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파시즘: 유능한 파쇼와 무능한 자유보수주의!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새 나에게 주목받고 있는 신생출판사 가운데 하나가 "교양인"이다.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 스콧 터로의 "극단의 형벌", 히틀러 평전으로 유명한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최후의 14일"(이 책은 출판사에서 보내주었다. 어떻게 알고... 감사) 그리고 로버트 O. 팩스턴의 "파시즘"이 그것이다. 지난 2004년부터 책을 내기 시작했는데, 현재 내가 알고 있기로는 모두 8종의 책을 낸 것으로 안다. 자세한 속사정은 알 수 없으나 나름대로 탄탄한(물질적 측면이 아니라 출판사를 꾸려나가기 위한 다른 역량-문화적 마인드, 필자 풀, 번역서의 경우엔 그걸 분별할 수 있는 식견 등) 역량이 돋보인다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에도 로버트 O. 팩스턴의 "파시즘" 원제는 "The Anatomy of Fascism"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파시즘의 해부" 정도가 될 수 있는, 이 책은 "교양인"에서 출간한 책 가운데 현재로서는 가장 두툼한 부피를 자랑하는 책이다. 전체 600여 쪽의 책 가운데 주석 부분과 기타 참조 부분(용어, 인명 찾아보기 등)이 100여쪽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전문적인 학술서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읽는데 족히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루 동안 다 읽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 내가 이 분야에 흥미가 많은 탓이고, 둘째. 필자와 역자, 그리고 편집자들의 수고 덕이겠지만 읽기 쉬웠다. 셋째.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하다. 책값이 27,000원인데 10% 할인해서 24,300원인데 책값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나로서는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전에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지인에게서 그런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는데(본인에게 직접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잘 안 난다. 한홍구 교수는 최근 국내 최초로 평화박물관을 개원해 몸소 재원을 마련하고, 운영하느라 무척 바쁘다.) 평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엔 이 분야가 특히 취약해서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민주주의에 대입해 보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독재 체제(파시즘, 전체주의, 권위주의 등등)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우스운 말이지만, 우린 해방 이전과 이후의 근대화 기간 동안 전쟁과 너무나도 가깝게 살아온 나머지 웬만한 전쟁 이야기엔 면역이 되어 있고, 해방 이전엔 일본 제국의 군국주의, 해방 이후엔 권위주의 독재, 군부 독재 시대를 거쳐온 탓에 독재 혹은 권위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하거나 지나치게 관대한 측면 두 가지를 아울러 가지고 있다.

드 세르토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거대 도시의 마천루적인 시각과 더불어 그 밑을 걷고 있는 자의 시각이 혼재해 있는 것이다. 어떤 관점은 지나치게 원경으로, 어떤 관점은 지나치게 미시적으로 들어가고 있으므로 일반인들로서는 다소 곤혹스러울 수 있는 지경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머리말을 쓴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유효적절해 보인다.

"파시즘을 정확한 기술적 용어로 쓰지 않고 일종의 유행어로 안이하게 남발하는 것은 파시즘을 예방하기보다는 오히려 파시즘의 독성에 무감각해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또 그럼으로써 '진짜' 파시즘이 출현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이미 양치기 소년 증후군에 중독 되어 파시즘을 알아보지 못하게 될 우려도 있다. <본문 14-15쪽>"

팩스턴의 "파시즘"은 모두 8장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1장. 운동하는 파시즘"은 파시즘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주요 전략, 정치적 운동 방향 등에 대해 기술함으로써 파시즘의 정의를 시도한다. "2장. 파시즘의 탄생"은 말 그대로 파시즘이 탄생할 수 있었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 등을 역사적으로 파악하고, 어떤 징후들이 나타나는가를 분석한다. "3장. 뿌리 내리기"에서는 파시즘의 준동이 유럽의 각국에서 어떤 형태로 출현했는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여주고, 이탈리아, 독일 등과 달리 다른 유럽에서 파시즘이 실패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4장. 권력장악"에서는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정권 탈취에 실패한 파시즘이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던가를 보여준다. "5장. 권력행사"에서 팩스턴은 파시즘이 정권을 장악한 뒤 어떻게 내부 분열을 겪고, 그 가운데 지도자 중심의 권력 독점으로 기울게 되는지에 대해, "6장. 급진화인가 정상화인가"에서는 파시즘이 어떻게 홀로코스트를 자행하고, 파시즘의 어떤 요소들이 이런 급진화를 부추겼는지 살핀다. "7장. 다른 시대, 다른 장소의 파시즘"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종말을 고한 듯 보이는 파시즘이 1945년 이후 유럽에서 어떤 형태로 잔존했는가? 이후에도 파시즘의 출현은 가능한가를 살핀다. 그리고 마지막 "8장. 파시즘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시 파시즘에 대한 정의를 내림으로써 현대 사회에 출현 가능한 파시즘을 예측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팩스턴은 마치 법의학자가 시신과 대화를 나누듯 파시즘의 세세한 측면들을 들춰내면서도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그는 미국 출신의 학자임에도 미국에 존재하고 있는 파시즘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도 비판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물론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파시즘은 무엇이다'란 식으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팩스턴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파시즘이 주요한 정치 이념으로 출현해 다시 정권 탈취, 권력 장악을 하도록 방치해선 안 되는지를 깨닫게 만드는 힘은 얻을 수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파시즘에 대한 기존의 고정 관념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파시즘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모든 정치 형태 중 가장 강력한 시각적 호소력을 발휘하는 파시즘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다음과 같은 선명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무아경에 빠진 군중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광신적 애국주의 선동정치의 모습,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젊은이들의 행진 장면, 악마로 둔갑한 소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특정 색깔의 셔츠를 입은 극렬분자들, 새벽녘의 갑작스런 가정 침입, 함락된 도시를 행진하는 규율 잡힌 병사들이 바로 그것이다. ...<중략>... 파시즘의 그러한 이미지는 오늘날까지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는 파시즘 선전원들이 거둔 최후의 승리다. 또 그 이미지는 파시즘 지도자를 승인하고 용인한 국가에 핑계거리를 제공하고, 그 지도자를 도와준 개인, 단체, 제도로 향하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파시즘 지도자와 국가, 그리고 파시스트당과 시민 사회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훨씬 더 정교한 파시즘 모형이다.
환호하는 군중의 이미지는 몇몇 유럽 민족 내 민족들이 선천적으로 파시즘적 경향을 띠고 있으며, 그런 민족적 특성 때문에 파시즘에 열광적으로 반응한다는 가정에 힘을 실어준다. 이 가정으로부터 한 나라의 결함 있는 역사가 파시즘을 탄생시켰다는 겸손한 듯 오만한 믿음이 따라 나온다. 이러한 믿음은 쉽게 파시즘을 방광하는 국가들의 알리바이로 바뀔 수 있다. 즉, 자기네 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본문 38-39쪽>

찰톤 헤스톤 주연의 영화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엘 시드"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 한 가지를 던져준다. 1492년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모든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레콩키스타"로 알려진 실지 회복 전쟁이 끝났을 때, 다시 기독교도 왕국이 된 스페인은 이교도에 대한 이전의 관용정책을 포기한다. 이전까지 종교적 자유 아래 기독교도 국왕인 스페인 왕에게 충성을 바쳤던 무어인들은 개종해야 했고, 개종한 무어인들은 '토르나디소스(tornadizos, 변절자)'란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렸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각축 속에서 살아남았던 유대인들에 대한 대규모 인종학살이 빚어진다. 1391년 세비야에서만 4,000여 명의 유대인이 불 속에 던져졌다. 레콩키스타를 종료한 스페인은 지리상의 발견 시대를 거치며 신대륙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축적되기 시작한 서구 유럽의 자본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촉진시키는 밑거름이 되었고, 이들 사회가 새로운 격변을 맞이한 것은 1800년대 말부터 시작된 산업화와 도시화였다.

1900년에 이르러 18세기 계몽사상에 의한 과학 ․ 이성 ․ 진보의 힘은 유럽의 체제를 크게 바꿔놓았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한 사회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발명(증기기관, 내연기관, 무선통신, 사진, 영화 등), 철도와 기선의 출현(미 대륙 횡단철도, 유라시아 횡단 철도, 대양 운송)으로 인해 낡은 농업사회의 자급자족제도를 파괴하고, 도시로 유입된 다수의 노동자 계층을 생성시켰다. 농민에게는 전통적 생산수단을 현대화하도록 강요(문화적 재생산의 차단)했고, 인구의 이동성을 높여 도시의 거대화를 초래한다.

자유주의, 자유자본주의 모델은 그 물질적 장점으로 인해 정치적인 틀을 크게 변모시킨다. 언론, 상거래, 과학적 탐구의 자유, 노동의 유동성과 확대된 선거권에 기반한 민주적 자치(自治)에 대해 각성한(영국의 경우 1867년 도시소시민, 노동자, 1884년 광산노동자, 농민, 1918년 남성 보통선거, 1928년 보통선거 확립) 시대이다. 이 시기에 지구상의 인구는 1900년 당시 16억 3천만 명에서 2000년 무렵 60억으로 폭발적인 증가세(1820년대 영국 리즈, 버밍엄, 브래드퍼드는 각각 47%, 40%, 65%의 인구 증가)를 보였다. 산업화와 도시화,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대중들의 의식을 변화시켰고, 교육받은 중산층과 소수 기술노동자 계층의 출현으로 새로운 형태의 매스 미디어들(신문 - 1700년대부터 인쇄되어 구독되었던 소책자나 정보지로 출발, 18세기에 이르러 일간지가 일반화됨, 1840년대 대중잡지, 1920년대 라디오, 1940년대 TV)의 출현을 가속화시켰다.(1843년 영국 카툰 잡지 <펀치 Punch>, 사진의 출현, 포르노그라피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당시 영국의 교육자이자 문화이론가였던 M. 아널드는 "대충 교육받은 다수가 아닌, 고도로 교육받은 소수가 항상 인류의 지식과 진실의 기관 역할을 해왔다.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지식과 진실은 결코 인류의 대다수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란 말로 대중사회의 도래를 기존 사회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 요소로 보았다. 자유주의 사상가 J.S.밀과 A.토크빌은 대중사회가 확대된 민주주의(보통선거)에 의해 수적으로 증가한 (정치적으로 무지하고, 무관심한)대중을 오도하여 선출된 소수 개인의 의지에 따라 민주주의가 변질되는 것을 새로운 전제주의적 횡포로 생각했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이즘'들은 정치가 교양인의 일이었던 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상대방의 감성과 이성에 호소하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끈질기고 학구적인 의회 토론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고전적인 '이즘'은 그 사상을 뒷받침하는 철학과 그 이즘들의 강령을 검토함으로써 설명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파시즘은 대중 정치 시대에 급조된 새로운 고안물이었다. 파시즘은 세밀하게 연출된 의식과 감정이 가득실린 수사를 적절히 사용하여 사람들의 정서에 주로 호소했다." <본문 53쪽>

대중사회는 출현했으나 대중을 노동계급으로만 해석한 사회주의,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 세력으로 파악한 보수주의, 교육받은 시민들만을 정치 세력으로 인정한 자유주의 모두 대중을 정치권력의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정하지 않았다. 대중은 분명한 정치세력이었으나 이들을 단지 무지몽매한 세력으로만 파악한 기존의 정치이념들이 놓친 공백의 틈새를 파고든 것이 바로 파시즘이었다. 파시즘은 대중을 인정치 않거나(보수주의, 자유주의) 반대로 대중이 지닌 보수성을 이해하지 못한(대중은 프롤레타리아트로서의 자의식과 더불어 기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성향을 함께 지녔다) 사회주의의 맹점을 파고들었다. 자유주의는 파시즘에 대항할 세력이 없었거나 세력, 대안을 조직화해내지 못했고(무능했고), 보수주의는 사회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다른 정치 세력으로 파시즘을 선택했다.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의 하나는 자유주의 질서의 위기였다. 파시즘이 암실에서 나와 공적인 무대로 가장 쉽게 진출했던 곳은 기존 정부의 기능이 형편없거나 아예 전무했던 곳이었다. 파시즘에 대한 토론의 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은 파시즘이 자유주의의 위기를 기반으로 삼아 번성했다는 사실이다. ...<중략>...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자유주의 정권이 확립돼 있었거나 자유주의 체제 확립으로 나아가던 중이었다. 자유주의 정권은 개인은 물론이요 집권당의 경쟁세력인 여러 정당에도 자유를 보장해주었으며,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정부 구성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했다. 자유주의 정부는 또한 시민과 기업에 광범위한 자유를 허용했다. ...<중략>... 이런 유형의 자유주의 국가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사라졌다. 전면전을 수행하려면 정부의 강력한 조정과 규제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전쟁은 끝났으나 자유주의 정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전쟁 이후 밀어닥친 여러 갈등, 위기, 긴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팩스턴은 이런 현상이 사상적 문제이기 보다는 위기에 처한 "통치의 기술" 문제라 말한다. "좋은 집안 출신의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 사회적 명성과 존경에 의지해서 선거에 계속 당선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명망가의 지배" 자체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제 정치가들은 좌우를 막론한 누구든 대중선거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정치 거물들이 대중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동안 파시스트들은 대중정치를 이용해 좌파에 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힘과 동시에 기존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노동계급을 장악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오늘날 "파시즘"의 정권 장악엔 필연적으로 "대중의 동의"가 뒤따랐음을 지적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되었다. 물론 이런 지적이 전적으로 틀린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파시즘의 등장을 대중의 동의 탓으로 밀어 붙이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과거의 잘못과 오류를 반복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대중을 파시즘의 정치적 동반자로 부각하려는 시도, 그 자체가 궁극적으로는 과거 자유주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대중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무지몽매한 군중(mob)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와 결합하면서 대중을 다시 정치로부터 소외시키게 되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들은 과거 박정희 유신 독재, 87년 대통령 선거의 패배의 책임(양 김의 득표가 노태우보다 훨씬 더 상회했음에도)을 대중에게 전가시킨다. 이들은 중요한 사실(fact)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1921년 10월 30일 로마진군을 결정한 무솔리니에게 정권을 넘겨준 것은 대중이 아니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였다. 이탈리아 국왕은 파크타 총리가 제출한 계엄령에 서명하지 않음으로써 무솔리니에게 정권을 내어줄 결심을 내비쳤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상황을 결정지은 것은 파시즘 세력이 아니라, 무솔리니에 맞선다면 자신들의 권력이 위험에 처하리라는 보수주의자들의 두려움이었다. 로마진군은 오합지졸의 거리 행진에 불과했으나 효력을 발휘했고,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의 성공은 곧바로 독일 나치스를 부추겼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 폭동을 통해 보수주의자들이 정권을 헌납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폭동은 간단하게 진압당하고 말았다. 정부 기능이 아직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보수주의자들은 아직 히틀러를 신뢰하지 못했다.

독일 좌파들은 히틀러가 앞으로도 이탈리아의 방식(쿠데타, 폭동)을 통해 정권 탈취를 노리리라고 방심하고 있었다(다시 내분에 휩싸였다). 히틀러는 쿠데타라는 불법적인 방식의 권력 탈취 기도가 성공하지 못하리란 것을 깨달았다. 히틀러는 합법적인 선거에 참여해 이전과 비교했을 때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이 히틀러의 힘을 빌어 좌파 세력을 견제하려는 결정을 내리기에 미적거리는 동안 나치당의 인기는 다시 하락하고 있었다. 히틀러가 대중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적은 사실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런 위기에서 히틀러를 구해준 것은 보수주의자 프란츠 폰 파펜이었다. 그는 정치 초년생인 히틀러를 명목뿐인 수상에 올려놓고, 자신이 부수상에 올라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직도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독일의 유권자들은 나치당에게 과반수의 표를 준 적이 없다. 앞 장에서 보았듯이 1932년 7월 31일에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나치당이 37.2%의 득표율을 획득하며 독일 의회에서 제1당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후 1932년 11월 6일 치러진 선거에서 지지율은 다시 33.1%로 하락했다.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임명되어 전 독일을 지배하던 1933년 3월 6일에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지지율은 상당히 올랐지만 아직은 미흡한 43.9%에 그쳤다. 나치 돌격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독일인 2명 중 1명 이상이 나치당에게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은 1921년 5월 15일에 참가한 자유 의회 선거에서 535석 중 불과 35석을 얻는데 그쳤다."  <본문 225쪽>

데틀레프 포이케르트는 "나치시대의 일상사"를 통해 히틀러의 제3제국이 정치적 권력 장악 이후 문화적 헤게모니까지 장악해 대중의 일상까지 모두 손아귀에 넣기 위해 얼마나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보여준다. 히틀러의 계획은 노동계급의 일상까지 파괴하고 있으나 동시에 히틀러와 나치의 문화정책의 의도가 대중의 교묘한 저항에 부딪쳐 어떻게 변질되고 좌절되었는지도 잘 묘파해준다. 대중은 히틀러의 문화정책을 교묘하게 비틀었는데, 예를 들어 모든 히틀러 유겐트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상식과 달리 나치 이념을 전파하는 본래의 목적엔 전혀 관심없는 이들에 의해 장악되어 친교 집단으로 변질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히틀러 유겐트 조직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일종의 반항집단화된 하위집단)의 저항을 받아 유겐트 제복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비록 이런 반항이 나치 체제 자체를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진 못했지만, 최소한 나치 체제의 붕괴를 앞당기거나 대중이 무조건적인 동의를 보냈다는 편견은 시정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최근의 사태를 맞이해 다시 중요해지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의 연원에 대해 팩스턴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의미가 있을 듯 하다. 그는 1920년대 일본의 사례를 들어 일본의 파시즘은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이 철저하게 탄압당한 반면, 파시즘의 일부를 모방한 위로부터의 파시즘이 존재해왔음을 지적한다.

"제국주의 일본이 파시즘을 모방하였으며 파시즘의 특징을 여럿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일본식 파시즘은 단일 대중 정당이나 대중 운동이 없는 상태에서 통치자들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유럽식 파시즘의 영향을 받은 일본 지식인들을 무시하거나 억압했다. 마치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타도한 결과로 유럽에서 파시즘이 확립된 것과도 같았다." <본문 446-447쪽>

일본제국의 군국주의 정권은 비록 파시즘 특유의 대중 동원 기술을 사용했지만, 지도자들과 경쟁을 벌일 만한 자생적 대중 운동이 형성되지 못했기에(나는 아직까지도 일본에 있어 진정한 의미의 시민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에 이르는 시기까지 - 물론 전후 일본을 통치한 미국의 입장 때문에 철저한 전후 처리가 불가능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 일본의 정치질서는 비록 겉으로는 몇 차례 변동을 겪은 듯 보이지만 정치 권력 체계는 본질적으론 시민사회 혹은 대중사회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본다. 일본을 유럽의 파시즘과 본질적으로 다르게 만든 가장 큰 차이는 사상적으로 파시즘을 따른 것이기 보다 국가가 지원하는 대중 동원을 포함한 국가주의 군부 독재란 점이다. 즉, 유럽에서와 같이 명망있는 기존의 정치가들을 전복시킨 파시스트 세력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명망있는 기존 정치가들이 파시즘을 모방하였고, 그들이 전쟁을 치르고, 전쟁 이후 현재까지 일본에 현존하는 유일한 정치세력이란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의 정치 세력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주의 일본, 평화헌법의 일본에서 우경화로 나아가는 현재까지 마치 수백년을 이름을 바꿔가며 살아온 뱀파이어처럼 단 한 차례도 교체되지 않았다.

이제 우리 사회의 문제, 세계화가 진행된 현대 사회의 우리들에게 파시즘은 무엇이며,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팩스턴은 파시즘이 기존의 다른 정치 이념과 달리 강령이나 어떤 주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집단이기 보다는 권력 그 자체의 쟁취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이 내세웠던 강령 역시 시시때때로 변화시켜왔음을 지적한다. 그런 까닭에 파시즘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우며, 팩스턴이 내리는 파시즘의 정의가 비록 협소한 의미의 정의에 불과할지라도 결과적으로 파시즘적인 방식을 모방한 새로운 형태의 권위주의, 군부 독재, 급진화된 민족주의 정치 질서의 출현 자체를 긍정할 수는 없다. 팩스턴은 "파시즘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셔츠 색깔을 보거나 20세기 초 반체제적인 국가주의적 생디칼리스트들이 내세운 구호의 메아리를 찾아볼 것이 아니라, 과거에 파시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파시즘의 단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면 위기에 직면한 정치적 교착상황에서 나타나는 불길한 경고 표지를 더 많이 읽어낼 수 있다. 이 때는 위협을 느낀 보수세력이 적법절차와 법의 지배를 포기할 태세를 갖추고 더 강한 동맹 세력을 찾아 헤매며, 국가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선동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한다. 보수파들이 파시스트들의 정치적 테크닉을 빌리기 시작하고 파시스트들의 '결집된 열정'에 손을 내밀며 파시즘 추종 세력을 흡수하고자 할 때 파시스트들은 벌써 권력에 아주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본문 458-459쪽>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파시즘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긴 하지만, 다른 정치 세력과 결합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는 상태로 존재할 때, 기존의 정치 세력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동안엔 마치 휴면에 들어간 바이러스처럼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효용에 눈뜬 보수세력과 결합할 때, 파시즘은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된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바로 그 점이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주창하던 군부독재와 기묘한 동거를 자청했던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자들, 그들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 "파시즘"은 별다섯이 아깝지 않은 매우 좋은 책이고, 부피에 주눅들지만 않는다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 가운데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단 한 군데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앞서 어느 분이 지적하고 있듯 중간 몇 부분에 다소 어이없는 교정실수들이 보인다는 점은 옥의 티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180쪽 13번째 줄엔 "그러나 신당은 1931년 10월 선거에 단 하나의 의석도 없지 못했다."란 문장이 있는데, "얻지 못했다"가 맞을 것이다. 나중에 개정판이 나올 수 있을 만큼 이 책이 많이 팔리길 바란다. 써놓고 보니 어느새 200자 원고지 60매였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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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신의 존재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무교이지만 무신론자는 아니다. 신은 있다고 생각하며, 느낀적은 없지만 아마도 있을것이라고 믿고 있다. 다만 그 신의 형태가 예수나 하나님, 부처님, 알라 등등의 형태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신의 경지라 함은 인간의 사고체계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더구나 그 신의 형태가 너무도 인간과 닮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뭐 가끔은 소나 다른 형태의 신을 믿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땅을 떠나 본 적이없다. 다만 TV를 통해서 그리고 가 봤다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미국이, 일본이, 영국이, 아프카니스탄이 존재한다고 알고 있을 뿐이다. 이런 내가 우주를 봤을리는 만무하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있다고는 알고 있지만 나는 달에 가 본적도 없다. 그러한 나의 사고는 몹시 편협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 넓은 우주에서 마치 나만이 유일하게 존재하고 생각하는양 살고 있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이 넓은 우주에서 사고가 가능한 존재가 오직 인간이라면 그 얼마나 공간 낭비겠는가.

외계인도 있을 수 있고 신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없다. 단지 있다고 생각할 뿐 만난적도 없고 뭔가 신세를 지고픈 생각도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을 혹은 인류를 구원해주고 뭔가 해결해줄 존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을 만났을때 내가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왜 그들은 믿지 않는 나보다도 더 하나님과 예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냐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있으니까 믿는다'고. 하지만 무엇을 왜 믿을까? 과연 예수나 하나님이 뭔가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를테면 천당)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과 예수를 믿으며 따르고 사랑할까?

이 책은 내가 예전부터 늘 생각했던 문제들을 다시한번 짚어준다. 종교인들이 말하는 신이란 너무도 인간적이다. 그들은 질투를 하며 믿고 사랑하라고 하면서 대신 천당과 내세를 보장해준다. 이것은 암만 생각해도 너무나 인간적이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신이 그렇게 인간의 사고에서 이해할 만한 무언가는 아니라고 본다. 더구나 그 신이 바라는 것이 너무도 인간적인 것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이상하기 짝이 없다. 신이 그렇게 인간적이라면, 또는 인간의 차원에서 이해 가능한 무언가라면 우리가 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건 아닐까?

책은 성경에 적힌것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을 한다. 내가 기독교인들에게 들었던 성경의 해석은 너무나도 그 글자 그대로의 해석이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성경 조차도 신의 말씀인지 잘 모르겠다. 왜냐면 그 성경은 인간이 쓴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인간이 외국어로 쓴 것도 번역을 하면 그 뜻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신의 말을 사람이 옮겼을때 전혀 실수가 없었을까? 또한 성경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쓴 것을 모은것이고, 그 중에서도 누락된 것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질문을 했을때 기독교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성경은 사람이 썼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령이 임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실수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오랜 세월동안 베껴쓰고 또 베껴쓰면서 늘 성령이 임해서 단 한치의 실수도 없었을까? 아니 그보다 왜 신이 직접 쓴게 아닌 인간이 그걸 써야만 했을까? 모세의 십계명을 보자면 돌판에 신이 직접 쓰질 않았는가. 성경은 길어서 다 못썼다는 변명은 말도 안된다. 그렇다면 성경은 인간이 쓴 것이며 그 해석에 따라 혹은 원본 자체가 틀린것일수도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인들은 내 얘기를 들으면 언제나 사탄과 마귀 얘기를 했다. 나는 내가 사탄도 마귀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너무나 확고한 믿음 앞에서는 무서워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신이 말하는 기쁨과 신이 말하는 고통역시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라 신도 인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만큼 내게는 이상한 것이지만. 그들은 이미 눈을 닫고 귀를 막고 믿으므로 그 눈을 뜨고 귀를 열게 할 힘이 없었다.

어쩌면 기독교인들에게 이 책은 너무나 나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믿음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믿고 있는 형태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비판을 가한다. 다만 책은 예를 들때 조금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이게 누굴 바보로 보나?' 하는 마음을 가질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한번이라도 그들이 그들의 신앙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정말로 나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찾는 계기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고민과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기독교인들이 읽었을때는 상당히 기분이 나쁠수도 있겠지만. 신은 있다고 믿되 그 신의 형태도 모르겠고 바라는것도 없는 내 경우에는 흥미롭게 잘 읽었다.

끝으로 하나 묻고 싶은게 있는데 하나님은 맨날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왜 그렇게 질투가 많은걸까?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고 하고 다른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고, 그러면 바로 불지옥행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말하는 자비라는 것이 오직 자신과 그의 아들 예수를 믿어야만 발휘되는 조건부 자비라면 그게 정말로 자비이고 사랑일까? 설사 인간은 그런다 하더라도 신이 그렇다는 것은 너무 매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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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하늘연못 > 참된 기독신앙을 모색하는 원로 종교학자의 찬찬한 설명!
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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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선생님은 글을 알기쉽게 잘 쓰신다. 전에 [장자]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제 기독교 책을 읽는다. 제목이 꽤 도발적이지만 원래 영어제목이 더 와 닿는다.[No  Such Jesus : Reading Christiannity Inside Out]! 감히 번역을 해 본다면 [그런 예수는 없다 : 기독교 신앙을 속이 드러나도록 까뒤집어본다] 이다. 책의 그림 도안이 예수님이 거꾸로 되어있고 '기독교 뒤집어 읽기'라고 박혀있는 것은 좀 오해의 소지가 있다. 까 뒤집는다는 것은 거꾸로 매달고 비꼬고 한다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털어놓고 바닥부터 고민한다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내  생각에는 [Reading Christiannity  straight  from Jesus' Heart]=' 예수의 심정으로 기독교 신앙을 본다' 정도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이 맨 앞에서 적으셨듯이  '그런 예수는 없다'라는 뜻은 다음과 같다. 최근에 영국 BBS방송국에서는 실제 예수의 모습을 법의학적인 지식을 동원해서 복원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조금 당혹스럽게 되었다. 예수는 우리들 집에 걸려있는 푸른눈의 창백한 서양인이 아니라 곱슬머리의 못생기고 건강한 농사꾼 모습이었던 것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하면 예수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관성적으로 노르웨이 사람 같은 예수를 머리 속에 그려왔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림 뿐일까? 우리의 신앙 역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관성적인 신앙인거 아닐까 라고 질문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즉, 우리는 당연하게 우리 머리 속의 예수가 참으로 있다고 믿지만 '그런 예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 영혼 속에 스민 우상타파! 그런 비판적 신앙을 통한 기독교의 재발견, 새 만남이야 말로 우리의 참된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쓰라린 대목이 많은데, 특히 이런 대목은 가슴아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 이런 '근본적인 것들'을 사수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근본주의자들'이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주장이 기독교의 보편적 믿음 내용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런 근본주의적 입장은 주로 '미국에서 그리고 미국 선교사의 영향을 받은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만 서식하고 있을 뿐 서방 유럽 같은 데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런 근본주의자의 숫자가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전체 기독교인의 20 내지 40 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보고 있고, 한국에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90퍼센트 내지 95퍼센트 절대다수의 개신교 기독교인이 여기에 속한다 보아도 된다. "

물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네 신자들은 "그래, 이제 하나님의 참 뜻을 가장 잘 섬기는 나라가 우리야. 이제 타락한 미국이나 유럽의 영혼을 우리가 구해야 돼. 선교사를 파송해야겠어."라고 생각하신다는 걸 난 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야말로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에 딱 맞는 분들이 아닐까? 서양인들은 타락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다. 2000년의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역사적 실험과 실존적 결단을 기독교와 함께 했고 현재의 모습은 그런 고뇌에 찬 여정이 이루어놓은 결과인 것이다. 이 장면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180쪽에 그려진 유태인 대량학살 쇼아를 겪었던 엘리 위젤의 말을 들어보라고 외치고 싶다. 가슴을 쥐어뜯게 하는 그의 이야기는 유럽의 기독교 신앙이 왜 구태의연한 답습만으로 20세기를 버틸수 없었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말씀드리겠다. 사람이 사춘기를 겪고 성년이 되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 한 오줌 똥은 가린다. 다시 퇴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기독교인은 우리만 멀쩡하고 서양인들이 모두 치매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오줌 똥을 못가리는 것은 우리 기독교 신앙일 수도 있는 것이다.

20년전쯤 우연히 읽게 된 지그 지글러의 책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느날 지그는 아내가 쏘세지 덩어리의 양쪽 끝을 잘라서 버리고 중간만 요리에 쓴다는 걸 알게 된다. "여보, 우리 어머니는 다 쓰는데 당신은 왠일이오?" 그의 아내가 "사실 전 잘 몰라요.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요리하시고 저도 따라 하는 거예요." 지그는 그의 장모님께 그걸 묻게 되는데, 백발의 장모는 호호 웃으시면서 글쎄 이랬다는 거다. " 그땐 냄비가 적어서 쏘세지를 한꺼번에 요리 할 수가 없었네. 끄트머리를 내가 버렸다고? 아니라네.잘라낸 끄트머리도 따로 담아놨다가 다 썼다네." 어쩌면 오강남 선생님이 누누이 호소하시는 말씀이 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무의미한 오래된 신앙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는 거다. 왜 이 개명한 21세기에도 기원전의 부족신관으로 사느냐는 거다.

이 책은 무척 다양한 신학적 논쟁을 알기쉽게 찬찬히 설명한 책이다. 그런데 솔직히 요약하기 버거움을 느낀다. 책 자체가 '이렇다 저렇다'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이런 이유때문이다.'가 중요시 되기때문이다.  성서에 바탕을 둔 찬찬한 논리전개가 아니고서야 또 다시 끝없는 감정싸움, 다람쥐 쳇바퀴도는 신앙논쟁 밖에 더 되지도 않을 것이다. 경우 자기와 다른 사람은 사탄이요 불신자로 모는 근본주의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이 책은 [예수는 신화다] 꼴로 스러지고 말것이다.  그래서 오강남 선생님은 그야말로 악전고투하신다.  정말 상식에 호소하고 보편적인 논리에 호소하신다.

그럼, 난 137쪽의 [잔인하신 하나님-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인용하여 여러분께 오강남 선생님의 빼어난 글쓰기와 진정어린 고민을 전하려 한다. 다음은 책 그대로 옮긴 것이다. 약간의 팁을 드린다면, 우리가 성경을 읽을때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교리와는 달리 무척 호전적이고 잔인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이런 잔인한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을, 성서의 [출애굽기]의 사건을 통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찬찬히 설명하는 대목이다. 이걸 본다면 오강남 선생님이 기독교를 무너뜨리는 분이 아니라, 현재 느끼는 모순을 솔직히 인정하고 참의미를 찾아보려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강남 선생님이 추구하는 기독교를 뒤집어본다는 의미라고 본다. 즉, 도대체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모순이 던져주는 실존적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럼 책 속으로 뛰어 들어가 보자.  

이렇게 모세의 지도 아래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풀려난 이스라엘 백성은 일주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거리를 두고 시내 광야에서 40년간 헤매다가 드디어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가게 된다. 이 정복 과정에서 이 땅은 젖과 꿀이 아니라 피가 넘쳐흐르는땅이 된다.

정복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용기를 주신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셨다.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다. 요단강 너머 여리고 성이 정복의 첫 대상이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여리고 성을 돌아 그 성을 무너뜨렸다는 이야기는 전에 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였다는 사실이다. 성안에 있는 생명이란 생명은 모조리 죽여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바치고 결국은 그 성마저도 불태워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음은 아이 성을 칠 차례였다. 여리고 성을 치고난 후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음에도, 아간이라는 자가 외투 한 벌과 얼마간의 은과 금을 착복햇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이스라엘 군대는 아이성에서 참패를 당한다. 특별한 방법으로 아간을 찾아내서 아간은 물론 "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다.

이제 화가 풀린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아이 성을 치는 데 필요한 전략을 일러준다. 이스라엘 군대 중 일부는 성 뒤에 매복하고 일부는 성 앞으로 가서 아이 성 사람을 성밖으로 유인해 낸 후 성 뒤에 숨었던 군대가 진입해서 불을 지른 다음 양면공격하라는 것이었다. 작전이 성공해서 성 밖으로 나왔던 아이 성 사람을 모두 전멸시키고, 다시 성으로 들어가 성에 있던 사람까지 완전히 지멸시키니 그 날에 죽은 사람이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고 했다.

......(한단락 생략)

도대체 이보다 더 잔인한 전쟁사가 어디에 또 있겠는가? 인간이 하는 전쟁이라면 그래도 이해를 하겟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직접 진두지휘하셨다는 사실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현대전에서처럼 폭탄이나 총에 맞을 경우 금방 죽어버리지만, 이와는 달리 창이나 칼에 찔려 죽은 사람은 며칠씩 고통 속을 헤매다가 죽게 마련이다. 이스라엘이 이기기만 하면 이런 참혹한 꼴을 보고도 좋아하신 하나님이라니 이런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신가?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욕하고 깍아 내리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아주 아주 중요한 사실에 눈떠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찾아내려 한다면, 이렇게 한 민족만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맹목적으로 맹활약하시는 잔인하고 옹졸한 하나님 이상 무엇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이야기는 하나님 자신이 어떠함을 말해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간단락 생략,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인데 생략하는게 안타깝다. 생략의 이유는 인간적으로 베끼는 게 너무 피곤해서이다.이해해 주시길!)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다시 한번 강조한다. 히브리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스스로 하신 일을 직접 일기처럼 적어놓으셨다가 나중 선지자에게 불러주시고 그것을 받아적도록 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의 역사를 이해할 때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자기를을 도왔다고 믿은 바를 적어 놓은 신앙고백 기록이다. 한 마디로 이 이야기에 나타난 하나님은 이스라엘 부족이 가지고 있던 신관, 그 신관에 비친 하나님일 뿐이다.

몇 천년전 당시 부족사회에서는 어느 부족이든 그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런 신을 모시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신을 모신 것이 아니라 신을 이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은 무엇보다 전쟁에 능한 신, "만군의 주", 전투 사령관 이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신이 자기들 편이라 생각하고 그 신에게서 용기와 확신을 얻4고 거기에 힘입어 이웃 부족을 무찌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신은 자기들이 미워하는 나라는 무조건 다 미워하는 신이어야 한다. 이렇게 신이 자기들만의 신이라고 보는 신관을 "부족신"의 신관이라 한다.

우리가 지금 몇 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있던 이런 부족신관을 그대로 채받아 거기에 목줄을 매고 살 필요가 있겠는가? 인류 전체를 상대로 보편적 사랑이나 정의하고는 사돈의 팔촌도 안되는 이런 신을 받들며 살 필요가 어디 있는가? 지구를 판판한 것으로 보던 그들의 생각을 우리가 받아들일 필요가 없듯, 신을 이렇게 자기들만의 신으로 보던 그들의 부족신관도 우리로서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을 모시려면 이런 부족신관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신관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유대인 자체 내에서마저 바빌론 포로와 함께 의미 없는 신관으로 취급되어 대부분 방기된 신관이다. 제 2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에서는 이런 한 민족만을 위한 전투적이고 무자비한 신은 사라지고 만국을 통치하는 보편 신의 생각이 등장한다. 이런 하나님은 '무찌르자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인간과 함께 고통을 당하는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미리 말하자면, 예수님은 이런 부족신관을 거부하고 자비의 하나님을 가르치신 분이다. 이런 부족신으로서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 죽었어야 한다. 만에 하나 기독교에 이런 부족신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부족신의 망령이다. (이상137-142쪽, 잘못된 신관은 무신론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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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국가안보를 위해 미국이 정말 필요한 까닭은...

미군의 새로운 유연화 전략, 기동군 전략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그네들 입장에선 매우 복고적인 군사전략이란 생각이 드네요. 나중에 짬 좀 나게 되면 미군의 신복고 군사전략에 대해 긴 글 쓸 일이 있으면, 없다면 더욱 좋겠지만...

현재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군사기지가 들어가 있지 않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냉전 종식 이후엔 그 이전 사회주의 블록 국가들이었던 곳까지 잠식해 들어가 사실상 전세계에 미군기지가 배치되어 있고, 미군이 배치된 곳들은 이유야 어쨌든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했을 때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We are the World."라고 노래하는 것이 레토릭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진실인 셈이지요. 냉전종식 이후 마땅한 주적을 찾아내지 못해 안달하던 군사국가 미국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미군기지는 전지구상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 자체 보고에 따르면 전세계 130여개국에 700여 개의 해외기지, 미국내에 만도 6,000여 개의 기지를 두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이 전세계에 소유하고 있는 기지는 3천만 에이커로, 1에이커는 대략 1천2백20평이라니까 한 번 계산해보시면 미국이 아니라 미군 기지만으로도 웬만한 국가 하나 보다 큰 셈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미군은 그 땅에 모두 85만여 개의 시설을 관리하고 있지요. 어째서 미국을 제국, 그것도 군사제국이라고 부르는지 한 마디로 입증해주는 내용입니다.

그런 군기지에 25만여 명의 해외 주둔군과 이들을 지원해주는 군속과 민간인, 현지 고용인들을 포함해서 다시 25만여 명이 있고, 현지 고용인이 4만 5천여 명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군사 기지 이외에도 4만 5천여 개의 각종 시설을 해외기지에서 운영하고 있지요. 또 이외에도 국방백서에 수록되지 않는 임시 기지를 잊어선 안 됩니다. 실제로도 얼마전 독일 내에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었던 임시기지에서는 포로 학대 및 테러용의자에 대한 납치 및 잔학행위가 벌어져 인권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종종 미국은 로마 제국에 비견하고는 했는데... 새롭게 바뀌는 미국의 군사전략, 기동군 전략을 살펴보면서는 그 생각을 약간 수정해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로마제국이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가도를 건설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강대한 제국이라도,
그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아무리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군사력을 유지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평소에는 제국의 행정망으로 기능하는 가도를 통해 유사시에는 대규모 신속기동군(지원군)을 투입해야 하겠죠. 또 한 가지 사례로 비스마르크 시절, 독일군이 순식간에 프랑스를 유린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는 독일군이 철도를 이용해 신속하게 기동하여 프랑스군을 집중타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 것은 잘 알려져 있지요.

신속한 전개, 기동에 뒤이은 집중타격은 어제 오늘의 군사전략이 아니라 역사 이래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온 군사 전략이기도 합니다. 제가 앞서 미군의 이 군사전략이 복고적이라고 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기도 합니다만, 최근 평택 미군 기지 확장 이전 계획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장면이 있어섭니다.

존 웨인 같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서부극들을 보면 쫓기던 인디언들이 결집해서 서부의 기병대 기지를 급습하는 장면이 나오고 뒤이어 이런 위기 상황을 본부에 알리러 가는 기병대 전령이 나오죠. 그러면 얼마 뒤에는 미군 기병대가 나팔 소리 드높이 울리면서 떼로 몰려옵니다. 그러면 이번엔 전세가 바뀌면서 인디언들은 모두 전멸하고 맙니다. 그리고 미군 기병대의 요새(port)들은 버팔로 떼와 인디언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삶의 방식 또한 멸망시키고, 이곳에 미국의 문명을 새롭게 널리 퍼뜨립니다. 원주민들이었던 인디언들은 요새 기지 PX에서 흘러나온 미국이 전해준 술에 취하고, 문명에 취해 그네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저급한 인종 취급을 받으며 삼류 민족으로 전락해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인천국제공항을 동아시아의 허브 공항으로 키우고자 하는 것은 인천국제공항으로 전세계 항공 승객과 화물을 집하시켰다가 다시 재배치해서 떠나는 것처럼, 사실상 평택 기지가 미군의 아시아 전초기지이자 아시아 군사전략의 허브기지로 키우고자 한다는 것은 미군이 평택 기지를 통해 미군을 재배치하고, 군수물자들을 분산 배치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죠(음,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평소 2만 5천명도 안 되는 미군기지를 한국의 34개(36개던가)에 공허하게 분산배치 해두면서 비용이나 까먹고 있느니 평택 한 군데로 모아서 효율적으로 관리하다(어떤 분이 수도 서울 한 복판에 외국군 주둔 기지 있는 것보다는 평택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이 낫지 않냐고 하던데,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용산을 떠나 평택으로 가는 것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생각해서가 아니란 건 잊으셨더군요.)가 유사시에는 전세계 곳곳에 있는 미군 기지로 자유롭게 보내는 기병대처럼 활용하겠단 말입니다.

평택 기지를 확장하는 이유는 한반도 혹은 아시아를 차세대 전장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고, 평소에는 텅텅 비어있을 이 기지는 앞으로 유사시에 미 본토에 날아와 기동할 미군을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그런데 참으로 슬픈 이유는 전세계 어디에도 이제 미국의 배후를 노릴 인디언이 없다는 거죠. 제발, 미국이 새로운 인디언들, 전멸시켜야 할 새로운 적들을 어디에서도 찾지 못해야 할 터인데, 대개의 깡패들이 그렇듯 눈길 한 번 잘못 줬다간 순식간에 이라크 꼴이 날 터이니, 어쩌면 우리의 국가안보를 염려하는 분들이 국가안보의 대상으로서 진정 염려하는 대상이 그네들이 입에 달고 있는 것처럼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분들조차 북한을 이제 우리를 위협할 만한 적이 아니라고 본다는 겁니다.)가 아니라 실제로는 우리의 굳건한 동맹인 미국, 바로 그들이란 사실을 간파하고 계시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저도 차라리 이해는 됩니다. 이참에 우리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사실, 국가안보를 위해 미국이 정말 필요한 까닭은 미국이 우리 친구라, 미국이 우리 동맹으로 우리를 지켜주지 않을까봐서가 아니라 미국이 혹시 우리를 적으로 생각할까봐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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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대추리의 평화를 궁금해하는 결이에게...

공개되길 원치 않을 수도 있었는데 바람구두 아저씨가 임의로 공개해버려서 미안하단 말을 먼저 합니다. 이미 자신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의문 어쩌면 이미 판에 박힌 결론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의 시선과 달리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그대의 질문이 주는 함의가 크다는 생각을 했고, 그 문제를 우리 모두가 공유해보자는 뜻에서 공개한 것이니 너무 나무라지 말길 바랍니다. 일단 망명지를 통해 나름의 고민들이 해결되었다니 고마운 일입니다.

요즘 학교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군요. 제가 학교 다닐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고, 그런 점에서 참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 중후반엔 학교에서 현재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현안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들키는 것만으로도 학생부실에 끌려가서 한바탕 소란을 벌여야 했습니다. 독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이죠.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뜻을 결집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로 나아가는 일, 그 첫 출발점은 늘 사람들이 모여서 지혜를 모으는 일로부터 시작되니까요. 그래서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집회 ․ 결사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고,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유신헌법은 이런 자유를 부정했습니다. 이른바 긴급조치라는 초헌법적인 조치를 통해서 거리 혹은 학교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법으로 처벌했던 시대지요.

사실 그대의 질문에 답하는 일은 저로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평택 미군 기지를 확장 이전하겠다는 계획은 한반도를 미국의 전쟁기지로 만들겠다는 것인 데 그러면 왜 우리 군은(군이 제일 먼저 반대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미군 기지화 작업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질문에 제 나름의 의견을 말해보겠습니다.

국가란 절대적인 존재인가?

그대의 질문은 참으로 올바른 상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상식적이라는 것은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교육받고 대중매체를 통해 익숙하게 접해온 수준이란 뜻이며, 그보다 좀더 역사적이고,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거기엔 몇 가지 전제가 있는데, 우선 군의 목적, 존재 이유에 대해 우리 군의 국방목표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며, 지역의 안정과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라 합니다. 또한 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그 본연의 임무라고들 하지요.

군대(military power)가 존재하는 이유에서 보면 알 수 있듯 군대가 다른 폭력집단(예를 들어 산적이나 해적, 용병 등)과 다른 것은 국가에 속해있다는 점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먼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아야 할 겁니다. 역사적으로 보아 한반도에 우리 민족이 정착한 선사시대 이래 이 땅에는 수많은 국가 체제들이 만들어졌고, 소멸되었습니다. 고조선으로부터 구한말의 조선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즉, 국가란 제도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부족 국가 체제 이후에 비로소 등장한 것이고, 한반도에서 근대국가체제가 시작된 것은 아무리 길게 잡아 갑오개혁(甲午改革, 1894년)으로 보아도 110여년이 약간 지났을 뿐입니다. 이전까지 존재했던 국가 체제는 민주공화정이 아니었고, 전제 왕정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국가체제에 존재했던 군대는 국민에 충성하는 집단이 아니라 전제군주(왕)에게 충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얼마 전 했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는 이런 대목들이 비교적 잘 드러난 것 같더군요.

지금으로부터 1,600여 년 전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의를 빼버리고 크게 보면, 왕국이 범죄집단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범죄집단도 조그만 왕국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범죄 집단은, 한 지도자의 지휘 아래에서, 협약에 따라 약탈품을 나눠 가지는 결사체에 의해 묶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만약 이 악행집단이 부도덕한 무리들로부터 많은 지원자를 획득하여 영토를 획득한 후 거점을 구축하고, 도시들을 탈취하여 사람들을 복속시킨다면, 그 집단은 공개적으로 그 자신을 왕국이라고 사칭하고, 침략의 비난이 아니고 정당성을 획득하여 그 왕국은 세계적으로 인정된다. 알렉산더 대왕에게 사로잡힌 해적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한 재치있고, 사려깊은 대답을 보자. 왕이 그에게 자신에게 대항할 때의 네 생각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해적이 대답하기를 '세상을 정복할 때의 당신의 생각과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그마한 배로 그것을 하기 때문에 해적이라 불리고, 당신은 강력한 해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복자라고 불립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가와 해적 집단 사이에는 규모의 차이를 제외하고 도덕적인 차이는 없었습니다. 두 집단은 모두 성공을 위해 내적 조화와 조직에 의존하고, 다른 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취하고 파괴하는 그들의 능력에 의해 성공여부를 평가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안식처를 ‘인간의 도시’나 ‘땅 위의 도시’(즉, 국가)에서 찾지 말고 신의 도시, 즉 우주적이고 초월적 가치의 국가에서 찾으라고 조언(신국론[神國論, De civitate Dei])하였습니다. 그는 이에 덧붙여 “그러나 당분간 우리는 양쪽의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면서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삶과 역사에서 국가와 전쟁, 그리고 부당함의 회색빛 그늘 속에서 순수성을 위해 투쟁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가 시간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신의 도시를 알기는 하되 ‘때’가 되기 전에 마치 우리가 완전히 그 도시의 시민인양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국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흔히 국가이성(國家理性, reason of state)이란 말로 설명하곤 합니다. 국가는 국가의 생존 강화라는 목적을 위해서 국가권력이 법이나 도덕·종교보다도 우위에 서야 한다는 것이고, 국가는 이와 같은 권력을 유지하는데 국가이성은 이런 권력을 추구하는 것에 있어 높은 목적 합리성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또한 국가는 그 존재 이유를 국가 자체 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말이 조금 어려울 겁니다.

조금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SF영화에 간혹 등장하는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지닌 슈퍼컴퓨터가 있습니다. 대개 그런 컴퓨터는 마치 로봇처럼 나름의 규칙 - Three Laws of Robotics,  1. 로봇은 인간을 해쳐서는 안 되고, 게으름을 피워 인간이 해를 입도록 해서도 안 된다. 2. 로봇은 인간이 내리는 명령이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 로봇은 첫 번째 법칙과 두 번째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 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면 간혹 슈퍼컴퓨터가 작동 오류를 일으키거나 너무 위험해서 사람들이 컴퓨터의 작동을 중지시키려고 하는데 이런 행동을 자신을 제거하려는 것으로 판단해서 도리어 인간을 공격하는 겁니다. 국가의 목적 합리적 행위란 것은 국가의 생존강화를 목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경우에 따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 할 수 있는 도덕적, 궁극적, 또는 최선의 목적을 수정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목적 합리적 행위, 목적 합리성은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순수에 몰입하게 되는 위험에 제동을 거는 현실적인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면에 이런 목적 합리성이 타락하게 되면, 애초에 국가가 만들어진 그 목적 자체보다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 도구, 기술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기술합리성 또는 도구적 합리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흔한 사례로 나치 독일 치하에서의 경찰이나 군대, 법률 등(알튀세르 같은 이는 이를 ‘억압적 국가장치 RSA’라고 말합니다.)는 국민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효율적인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 한 인간을, 가족과 형제를 단지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가스실로 보내면서도 이것이 국가의 명령, 상부의 명령이므로 자발적으로 복종하며 충실히 따랐습니다. 어째서 그런 일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현대 국가 체제에서 국민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은 흔히 공무원이라고 하는 관료들에게 있습니다. 국가공무원, 경찰공무원, 직업군인, 교육공무원, 행정 관료들이 그들이죠. 현대의 권력은 왕의 선언이나 의회에서의 토론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는 행정이란 이름을 빌어 집행되고, 행사됩니다. 이번 평택 대추리에서 행해진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진압도 겉으로는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을 빌어 진행되었습니다.

이렇듯 관료제는 군사 영역과 시민 영역에 있어서도 변함없이 적용됩니다. 베버(M. Weber)에 따르면 현대의 고위 관리들조차도 ‘관직'을 위해 투쟁한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출세와 승진이겠지요. 관료제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안정적인 행정서비스, 예측 가능한 정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인데, 관료제란 이런 점에서 매우 확실한 파트너 역할을 합니다. 관료는 즉 공식적인 채용(공채), 전문 훈련과 분업, 고정된 관할 영역, 문서에 의한 절차와 서열에 따른 하위직과 상급직에 따른 업무의 분할 등으로 매우 효율적인 행정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인간미(양심에 따른 판단을 비롯해 인간적인 융통성 등)을 결여하게 됩니다. 이렇게 채용된 관리들이 우리의 모든 일상적 욕구와 문제를 결정합니다. 이와 같은 점에서 시민적인 행정 관리와 군의 명령권자인 장교는 두 부류 모두 관료주의적인 집단이란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치 독일의 경찰, 군대, 법률은 인간적인 양심과 판단을 대신해 관료로서 명령에 충실하였을 뿐이라고 변명합니다. 이는 단순히 관료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화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조밀하게 통제하고 있는 관료적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1980년 광주에서 민간인들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감행했던 것을 비판받아 왔던 우리 군대가 또다시 평택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미 지난 80년대 때부터 얼마 전 농민 2명의 죽음을 불러왔던 폭력진압 문제에 대해 반성한다고 하면서도 경찰이 또다시 그런 시위진압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민주국가의 헤게모니 추출도구,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국가는 단순히 이런 억압적 국가장치들만을 통해서 국민을 통치하지는 않습니다. 알튀세르는 억압적 국가장치와 달리 국민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국가(혹은 지배계급)가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로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SA)를 활용한다고 말합니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사회적 제도들을 말하는데 우리가 대중문화라고 부르는 언론, 영화, TV, 광고를 비롯해서 학교, 교회 혹은 그 밖에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접하게 되는 각종 소규모 단체를 비롯해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국가(혹은 지배계급)은 국가의 존재 자체를 위해 상징조작, 매스컴에 의한 대중조작, 선전이나 홍보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하여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에 맞는 선택을 하기 보다는 국가(혹은 지배계급)이 원하는 방향으로 따르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앞서 저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독재체제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함께 지혜를 모으지 못하도록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독재체제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좀더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신에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좀더 복잡하지만 더욱 효과적인 방식을 동원합니다. 바로 그것은 이번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이전문제와 같은 사안에서 잘 드러나는 것이지요. 왜 독도 문제는 많은 친구들이 알고 있지만, 평택 문제에 대해서는 친구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같은 나라의 한 지역에서 3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연행되어 가는 심각한 사건,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안보 문제와도 직결된다고 하는 사건에 대해서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은 이런 문제를 잘 보이는 메인 화면에 배치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지 않는 걸까요? 대추리에 군 병력이 투입되었을 무렵인 5월 5일 어린이날 공중쇼를 보이다가 추락해 사망한 공군 조종사 이야기를(물론 저는 이 분의 숭고한 희생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메인 화면에 넣고, 마지막까지 조종간을 놓치 않았음을, 어린 아들이 헌화하고,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은 보여주면서도 군이 연로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힘들게 지은 대추리 분교에 진입해 강제 진압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의 지배계급이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과 그렇게 하고 싶지 않는 것이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악인 국가와 시민의 계약

앞서 국가와 국가이성이란 다소 어려운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아마 학교에서 국가의 3요소란 것에 대해 배웠을 겁니다. 근대국가는 국민, 영토, 주권 중 어느 하나만 빠지더라도 성립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 많은 이들이 종종 망각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이 셋 중 어느 하나만 빠져도 국가가 존립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현대국가체제에서 국가(혹은 군대)가 충성(忠誠)을 바치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국민입니다. 어째서 국민인가? 그 이유는 민주공화국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앞서 한반도에 명멸했던 여러 국가들에 대해 말했는데 전제왕정 국가에서의 권력은 모두 왕에게 있었기 때문에 군대는 당연히 왕에게 충성해야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말하는 충성이란 국가가 아닌 국민에 대한 충성이고, 국민은 각각의 시민권을 지닌 개인에 의해 구성됩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사회계약론(로크, 흡스, 루소 등)’이라고 합니다. 사회계약론이란 기본적으로 서구의 자유주의에서 온 말로 전제왕정에 저항하는 시민(부르주아지)들은 천부인권(天賦人權)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지만 인간 개개인의 자유를 좀더 합리적으로 누리기 위해(시민의 최소한의 안전과 자유를 위해 필요한 존재로서) 국가라는 개인의 자유와는 상반된 존재를 필요악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즉, 시민들 개개인은 모두 자신의 권리를 국가에 위탁하고, 복종하는 대신 국가는 시민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켜준다는 내용의 계약이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원론적인 것으로 들어갔습니다만, 이 대목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국가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며, 우리들 개개인은 역사 이래로 투쟁해 획득한 시민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와 대립하고, 타협한다는 것, 그러나 국가(와 지배계급)는 이런 시민들을 좀더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억압적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민 만들기와 한국전쟁

어째서 국가(군대)는 평택 대추리의 할아버지, 할머니(국민)들이 원하는 것과 다른 조치를 취하며, 군대를 동원해 강제 집행하는 걸까요? 그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잘 아다 시피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를 통해 국가 주권을 빼앗긴 우리 민족이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회복한 국권을 통해 수립한 국가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전 새롭게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 선택해서 구입한 물건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군다나 자신이 선택한 학교가 아니라 추첨방식에 의해 어느 학교 소속 학생이 되었기 때문에 그 학교에 대해 처음부터 정을 가지고 있기는 어렵습니다. 처음 입학한 학교는 여러 가지로 낯설고, 자신이 아직 그 고등학교의 학생이란 사실이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반 배정을 받고,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들과 소풍과 수학여행도 가고, 또 우리 학교 출신의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어려운 일을 해나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새로 입학한 학교의 학생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과정을 거쳐 XX고등학교, @@고등학교 출신이란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란 신생고등학교의 국민이 된 당시 우리 웃어른들도 아마 그런 심정이었을 겁니다. 이제 막 생긴 학교의 신입생들은 스스로가 원하는 학교의 기풍과 전통을 만들기 위해 저마다 많은 의견을 내고, 그렇기 때문에 학교 내 분위기는 매우 시끌벅적하겠지요. 해방 직후 대한민국의 분위기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잘 알다시피 한반도는 소련과 미국이란 다른 체제를 가진 두 세력에 의해 각기 다른 체제를 가진 국가가 세워집니다. 남한은 미국이란 체제를 본받고, 미국의 이해에 따라 세워진 국가체제이고, 북한은 소련이란 체제를 본받고, 소련의 이해에 따라 세워진 국가체제입니다. 국가체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없었던 것이죠. 해방 직후 대한민국 국가 수립기에 있었던 여러 혼란들의 원인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해방된 나라의 국가체제를 결정하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지 않았던 것, 남북한이 하나의 정부를 수립하지 못하고, 분단된 국가체제를 만들게 되는 것에 대한 민족적 저항이 제주4.3, 여순사건 등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이란 고등학교(국가)는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국민)들을 처벌하여 퇴학(처형)시키거나 정학(수감)을 주거나 반성문(전향)을 쓰게 하거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말을 하는 모범생(서북청년단 등)들을 동원해 은근히 겁을 주거나(실제로는 이보다 더한 일들을 저질렀지요) 학교에서 강제로 떠나게 했습니다(단독정부 수립 움직임[분단]이 본격화되면서 남과 북에서 서로 수많은 사람들이 월북하거나 월남하게 됩니다). 앞서 어느 학교의 학생으로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선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만, 국가도 이와 흡사한 과정을 거쳐 국민으로서의 소속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을 학자들은 ‘국민만들기(Nation Building)’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행해진 국민만들기 과정은 매우 혹독했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몫을 한 것은 남한 체제와 북한 체제가 정면 무력 승부로 나섰던 한국 전쟁이었습니다.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와 피난사회

서구의 정치사상가 중 어떤 이는 “국가는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전쟁이란 혹독한 과정을 통해 국가는 국민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국민국가라는 체제가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는 겁니다. 한국전쟁은 남북한 양국의 지배집단으로 하여금 국가형성(state-building)과 국민형성(nation-building)과 국가 정당성을 창출하는 근거로 이용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전쟁 기간 중 한국인(남북한)들이 보여준 태도는 생존을 최우선으로 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이제 막 생긴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스스로의 학교에 대해 강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흡사한 심정이었을 텐데, 거기에 양쪽 체제 가운데 어느 하나가 아니면 죽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은 인간으로 당연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남한 정부는 국민을 버리고 자신들만 한강 이남으로 도망간 상황이었지요. 전쟁 당시 남한 정부는 온전한 ‘국민국가’, ‘주권국가’의 지위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고, 국가는 국민을 책임지지 않았(못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들은 인민군이 들어왔을 때는 인민군에게, 국군이 들어왔을 때는 국군에게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전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일종의 ‘건국신화’가 되었고, 국민들 내면에 국가의 정당성을 부여해주거나 혹은 이를 거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웃어른들은 전쟁이란 극한상황에서 남과 북 어느 한쪽을 택해야했고, 이 과정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피난(Exodus)’은 한국전쟁의 거의 모든 시기를 통해 남북한의 평범한 사람들이 선택을 강요받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런 피난은 북한에 의한 ‘인민의 지배’를 긍정하는 것도, 남한에 의한 ‘자유민주주의’의 지배를 긍정한 결과이기 보다는 당장의 이익 추구와 목숨 보존에 치중한 경향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한국전쟁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경험한 극적인 체험은 현재까지도 살아남아서 자신의 안위와 일신의 보존만을 추구하는 경향, 즉 피난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떨어야 했던 극성스러움과 극악스러움이 온존해 있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마치 여름 한 철 피서지에 놀러갔을 때, 앞으로 계속해서 얼굴 볼 사람들이 아니니 자신의 자리보존과 이해를 위해 타인의 불편이나 공중도덕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분위기의 좀더 극적인 버전이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온 셈이란 겁니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의 병폐와 사회적 속성은 여전히 피난사회, 피난지에서 일신의 안위와 보존만을 따지는 것과 일치합니다.

전쟁 수행 과정에서 “국가 안보는 가장 중요한 국가 목표가 되고, 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국가라는 공동체 유지와 보존의 목적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 조직은 군대 조직과 같이 되고, 국민은 군인이 되고, 국가의 법은 군대에서 통용되는 명령”과 동일시되어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게 됩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남북한 양측의 점령 정책은 이와 같이 군사적 목적에 종속되었고, 국가의 모든 통치 행위는 곧 전투행위로 간주되어 각료회의나 민주적 대의 기구의 심의와 논의 없이 시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 양 국가 모두에서 국가는 신(神)과 같은 절대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적’과 ‘나’의 이분법을 강요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특정한 정치 이념, 즉 이데올로기를 견지하도록 강요하고 사람들을 그러한 이데올로기에 따라 구분한 다음 자신의 편에 선 사람은 용서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적으로 취급한다. <김동춘, 전쟁과 사회, 본문 193쪽>

이렇듯 “과도하게 정치화된 전쟁 상황에서 국가의 신격화, 신앙 대상화 현상”은 국가의 통치 이데올로기(반공주의 혹은 사회주의)가 하나의 신앙처럼 되며, 국민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들 “국가가 표방하는 정치의 신도”가 되어야 했습니다. 근대 유럽의 종교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에서도 이단의 결과는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을 거친 후 미국의 체제를 본받고, 미국에 의해 탄생했고, 미국에 의해 보전된 남한에는 국가와 이승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세력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가 토대를 튼튼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국가의 통치자들이 되었습니다. 또한 현재까지 지속되는 분단 상황에서 북한의 호전성은 남한 정권을, 남한의 호전성은 북한 정권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이들은 서로를 적대시하지만, 서로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서로 상대방이 필요한 공범자들, “적대적 공범자들”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남긴 국민적 집단히스테리

다시 앞서의 이야기들과 함께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국가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며, 우리들 개개인은 역사 이래로 투쟁해 획득한 시민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와 대립하고, 타협한다는 것, 그러나 국가(와 지배계급)는 이런 시민들을 좀더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억압적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란 국가와 정부는 국가 형성 과정, 정부 수립 과정부터 미국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국민의 의지보다는 미국의 의사, 미국의 이해관계에 더 무게를 두어왔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국가의 의미는 신과 같은 위치까지 올라가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국가안보와 국가가 표방하는 정치적 판단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주장하는 사람은 마치 종교재판의 이단자인양 비판되고 처벌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내면화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모든 악은 단 한 마디 ‘빨갱이’로 규정됩니다. 아마 지금도 수많은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평택 대추리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마치 우리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출현한 게릴라라도 되는 양 처단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남긴 정신병리학적인 집단 히스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양측 모두 차분하고 이성적인 접근은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런 역사적 결과가 현재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확장반대 혹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주민들(그들도 분명히 국가가 보호해줘야 할 국민임에도 불구하고)을 군 병력을 동원해 강제로 몰아내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또 한 가지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한이란 국가체제를 지켜준(당시 소련과 경쟁하는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도 한) 미국의 이해를 남한의 이해와 동일하게 판단하고, 미국의 사고, 이해, 입장을 내면화한(자신의 입장과 동일한 입장인 양 생각하는, 또 실제로 자신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기도 하는) 지배세력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미국의 무력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대한민국의 영토에 그들이 이번엔 소련이 아닌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좀더 공격적인 군사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재배치하는 일조차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런 문제는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정당성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책임져야 한다는 당연한 역할, 또한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을 수호한다는 측면에서도 당연히 국민의 의견을 묻고 반영해야 하는데 그런 적법한 절차들을 무시하고 진행되었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의 실상에 대하여

평택기지 이전문제를 요약해보자면, 현재 전국적으로 분포되어있는 기존의 미군기지들을 통·폐합해서 현재 166만평에 달하는 평택기지를 450만평으로 확장하고, 춘천의 캠프페이지를 비롯한 전국의 미 2사단 소속 미군기지를 평택 한곳으로 모은다는 계획입니다. 정부는  오는 2008년까지 총 16개 기지를 환수하고 춘천 캠프페이지 등 3개 기지의 병력과 시설을 분산 배치해 모두 7,000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둔다는 입장인 거죠. 이와 관련해서 정부는 지난 4월부터 시행한 평택지원특별법에 따라서 평택기지조성비용을 전국에 분포한 미군기지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충당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주한 미군이 한반도에 머물면서 일으킨 각종 범죄는 물론, 그간 자신들이 주둔해 있던 기지의 토양을 극심하게 오염시켜서 회복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미군이 주둔했던 땅(22개 기지)에서는 암을 유발시키는 벤젠 등 유독성화학물질인 BTEX(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크실렌)이 지하수에 스며들어 기준치의1,830배가 검출되었습니다. 또한 정부는 비용절감과 함께 기존의 미군 기지를 매각하여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춘천 캠프페이지의 경우 지난해 3월 폐쇄된 이후 1년이 넘도록 소유권이나 부지 활용권은 고사하고 아직까지 부지매입비용 산출작업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에 국방부까지 나서서 이 땅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기보다는 자신들이 사용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실정이지요.

언제까지 우리 땅에 우리 세금을 지불하면서 한반도의 이익과 평화보다는 미국의 이익과 미국의 세계전략에 충성하는 미군을 붙잡아 둘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미국의 이익과 한반도의 이익이 부합되는 측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우리의 의지에 따르는 군대가 아니라 미국의 군대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 유사시 미국은 한국 정부와 아무런 상의절차 없이도(통보만 있을 뿐) 주한미군을 이용해 인접한 국가들을 공격하거나 북한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지난 YS정권 당시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기 일보직전까지 갔었습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동안 어떤 의미에서는 주변의 다른 강국들로부터 보호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공격받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공격받는 이유가 우리가 그 나라에 무엇인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세기 매우 잔인한 전쟁을 치렀고, 그때의 경험으로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미군기지를 돌려받으므로, 또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놀고 있는 미군기지를 반환하라고 시위해 왔으므로 당연히 환영할 일이 아닌가? 돌려받는 땅이 더 많으므로 도리어 이익이 아니냐고 합니다. 다음은 국방부 홍보실 브리핑 자료입니다.

○ 여러분도 잘 알고 있다시피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은 한ㆍ미간의합의와 국회의 비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합법적인 국책사업입니다.
○ 이 사업은 1882년 청나라 군대의 주둔 이후 일본군, 미군으로  이어진 수도 서울 중심부의 외국군대 주둔 역사를 청산함으로써 국민적 자존심 회복차원에서 지난 88년부터 우리가 미측에 요구한 사업입니다.
○ 이후, 지난 ’90년에 한ㆍ미간에 합의한 후 일부 추진 중에 이전 비용 문제 등으로 우리가 중단을 요구하였고, 03년이 되어서야 한ㆍ미 정상이 재추진키로 합의한 것입니다.
○ 이러한 합의에 의해 최종적으로 362만평을 미측에 신규 제공하는 대신, 전국에 산재해 있는 35개 기지, 7개 훈련장 등 총 5,167만평의 미군기지를 돌려받아 순수하게 4,805만평을 되돌려 받는 것입니다.
○ 그리하여 그동안 서울ㆍ부산 등 도심 한복판에 있던 미군기지를 이전 및 통폐합함으로써 주민불편을 해소하고 지역개발을 촉진하는 등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현재 미군기지 이전사업을 반대하고 있는 단체들도 당시에는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을 적극 요구하였는데, 이제 와서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며, 결국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어떤 항의 시위에도 꿈쩍 않던 미군이 용산기지를 반환하는 이면엔 한국과 한국 국민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자신들이 더 이상 그 땅이 필요치 않게 되었고, 그 와중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방만한 형태로 군 기지를 유지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고, 그런 기지를 유지하는데 있어 기지 사용료를 받기는커녕 유지비용까지 우리 정부가 상당수 대어주고 있는 실정이긴 하지만 그들 자신도 불필요한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물론 우리 정부(노태우 정부 때부터 협상하기 시작)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쉽게 양보하고, 굴종적 자세로 협상에 임한 탓도 크지요(미군은 지속적으로 감축될 예정이며 현재 평택의 미군기지 중 상당수는 미군의 위락시설 부지로 이용될 예정입니다). 사실 미군이 용산기지를 반환하고, 주한미군이 용산과 의정부에서 떠나 평택으로 집결하는 까닭은 대북방어 문제는 한국군에 떠맡기고, 새로운 군사전략, 주한미군의 공세적 역할변화(전략적 유연성)를 추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추진하는 기동타격군으로서 전 세계 분쟁지역으로 손쉽게 오가기 위해 오산비행장과 평택항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즉,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현재 주한미군의 속성은 변화하고 있으며, 주둔이 지닌 의미는 더 이상 대북억지력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을 추진하고 강제하는 군사력이란 겁니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2003년 3월 16일 대북방어는 한국이 부담하고, 미군이 맡고 있던 한국 내 10대 군사임무도 2008년까지 한국군에 이양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주한미군은 평택기지를 확장해서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하기 위한 거점기지로 사용하려 합니다. 그간 대한민국 정부는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나 주한미군 재배치(GPR)가 주한미군의 역할변화(전략적 유연성)와 관계없다고 주장해왔지만, 지난 1월 19일 반기문 장관과 미국의 라이스 장관은 워싱턴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평택 대추리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가?

“왜 정부는 미국이 요구한다고 그 땅(평택 미군기지 확장 땅)을 내놓는가? 구체적으로 그래야만 될 항복문서나 국가간 체결문서가 있는 건가? 우리정부가 안 내놓는다고 하면 안 되는가?”란 질문을 했는데, 일부의 원인은 앞서의 글에서 대략적이나마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저보다 오늘(5.13)자 <프레시안>에 실린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임종인 씨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재검토해야 한다. 노태우 정부 때부터 협상을 잘못했고 그 다음 정부들도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미국과의 재협상이 불가능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다.
용산기지이전협정 제2조 5항에 따르면 "양 당사국은 이전의 시행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시설과 구역의
소요에 현저한 변화가 발생한 경우에는 상호 협의하고 이전계획에 필요한 조정을 가할 수 있다." 제2조 2항에는 "필요한 경우에는 양 당사국의 상호 합의에 의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전"도 가능하다고 돼 있다. 미 2사단 이전협정인 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LPP) 개정안에도 같은 조항이 들어 있다.
주한미군은 재배치되는 것만이 아니라 대거 줄어든다. 2004년 10월 4일 주한미군은 2008년까지 1만2500명을 줄이기로 확정했다. 이렇게 되면 2008년 말 주한미군은 2만4500명이 된다. 더 줄어들 가능성도 크다. 2006년 4월 23일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주한미군의 추가감군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윌리엄 팰런 미 태평양사령관과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도 미 상하원에 그렇게 보고했다.
그런데도 주한미군 감군은 평택기지 확장 면적에서 고려되지 않았다. 주한미군이 3분의 1 이상 줄어드는 것은 용산기지이전협정이나 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 개정안의 "주한미군의 시설과 구역의 소요에 현저한 변화가 발생할 경우"에 해당한다. 이렇게 되면 팽성지역 285만 평을 다 주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발상을 바꿔야 한다. 군사정권이 쓰던 강압적인 방법이나 공안사건으로 몰아서는 평택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 국민의 반대여론을 미국과의 재협상에 활용해야 한다. 미국과의 재협상은 근거도 충분하고 논리도 부족함이 없다.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된다.
나는 주한미군의 대북 억지력과 감축 규모를 고려할 때 285만 평의 절반만 제공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국방부가 강제수용한 땅에는 주한미군의 골프장 부지도 포함되어 있다. 미군이 전용하던 성남골프장(28만 평) 대체부지다. 주한미군을 위한 각종 위락시설 부지도 많다.
이런 사유들을 모두 묶어 국방부는 미국과 재협상해야 한다. 재협상을 통해, 다시는 내 땅을 떠나지 않겠다는 평택 농민들, 오갈 데 없는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염려도 덜어야 한다. 정부는 강제수용을 중단하고 생존과 평화를 바라는 평택 주민과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분의 글 말고도 사실 이와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기간에 그것도 올해 중으로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문제 역시 우리 사회에 급격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어 앞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태도이고, 최근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에 대해 국익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비롯해, 효순, 미선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광화문 촛불집회를 싸잡아 비난하거나, 평택 대추리 문제를 같은 시민 된 입장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마치 반미 집단의 일인 양 바라보는 많은 이들이 존재하는 한 정부가 미국과 당당하게 맞서며 우리의 진정한 국익을 위해 관철시키기는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게다가 앞서 나름대로 길게 늘어놓긴 했으나 그와 같은 분석만으로 해소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사안도 아니지요. 우리 국익을 위해서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저는 일면의 진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유럽이든, 일본이든 혹은 미국이 견제하고자 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도 미국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미국의 힘이 강성하므로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체념과 마찬가지로 일면의 진실일 뿐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그늘 아래 한반도가 평화로울 거라는 환상처럼 단지 일면의 진실에만 집착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그 어떤 강대국도 100년, 200년의 영화를 지속하지 못했다는 진리와 함께 자국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국가의 국민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평택 대추리, 국가란 나에게 무엇인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를 생각해볼 때

어쨌거나 앞서부터 지루하게 끌어온 이야기들의 결론을 이제 내야 할 때인 듯싶습니다.
평택 문제는 우리에게 크게 세 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줍니다. 첫째. 국가는 개인, 시민에게 무엇인가? 둘째. 미군,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셋째. 국익이란 이름 아래 자국의 국가이익과 미국의 이익을 혼동하거나 일치시키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고민거리에 대해 일부는 앞서의 글에서 제 나름의 생각과 입장을 정리해서 보여드렸다고 생각하고, 이전의 글들을 읽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현재 평택의 주민들이 벌이는 시위를 땅값을 좀더 보상받기 위한 투쟁이라고 보는 시각들이 있습니다. 기실 이런 시각은 정부와 언론에서 부추긴 측면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국방부의 대언론 브리핑 자료를 보면 “반대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대추리 및 도두리 지역의 보상금은 평균 6억원 수준, 이중 보상금 총액 10억원 이상이 21명, 팽성대책위 주요 핵심 간부들의 보상금 최고 액수는 27억 9천만원, 지도부의 평균 보상금은 19억 2천만 원에 이르는 등 사실상 백만장자가 생존권 위협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일부분에서는 이전의 주장들과 달리 최근의 언론이나 여론의 동향을 살펴보면 이제 평택 주민들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분리해서 바라보려고 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평택 주민들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동정과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평택 문제를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하고 스스로 양심의 위안을 얻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전자이든 후자이든 평택 주민들을 타자(他者)화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정부의 발표대로 이들이 정말 땅 부자이고, 정말 그 정도 보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이 모두 자기 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만 있을까요? 또 이 분들 가운데 자기 땅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자기의 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착을 과연 우리 정부는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많은 이들이 사실은 이들과 그다지 처지가 다르지 않은 분들이란 사실을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닐 겁니다.

3년이 넘는 주민들의 투쟁 과정 속에서 한·미 두 나라 정부가 평택의 주민들과 진지하게 상의한 적이 없습니다. 이들이 왜 그렇게 끈질기게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을 이어가는지, 그 이유와 역사적 배경이 무엇인지 단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단지 특별법을 만들고, 땅을 뺏고, 농민들을 감옥에 가두고,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겠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죠. 평택시 팽성읍 도두리 89번지에 사는 오정순(59)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도 고생을 해가지고 지금은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안 좋아요. 그래서 지금은 일을 못해요. 새벽에 다섯 시부터 일어나 애들 셋 데리고 나가서 일 할라고 생각해봐요. 들판에다 다라 속에 애들 놓고 그렇게 일하면서 빨랫줄에 빨래 마를 날이 없었어요. 밤 열두 시까지 빨래하고 그 이튿날 일 나갔어요.
지금 이렇게 앉아서 생각하면 이 몸뚱이 다 망가지도록까지 일한 거예요. 그러니 이 땅에 애착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 어디 가서 살라고 이걸 내놓으라고 하느냐고. 그리고 지네들이 미국놈들한테 전쟁마당 제공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더 원통한 거여. 우리가 어떻게 가꾼 땅인데 이 땅을 달라 그러냐고요. 우리는 진짜 못 나가. 이 땅 가져가려면은 우리들을 다 동네에다 묻고 가져가야 돼.
우리 동네는 지금 아무 걱정할 게 없어. 미군기지만 안 들어온다면은. 노인양반들 여기서 사는 데 아무 불편 없고. 여기는 소작농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많은데 그 사람들이 다 어디 가서 사느냐고. 이제 나이 60~70 먹었는디 다른 데 가면은 어디 소작논 주어요? 지난번에 국방부 사람이 그러는 거야. “직장 해주면 되지 않느냐” 해서, “당신네들 60~70 먹은 노인네들 갖다가 직장 줄라느냐”고, “돈 얼마썩 줄라고 직장 얘기하느냐”고 그러니까 답변을 않더라고.

농촌에 산다고, 우리가 세금 잘 내고 거시기하니깐 정부에서 우리를 너무 깜본 거여.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대할 수는 없어 우리 농민들한테. 우리 농민들을 사람 취급을 안 하는 거야. 텔레비전도 보지만 농촌 사람들 사기쳐서 붙잡혀가는 거 봤어요? 우리는 법이 뭔지도 몰라요. 우리가 그렇게 어렵게 살 때 지덜이 와서 치다보기를 했나 도와주기를 했나 물 한 모금을 떠다줬나. 그런 것도 아닌데 지네들은 법 찾고. 우리가 법을 어긴 적이 있가니?
애들이, 학생들이 데모하고 그럴 때에, “아 쟤네들 왜 저래여. 부모들이 저거 갈키느라고 얼마나 욕보고 그랬는데 왜 저렇게 맨날 투쟁을 하나” 그랬거든. 그런데 우리가 당하고 보니까, 그 학생들도 그렇게 생겨서나 그렇게 투쟁을 했는가 보다 하지.

평택으로 기지 확장 이전한다면서 정부가 한 일은 편지 하나 달랑 보낸 것이라고 하는데, 국방부 브리핑 자료를 살펴보면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모처럼 조성된 대화의 물꼬를 국방부가 막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2년여 동안 반대 대책위 주민들과 공식ㆍ비공식 대화를 38회”나 해왔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들은 누구와 대화를 나누려 했던 것일까요. 국방부는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을 이끌고 있는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와 평택 주민들의 모임인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팽성 대책위)에 전화조차 걸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에 국방부는 협의매수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범대위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 ‘관망파’를 대화상대로 골랐습니다. 이 분들은 국방부 관계자와 만나 “지금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매우 상식적이고 온건한 요구였겠지요. 지난 2005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개발사업지역 세입자 등 주거빈곤층 주거권 보장 개선방안을 위한 실태조사’를 보면 “국가가 진행하는 사업으로 주민들의 생활 여건이 이전보다 나빠져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는 데, 국방부는 관망파 농민들을 설득하는데도 실패했습니다.

국방부는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은 한․미간의 합의와 국회의 비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합법적인 국책사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책사업이란 대부분이 정부가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짜고, 그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식이었지요. 부안에 핵폐기장을 만들  때도 그랬고, 천성산 터널 공사도 그랬고, 새만금도 그랬지요. 정말 그곳에 거주하며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견을 묻거나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일부 전문가들, 관료들, 정치인들끼리 결정한 뒤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평택시 팽성읍에는 대추리가 두 곳 있다고 합니다. 50년 전 주민들이 살았던 대추리는 미군부대가 들어오면서 없어졌고, 주민들은 쫓겨난 후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으면서 대추리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하지요. 하지만 주민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못해 미군 부대 안의 옛 마을 자리를 '원 대추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2006년 이 곳의 주민들은 또 다시 대추리라는 이름을 잃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또, 평택 대추리엔 농촌이면 어디에나 있는 마을을 상징하는 큰 나무가 없다고 합니다. 일정 시대 때 쫓겨나고, 미군 공군기지 조성되면서 다시 추방당하듯 쫓겨난 사란들이 갯벌을 메워가며 이를 악물고 농사지어서 50년 세월을 거친 분들입니다. 이제 겨우 살만 해지니까, 다시 땅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대추분교 이야기는 전해 들어서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어느 분이 잘 써 논 글이 있어서 다시 인용해 봅니다.

거기에 학교가 없었어. 3Km 떨어진 계성초교로 통학했대. 원래 뻘밭이었으니 애들이 길 다니기가 원체 힘들어야지. 대추리/도두리 사람들, 그전에도 땅 뺏기고 온 사람들이니 살림 어려운 거야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 와중에 주민들이 쌀 걷어서 땅 사서 학교부지 만들어 교육청에 기증한 거야. 학교 세워달라고. 1969년 3월 1일 계성초등학교 대추분교가 그렇게 만들어진 거지. 사람들이 대추분교에 모인 이유가 그거야. 나라에서 애들 학교도 안 만들어줘서 올곧이 주민 힘으로 만든 학교. 그래서 거기 모인 거야.

사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스팔트 킨트들인 우리들이 농부들이 생각하는 땅의 소중함, 땅이 곧 생명인 분들의 감각과 생각이 생생하게 전달되긴 어려울 듯합니다. 이제 조만간 FTA란 광풍이 또다시 밀어닥칠 것이고, 우리네 농촌엔 다시 한 번 살벌한 폭풍이 들이닥치겠지요. 물론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경제 규모, 산업적 측면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미합니다. 아마 순전히 산업적 측면에서만 바라보자면 FTA가 꼭 우리에게 손실만 입히진 않을 겁니다. 더군다나 최근 우리 사회의 분위기로 보아 FTA로 이득을 얻을 사람들이 그 이득을 FTA로 손실을 입게 될 사람들을 위해 혹은 국가가 거둬들인 이들을 위해 부의 분배를 이뤄줄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엔 돈이나 가치, 효율이란 것만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것들도 있는 법입니다.

어떤 이들은 현재의 시위문화(폭력시위)를 문제 삼습니다. 물론, 저도 평화시위, 시위문화를 지지합니다만, 더 큰 폭력(국가폭력, 공권력에 의한 폭력)에는 눈을 내리 감으면서도 그에 비해서는 강도가 훨씬 약한 시위 도중의 폭력에 대해서는 질겁하며 그 사람들을 이 땅에서 내몰아야 할 것처럼 야단입니다. 언제나 길 위에서 우리들과 함께 해주시는 문정현 신부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끝으로 이 글을 줄일까 합니다.

미군기지 확장 문제는 대단한 이슈입니다. 누가 봐도 미군의 군사전략 아닌가요. 신속한 기동력, 정밀한 타격 아닌가요. 전략적 유연성이란 말을 하지만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이라는 게 눈에 보입니다. 우리나라가 화약고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주민들의 재산권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권까지 빼앗기는 것 아닌가요. 팽성읍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지를 반대하기 전에 평화를 사랑하는 운동입니다. 지금은 평택주민들의 시련으로 비치고 있지만 이는 한반도 평화가 달린 문제입니다. 여태껏 팽성읍 내부에서 논의하고 결속력을 다졌다면 이제 세상에 널리 알려서 '우리 일'로 만들어야 할 때인 겁니다. 이 싸움에서 진다고 생각해봐요. 한미관계에 변화가 없을 것 같아요? 더 종속될 겁니다. 지금의 시련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데 세상은 평택 언저리 작은 마을의 외침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 순박한 주민들이 짊어지고 갈 문제가 아니라고요. 이후에는 모두가 같이 짊어지자는 겁니다.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이면 조금씩 나눠지자는 말입니다.

이제, 저는 그 짐을 조금 나눠지기 위해 광화문으로 나갑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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