것 같은 가족들을 보던 그 장면. 그들의 행복에서 혼자 소외된 자신의 초라함이 분노로 변해 잠시 폭발하지만 이내 그것마저 직접 치워야 하는 서글픔. 요즘 유행처럼 번진 소위 '기러기 아빠'의 모습이 그에게 덧씌워지면서 가족에게서 소외된 아버지의 분노와 서글픔과 처량함이 온 몸으로 느껴졌던 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가장 명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자녀들의 조기교육을 위해 가족들을 모두 해외로 보내고 혼자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기러기 아빠의 모습은 처음엔 처량하고 불쌍해 보이지만 이내 조금 한심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기유학 보낼 형편이 안되는 자의 질투인 지는 모르겠으나, 가족이란 가장 중요한 울타리를 깨고 돈 대주는 기계같은 초라함과 외로움까지 느껴야 할 만큼 유학이 중요한 것일까, 저들의 저런 희생이 과연 값진 것일까.. 뭐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작품성은 차치하더라도 일단 <우아한 세계>는 아주 재미있다. 눈물도 웃음도 그리고 한숨도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꽤나 리얼하다. 공사판에서 패싸움을 벌이는 조폭들의 모습이나 피곤에 찌들고 처량한 자신의 처지에 눈물을 삼키는 40대 가장의 팍팍한 삶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 리얼한 현실감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와 캐릭터에 동화되어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또한 이 영화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내용을 중간중간 웃음을 유도하는 상황과 장치를 설정함으로써 가볍게 만들어 주는데, 예상치 못한 웃음코드는 이 영화를 더욱 즐겁게 볼 수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무거운 싸움씬에 쿵짝쿵짝~ 신나는 음악을 넣는 등 꽤나 유쾌했던 칸노 유코의 음악 또한 상당히 좋았다.


<연애의 목적>으로 충무로의 시선을 빼앗었던 한재림 감독은 그의 두 번째 작품 <우아한 세계>에서 자신의 재량을 한껏 뽐낸다. 이 작품으로 인해 그는 이제 충무로에서 가장 기대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확실한 찜을 당했고, 관객들의 뇌리에 한.재.림.이란 이름 석자를 또렷이 새기며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감독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놓았다. 

<우아한 세계>에서 보인 감독의 연출력을 볼 때 그런 대접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생활 누아르'라는 이색 장르를 내세우며 '누아르'라는 장르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일상 생활의 면면을 완벽하게 덧입히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관객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음은 물론 그 이상을 보여주는 호연을 펼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카피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 시대 최고의 배우가 아닐런지. 

극한 감정을 한순간에 폭발해내는 연기의 달인이 설경구와 최민식이라면, 마치 우리의 주변을 보는 것 같은 '생활 연기'의 달인은 단연 송강호일 것이다. 스크린 속에서 마치 옆집 아저씨를 보는 것 같은 그 한없는 자연스러움이란!! 매번 그의 연기를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친구인 현수에게 노회장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쏟는 장면이나 딸의 일기장을 보고 난 뒤에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는 모습, 티비속 단란한 가족을 보며 라면그릇을 들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하며 눈물 짓다가 이내 분노하던 장면 등은 강인구라는 인물을 한심해 하다가도 그를 동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그건 바로 배우 송강호의 힘일 것이다.

조폭과 평범한 아버지라는 극과 극의 캐릭터를 자연스레 넘나들며 한 몸으로 녹여내는 그의 연기는 이 영화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 관객들조차도 하나같이 손가락을 치켜들게 만든다. 우리 시대에 이런 배우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다.


그 외 오달수, 박지영, 윤제문 등의 조연들도 호연을 선보인다. 톡톡 튀는 감초연기의 달인인 오달수는 역시나 막강한 포스를 뿜어내고 한동안 그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박지영은 조폭 남편을 둔 피곤한 주부 역을 멋지게 소화해 낸다. 무엇보다 <로망스>에서 비열한 형사를 징글징글하게 연기했던 윤제문은 몇 개 안되는 장면에서 내내 맞거나 찔리는 연기가 대부분이라 보는 이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물론 극중에선 충분히 맞을 짓을 하는 캐릭터지만. 그리고 첫장면에 백사장 역으로 우정출연한 이대연의 그 리얼한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조폭을 그만두지 못하고 가족들과 점점 멀어지는 강인구.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의 책임감에 허덕이는 그를 보며 가슴이 뜨뜻해지다가도 여전히 자신이 무얼 잘못하고 있는 지 알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한심하게도 느껴진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지면 '나는 강인구처럼 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보다 '아이고~ 우리 아부지~ 저렇게 외롭고 힘드셨구나! 오늘 집에 가서 힘껏 안아드리기라도 해야지. 앞으로 아부지한테 좀 더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이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부양 가족과 생활에 갖혀 꼼짝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남의 이야기가 같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서글프게 웃고 있는 포스터 속의 송강호의 얼굴 옆에 얹혀있는 '웃어라, 아버지니까'라는 카피가 좀 더 가슴을 꽂혔다. 

후반부 피비린내가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혼신을 다한 연기와 훌륭한 연출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우아한 세계>는 후회하지 않을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개봉 당시 평단의 반응에 비해, 그리고 나의 예상치보다 적은 흥행을 기록한 점은 내내 아쉬운 대목이다. 한재림 감독과 송강호가 만들어낸 <우아한 세계>는 우아한 세계를 꿈꾸지만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네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다. 기회가 된다면 챙겨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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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Maundy Thursda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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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 찬란한 기적


내가 다 잘못 했습니다. 죽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는게 지옥같았는데..
나.. 살고 싶어졌습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나.. 살고 싶어졌습니다..'라는 저 말 한 마디는 온 가슴을 찌릿하게 한다..
 
올가을 가장 기다렸던 영화들 중 한 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꼽았던 날의 열정만큼 가득 채워진 기대감으로 스크린에 마주앉았다.
그래서 더욱 벅찼고, 그래서 약간 아쉬웠던 영화가 바로 <우행시>였다.
 
 

살인죄를 뒤집어 쓰고 사형을 기다리는 남자와 삶이 참을 수 없어 세 번 자살을 시도했던 여자.
이들이 만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누구에게도 꺼내보이지 못했던, 저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뒀던 상처를, 그 아픔을 꺼내놓으며
서투른 몸짓으로, 그러나 진실된 마음으로 서로의 영혼을 보듬으며 치유해 간다.

 

 영화 속 그녀의 '진짜 이야기'는, 처음으로 둘만 만나는 날 툭~ 뱉어내던 소설과는 달리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나온다. 책을 읽으며 내가 상상한 장면과는 달리, 영화 속에선 둘 사이에 유리가 가로막고 있어 살짝 실망하려 했는데 의외로 카메라의 앵글이 무척 맘에 들었다. ^ ^;;
 특히. 이야기를 하는 한 사람의 얼굴 옆에 유리에 비치는 다른 얼굴이 나란히 잡히는 화면.
이 씬에선 그런 장면이 여럿 잡히는데. 그 장면, 느낌이 참 멋졌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그 장면을 꼽겠다! ^ -^ 


<우행시>를 보면서, 새삼 원작을 읽어버린 아쉬움(?)을 느꼈다.
공지영의 베스트셀러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약간의 변주를 거치며 나름의 깊이를 가지지만, 솔직히 원작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물론 영화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작의 힘이 너무 거대했다는 이야기다.
소설에 너무 깊이 감동했고, 비교적 최근에 책을 읽어 그 감동의 진폭이 미처 옅어지지 않았던 터라.. 그리하여 그 느낌과 전율이 너무 생생하게 남은 까닭에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졌다;;

 무엇보다 영화감상을 가장 방해했던 요인은, 영화를 보면서 내내 책의 내용과 전개를 더듬는 나 자신이었다.
여기쯤에서 이 대목이 나와줘야 하는데 계속 기다리고.. (영화는 유정의 고백이 소설보다 꽤 뒤에 나온다;;) / 2시간이라는 시간적 제약 땜에 잘려나간 많은 이야기들을 혼자서 아쉬워하고.. (특히 윤수동생 은수에 대한 이야기) / 이 부분의 감정은 아주 폭발적이었는데 저건 너무 약하자나.. (피해자 할머니가 모니카 수녀님에게 '당신들이 용서하라고 그랬자나요'라며 울먹이는 장면;;) / 어? 여긴 자기 입으로 다 얘기하네;;하며 당혹했던.. (원작엔 윤수 이야기가 블루노트로 따로 진행되는 반면 영화에선 윤수의 입을 통해 유정에게 전해진다) 등등.. 자연스레 두 작품을 비교하고 있는 나.. 아는 것이 병이라더니 이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_-;;

 감독, 배우가 맘에 들어 이왕 보려고 벼르던 영화였으니 영화를 본 뒤에 소설을 읽을 걸..하고 혼자서 뒤늦은 후회를 했다. 아님, 소설을 좀 더 일찍 봤어야 했다;;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이 다시 한 번 진심을 담아낸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너무도 아름다운 음악과 끔찍한 모습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첫 장면을 시작으로 <우행시>는 특별한 반전없이 예정된 결말을 향해 시종 담담한 시선과 느린 호흡으로 진행된다.

인류애적인 사랑과 사형제도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끌어냈던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비교적 두 사람-유정과 윤수-의 상처와 치유에 초점을 맞춘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닫았던 마음을 열고 진실된 행복을 느껴가는 과정, 그들의 행복한 시간을 담는다.

원작보다 사형제도에 대한 담론화가 지지부진하다고는 하지만, 또 실제로 그렇긴 하지만,, 그렇지만 영화는 영화 자체로 좋았다. 원작보다 두 주인공의 멜로적 요소가 더 강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그럼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막 우기고;; 쿨럭;; ^ ^;;)


두 청춘스타 이나영과 강동원은 무리없는 연기를 선보인다.
내면 연기와 눈물 연기도 좋았다.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고라 하기엔 아직 좀 부족했다.
특히. 피해자 할머니와 마주했을때 우는 강동원의 표정은.. 흠.. ㅡ.ㅡ;;

<늑대의 유혹>이후 스타로 올라선 강동원. 많이 좋아졌으나 아직은 부족한 점이 더 보인다. 그러나 꽃미남 '스타'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로 단련의 길을 택하는 강동원의 행보는 흥미롭다. 포스트 장동건이 될 수 있을지.. 그래서 그가 마음에 든다. <아는 여자> 이후 2년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이나영. 연기 좋다. 여전한 그만의 독특한 색깔을 난 사랑한다. 아주 사랑하지만, 그렇지만.. 이젠 조금씩 변화도 필요한 듯 하다. <역도산> 이후 오랫만에 만나는 송해성 감독의 진중한 연출도 좋다. 그러나 <파이란>에 미치진 못한다.

여전히 나에겐..
송해성 감독은 <파이란>, 이나영은 <아는 여자>, 강동원은 <늑대의 유혹>이 최고의 작품이다.
그래서 <우행시>가 좋은 작품임에도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난다.

근데 살짝~ 우스운 건.. 책을 읽을 때 내 머리속에서 너무나 완벽하게 들어맞던 두 사람의 이미지가 오히려 영화속에선 조금씩 어긋났다. 이럴수가! 그치만 뭐,, 그건 상황을 설정하는 감독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다. (내 상상의 감독은 나였으니 말이다; ^ ^;)



서늘해져가는 가을..
메말라가는 마음에 눈물의 단비를 내려주고 싶다면 이 영화, 안성맞춤일 듯 하다.
미남미녀의 모습에 패배자의 모습을 일치시키는게 조금 망설여질진 몰라도 영화속 새롭게 이 세상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그들의 모습을 마주한다면 그런 우려쯤 별 것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모든 것이 나를 외면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사랑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상대의 진심을 알아준다는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누군가의 사랑이 내 삶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행복한지.. 지금 이 곳에 내가 숨쉬고 있는 그 자체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알게 해 주는 영화였다. 짙어지는 가을, 그들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속으로 들어가 보자. 참! 손수건도 하나 챙겨들고 말이다.





 2006/09/22, 햇살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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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 - Radio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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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로 스크린을 뜨겁게 달궜던 이준익 감독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배우인 안성기, 박중훈과 함께 돌아왔다. 영화 <라디오 스타>로..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말해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카피가 얼마나 적절한가에 다시 한 번 감탄을!
항상 믿어주고 지켜봐주는 그런 누군가가 있다는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부럽다!


한물 단단히 간데다 여전히 꿋꿋하게 철없는 왕년의 스타가수 최곤과 그의 매니저 박민수.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이젠 별 볼 일 없어진 이 두 사람이 엮어가는 이야기는, '영월'이라는 공간과 '라디오'라는 매체을 만나면서 웃음과 눈물을 버무려 깊이있는 감동의 울림을 끌어낸다. 

어쩜~ 철이 없어도 저렇게 없을까~ 싶은 최곤역을 자신의 색깔로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박중훈. 속 깊은 매니저 박민수역에 다른 사람을 떠올릴 수 없게 혼연일체가 된 국민배우 안성기. 실제로 오래된 그들의 찰떡궁합을 담아내듯 스크린에 쏟아붓는 끈끈한 우정은 그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리라.


박중훈. 최곤을 위해 머리를 기르고 찰싹~ 달라붙는 의상을 소화하려고 살을 뺐다는데, 내 보기엔 오히려 얼굴이 얼마나 탱글탱글 살이 올랐는지~ 볼을 꼬집어 보고 싶을 정도였다; ^ ^; 쫙~ 달라붙어 주는 쫄바지의 압박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고, 영화에서 살짝살짝 입맛 다시게 해주는 박중훈표 개그 또한 기분좋은 옛기억을 되살려 준다. 직업이 가수인 캐릭터인 만큼 노래에도 많이 신경을 썼다는데 영화를 관통해서 흐르는 최곤의 최고 히트송 '비와 당신'. 박중훈의 목소리이기에 더욱 애절하게 들린다. 

안성기. 유들유들 사람좋은 웃음을 보이며 철부지 최곤의 모든 험한 뒷치닥거리를 군말없이 감당하는 속깊은 매니저로 열연한 국민배우. 이 영화를 보면서 예전 그의 히트작 <고래사냥>이 떠올렸다. 바로 그 느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의 연기 느낌은 바로 <고래사냥>에서 벙거지를 쓰고 신나게 웃던 민우의 느낌이었다. 오랫만에 그의 관록의 연기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난 것이 반갑고, 그 속에서 오랫만에 제대로 물을 만난듯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그의 모습이 반갑다. 이 영화, 오랫만에 제대로! 안성기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박중훈, 안성기에 이어 최정윤과 나란히 떠오른 이름, 노브레인. 노브레인이 출연하는 지조차 몰랐던 나는, 엥? 노브레인이 얼마나 나오길래 저렇게 이름이 빨리 나와? 하고 잠시 의아해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곧.. 그 의문이 풀리지만. ㅎㅎ 어설픈 그들의 연기는 오히려 자연스러움으로 변모되어 그들로 인해 웃음꽃이 번지고, 그들의 음악으로 돋아난 흥으로 어깨를, 머리를, 발을 까딱까딱~하게 된다. 오~ 노브레인! 그대들이 이렇게 귀여웠단 말이냐!! 정말이지, 난 네게 반했어! (노브레인이 중간에 부르는 곡명이기도 하다 ^^)


누구나 라디오를 들은 경험이 적어도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 늦은 시간까지 애청프로에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우리는 종종 라디오를 듣곤 한다. 티비와 영화, 다른 영상매체에 너무나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라디오'라는 아날로그적 매개체가 더이상은 어떤 감정을 남겨주지 못할 것 같지만 의외로 이 '올드'해 보이는 물건을 통해 진한 향수와 감동을 건네받을 때가 많다.

목소리로만 전해지는 그 특별함! 그래서 수많은 이미지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요즘에도 라디오의 따뜻함은 여전히 살아있다. 마치 전자파일이 세상을 지배해 사라질거라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여전히 활자와 종이의 매력으로 인해 사랑받으며 남아있는 책들처럼 말이다.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의 감동은 그런 아날로그적 따뜻함으로 세상에 전해진다. 영화 내내 쯧쯧~ 혀만 차게 만들던 최곤이 마지막엔 진한 눈물을 쏟아내게 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좋다. 그런 따뜻함이 물씬~ 풍겨나는 영화. 가슴 따뜻한 이 기분이 너무 좋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영월"은 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다. 영월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영화의 여기저기에 촉촉히 배어난다. 나는 특히 최곤의 목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항공촬영장면-영월과 서울, 부산-이 너무 좋았다! 마지막 엔딩씬과 함께 가장 좋았던 장면으로 꼽고 싶은 장면. 

<왕의 남자>처럼 <라디오 스타>도 여운을 남기며 끝이 난다. 마지막 그 장면. 한 폭의 그림 같았던 그 장면에 차고 넘치게 흐르는 그 교감들.. 눈을 감아도 선~하게 펼쳐지는 그 광경이 단연 이 영화의 압권! 영화 전체를 감싸는 최곤의 '비와 당신'과 함께 흘러간 명곡들과 발랄한 노브레인의 음악들로 귀 또한 즐거웠다. 


<황산벌>로 꽃을 피워 <왕의 남자>로 한국영화의 기록을 새로 쓴 이준익 감독은 예의 그 관록의 힘을 <라디오 스타>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작지만 힘있는 영화. 그것이 바로 그가 지향하는 철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젊은 영화인들 속에서 이렇게 관록의 힘을 보여주는 중년의 배우와 감독. 이런 그들이 있기에 한국영화, 더욱더 희망을 품어도 되지 않을런지. 


두 배우의 콤비플레이를 아낌없이 볼 수 있는 영화,
이준익 감독의 녹록치 않은 연출솜씨에 감동하게 되는 영화,
노브레인의 깜찍한(?) 웃음도발 연기에 즐거워할 수 있는 영화,
그리고 가슴 저 깊숙이 따뜻함이 뭉클뭉클 피어오르는 영화, <라디오 스타>

따뜻함을 선물받고 싶다면 이 영화, 강추다! 







 2006/09/29, 햇살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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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 War of flow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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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작가와 허영만 화백이 함께 탄생시킨 걸작 <타짜>. 수많은 걸작을 원작으로 두는 영화의 운명이 그렇듯 <타짜> 또한 영화화가 결정된 이후 수많은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우려보다 기대의 비중이 더 높았던 것은 반짝반짝 빛을 내는 탐나는 배우들이 모였다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빛나는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으로 각종 영화제의 신인감독상을 싹쓸이했던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다는 기대치 때문일 것이다.

그런 별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꽃들의 전쟁 <타짜>, 그 종합선물세트의 뚜껑이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앞두고 열렸다. 18세 등급가의 불리함과 어두운 이야기가 흥행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애초의 우려와는 달리, <타짜>는 몇 년 째 이어진 '추석 = 코미디'라는 공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올 추석의 흥행 왕으로 우뚝 솟았다! 벌써 전국 400만을 넘었다고 하니 작품의 완성도와 관객의 입소문, 그리고 흥행성적에 힘입어 한동안의 거칠 것 없는 흥행질주가 이어질 듯 하다.


어느새 명절이면 가족끼리 모여앉아 즐기는 놀이로 친숙해져버린 동양화 감상, 화투. 그 소박했던 화투장이 영화속 타짜들에 의해 꽃들의 전쟁으로 변신한다. 전문도박꾼을 일컫는 '타짜'를 제목으로 내세운 만큼 영화의 주배경과 이야기는 도박판을 중심으로 엮어진다. 명절에 접하는 우리네의 소박한 화투판과는 격이 다른 거대한 '꾼'들의 도박판이 펼쳐지고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온갖 속임수와 음모, 배신과 욕망이 쏟아져 내린다. 그리하여 도박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세계이며 전쟁터가 된다.

<우행시>와는 달리 <타짜>는 다행히도(?) 아직 원작을 읽지 않은 상태로 접했다. 그랬기에 온전히 영화에 몰입하며 그 스릴과 아찔함을 즐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원작을 본 동생의 아쉬움을 나는 느낄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새롭게 재탄생시킨 영화의 탄탄한 얼개는 기본이고, 보는 내내 속도감있는 빠른 호흡으로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감독의 연출 또한 훌륭하다. 더불어 최감독의 전작 <범죄의 재구성>처럼 속도감있는 편집을 선보여 눈을 즐겁게 하는 <타짜>의 편집 또한 멋지다. 역시나 등장하는 다중의 화면분할도 도박판에 우글거리는 여러 인물들의 다채로운 표정들을 한 화면에 담아내며 생동감을 놓치지 않는다.

<타짜>가 완전 액션영화가 되었다는 동생의 작은 불만에도 불구하고 액션씬들은 생동감있는 연출로 보는 이의 재미를 한층 높여준다. 계속 화투만 치는 것보단 가끔 뛰어주고 싸워주는 걸 더 좋아라하는 관객의 마음을 헤아린 제작진의 성의가 아닐까 한다.


감독의 재능과 함께 이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건 당근~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타짜>는 참으로 축복받은 영화일런지도 모른다.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백윤식과 김혜수의 연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지구를 지켜라>,<범죄의 재구성> 이후 충무로의 새로운 역할모델을 제시하며 관록의 연기를 몸소 보여주시고 계신 백선생, 백윤식. 역시나 <타짜>에서도 전설의 타짜 평경장을 맡아 멋진 연기를 펼치신다. 그가 아닌 평경장을 어찌 상상할 것인가! 이젠 그가 나오는 영화라면 우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아역배우로 출발해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지만 여전히 '배우'라는 이름 붙이기가 조금은 껄끄러웠던 김혜수. 그러나 이 영화 <타짜>를 본 뒤, 이젠 더이상 그렇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배우'라고 불릴 만한 내공을 소유했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 팜프파탈로 남성중심의 영화에서 보기만 좋은 들러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캐릭터 정마담을, 기존의 어떤 연기보다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극의 중심으로 당당히 들여놓는다. <타짜>는 이제껏 본 그녀의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작품이 아닌가 한다. 이젠 세월을 비켜가는 듯한 그녀의 외모 뿐만 아니라 더욱 풍부하고 깊어진 그녀의 연기가 한층 아름답다. 


주인공 고니를 연기한 조승우의 연기도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배역을 소화하고 표현하는 그의 연기는 여전히 훌륭하나 영화 전체에서 조승우의 연기가 강인하게 각인되진 않는다. 그러나 혼자만 튀려고 하는 연기가 아니라 전체에 어우러짐으로 빛을 발하기에 그의 연기는 여전히 아름답다.

수다쟁이 서민형 타짜 고광렬로 관객들에게 많은 웃음을 건네주는 유해진의 연기는 여전히 익살스럽고 유쾌하며, 요즘 각종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아귀'역의 김윤석 또한 기존의 인상좋은 아저씨를 걷어내고 악마적 매력을 뿜어내는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보인다.

참! 깜짝 선물로 허영만 화백이 까메오 출연도 했다. 한 컷 큼지막~하게 잡힌 후 서서히 배경으로 물려지는 터라 허 화백의 얼굴을 놓칠 수 없으리라~ (오늘 보니 영화 '식객'에도 까메오 출연을 하셨다고. ㅎㅎ)


<타짜>의 성공으로 속편제작 논의가 활발하단다. (속편은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고 한다) 줄곧 부정적 반응을 보이던 허 화백도 긍정적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하니 그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영화화가 된다면 타짜 4부가 가장 알맞다고 허화백이 추천했다고. 전편의 배우들이 모두 모인다면 기꺼이 출연하고 싶다는 배우들의 의견처럼 <타짜>의 감독과 배우들이 다시 뭉친다면 나도 속편을 목 빼고 기다릴 의사가 있다! <타짜>, 잘 만든 영화라 행복한 영화였다.






 2006/10/11, 햇살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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