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과의 인터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인터뷰집하면 지승호가 떠오른다. <마주치다 눈뜨다>, <유시민을 만나다>, <7인7색> 등 국내 유일의 ‘인터뷰어’라고 불리는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그를 떠올리지 않는 것이 되레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뷰집을 보면 지승호의 그늘부터 찾게 된다. 지승호가 워낙에 기둥처럼 있기 때문인지 어쩔 도리 없이 비교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뒤에 나름대로의 평가를 매겨보곤 하는데 대부분 지승호를 향해 손을 들어주게 된다. 과거에 했던 강연, 다른 인터뷰에서 했던 말부터 비판의견에 대한 생각까지 인터뷰이의 모든 것을 쫓는 인터뷰어 지승호의 그늘은 그만큼 짙고도 넓은 것이었다.
그런데 분야막론하고 주현, 주성치, 신성순, 장동건, 김훈, 크라잉 넛, 노무현 등 22명과의 인터뷰가 담긴 김경의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는 달랐다. 도무지 지승호의 그늘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하면 ‘지승호는 지승호고 김경은 김경이다’는, 당연한 것임에도 다른 인터뷰어들은 오랫동안 만들지 못했던 생각을 이제야 하게 해주는 인터뷰집인 것이다.
지승호와 김경은 어떻게 다른가?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에서 눈에 띄는 것은 김경의 ‘감각’이다. 지승호가 ‘당신’을 인터뷰 한다고 가정해보자. 지승호는 ‘당신’의 블로그에 들어가 첫 번째 글부터 마지막 글까지 모두 읽을 것이다. 또한 ‘당신’이 방문자들의 글에 남긴 댓글 하나하나까지 빼놓지 않을 것이며 ‘당신’이 이제껏 바꾼 메인화면의 사진들이나 문구의 의미까지 해석하려 할 것이다. 더불어 ‘당신’과 친한 관계에 있는 이들의 블로그까지 찾아가 ‘당신’이 어떤 내용의 방문자글을 남겼는지 확인해볼 것이다.
김경은 어떨까? 김경은 ‘당신’의 블로그에 접속한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고 어떤 감각으로 블로그를 꾸몄는지 3초 만에 훑어볼 것이다. 스크롤바 몇 번 잡아끄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다음으로 김경은 ‘당신’을 만나는 순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 ‘당신’을 인터뷰할 것이다. ‘당신’을 도발하거나, ‘당신’과 한바탕 놀 준비를 하거나.
지승호는 정통 인터뷰어를 연상케 한다. 미련해보일 정도로 우직하게 인터뷰이의 과거부터 오늘까지 샅샅이 추적하고 그것으로 인터뷰의 살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김경은 어떤가. 물론 김경도 과거부터 샅샅이 추적하지만 그것은 참고사항으로 남겨둘 뿐, 그보다는 ‘오늘’에 주력한다. 오늘에 주력한다는 건 무엇인가? 순간순간에 기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술 먹느라 바쁘다는 주현에게 술을 사들고 찾아가 인터뷰를 청하는 것이나 당시 차기 대권 주자면서 패션무식인 노무현과 정치무식인 패션가들을 삼겹살 앞에 불러온 것부터가 김경의 그러한 면모를 엿보게 해준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놀라운 건 김경의 진짜 반응이다. 김경은 무지개 빛이라도 지녔는지, 아니 그 몇 배의 빛을 내는 스펙트럼을 지니기라도 했는지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빛을 낸다.
DJ.DOC의 인터뷰를 보자. 인터뷰하기 쉽지 않은 대상인지라 김경은 다소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김경은 “나는 다행히 진지한 뮤지션인 양 가식을 떨기보다 양아치스러운 걸 더 좋아하는 남자들을 좀 다룰 줄 안다”고 하더니 한때 좀 놀았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인터뷰가 아니라 ‘쟤들이랑 한번 놀아보겠다’는 마음가짐이면 만사 오케이다”라는 말을 한다.
인터뷰는 정말 그렇게 흘러갔을까? 그렇다. 덕분에 DJ.DOC가 했던 인터뷰들 중에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뻑’가는 인터뷰가 나왔다. DJ.DOC를 아는 사람들은 ‘기절’할 내용들이 담겨 있다. 물론 이건 DJ.DOC만 그런 것이 아니라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에서 인터뷰한 다른 인터뷰이들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영악하다고 해야할까? 김경은 놀랍게도 만나는 이들마다 빛을 바꾸며 인터뷰이의 생각과 마음을 끄집어냈다! 참으로 쉬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터뷰어의 생명은 각자의 개성이다. 그런 면에서 김경은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더욱이 지승호의 인터뷰가 ‘당신’이 걸어온 길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피고 내일 걸어갈 길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라면 김경의 인터뷰는 지금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며 ‘당신’의 신경은 어디로 뻗어있는지를 알아내려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하는, 쌍수를 들고 반길 또 한명의 인터뷰어의 등장을 알렸다는 점에서 김경의 인터뷰집은 의미심장하다.
지승호는 지승호고 김경은 김경이다.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는 이 반가운 메시지를 던지며 가장 매혹적인 텍스트인 '인간'을 감각적으로 해독했다. 아주 쉬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