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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1년 6월
평점 :
평전. 대부분의 평전은 대상인물을 일종의 위대한 인물로만 인식하는데 급급해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물과 동시대에 살지 않은 사람으로서 평전은 그 인물을 이해하는 도구이자, 아울러 그 인물을 찬양하게끔 하는 도구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어쩌면 마르크스에 대한 기존의 책들 역시 그러하지 않았나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마르크스는 악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로서 기억되고 있다. 반면, 사회주의 국가나 운동을 한다는 진영에 있어서의 마르크스는 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의 철학을 논하는것은 너무도 어렵고, 왜곡이 많으며, 인물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는 더더욱 힘들었던게 현실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수식적 문구들을 찾기 힘든 몇 안 되는 책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묘사들로 가득차 있다. 유물론과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마르크스 이전의 인간 마르크스에 대한 묘사들로 말이다. 어떠한 조직에 있어서 지배하는 것을 좋아했고, 자신이 이끄는 조직에 있어서는 민주적 독재자로 군림했던 모습하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야기하면서도 삶의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를 끊임없이 갈구했고, 찢어지는 가난함에 허덕이면서도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잃는걸 원치 않아 비서를 고용하고, 딸들을 귀족적 삶을 익힐 수 있는 학교에 보내는 그의 모습은 한편으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우리 사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그러한 부모의 상이 아닐까 싶었다.
그것은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본 새벽 4시까지 콩나물 재배를 통해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5살난 아들을 엄청난 강습비가 드는 영어유치원에 등록시킨 부모의 모습과도 상통했던 것이다. 그의 가족은 거의 모든 일생에 거쳐 가난 속에서 허덕이며 살았다. 식량부족으로 인해 아내의 집안 가보와도 같은 물건은 늘 전당포에 내맡겨져야 했으며, 마르크스 자신 역시 유럽 당국의 감시와 탄압에 시달리며 감옥을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늘 자신의 사상에 자신있어 했고 논쟁을 즐겼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약점(?)을 발견하여 파고드는 것을 즐기는, 그는 어쩌면 전형적인 토론가로서의 자질을 타고 난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의 이러한 이중적인 삶의 모습에 대해 접하며 일종의 실망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그의 사상이 오늘날 까지 우리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지난 날의 소비에트 붕괴라는 혁명 실패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대안중 하나로 여전히 인식되고 있는 것은, 그의 철학이 도서관에 앉아 문서들을 뒤적거리면서 만들어낸 공허한 것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게 아닌가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실천'의 학문이었던 것이다. 실제적으로 마르크스는 대중을 선동하고,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면에 있어서 늘 전선의 최전방에 섰다.
비록 부르주아의 삶을 동경했지만 자신의 삶은 프롤레타리아 이하의 삶의 모습이었고, 영국민의 삶의 현실적 모습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지만 결국 혁명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이상향을 제시하는 등, 그러한 과정들이 모두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의 일생에는 엥겔스라 불리우는 절친한 친구가 늘 함께 했다. 둘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면서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길목 하나하나를 건설해나갔던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중적 모습에 대한 묘사들을 보면서 나는 그 속에서 완벽치 못한, 하지만 너무도 인간적인 마르크스라 불리우는 하나의 '인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러한 발견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었노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