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중매 등 누군가의 소개를 받는 만남은 이유 없이 거부하게 된다. 운명의 상대라면 되도록이면 우연히 마주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많고 많은 비행기 중에 우리는 같은 비행기를 탔으며, 그녀는 나의 옆 자리에 앉았다. 그것만으로도 우린 운명일지 모른다. 162,245분의 1 이라는 확률을 뚫고 그녀가 다시 나의 옆 자리에 앉았을 때 그녀는 진정 나의 운명의 상대로 여겨졌다. 그 확률적 숫자의 노예가 되어 나는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으며, 그녀는 너무도 쉽게 내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이 아닌가 한다. 사랑하는 그 순간 행복하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무조건적인 행복만을 약속하지는 않는 듯 하다. 그 순간부터 책임져야 하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뒤따르는 듯 하다.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었을 때 보장되는 행복이라는 것 역시도 유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하고 싶어하며, 또 실제로 사랑하기도 한다. 그것은 상대방이 완벽하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녀만이 지닌 독특함에 빠져들며, 그녀가 지닌 모든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완벽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다가가는 그 순간의 발걸음은 너무도 조심스러워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상대방은 이렇게 할 것이다 라는 계산이 깔리기도 하지만, 그 계산은 그다지 철저하지 못하며 오히려 그 칼날은 심히 무딘 상태이곤 하다. 나의 마음을 열고 상대가 들어오길 기다리다가 때론 그 기다림에 지쳐 내가 먼저 상대방의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때론 억지로 문을 뜯고 들어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이 사랑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상대방이 완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때로는 서로 갈등하며 그 갈등으로 인해 남이 되기도 하는 게 인간사가 아닐까 한다. 그렇기에 첫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누군가가 생겨나기도 하고, 이전에 사랑했던 누군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가 생겨나기도 하는 것이리라. 그것은 어쩌면 상대방의 단점에 대해 이제서야 비로소 눈을 떴기 때문일지도 모르며, 상대방에 의해 나의 영역을 잃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그녀 때문에 나에게 최고의 것이라며 거짓말 하던 지난 날과 달리 나는 그녀에게 지쳤으며 나의 그녀를 향한 감정이 예전의 그것과 다르다는 생각에 흔들리기도 한다.

그녀가 윌과 함께 잠자리를 한 것이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을 식게 하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전부터 식어가고 있던 나의 사랑을 급속도로 사망에 이르게 한 촉매제에 불과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미워지는 내 자신에 대한 감정을 추스리기 위해 나는 너무도 많은 시간 동은 금욕주의를 꿈꾸며 살아야만 했다. 모든 것을 부인하던 나의 생활은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한 부인과 무시로 이어졌고 서서히 나는 그렇게 그녀의 기억들을 지워나갔다. 하지만 그 기억들의 지움이 자아의 상실은 아니었으며, 작가는 그렇게 또 다른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사람에게서 물러남과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시작하고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설명하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을 듯 하다. 추상적인 용어만의 나열을 통해서는 아무리 그 감정이 짜릿할지라도 독자들의 고개를 떨구게 만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려함 보다는 진실성을 택했고, 그로 인해 우리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잊어가는 과정을 진실되게 엿볼 수 있다. 그 진실성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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