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들이 "사강 쾌거"를 올렸던 지난 번에 월드컵 열광에 크게 놀랐던 제가 이 현상에 대한 몇 마디의 비판적 발언을 하다가 그 직후에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이고, 몇 년이 지난 뒤에까지도 오슬로대에 오는 한국교환 학생들에게 "월드컵 때 우리를 파시스트라고 말씀하신 것이 맞냐"는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한 질문을 받을 때에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스포츠에 대한 사회주의자 내지 공산주의자의 태도라는 것을 이렇게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스포츠 그 자체를 문제로 삼는 것이라기보다는 스포츠 산업과 그 산업을 이용하는 부르주아 국가를 문제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태극전사"나 그 지지자들을 모독할 마음은 추호도 없는데, 우리가 "전사"라는 군사주의적인 단어를 이렇게 별 반성도 없이 이용하게 만드는 상황을 누가, 왜 연출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 뿐이지요.
"놀이"를 누리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본능에 속하겠지요? "놀이" 문화 없는 부족 내지 종족도 세상에 없는 것이고, "놀이"를 하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러한 생각이 들지요. 대개 월드컵을 옹호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우리가 축제를 즐기는데 뭐가 문제냐"라 하시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놀이를 즐기려는 본능"에 호소하시는 듯한 인상입니다. 물론 월드컵을 "세계인의 축제"로 포장하여 "파는" 것이 그 주최측의 의도일 테고, 그 의도가 보통 성공적으로 관철되는 것이지만, 프로 스포츠를 어떻게 봐도 도대체 순진한 아이들의 "놀이"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부터 월드컵에 대한 제 의심이 시작됩니다. 한 명의 "태극 전사"가 태어나려면 대개 가난한 가정 출신의 수많은 아이들이 체대 등에서 군대를 방불케 하는 가혹한 훈련을 거쳐야 되는 것이고, 서로 잔혹한 경쟁을 벌여야 되고, 결국 "우승열패"의 법칙으로 몇 사람만 남아 "나라 자랑"이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재미있게도, 우리가 "승리한 소수"에게 박수를 보내 "태극전사"라 높여 불러도 이 훈련, 경쟁 과정에서 도태를 당한 다수에 대해 별 관심을 안보이는 것입니다. 지금 노무현 정권이 건설하는 신자유주의 사회가 여러 모로 바로 "우승열패"의 논리가 관철되는 프로 스포츠와 아주 닮았음에도, 대한민국인 선남선녀 중의 대다수가 "성공한 소수"보다 "실패한 다수"에 속할 확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이지요. 우리가 현대판 검투사들이 연출하는 극을 즐기면서도 우리 자신들도 결국 신자유주의적 활극의 검투사가 돼간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망각을 하고 싶은 것인가요? 하여간, 긴 이야기를 간단히 줄이자면 사회주의/공산주의 입장에서 경쟁 논리의 정당화야말로 근대적인 "대형 스포츠"의 이데올로기적인 기능이라고 보고, 그 이데올로기적 기능이 반동적이라 결론을 내리는 것이지요. 1920-30년대만 해도 세계 좌파 운동에서는 경쟁이 없는, 즉 무엇보다 노동자의 "움직임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안 스포츠"를 여러 가지로 실험해보기도 했는데, 그 실험들이 제2차 세계대전, 냉전 등의 와중에서 그냥 망각되고 말았더랍니다. 그리고 그것과 맞물리는 문제는, 월드컵이라는 "세계의 광장"에서 그냥 김씨나 이씨가 존재하지 않고요 "대한민국 국민 김씨/이씨"가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이 또 단순히 4천만 여 명의 선남선녀가 사는 지역의 이름도 아니고, 분명히 국가의 명칭으로 거기에서 통하지요. 대추리를 "접수"하여 "영농차단"했다고 자랑하는 그 국가의 이름으로, 우리가 독일에 가서 응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딴 건 몰라도 대추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의 눈빛만이라도 생각을 하면, "오..필승.."을 도저히 못외치겠습니다. 스포츠에서는 아니고 실생활에서 저는 신자유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신자유주의와 투쟁하는 민중들에게 "필승"하지 말고 "필패"하기를 열심히 기원합니다.
우리는 "경쟁"하지 않고 스포츠를 즐길 수 없을까요? 아이들이 서로 노는 모습을 보면 있다고 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