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를 테면 모순되는 단어들이 있다. 자유, 평등, 박애. 정확히 말하자면 프랑스 혁명의 기본조항이라는 이 명제는 정확한 오역이다. `박애’라 함은 세상 모든 사람을, 귀족도 수용해야 할텐데 그들의 박애의 대상은 시또양, 혁명에 가담하는 시민계급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프랑스 동경주의에 젖은 저 번역은 자유, 평등, 형제애, 로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리 한다 해도 문제가 또 있다. 자유, 평등, 형제애, 이 중 자유와 형제애는 함께 할 수 있어도, 평등과 형제애도 함께 할 수 있지만 자유와 평등이 과연 함께 할 수 있는 개념이던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누를 수 밖에 없는 명제들 사이에서 잠시 멈칫해지는 사이 성폭행 사건들은 어김없이 일어나고 법의 울타리는 번복을 계속한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어찌보면 저자의 글이 약간 불안한 것은 응집력이 부족해서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책으로 엮어지기에는 문제의식은 가득하되 하나로 모아지는, 결집되는 목소리가 부족하다. 은근은 있되 끈기가 없다거나 끈기는 있되 은근이 없다거나, 둘 중 하나에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나의 눈높이에 알맞았기 때문에,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비교적 틀린 점이 적었기 때문에. 여성학과 페미니즘에도 얼마나 많은 분류가 있는데 어떤 목소리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보통 전투적 페미니즘의 과격함을 지양하거나 지향한다. 그리고 저자는 조용조용히(그녀의 음성은 참으로 조용조용할 것 같다) 그 사이의 격차를 지적한다. 이미 알고있으되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들, 예를 들면 국방의 의무를 지는 국민, 여우 같은 아내와 늑대 같은 남편과 토끼 같은 아이가 모여사는 것도 신기한데 이들이 모여살면 비둘기 가족이란다! 내지는, 여자가 남자와 같아질 수 있는 것이 평등이 아니라는 점 들을 짚어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던 말은,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느덧, 아는만큼 행동한다, 를 그와 혼동했었나 보다. 비단 미혼인 지금에도 남자친구의 집에 가거나 결혼 생각을 하면 `가사노동’이 자연스레 따라 생각나지만 타인들은 결혼하고 나면 한국내의 여성의 위치를 절감하게 된다는 말도 무섭다. 결혼한 남자는 최소한 여자의 부모를 방문하며 저 집 설거지를 오늘 얼만큼 할까, 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군대의 가산점이라든지 식민지 제도 하의 성폭행, 성폭력 사건이라든지, 한국사회 내에서는 내가 나열해도 이미 충분히 이야기되어 쉰소리 하나 보태는 것밖에 안될만큼의 슬프고 뻔한 사건들이 많다. 이들을 지적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공격하지 말고 낙후시켜라, 라는 명령어와 흡사하다.

 

 

 

나는 앞서 이 책이 나의 눈높이와 맞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할 줄 아는 작가들이 좋아졌다. 어려운 이야기도 쉽게 한다는 것은 이미 그 문제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순전히 개인적인 딴소리를 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고 무라카미 류는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한다. 이것은 한 쪽은 통찰력이 있고 한 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닌, 다른 종류의 통찰력을 지녔다는 것인데 이 작가가 딱 그러한 입장이다. 오랜만이다. 이렇게 쉬운 목소리를 만나는 것은, 비록 구성에 있어서 약간 치우치거나 한꺼번에 여러가지를 이야기하려 애쓴 탓에 산만함을 피할 수는 없을지라도, 조목조목 쉽고 조용한 목소리를, 더군다나 여성학이나 페미니즘에서 만나기는 아스팔트 바닥 밟기만큼 그저 일상적이지만은 않은 일이니까.

 

 

 

하드웨어적인 물질에의 고찰-어떻게 만들었을까, 의심이 갈 정도로 이 책은 참 가볍다. 얇지는 않은 기본적인 프레임과 두께를 유지하면서, 표지는 때를 탈 수도 있는 흰색이 들어가있지만 알맞은 정도로 빳빳하며, 생각보다 책이 참 가벼워서 들고다니며 읽기에 편했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가벼운 책이 보관하기에 편리해서 좋은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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