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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녀가 7년 만에 쓴 장편소설이란다. 인터넷 서점 메인 화면에 떡하니 뜨는데 익숙한 이름이라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카트에 담아버렸다. 그녀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그랬던 것일까? 제목이 끌렸던 것도, 표지가 마음에 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글도 안 읽고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렇게... 만나야만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고 하던데, 어쩌면 책도 그와 같은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나보다. 읽어야만 하는 책은 언젠가 읽게 마련이라고 할까나.
우리 모두는 아직 죽음을 경험치 못했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태도는 각자 다를 것이다.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고자 안간힘 쓰는 이들이 있는 반면 혹자는 스스로 ‘끝’을 결정지으려 든다. 자살, 스스로 생명을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죽음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많은 종교에서는 이를 ‘죄’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삶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그와 같은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 여부를 불문하고 말이다. 아니, 그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태도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삶과 죽음을 판단하기에 우리는 아직 너무 어리니 말이다.
사형. 초등학생 때도 이 주제를 놓고 토론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이는 충분히 토론할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그만큼 특정 결론을 선택하기 힘듦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구의 삶은 고귀하고 다른 누구의 삶은 저속한 것이 가능한가, 대구 지하철 참사의 범인, 그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옳을까 등등. 수많은 사례를 접할 때마다 우리의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각자 개개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지배적인 사고는 존재할 것이다.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혹은 존속되어야 한다는...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 그들의 삶에는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들의 모습은 절망 그 자체이고, 그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모든 악을 긁어모은 것에 불과한 듯 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그곳을 드나들며 작가는 깨달았던 것 같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100% 착하거나 100% 악하진 않다는 사실을...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범죄인으로 지목된 존재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적어도 그녀가 그린 ‘윤수’라는 인물은 그러했다. 사람을 죽이고 아이를 강간한 파렴치범, 사회는 그의 가슴에 빨간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이름을 잃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되어버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경직된 눈빛의 내가 있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프랑스 유학까지 마친, 어떻게 보면 나는 남들이 부러워할 모든 것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내겐 감당하기 힘든 상처가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었던, 그래도 나만은 감싸줄 것이다 믿었던 어머니마저도 창피하게 여기며 외면하게 만든... 이미 세 차례나, 타인 아닌 나를 살인하기 위해 애썼던 인물. 나는 타인을 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회가 허락한(?), 죄인 아닌 죄인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만 같은 윤수의 얼굴을 보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지난 날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인물을 마주 대하는 것 같았기에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치고자하는 강한 충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상처 입은 영혼을 소유하고 있었다. 사랑이라고는 전혀 받지 못한 윤수였기에, 그는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동생마저도 앗아간 지독한 가난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 그는 외로웠다. 냉소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사형은, 타인이 자신의 삶을 멈추게 해준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가 자신에게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에게 죽음은 축복이었다. 밑바닥만을 기어다니던 자신이 이유야 어찌되었건 유명인이 되었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는 점에서...
윤수 못지않게 내 안에도 상처가 많았다. 신뢰할 수 있는 이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치 않는 듯 했다. 힘겨워 비틀거릴 때마다 오히려 그런 나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만을 들을 뿐이었다.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못한, 쓰레기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나를 공격하는 것은 내게 아무런 두려움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복수였다. 그것도 아주 짜릿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자신과 상대 안에 존재하는 인간성을 발견했다.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누군가의 사랑을 갈망하는 자기 자신을... 그것은 삶을 포기하고자 했던 그들에게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였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그들을 손가락질 한다 할지라도, 그들 스스로를 ‘꼴통’이라 정의한다 할지라도...
감정 몰입이 너무 심했던 것일까. 아니, 책을 읽는 내내 내 안에 존재하는 상처들을 헤집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겨우겨우 딱지가 생겼는데 그 딱지를 잡아뜯어버리고는 그 자리에 맺힌 선홍빛 핏물을 대하는 듯, 그렇게 한 움큼 눈물을 쏟아냈다. 주변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울고 싶을 땐 울어야만 하는 거라며...
언젠간 나도 죽을 것이다. 죽는 그 순간까진 나 역시도 하루하루 불안히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일지도 모른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안에 존재하는 가장 맑은 영혼을 발견하는 것이 나에게 숙제로 남겨져 있다.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 결코 끌어안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 궁극적으로 지금까지 내가 버려왔던 내 자신을 다시 사랑하는 것... 이 숙제들을 완수할 수 있을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내게 주어져 있는진 잘 모르겠다.
크게 한 번 울고 또 한 번 웃자. 지저분히 쌓인 복잡한 감정들을 잠시 접어두고, 그렇게 나를 치유하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행복이 뭔지 이제는 좀 알 것도 같다는 말을 뱉을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