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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씁쓸함은 어쩌면 이미 실패로 끝나버린 혁명에 대한 일종의 향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갑작스레 폭삭 늙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 더 이상의 무엇은 불가능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종의 회의감이었다. 비현실적인 꿈을 꾸던 이가 현실을 자각했을 때 느끼는 상실감. 하지만 진정한 이상주의자라면 한계에 도달했을 그 순간 좌절 아닌 희망을 꿈꾸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지난 역사를 겸허히 수용해야만 한다. 식민지의 암울한 터널 속에서 민족을 찾았고 독재의 그늘로부터 민중을 일으켰던, 그 과정 속에는 우리 자신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정말 무언가 변화가 도래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이후... 386세대의 대거 정계 진출, 혹자는 이를 두고 우리 사회가 좌경화되었노라 말하기도 했지만 정작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IMF 의 한파가 몰아친 후 좀처럼 가시지 않는 겨울 냄새에 많은 이들은 여전히 떨고 있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내게는 희망 보다 절망이 컸다. 무지로부터 비롯된 혼란. 실제로 몇몇 보수단체에서는 그의 글을 통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들기도 했었으니, 그를 오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한 이였다. 그에게는 진정한 자유를 향한 갈망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던 것일 뿐. 아니, 진정한 좌파라면 으레 그래야만 했던 걸지도 모른다. 좌파에게 있어서 완성이란 없다. 하나의 세력이 권력을 얻고 고착화되는 그 순간, 좌파로 살고자 결심한 이라면 공고화된 질서에 반기를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물며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은 어떠했던가. 혁명적 영웅들은 존재했지만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도 존재했다. 어느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에 의한 다스림은 어느 순간부터 묵살되었다. 당의 목소리가 점차 커져만 갔고, 권력의 중심에 위치한 특정인은 신격화될 뿐이었다. 그 와중에서 희생양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끊임없는 위기의식의 조장, 그래도 과거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그것은 강요였다. 잘못되었음이 분명했지만 혁명은 이미 완성되었기에 또 다른 혁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 싶었던 규칙들에는 하나 둘 예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랬기에 조지 오웰로서는 다른 이들처럼 환호할 필요도, 굳이 1990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가끔씩 나는 국가도, 민족도, 성(Gender)도 존재치 않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정당화된 권력으로 자신과 다른 이들을 억누르지 않는 사회, 맹목적으로 하루를 살기 보다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사회... 그런 사회에도 한 번 쥐면 놓치기 싫은 권력이 있겠지? 섬겨야만 하는 누군가가 있겠고. 꿈꾸는 것이 두려워지는 까닭이랄까? 왠지 모르게 지금으로서는 대안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비록 사회주의의 이름은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타인과 나를 구분 짓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기제들이, 오히려 예전보다 더 교묘하게 존재하고 있다. 경쟁은 당연한 것이며 그 경쟁에서 살아남는 이들만이 살 가치가 있는 것으로, 냉정하다 못해 비인간적으로까지 느껴지는 현실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질서이다. 그 현실 속에서 나는 고민한다. 오늘도 남들보다 몇 걸음 뒤쳐졌을지 모른다고, 책을 읽는 것보다 타인의 마음을 구슬려 보는 것이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꾸는 자는 존재한다. 침묵하는 그 순간이 가장 치열하고, 잠잠한 그 순간이 혼돈이 극에 달한 순간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는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아프지 않은 세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모두가 함께하는 그런 세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