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1 叔孫武叔毁仲尼.子貢曰:"無以爲也①! 仲尼不可毁也.他人之賢者,丘陵也,猶②可踰也, 仲尼,日月也,無得而踰焉.人雖欲自絶③,其何傷於日月乎④?多⑤見其不知量也."
번역 - 숙손무숙이 공자를 헐뜯었다. 자장이 말하였다:"그래봐야 소용없다.! 중니는 헐뜯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어진 것은 언덕과 같아서 (높기는 하지만) 여전히 넘을 수 있다. (하지만) 중니는 해와 달과 같아서 넘을 수가 없다. 사람이 비록 (해와 달을) 끊으려 한들, 어찌 해와 달을 손상시키겠는가? 다만 그가 분수를 알지 못함을 나타낼 뿐이다."
① 無以爲也는 여러 가지 번역이 있다. 먼저 양백준은 "不要這樣做"라고 번역하였다. 다시 말해 無는 勿로 보고 以는 此로 보아 부사어로 번역하였다. 양백준의 번역을 한국어로 옮기면 <이렇게 하지 말라> 정도일 것이다. 또 이기동은 以의 목적어로 毁仲尼로 보아 중니를 헐뜯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없다, 즉 상관없다라고 번역하였다. 다들 참고할 만한 의견들이나 나는 여기에서는 주자의 의견을 따라 번역하였다.
② 한문의 번역에서 또 하나 어려운 것이 부사의 해석이다. 나는 부사가 실사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의 부사가 일정한 뜻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문장 속에서 여러 가지로 번역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가진 자전에는 '오히려, 차라리'의 뜻밖에는 없다. 하지만 이 뜻으로는 제대로의 번역을 할 수 없다. 부사는 일반적으로 강조의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김원중의 허사사전의 설명대로 '어떤 상황이 계속 변하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원문을 보면서 설명하자면, 다른 사람의 賢者는 구릉과 같이 넘기에는 조금 높아 보인다. 하지만 그래봐야 별 상황은 변하지 않고 넘을 수 있다. 뭐 이런 의미가 猶자에 포함되어 있지 않나 생각한다.
③ 絶의 목적어는 日月이다. 타동사가 쓰여 목적어가 생략되어 보이지 않을 경우에 목적어를 찾는 연습을 하자는 의미에서 적어 보았다.
④ 其何傷於日月乎을 흔히들 '해와 달에 손상이 있겠는가' 혹은 '해와 달에 손상을 미칠 수 있겠는가'라고 번역한다. 모두가 전치사 於에 너무 집착하여 번역한 이유이다. 이 문장에서 傷은 타동사이다. 그렇다면 목적어가 바로 타동사 傷 다음에 오는 것은 당연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치사 於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日月을 傷의 목적어로 보면 번역이 훨씬 매끄러워진다.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다른 의견이 있는 분은 기탄없이 비판하여 주기 바란다.
⑤ 여기서는 多가 '다만'의 의미이다.
集註 - 無以爲,猶言無用爲此.土高曰丘,大阜曰陵.日月,喩其至高,自絶,謂以謗毁自絶於孔子. 多,與祇同,適也.不知量,謂不自知其分量也.
번역 - 無以爲는 이렇게 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말과 같다. 흙이 높은 것을 丘라 하며, 큰 언덕을 陵이라 한다. 日月은 (공자의 어짐이) 지극히 높은 것을 비유한 것이다. 自絶은 헐뜯어서 스스로 공자를 끊음을 이른다. 多는 祇와 같아, 다만이라는 뜻이다. 不知量은 스스로 자기의 분수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19-24-1 숙손무숙훼중니.자공왈:"무이위야! 중니불가훼야.타인지현자,구릉야,유가유야, 중니,일월야,무득이유언.인수욕자절,기하상어일월호?다견기불지량야."
집주 - 무이위,유언무용위차.토고왈구,대부왈릉.일월,유기지고,자절,위이방훼자절어공자. 다,여지동,적야.부지량,위불자지기분량야.433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