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그녀 이야기

아직까지도 주변을 둘러보면 반반한 얼굴 하나 가지고 인생을 거저 먹으려고 드는 여자들이 있다. 내가 아는 A양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장해서 길거리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꽤나 뒤돌아보던 A양은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인간성도 괜찮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던 A양은 흔히 예쁜 여자가 가진 도도함이 없었기에 그야말로 파리떼 꼬이듯 갖은 부류의 남자들이 그녀 주위에 득시글거렸다.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부터 (띠동갑 정도는 우스웠다.) 유부남, 그녀보다 키가 20cm는 작은 남자. 하릴없는 백수. 이혼남 등등. 미혼인데다 나이도 어리고 예쁜 그녀에게는 그다지 어필할것 같지 못한 남자들까지 그녀를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나무라 생각하고 찍어댔다. 그래서 그녀가 택한 것은 그 남자들을 이용해서 인생을 쉽게 쉽게 사는 것이었다.  집이 가난했던 그녀는 학창시절부터 남자들에게 용돈을 받아서 썼으며 대학 등록금에 어학연수. 한동안 나와서 혼자 살때의 생활비까지 그녀의 주변을 멤돌던 모든 남자들의 도움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젊고 어렸을때나 해당되던 얘기들이었다.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그녀는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꼬이는 남자들이 줄어들었으며 그나마 저 위에 나열한. 그녀에게는 그냥 조건으로만 볼때 약간 처진다 싶던 남자들보다 더더욱 처지는 남자들만 달라붙었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 그녀는 한창때 보다 30kg이 불었으며 젊은시절 생각없이 논 댓가로 임신중절 수술을 3번이나 해서 몸도 많이 상했다. (그 수술 자체로 몸이 상한게 아니라 수술후 체질이 바뀌어서 몸이 상해버렸다.) 즉. 간단하게 말 하자면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아름답지 않다. 키가 무척 큰 그녀는 살집이 붙어버리니 왠만큼 등빨 좋은 남자 저리가라로 거대한 체격이 되어버렸고 밤새워 음주 가무를 즐긴탓에 눈 밑에는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다크서클과 주름. 그리고 흐리멍덩한 눈동자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아름답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마음만 먹으면 이 골때리는 현실에서 자신을 구해줄 왕자님이 줄을 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의 인생은 그녀가 개판을 친 만큼 가혹해졌다. 빚은 산더미처럼 늘어났고 직장도 다니지 않고 있다. 거기다 그녀에게 혹해서 돈을 빌려준 남자들은 시도때도 없이 전화해서 돈을 갚으라고 닥달을 한다.(정 돈을 못 갚으면 만나달라고 한다.) 내가 만약 그녀라면 미처버렸을지도 모를 만큼 지금 그녀의 삶은 황폐하기 그지없다. 얼굴이 반반했던 그녀는 아직도 연예인이 되기를 꿈꾸며 명동거리를 쏘다니고 학교 다닐때 문학소녀였던 그녀는 대뷔를 안해서 그렇지 다잡고 앉아서 글을 쓰면 작가 정도의 타이틀은 우습게 따낼꺼라고 믿고 있다. 그녀에게는 아직도 세상은 만만하다. 마음만 먹으면 인생대역전을 할 수 있을만큼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다. 서른이 다된 여자를 발굴해서 키울 연예기획사는 이땅에 없으며 학창시절 책장 꽤나 넘겼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된 습작하나 써 보지 않고서도 덜컥 작가가 되어버리는 꿈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더더군다나 그녀가 개판 쳐 놓은 인생에서 그녀를 건져줄 왕자님 같은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요즘 그녀의 꿈은 돈 많은 남자를 물어서 시집을 가는 것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남자들은 예쁘면 뭐든 다 용서를 한다고 한다. 과거가 되었건 빚이 되었건. 그런것에 발목 잡히는 여자들은 예쁘지 않기 때문이지 예쁜 여자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말이다. 물론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단지 얼굴이 이쁘다는 이유 만으로 그녀가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인생을 수습해주고 좋은집과 차에 모모 사모님 소리를 듣게 해 줄 골빈 남자는 별로 없다. 이제는 더 이상 그녀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충고하고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스물 아홉이다. 무언가 바뀌기에 늦은 나이는 아닌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전부를 바꾸기에는 그녀의 고달픈 삶은 그녀의 생각없는 과거로 인해 너무나 타이트하게 달라붙어 있다.

가끔 전해듣는 그녀의 소식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왜 나타나지도 않은 꿈속의 왕자님이 동화에서처럼 계모의 독사과와 구박보다 더 몸서리쳐지는 현실에서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어째서 자기 인생인데 자기가 책임지려고 하지 않고 남이 어떻게건 해 주기를 바라는가.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할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이 결손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말 한다. 환경이 많은것을 결정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확실히 정상적인 집안에서보다 문제많은 집안에서 문제성 인간이 될 확률이 높은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 저런건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어차피 세상 모든 인간들의 출발선이 똑같지 않을꺼라면. 남들 보다 조금 더 빨리 뛰면 된다. 이왕지사 처진 인생 대강대강 걸어가지 뭐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평생을 그렇게 대강대강 살아야 한다. 처음부터 처져있는 것을. 더구나 자기탓이 아닌걸로 처진걸 원망하다 보면 밑도 끝도 없다. 그보다는 조금이라도 이를 악 물고 달려서 앞서가던 그들을 따라잡는게 백번 낫다. 이제 그녀는 더이상 집안환경을 탓할 나이가 아니다. 그건 스무살 언저리까지만 해당된다. 그때는 그 이유를 대면서 가출을 해도 나쁜짓을 해도 어느 정도는 용서가 된다. '그래 집안이 그러니 오죽 마음이 심란하겠어' 하고 말이다. 하지만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그런다면 그건 순전히 자기 탓이다. 더구나 그녀 집안의 사람들은 좀 콩가루가 날리기는 해도 서로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병든 몸으로 아파트 수위를 해서 겨우 살아가는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방세 한번 보탠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대학교때 저지른 카드빚을 아버지가 갚아줬었다.)

저렇게 살면서도 그녀가 스스로 행복하다면 그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그렇지 않다. 스스로 몹시 불행해 하고 있다.  두통약과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이룰 정도며 각종 독촉전화에 전화벨만 울리면 심장이 벌렁거린다고 한다. 그녀는 반성을 끔찍하게 싫어하고 문제가 생기면 덮어두는걸 좋아하며 어떻게건 되겠지라는 말은 그녀가 가장 잘 쓰는 말이다. 과연 그녀 말 대로 그녀의 인생을 180도 바꿔줄 남자를 만나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녀는 어떻게 될까? 이제 두어달만 있으면 세상을 산지 30년째 되는 그녀에게 앞으로 남은 30년은 행복할 수 있을까? (얼마전 그녀가 일하기에 적당한 자리가 나와서 소개를 시켜줬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이력서조차 내지 않았다고 전화가 왔다. 그 소식을 전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그녀는 레스토랑에서 혼자 늦은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입맛이 없어서 좀 비싼걸 먹으면 나아지려나 싶어서 스테이크를 먹고 있다고 좀 있다 백화점에 쇼핑할껀데 뭐 부탁할것 없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 일자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와는 맞지 않을것 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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