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한 1년 정도 전에 쓴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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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상황과 심정을 다 알 순 없겠지만, 공개된 그 짧은 유서의내용을 보면서 감정이입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그 일 때문은아니었지만, 그 날 술을 많이 마신 후 후배하고 통화하면서 '나도 죽고싶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오늘 그 후배가 전화해서 '그 날 그렇게 말한 것 기억나?'라고 물어봐서 알았지만...
만약 그날 죽었다면 그 후배는 '가끔 우울할때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정말 죽을 줄은 몰랐다'는 말을 제 장례식에 와서 했을 것이다. ^^ (지금 내가 죽으면 신문에 기사 한 줄 정도는 날려나?)
"엄마 사랑해. 내가 꼭 지켜줄거야. 일이 너무나 하고 싶었어.
안하는 게 못하는 게 돼버렸는데 인정하지 못하는 주위 사람
들에게.. 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힘듦을 알겠어"(이은주씨의 유서 中)
상황을 알 수 없어, 뭐라고 하기 쉽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은주 정도 되는 배우가 말하는 '일을 너무나 하고 싶었는데,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게 되버렸어'라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아직도 영화가 한두편 실패하면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영화를 찍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감독이 된만큼 그 편수가 한두편 늘어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런 생각 자체는 바뀌지 않을 사람이다.
그 정도 인정받는 감독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할 것 이고, '오바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무명생활 10년과 그로 인해 겪었을 마음고생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박찬욱 같이 자기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사람이 CF에 출연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아무도 안찾을 때 작은 영화 한 편 찍을 수 있는 돈은 생길 것 같아서'라고.
그때 어떤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면서 되게 돈 밝히네'라고 쉽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늘 뒤늦게 탄식한다. 만약 박찬욱이 돈이 없어서 영화를 못 찍게된다고 하면 '척박한 한국 사회의 문화 풍토' 어쩌구 하면서 개탄을 했을 것이다. 박찬욱의 CF 출연을 비난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말이다.
우리가 강준만 교수에게 했던 행동도 비슷했다. 무크지 인물과 사상이 폐간된다고 했을때 많은 분들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인물과 사상을 사보지도 않았거나, 강교수의 상업성을 비판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강교수에게 쌍욕을 해대고, 드디어 퇴출됐다'고 박수치는 사람들보다는 나을지 모르겠다.
이은주씨는 다른 노트에서 "일년전 오늘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되뇌입니다. 그게 안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되뇌입니다. 인간사도 지겹고, 자존심이 바닥을 쳤고, 더 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요즘 내 상태가 그렇다. 돌아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고, 인간사도 지겹고, 자존심은 바닥을 쳤고, 더 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다.
옆에서 참 말들은 쉽게 한다. '이런 저런거 하면 되지 않냐, 니가 게으른 것이다'라고. 내 서평들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지승호는 성실한 인터뷰어'라는 얘기다. 사실 나는 그 얘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내가 일을 꽤 효율적으로 해왔다는 얘기도 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다만 그 외의 모든 일들은 날 힘들게했다.
차라리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면 미련 없이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 들어 채 2월이 가지 않았음에도 TV, 라디오, 각종 잡지 해서 10군데 이상의 연락을 받았다. 물론 대부분 처음부터 거절을 했거나, 해볼려고 노력하다가 '그건 제가 잘할 수 없는 일인것 같다'고 사양하곤 했다.
내가 그걸로 인지도를 높혀서 다른 무엇을 하려고 한다면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이 투자의 개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럴 생각도 없고, 내가 하는 작업에 충실하고자 하고, 그 최소한도의 여건이 마련되어졌으면 할 뿐인데, 다른 사람들의 말대로 세상은 녹녹치 않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무모했으니까 이짓 해서 이만큼 오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은 왜 못하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말하면 '늘 증명해보라'는 말을 한다. 세상 일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나? 그런데, 나는 예측 가능한 작업을 해왔고, 느리지만 많이 왔다고 생각한다. 아니 절대 느리지도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도 있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꽤 많은 가능성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근데 늘 사람들은 '안타 100개 치는거 보여줬잖아요'라고 말하는
내게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 내년에는 부상당할 수도 있고, 투수들이 경계하기 시작하면 넌 잘 못할거야'라고 말한다. 난 그 다음해에도 100개 이상을 치고, 그 다음해에 그렇게 하고, 또 그 다음해에도 더 나아지더라도 난 그런 소리를 계속 들을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방송
출연을 어쩌다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 '내가 참 글을 못쓰는 구나.
말도 참 못하는구나.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구나'하는 자괴감이었다.
하지만 내가 해온 길에서 난 너무 멀리 왔고, 또 다른걸 잘할 수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내가 가진 능력 외에 다른 나를 요구하는 것이 참 힘들고, 원망스러웠다.
이제는 좀 짧고, 섹시하게, 눈에 띄는 인터뷰를 해달라는 요구들, 그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어줍잖은 충고들을 들을때마다 '그건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라고 사양하고, 변명(?)하면서 자존감은 점점 바닥을 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일이 굉장히 가치가 없거나, 내가 잘 못하기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하는 것 조차 즐겁지가 않아 더 힘이 들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아무것도 내세울 타이틀이 없고, 학벌조차 시원치 않은 내가 인터뷰집을 여섯권이나 냈고, 그것이 시장에서나 지식계의 평가에서나 일정 부분 인정을 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늘 뉴 페이스를 찾는 방송에서도(그렇게 출연섭외를 거절했는데도) 꾸준히 섭외 요청을 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을 걸고 하는 일에 대해서 너무 쉽게 얘기한다.
이번에 이정렬 판사의 '내기 골프는 도박이 아니다'라는 판결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서도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판결이 정당하냐, 아니냐에 대한 논의는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90% 이상이 반대한다는 그 판결을 보면서 이정렬 판사를 '있는 놈들의 대변인이자 수구기득권의 앞잡이다,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는 반응을 보면서 씁쓸하기만 했다.
남을 비판하려면 최소한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 어떤 얘기들을 해왔는지에 대해 이해를 한 후 해야한다고 본다. '이정렬 판사를 정신병원에 보내야한다'는 말을 하기 전에 이정렬 판사가 어떤 판결을 해온 사람인지는 알고 해야된다는 것이다.
난 이정렬 판사가 이 정도 반발이 올지도 알고 있었고, 사법부 내에서도 왕따를 각오했을 것이며, 그 판결이 대법원에 가서 뒤집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신념으로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저지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나중에 보면 세상은 이런 꼴통 자유주의자들이 바꾸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는 순교를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우리가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 노무현이 꼴통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남아 일정 부분 세상을 바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정렬 판사의 판결은 간단하다. 늘 그는 개인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하라고 요구하는 사회에 '개인의 행동에 대한 국가의 제약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판결문이 설득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충분히 토론을 해볼 문제지, 그를 정신병자로 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난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내가 정신병자일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해주기 바란다.
마약이든, 도박이든 그것이 다른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도덕적인 비난을 할 수 있을지언정 공권력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며, 간통이나 혼빙간음 같은 부분도 민사로 해결해야될 부분이지, 형사 사건으로 국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이정렬 판사의 판결은 이런 식의 개인의 자유 신장이라는 측면에서 봐야할 것이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다. 이은주는 아주 좋아하는 배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웬지 우울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지닌 그런 부분들
때문에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녀가 출연했던 많은 영화들에게 그녀는 (밝은 캐릭터라고 보여지는 역할에서조차도 늘 슬퍼보였고,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고, 죽음으로 마감된 경우가 많았다.
그녀는 주홍글씨의 강렬한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어했던 것
같고, 웬지 나도 그 자동차 트렁크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라면 몇억원을 줘도 그런 연기 안할거야'하는 생각도 들고.
그녀는 유서의 마지막 부분엔 이렇게 썼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날 사랑해줬던 사람들. 만나고 싶고 함께 웃고 싶었는데, 일부러 피한 게 아니야. 소중한 걸 알지만 이제 허락지 않아서 미안해"
일부러 피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거의 집에 있으면서 영화만 봤다. 작년 1년동안 본 영화가 50편이 채안될텐데, 지난 두어달 동안 본 영화가 거의 그 정도니까 집에서 책을 보거나, 영화 보는 일로 보냈다고 하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도피였는지도 모르겠고.
그 중에서 이은주가 나오는 영화는 네편이었다. 태극기 휘날리며, 번지 점프를 하다, 연애소설, 주홍글씨, 연애소설의 결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머지 영화에서 이은주는 비극적으로 죽는다. 마치 자신의 죽음이라고 예견한 듯. 그러면서 '날 기억해주겠지?'라는 대사를 남기고. 하지만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스스로에 대한 떳떳함이나 빚진 것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부채의식일지도 모른다.
가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돈 때문에 서프에 남았다'고. 세상에 내 나이 이제 마흔에 이 정도 일을 하면서 내가 받는 원고료를 알고 그 따위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것조차 요즘은 많이 쓰지 못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그건 내가 그들에게 미안할 일은 아닌 듯하다. 인터뷰 준비하느라 글 읽고 이런 계산하기 어려운 부분을 빼고라도, 녹취하고, 타자치고, 이런 부분만으로도 지금 내가 받는 정도의 금전적인 보상은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대해 내 친구는 '니 책임이야'라고 얘기한다. 나는 늘 '알아서 주세요'였고, 내가 먼저 이만큼 받아야겠다는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래 내가 하는 일이 가치가 없기 때문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다.
어떤 이는 녹음기라고 비아냥거린다. 녹음기. 백번 양보해서 녹음기면 어떤가? 지금 한국 사회에 이만큼 충실한 녹음기가 어디 있나? 젊은 친구들 중에서는 김어준하고 나 밖에 더 있냐는 말이다. 그래도 내 딴에는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긴다고 생각해왔는데, 우리 사회의 이런 반응들을 보면서 또 한번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 의미있는 기록이 아니었던게지. 내 인터뷰는 죽도 밥도 아냐, 김어준의 인터뷰처럼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손석희의 인터뷰처럼 쟁점에 관해 치열하게 해놓는 인터뷰도 아니고, 그래 가치가 없는게야'
어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내노라 하는,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만나 과외수업을 받느라 좋겠다'는 비아냥과 함께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했는데, 나는 내가 그동안 해온 작업에 비쳐본다면 이런 평가는 정말 야비한 평가라고 생각한다.(그것도 그런 얘기하는 놈들은 꼭 익명이다. 물론 이해는 간다. 실명으로 그런 야비한 공격을 한다면 가서 잡아죽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도대체 이게 비판이고, 평이란 말인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과외수업을 받기 위해 내 개인적인 부분을 희생하는 비용을 치뤘다'고 말할 수 밖에 없고,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에 대해서는 그렇게 똑똑하신 분들이 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사람들 찾아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전해주려는 노력을 안했나 되묻고 싶다.
올초 하기로 했던 모 신문의 인터뷰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 담당기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벽이 높은가보다. 세계일보에 싣기로 하고 했던 세개의 인터뷰 게재가 계속 미뤄지면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은 인터뷰이들에 대한 미안함때문에 나는 조바심이었고, 게재를 포기하면서도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인터뷰이한테 어떻게 말할까?'였다.
다행히 두 분은 다른 곳에 게재하는 것을 흔쾌히 동의해주셨지만, 한 분은 진노하셨다. 자신의 삶 속에서 많은 탄압을 받으신 점 때문에 피해의식도 있을 것이고, 그 분의 높은 자존심으로 볼때 용납하기 어려우셨던가 보다. 내가 일부러 속인 것도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고, 시간이 계속 흐르면서 마음 고생은 커져갔고, 안절부절하고만 있다가 결국 담당기자와 같이 찾아뵙고, 그 분의 호통을 듣고 나서 고문 받던 얘기며 하시고 싶으신 말씀을 들었다.
그러면서 '젊은 친구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 이걸로 끝내자고'라는 말을 들으면서 결국은 울고 말았다. 내가 억울해서라기 보다는 그 분의 삶을 생각하고, 내가 그 분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파 울기 시작했고, 나와서도 한참을 울었다.그 분에게 상황을 이해시켜드릴 수 없는 부분이 답답하기도 했고.
나는 인터뷰를 하기 전에 '내가 저 분의 시간을 한 시간 뺏을 자격이 있는가?'를 고민하고, 그 한시간을 빼앗아서 그 분이 '괜찮은 자기 기록을 하나 가지게됐다'는 만족을 얻기만을 바란다. 많은 인터뷰이들이 나를 신뢰하는건 나보다는 인터뷰이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내 태도 때문일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나의 인터뷰어로서 몇 안되는 미덕이기도 하다.
내 태도가 그렇기 때문에 인터뷰이를 내 기사에 구겨넣는 짓은 안한다. 대답을 유도하지도 않는 편이고, 설혹 기대했던 대답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실망하지도 않고, 혹 실망했다손 치더라도 그걸 왜곡하지 않고 텍스트로 다 보여주는데 뭐가 문제가 될까?
어떤 이는 유시민 의원과의 인터뷰에서 '지승호가 유시민 의원의 입을 빌어 노빠와 유빠 비판을 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만에 하나 그렇다고 치더라도 뒷다마까는 것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한번 짚어보자는 게 무슨 잘못인가) 유시민 의원은 거기에 대해 유시민 의원 답게 '날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들 좋아서 하는 거고, 그것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해도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떨어지고 '농부가 밭을 탓하겠느냐'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 사람들의 과격성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게 만드는데 대한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니다. 만약 지오디의 팬클럽이 있고, 열성적인 일부 팬들이 다른 곳에 가서 지오디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욕한다면 나머지 팬들이 '그런 것은 자제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는거 아닌가.
그리고 그런 문제에 대한 유시민 의원의 견해를 듣고 얘기를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보다시피 유시민 의원의 대답을 듣고는 이 문제를 길게 얘기하는게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내가 남을 비판하고 싶으면 내 스스로 얘기하지, 뭘 남의 이름을 빌어 비판을 하겠나, 난 열등감에 가득차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르시스트'이기 때문에 남의 입을 빌려 다른 사람을 공격할만큼 옹색하지 않다. 자기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남들도 다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닐까. 그리고 인터뷰를 할때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어떤 말을 해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대감이 없다. 만약 그걸 갖고 있다가 다른 대답이 나오면 실망할텐데,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겠느냐는 말이다.
내 말이 옳지 않은지에 대한 논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너 그러려고 했고, 그것때문에 속쓰리지'라는 식의 추측성 비판이나 비아냥은 사양하고 싶다.
어쨌든 이런 저런 상황 때문에 우울증이 도졌다. 그리고 몇가지 더 답답한 생각이 드는게 있고, 절친한 후배가 힘든 상황이 되어서 가슴 아픈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여기서 얘기하기 힘들 것 같다. 공적인 가치와 사적인 가치가 복잡하게 충돌하는 부분도 있고, 그 친구가 전화를 통해 얘기했던 '정말 답답하고, 억울하고, 미치겠어. 우울증이 도져가지고 자살할 것 같아'라는 말이 귓전에 맴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 친구에게 해줄 것이 없다. '조만간 내가 찾아갈테니 얼굴보고 얘기하자'고는 했지만, 역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중에 그 녀석의 빈소에 가서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이렇게 갈 줄은 몰랐다'는 얘기 밖에 해줄게 없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신과 의사는 “우울증 환자는 목숨을 끊는 게 아니라, 자신을 힘들고 무기력하게 하게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자살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결코 내 탓'이라는 자책감, 그로 인한 무기력감, 내 존재에 대한 무가치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그래도 내 꿈은 충분히 크고, 뭔가 할 수도 있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 할때, 뭘 할 수 있을때 증명해내야 한다'는 초조감 이런 것들로 인해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여기다가 그렇게 쓰는 놈도 있을 것 같다. 지 멋대로 해석해서 '또 앵벌이하는 거냐? 돈달라는 거냐?'
필요없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살지 말기를 부탁한다. 제발.
사람이 싫더라도,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