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사기꾼 - 뛰어난 상상력과 속임수로 거짓 신화를 창조한 사람들
하인리히 찬클 지음, 김현정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합본절판


인간에 의해 창조된 영역에 중립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일까? 학문 그 자체는 객관적일지도 모르지만, 그 과학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지독히도 주관적이다. 어떤 학자에게 어떠한 지원을 해주느냐의 결정이 그러하고, 그로 인해 혜택을 입는 층이 선정되는 과정 역시 그러하다. 때론 학문 그 자체마저도 객관과는 거리가 멀기 마련이다. 장애인이나 여성, 특정 인종의 지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식의 연구가 '과학적'이라 칭송되다 못해, 때론 사회적 약자의 기본적 인권에 대한 제약이 과학적으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학적'이라는 단어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한 학자의 학자로서의 명성은 성스럽다 못해 결코 침범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특정 분야에서 학문적으로 앞선 자신의 지위를 통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 연구에 있어서의 논리적 오류에 대한 지적은,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이를 검증할 능력을 지닌 이는 아무도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한다. 윤리적인 비판도 마찬가지로 연구가 가능케 할 위대한 업적에 비하면 사소한 것으로 격하된다.
이처럼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하겠다. 동시에 그것은 학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일 수도 있다. 자신의 독보적인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고, 보다 많은 자금력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그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 책이 기록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전 인류를 상대로 놀라운 게임을 펼쳤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논문, 학위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쉽게 연구비를 획득하고, 때론 환자들을 상대로 임상 실험할 수 있는 기회도 획득한 그들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학문이 지닌 자가 검증능력이 얼마나 취약한지 생각해 보게 해준다. 물론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학자 역시 실수는 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이들은 애초부터 과학과는 담을 쌓은 듯했다. 성과를 전혀 확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데이터를 조작하고, 남의 논문을 고스란히 베껴서는 자신의 것 마냥 발표하는 그들을 학자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부도덕한 그들의 행위가 주는 영향력이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약물로 인해 누군가는 생명을 잃기도 하고, 누군가는 천재 혹은 둔재로 둔갑하여 일반인으로서의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기도 한다. 또한 과학이 권력과 연계된다면 더더욱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생학이라는 학문적 바탕이 없었더라면 인종차별적인 나치즘이 그토록 오랜 기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었으리라.

모든 것을 과거를 통해 해결하고,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보편화한다는 점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은 오늘날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학자로서 그가 지닌 영향력에 이견을 달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입지 역시 탄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여성의 사회생활이 제약되어 있던 1920년대, 직접 사모아 섬에 머물며 자료를 수집했던 그녀의 학문적 열정을 높게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현지 언어를 이해치 못하는 그녀의 연구에 많은 상상력이 개입했음을 오늘날 몇몇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끔찍했던 것은 헤르만, 브라흐 커플의 스캔들이었으니, 위기의 상황에서 두 인물이 보여주는 행보는 말 그대로 인간의 추악함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지식을 이용한 사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특히 새로이 개발되는 신기술 분야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허술한 윤리 체계와 검증 능력의 부재는 학자로 하여금 마음만 먹으면 완전 범죄를 가능케 할 테니 말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인간은 오류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능력을 소유한, 몇 안 되는 생물체라는 사실이다. 숱한 진통을 통해 진리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곤 했던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사기꾼이 더 필요할까? 사기꾼을 뛰어난 학자로 둔갑시키는 것도 사회의 힘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사기꾼 양산을 위한 공모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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