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감각의 박물학 > 불합리한 종교에 던지는 진지한 종교적 질문들
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영국 BBS 방송국에서는 예루살렘 부근에서 발견된 팔레스타인의 두개골을 바탕으로 예수의 모습을 복원한 적이 있었다. 뭉툭한 코와 거무튀튀한 얼굴은 여지없이 시청자들의 기대를 져버렸을 것이다. 파란 눈에 금발의 예수, 그런 예수는 없다는 것이『예수는 없다』의 저자 오강남의 주장이다. 다소 선정적인 책제목이 거슬린다 해서 이 책을 놓쳐선 안 된다. 이 책의 제목에 목소리를 높여 주위의 이목을 끌어보겠다는 명민한 상략(商略)이 작용했다는 것은 지레짐작이다. 외화내빈(外華內貧), 요란한 책 제목은 부실한 내용으로 이어진다는 선입견을 이 책은 깨끗하게 불식시킨다. 논의는 진지하고, 진지한 만큼 깊이가 있다.

눈이 파랗고 머리가 금발인 예수가 실제의 예수가 아니라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는 어떤 예수인가. 그것은 서구인에 의해 '해석된 예수'일 뿐, 실제의 예수는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이러한 견해는 다석 류영모. 함석헌, 그리고 민중신학자 안병무 이래로 꾸준히 성장한 토착신학의 성과에 일정하게 빚지고 있다. 지금까지 지배적인 서구의 그리스도론이란 성서를 해석하여 얻은 결론이 아니라, 그것은 그리스 로마적인 세계에서 일반적이었던 신격화된 구원자 상을 예수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다라는 것이 안병무의 주장이었다. 안병무는 불교가 중국에 가서 그 문화에 섞이면서 선불교를 탄생시켰듯이, 예수교가 만일 서구의 그리스 로마 문명권 대신 중국 등 동북아 문화에 먼저 유입됐더라면 어찌됐을까 하는 점을 평소에 환기시켰었다. 모든 텍스트에 대한 읽기는 어쩔 수 없이 나름대로의 '해석'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읽는 자'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면 이런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우리가 어느 종교를 갖게 되는 것도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내가 만약 스페인에서 태어났으면 가톨릭 신자가 되었을 것이고 독일에서 났으면 개신교인이 되었을 것이고 이란에서 났으면 이슬람교인이 되었을 것이고 인도에서 났으면 힌두교인이 되었을 것이다. 자기가 거기 태어나서 그 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그 종교가 무조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내가 백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무조건 백인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미국 남부지방 KKK 단원들의 태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차별주의적 태도라 할 수 있다.”

모든 신화가 그렇듯 성경도 역사적, 과학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고, 역사적 과학적 정확성과 상관없이 우리에게 나름대로 깨달음을 주기 위한 텍스트라는 것이다. 이 책은 먼저 성경을 비유와 은유로 구성된 하나의 철학적 가르침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 문자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데서 생기는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피를 취하지 말라는 구절 때문에 죽어가면서도 수혈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받은 벌이 해산의 고통이기 때문에 산모의 고통을 덜기 위한 어떤 조치도 해서는 안된다는 교파 등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에 씌여진 축자적(逐字的) 의미만으로 성경의 의미를 고정시킬 때, 성경은 신비화․절대화되고 신학은 토론과 대화를 거부하는 닫힌 체계가 된다.

이 책은 시종일관 주류(主流) 기독교의 맹목적 신앙과 배타주의적 자세를 비판하고 있다. 성경은 한 점 한 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굳게 믿는 성경 무오류설, 타종교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종교 다원주의란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난다고 하는 근본주의, 이런 신앙관을 가진 국가는 지구촌에 한국 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서구만 해도 옛시대의 독선적인 `종교적 제국주의` 를 내던진 지 오래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가난한 남부지역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런 배타적 신앙관을 벗어던진 지 오래인데도, 95%내지 90%에 해당하는 국내 기독교 신자들 거의 대부분이 기독교 배타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초기 선교사들의 영향 탓이며, 이런 신자들은 서구에서 들려오는 신(新)신학의 소식을 사탄의 음모라고 규정하는 `대단한 영적 오만과 신학적 무지` 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잘못된 신관보다 차라리 무신론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 비교종교학자이자 신자이기도 한 필자의 선언이다. 그러한 선언에는 배타적 신앙관을 가진 신자들의 신앙적 성숙과 성장을 바라는 필자의 간곡한 충정이 담겨져 있다.

올해로 회갑을 맞은 저자가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이 같은 책을 출간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97년 캐나다 최대 개신교 교단인 캐나다 연합교회 총회장으로 선출된 빌 핍스가 기자회견을 통해 “예수에 대한 전통적 교리를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다”고 밝힌 것에 대해, 한인교회 목사들이 이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를 통해 한국 기독교가 ‘종교적 유아기’와 ‘정신적 식민지성’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왕의 신학이론서들이 어렵고 딱딱하여 대중들을 외면하고 있다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쉽게 읽히면서도 선명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 어렵고 딱딱한 문제를 우화와 비유를 적절히 들어가며 풀어간 저자의 글솜씨가 글을 읽는 속도감을 누그러 뜨리지 않는다. 중간중간 나오는 관련서적 소개와 뒤에 실린 참고문헌은 저자의 주장에 대한 신뢰도를 한껏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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