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시비돌이 > 생활의 재발견

1년쯤 전에 썼던 글. 특별히 달라진건 없고, 늘 반복되는 일인 것 같다. 그런데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점점 더 악화되는 것 같기도 하다.

1. 


요즘 내 삶이 참 추하고, 비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홍상수의 영화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불편하다.


2. 


요즘 들어 엄청난 섭외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일단 사람에게 전화를 하는게 무서우니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 야구선수가 야구장 파란 잔디만 보면 가슴이 답답해 오는 꼴이니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거의 진행하기로 한 단행본 기획 하나를 포기하고, 잡지사 인터뷰를 펑크내버렸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 선택을 한 이후 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진 탓인지 걸린 감기가 며칠째 괴롭힌다.


3. 


  몇 달 동안 난 영화 보는 것이 거의 유일한 낙이었던 듯 하다. 그런데 그것도 너무 많이 보다 보니 스토리가 엉킬 정도로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지난해 초부터 10월까지 채 20편의 영화도 못봤는데, 최근 5개월 동안 100편이 넘는 영화를 봤다. 현실 도피 였나? 그 사이에 내가 하고 싶어서 했던 인터뷰는 두세건이 못되었던 듯 싶다.


4. 


(스포일러라는게 있다던데, 영화의 일정한 결과를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건너뛰시기 바란다. ^^)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과 류승완의 주먹이 운다.

한국 영화 매니아인 나는 이 두 영화로 인해 너무 행복했다. 두 개성 넘치는 감독의 영화가 동시에 개봉되는만큼 기대감은 정말 컸다. 그래서 개봉되는 날 저녁에 달콤한 인생을 봤고, 며칠 후 시간을 내서 주먹이 운다를 봤다.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이 나름대로 운치가 있는데, 이런 영화들은 혼자 보고 나서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해야 제 맛인 것 같다.

 

달콤한 인생.

 

김지운 감독의 말대로 소통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냥 술한잔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더라면 아무렇지도 않을 사소한 일이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만큼 심각한 파국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그냥 술한잔 마시면서 ‘너 왜 그랬니?’, ‘죄송해요. 순간 흔들렸어요’, ‘앞으로 그러지 마라. 감봉 3개월이야’라고 했으면 끝났을 일을 그들은 그렇게 해결하지 못했다. 손 하나를 날리거나, 파묻힐 수 있는 상황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랴? 그리고 입장이 바뀌어서 이병헌이 총을 머리에 들이대는 상황에서 ‘왜 그랬어요?’라는 질문에 그 복잡미묘한 감정을 설명할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대화방식을 생각하고,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런 방식의 삶을 사는 우리들 자신에게 연민을 느꼈다. 황정민의 연기야 정평이 나 있는 것이고, 딱 한 배우를 빼고 정말 출중한 배우들의 연기도 돋보였다. 물론 주먹이 운다도 마찬가지 였고.

 

 주먹이 운다는 사업이 망해서 매맞는 일로 돈을 버는 전직 복서와 뒷골목 양아치의 삶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준다. 두 사람 모두 혹은 한 사람에게 감정이 지나치게 이입되는 신파로 흐르기도 쉬운데, 류승완 감독은 어느 누구도 편도 들지 않게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이 들게 깔끔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강태식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류상환의 인생이 궁금하고, 류상환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강태식의 인생이 궁금했다. 마지막 신인왕 결승전에서 만난 두 사람의 경기를 보면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누구도 응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화 속에 나온 모두 다 사실은 그런 하나의 사연은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60억의 인구에게는 60억개의 진실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경기를 보면서 난 무승부로 공동우승이 결정되었으면 하는 신파적인(?) 생각을 했다. 그러나 류승완 감독은 잔인하게도(?) 경기를 승부를 내버렸다. 마치 그런게 현실이라는 듯이.


5. 


지혜린이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손톱 물어 뜯는 버릇이 없어 다행이야“

아마 내 손톱 물어뜯는 버릇 때문에 그런 말을 했는가 싶다. 나는 불안하면 손톱은 물론 손에 있는 살들까지 물어뜯어서 피가 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불량 아빠인 나로서는 알라바이(?) 하나가 생겼다 싶어서 ‘그것봐. 아빠가 너한테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하니까 그런 버릇이 없는거지’ 그랬다가 혹 하나 더 달았다. ‘웃기네. 내가 아빠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지 알아?’


6. 


요즘 술 마시는 횟수는 대폭 줄었지만, 그만큼 마실 때 폭음을 하게 된다. 우울증이 심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그러다보니 필름 끊기는 횟수도 잦아졌다.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맥주를 많이 마셨고, 새벽에 들어와서 술주정을 부리면서 식구들을 괴롭혔나 보다. 그리고 아침 일찍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잔소리가 시작된다. ‘너 자꾸 술먹고 들어와서 시끄럽게 굴고, 사람들 잠 못하게 할래?’, 그런데 당췌 기억이 안난다. ‘내가 언제 술주정 했다고 그래?’, 언성이 높아진다. 앞의 대화가 반복된다. 그러다가 난 미친 척을 한다. ‘내가 술주정을 했다고?’, ‘그래’....

‘정답~~~ 빰빠바바밤 빰빠바바밤 빰빰빰 호이짜...’ 하면서 화상고에 나오는 개구리 권법까지 하다가 졸라 맞았다. 그땐 억울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맞을 짓이었던 것 같긴 하다. ㅠ.ㅠ


7. 


지난 주에 친구가 하는 술집에 가서 또 추태를 부렸다. 별 것 아닌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남의 가게에서 통곡을 해대서 손님들까지 나서서 달래주고 난리였다. 쪽팔려 죽겠다. 친구도 난감했던지 끌고 나가서 다른데서 한잔 하면서 얘기하자고 했고, 난 울면서 소주를 들이붓다가 또 필름 끊겼다. 이제 거기 쪽팔려서 못가겠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냥 그것도 술주정이었나보다.


8. 


망기지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고, 되도록 욕 먹지 않는 삶을 살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사람들이 욕을 안하는 것도 아니다. 필요하면 좀 더 망가져야할 것이고, 좀 더 단호하게 살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정혜신 박사의 충고대로 플러스 보다는 마이너스가 되는 댓글들은 되도록 안 읽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9. 


잘할 수 있고, 잘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무식하거나, 편협해서 자기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죄악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한계인 것을.


10. 


지난 주에 나갔던 CBS ‘김종휘의 문화공감’ 프로그램에서 김종휘씨가 이런 말을 했다. ‘마주치다 눈뜨다 책을 보다 보니까 재밌는게, 김어준씨와의 인터뷰를 보면 두 사람이 벌판에서 발가벗고 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손석희씨와의 인터뷰를 보면 아주 얌전한 모범생 둘이서 방안에 들어가서 정장을 입고, 소곤소곤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부러 그렇게 하는거냐?’라는 질문을 받고, ‘내 삶에 대한 태도 자체가 그런 것 같다’는 대답을 했던 것 같다. 늘 구석에서 사람을 관찰하는게 내 삶이었으니 그런 태도가 몸에 배긴 했을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지승호의 인터뷰어로서의 미덕이 뭘까?’, 역설적으로 인터뷰어로서의 재능없음이 지승호의 미덕인 듯 하다. 아마 내가 그림에 자신이 있었다면 내 의도가 많이 들어간 그림을 그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림에 재능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의 초상화를 그 사람에 가장 가깝게, 내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데로 그리려고 노력하는 것일게다. 그래서 내 인터뷰에서는 늘 난 없고, 인터뷰이만 보인다. 그게 여러 가지 인터뷰 형태 중에 한 형태로서의 미덕은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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