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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수많은 제도를 생성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형성한다. 그리고 인간의 창조물인 제도는 인간을 구속함으로써 자신의 창조자에게 보답(?)한다. 인간행동과 구조가 제도를 매개로 상호 작용을 하는 양상을 연구하는 이론이 ‘신제도론’이다. 이는 1980년대 이후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했으니, 기존의 폐쇄적, 수동적인 인간관에 대한 반기랄까? 하지만 이는 학문상, 관념상의 개념일 뿐 대부분의 우리는 제도를 형성하는 우리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며, 오히려 대다수의 제도는 형성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일방적으로 우리를 구속하는 듯해 보인다.
운동경기의 규칙은 어떨까? 종종 규칙이 변화하기도 한다. 월드컵을 앞두고 공격자에게 유리한 오프사이드 규칙을 도입하겠다는 이야기가 있는 걸 보면, 운동에 적용되는 규칙 역시 변화가 가능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와 같은 변화는 미시적일 뿐이다. 11명의 선수가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인 축구는 4-4-2, 3-4-3, 4-3-3 등 다양한 전술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제한된 범위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아무리 수비 지향적인 전술을 펼치는 감독이라 하여도 골키퍼를 두 명 둘 순 없는 것이다. 장갑을 끼고 경기 도중 손을 사용할 수 있는 골키퍼는 11명의 선수 중 오로지 1명 만이 허락될 뿐이다. 모르겠다. 포지션 따위는 논하지 않는 동네 꼬마들의 축구에서는 골키퍼도 여럿이 허용되는지도… 만약 그렇다면, 동네 축구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토탈 싸커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아, 물론 농담이다;;)
우리 사회의 기준은 남성이다.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는 수많은 성폭력들이 성매매를 금지한 여성부 때문이라고 토로하는 이들의 시각 역시 남성의 것인 동시에 우리 사회 전체의 것이기도 하다. 남성의 성욕은 자제할 수 없는 것이며, 얼마나 많은 여성과 관계를 했는가는 그 남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듯 무용담처럼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여성은 다르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순결을 유지하는 천사와 자신이 원하면 언제라도 몸을 대줘야 하는 악한 여자로, 사회는 여성을 이분화하였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어떠한 교류도 허락되지 않는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여성들은 (남성의 입장에서) 순수한 자신의 혈통을 생산할 수 없기에 위험한 존재일 뿐이다. 동시에 여성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라도 정복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고…
결혼 제도는 분명 인간이 만든 것이다. 몇몇 문화권을 제외하고는 일부일처제가 옹호되고 있으니, 이는 한 남성은 한 여자와만 가정을 꾸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현실은 이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명목적으로는 일부일처제이지만 제도권 외에 또 다른 가족을 꾸리는 이들도 있을 테니까. 제도는 제도일 뿐 현실을 모두 포용할 순 없는 법인지라, 때론 알면서도 모른 척 해줘야 하는 것이 남자들의 세계란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을 뒤바꾸어놓고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남성을 만나서 가정을 꾸린다면? 남성에게 성욕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여성에게 성욕은 정숙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남성에게 바람 피우는 것은 한 때의 무용담이기에 참고 기다리면 되는 것이지만 여성에게 그와 동일한 행위는 집안 망신이요, 더 나아가 가정 해체를 위한 지름길일 뿐이다.
아, 이 발칙한 아내를 어찌하면 좋을까?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남편을 탐한 아내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자신과 다른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라니, 하지만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성관계를 할 수 있고,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역시 가능함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그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뿐.
그렇다 하여 작가가 엄청난 페미니즘의 소유자는 아니다. 아내는 자신의 도덕적 타락(?)을 보상받으려는 듯 슈퍼 우먼으로 돌변했으니, 한 집 살림도 힘들어 죽겠건만, 그것도 직장까지 다니면서 아무런 불평 없이 가사에 목을 맨다. 자신은 투톱을 구사하는 감독일 뿐이며, 어느 선수가 골을 넣었건 팀은 점수를 얻는다고 그녀의 말하지만 투톱을 위한 그녀의 희생은 실로 크게 느껴진다. 끝끝내 아내의 또 다른 남편을 받아들이진 못한 체 그놈이 자신과 절대 마주치지 않도록 2층 출입구는 따로 내야 한다는 ‘나’의 이야기나, 자신의 두 남편과 함께 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떠나고자 하는 아내의 생각, 이 모든 것은 이 소설의 한계라면 한계이며 동시에 현실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제약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 아버지가 누구냐는 질문에 아버지가 누구가 되었건 아이는 자신의 아이라고 항변하는 아내의 목소리는 호탕하게만 느껴진다. 거기에 탈착식 자전거를 언급하며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고수하는 병수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는, 솔직히 이야기하면 상상 외라고도 할 수 있는 ‘나’의 태도까지 접하고 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조차도 내 감정을 헷갈리게 된다.
선수들은 은퇴할지라도 축구는 끝이 없으며, 누군가는 골을 넣고 또 누군가는 골을 막을 것이다. 사랑이 축구와 같다 할 순 없겠지만 사고를 뒤흔드는 글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으니,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몇 골을 먹었을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한 번쯤 천지를 흔들고픈(?) 사람이라면 말 없이 두 손에 쥐어주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