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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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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몇 권 읽지도 않았다. 나이를 먹어서도 그랬다. 남들이 좋다고 칭찬하면 '분명 나쁜 점이 있을텐데…'하며 눈에 불을 켜는 못돼먹음을 기본 옵션으로 갖고 있었던지라 긍정적 측면을 중심으로 실존 인물의 삶을 짚어나가는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을 삐쭉거리곤 했다. 지루했다.


그뿐인가. 러시아 역사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파시스트는 인간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심한 욕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주의는 영 맞지 않는 옷 같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책은 겨우 한 권 밖에 못 읽어본데다가 그 한 권도 끝까지 못 읽었고 크게 재미있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이러니, 리모노프를 펼쳐들기 전 내 마음이 가벼웠을 리가 없다. 리모노프를 읽기에 적절치 않은 요건을 이리도 두루두루 갖고 있으니. 심지어 책은 또 왜이렇게 두꺼워? 마음에 드는 건 표지 하나 뿐이었다. 보기만 해도 신맛이 입 안에 고이는 레몬과 수류탄의 조합. 이것이 '리몬카'에서 나온 디자인이겠구나 하는 건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래도 어디 한번 읽어나 보자'였던 마음이 조금씩 변한 건 프롤로그를 거의 다 읽어갈 때쯤이었다. 리모노프가 엠마뉘엘 카레르에게 세면대에 대한 일화를 얘기해주는 장면, 그러니까 감옥에서 철제 세면대를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을 맞닥뜨렸을 때, 딱 집어 말하자면 여기서.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처럼, 볼가 강변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 수감된 일반범의 세계와 필립 스탁의 디자인 속에서 유영하는 멋쟁이 작가의 세계, 이토록 이질적인 세계뜰을 두루 경험한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 틀림없이 많지 않아, 라는 결론에 이르는 순간 그는 자긍심을 느꼈다. 그 심정, 나도 이해한다. 바로 그 때문에 내가 이 책을 쓰려는 것이다. (37쪽)


이질적인 세계를 두루 경험해 본 이의 자신만만함 속에서 나는 자신이 그 중 어디에도 완전히 속한다고 느끼지 못하고 떠도는 이의 그림자를 느꼈다. 그 그림자는 자주 나의 것이기도 했기에, 왠지 나는 그 스킨헤드 민병대의 우두머리인 몹쓸 파시스트(라니, 어감은 정말 무시무시하다!)이자 우크라이나의 깡패로 출발해 소비에트 언더그라운드의 아이돌, 맨해튼의 거지, 억만장자의 집사를 거쳐 파리의 인기 작가로, 발칸 반도를 헤매던 사병으로, 그리고 이제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혼란기에 청년 무법자들의 당을 이끄는 카리스마 넘치는 늙은 보스로 살고 있다는 그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의 이야기가 읽고 싶어져 버렸다. 갑자기 불현듯이 우르르쾅쾅쾅쾅!



죽음조차 그는 두렵지 않았다. 무명으로 죽는 게 괴로울 뿐이었다. (201쪽)

어떤 사람은 자신이 남들보다 유명하지 않다는 것 때문에 고통받는다. 어릴 때는 나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보다 튀고 싶어했던 것 같고,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던 것 같고, 리더 같은 역할을 잘 한다고 평가받았던 것 같다. 지금은 나의 가장 큰 욕망이 바틀비처럼 상대의 모든 말에 I would prefer not to라고 대꾸한 후 총총히 사라지고 싶어하는 욕망이라는 걸, 그러니까 내가 노출과 외양 대신 고독과 은둔을 익숙히 여기는 엠마뉘엘 카레르와 가까운 인간이 되었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서 나는 이 불같은 성미에 청개구리 같은 친구(269쪽)의 순수한 욕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잘나가고 싶고, 잘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고 싶고, 그래서 잘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면 그들보다 더 잘나가고 싶고, 그들과 다르고 싶고, 그렇지만 막상 더 잘나가면 허무하고, 왠지 이게 아닌 것 같고, 그래서 딴 길로 가버리는 청개구리. 그것이 청년 에두아르드의 삶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사람 도대체 언제 진짜로 잘나가게 되는 거지? 


안나의 집주인이 되었을 때나 엘레나와 함께 큰 뜻을 품고 러시아를 떠났을 때는 금방 '청년천재문호 에두아르드'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엘레나와 헤어지고 엉망으로 살다가 제니를 만났다 헤어지고 스티븐의 집사로 살았던 에두아르드의 이야기는 버스 안에서 끽끽거리고 웃게 해 줄 만큼 재미있었지만, 나는 조금씩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226쪽이나 읽었는데 아직도 엄청나게 유명해지지 않았으니 어쩌면 좋아! 이 유명해지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 이 남자가!!



강하고 못된 그가…모든 민중의 착한 무기력함을 지켜 주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었다. (296쪽)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는 그의 화려한 성공담이 줄줄 나열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뒷표지에 쓰인 리모노프의 인생 요약 중 '문단의 풍운아로 뉴욕과 파리를 휘어잡다가'에 해당하는 부분은 '미국 이민 길에 올라'에 해당하는 부분보다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성공한 리모노프는 조금 알려진 작가에 만족하지 않고 정말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야심에 불타고 있었으니까. 달콤한 맛에 취해 있을 여유 따위 없었던 거다. 그사이 강하고 음울하다고 믿었던 고국 소련은 급격히 변해가고, 적군 사병의 군복 단추가 놋쇠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뀐 것을 보며 군인들이 이렇게 조악한 고국을 볼썽사납게 입고 다니는 나라의 국민은 자신감을 상실한 국민이며, 더 이상 주변의 존경도 받을 수 없는 국민(269쪽)이라며 기분 나빠하던 리모노프는 1989년 12월, 소련으로 돌아간다.


그 이후 리모노프의 삶은 소련의 현대사와 맞물려 돌아간다. 고르바초프와 옐친, 푸틴으로 권력 구도가 이어지는 와중에 등장하던 러시아의 수많은 정치인들은 낯설었지만, 자본주의의 폭격과 무시무시한 독재정치로 쑥대밭이 되어가는 나라 꼴은 어디서 보던 거랑(-_-) 너무 많이 비슷해서 기분이 꽤 묘했다. 특히 <충격 요법>의 등장 이후에 대한 부분. 


지폐를 포대로 들고 다니면서 늘씬한 미녀들을 정부로 거느리는 포악하고 상스러운 <신러시아인>이라는 인물 유형이 현대적 신화로 등장했다. (중략) 수완 좋은 1백만 명이 <충격 요법> 덕에 벼락부자가 되는 사이 나머지 1억 5천만 명의 꽁다리들은 빈곤에 시달렸다. 물가는 지속적으로 올랐지만 임금은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했다. (360쪽)


거물들은 콤비나트나 천연자원 매장지를 놓고, 피라미들은 가판대나 시장 좌판을 놓고 서로 혈투를 벌였는데, 손바닥만 한 가판대든 손바닥만 한 시장 좌판이든 무조건 <지붕>이 필요했다. 이것은 난립 중이던 경호업체들에 붙여진 이름으로, (중략) 갈취를 일삼는 강도 집단과 하등의 차이가 없었다. (362쪽)


기껏 열에 한 명만 총을 든 시위대를 기다리는 것은 결사 투쟁의 대오로 서 있는 오몬 부대였다. 오몬들은 버스들이 도착하기 무섭게 발포했고, 곤봉을 휘두르며 돌격해 왔다. 곤봉으로 시위자들을 가격하고 총을 난사하면서 전진해 왔다. 살육이었다. (386쪽)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정부가 독재를 자행하며 국민들의 피를 빨아먹고, 이를 견디지 못한 이들이 반란을 일으키자며 '극우민족주의파시스트집단'의 형태로 시위를 하다가 정부군에 의해 짓밟히는 모습. 폭력적인 정부와 극우파시스트 중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반동인지 누구도 구별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리모노프는 끝까지 약한 자들의 옆에 서 있으려고 했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파시스트라는 딱지를 붙일 수 없는 이유이다. 물론 엠마뉘엘 카레르는 '에두아르드라는 파시스트'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ㅋ


에두아르드라는 파시스트한테 한 가지는 인정해 줘야 한다. 그는 과거나 지금이나 항상 소수의 편에 서 있다. 뚱뚱한 사람들보다는 마른 사람들,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 수두룩하게 있는 착한 사람들보다는 당당한 개차반들의 편이다. 갈팡질팡하는 듯 보이는 인생 역정이지만 그는 언제나, 정말로 언제나, 그들의 편에 서는 일관성을 보여 주었다. (436쪽)



그가 늘, 용기 있게 어린애처럼 고집스럽게 되고자 했던 영웅 (472쪽)

그러니 정치인 에두아르드의 삶이 평탄할 리 없다. 출마를 하고(당연히 낙선하고) 전쟁에 뛰어들고(심지어 사람도 죽이고!) 당을 없애라는 정부의 방침에 "합법적인 길을 막으면 우린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겁니다."라고 대꾸한 후 정치적 탄압을 당하고 중앙아시아를 떠돌고 알타이의 오두막에서 갑자기 체포당하고(심지어 대령에게 스카우트 제안도 받고!!) 그리고 그리고 테러리즘, 무장 단체 결성 및 가입, 총기의 불법 취득과 운반과 판매 및 저장, 극단주의 활동의 선동으로 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하고…

하지만 나에게는 '정치 투사로서의 파란만장한 삶'보다 감옥에서 에두아르드가 보여준 '좋은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더 인상 깊었다. 이 때의 에두아르드를 묘사하는 엠마뉘엘 카레르의 시선이 가장 호의적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 그가 감옥에 있을 때를 리모노프의 인생의 절정기였을지도 모르는 때, 진정으로 위대한 인간이자 영웅에 가장 근접했던 때라고 설명한 거겠지. 너무 이상적이었다면 좀 짜증스러웠겠지만, 마흔 살 차이가 나는 애인 나스치아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말하지 못하고(심지어 그는 출소 후 나스치아와 바로 헤어진다) 나타샤가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자신의 형량 선고 소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의 모습은 '완전히 이상적인 인간'과는 또 좀 멀어서, 짜증나지 않았다.

에필로그에서 에두아르드가 자신의 입으로 말한 것처럼 그의 삶은 부분적으로 개떡 같을지도 모른다. 500페이지 넘게 서술한 주인공의 삶이 결국은 '개떡'이라니, 엠마뉘엘 카레르가 독자들 입장에서 실망스러운 결말이 될 거라고 걱정할 만 하다. 하지만 에두아르드의 그 말이 진심은 아니었을거라고 나는 믿고 싶다. 나르시스트이고 에고이스트인 그가 진심으로 자신의 삶을 개떡에 비유했을 리 없을 거라고. 평온한 노년이나 은퇴 대신 중앙아시아에서 넝마를 걸친 채 모두 다 내려놓은 사람들로 생을 마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그가, 그럴 리 없다고.

그러므로 이 책의 결말은 하나도 실망스럽지 않다. 잘나고 싶었고, 유명해지고 싶었고, 강하고 싶었고, 그래서 많이 갖고 많이 누리고 싶어했던 에두아르드 베니아미노비치는 재산도 이름도 없이, 모두 다 내려놓은 사람들로서, 동전을 던져 줘도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는, 느리고 격렬한 도시 안 사원들의 높은 담장 및 그늘에서, 왕처럼, 늙어가는 누군가의 모습을 편안하게 떠올리고 있으니까. 그게 자신의 미래여도 그는, 아무렇지 않다고 여기고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히, 감동적이니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사족 1. 소설을 다 읽은 후 너무나 당연하게!! Eduard Limonov를 찾아보았다. 여러 페이지가 나왔는데 그 중 두 개만 링크해 본다. 하나는 리모노프와 격렬하게 사랑했던 나타샤에 관한 페이지 : http://ex-soviet.blogspot.kr/2006/11/natalia-medvedeva.html 다른 하나는 리모노프의 사진이 청년 시절부터 노년 시절에 이르기까지 쭉 올라와 있는 페이지 : http://www.tout-sur-limonov.fr/222318826 리모노프의 연인이었던 여인들의 얼굴도 모두 볼 수 있고 소설에서 언급된 엘레나와 리모노프의 사진도 올라와 있다. 리모노프의 누드 사진도 ;ㅂ; 엘레나와 리모노프의 '그' 사진만 올려 보면,


설마 음란물로 신고당하진 않겠지;



사족 2. 리모노프의 표지는 소설리스트(www.sosullist.com)의 2015년 세 번째 표지갑으로 선정된 바 있다. (표지갑이란 그 주에 나온 소설 중 가장 표지가 훌륭한 책을 뜻한다) 디자이너는 Fallk Nordmann이라는 분. 소설리스트에 링크된 그분의 웹사이트에 가 보니 작업하신 여러 책 표지가 올라와 있었다. 거기서도 리모노프는 눈에 띄었다. 웹사이트 주소는 http://falknordmann.de/illu/buch/falk-nordmann-buch.html


사족 3. 박노자 씨의 비굴의 시대에 리모노프의 활동을 국내 NL과 비교하는 부분이 있었다(리모노프를 다 읽은 후에 알았다. 읽어봐야겠다). 박노자 씨는 '두긴이 당을 떠난 뒤로 민족볼셰비키당은 한국이나 남미나 중미의 좌파 민족주의의 전형에 가까워졌다'며 에두아르드가 대통령 선거 출마 때 내걸었던 공약을 제시하고, '지금 러시아의 여러 반독재 민주화 운동 세력 중에서는 리모노프의 무리야말로 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이며 열정적이고 자기희생적'이라고 평가했다. 오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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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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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소설을 추천했을 때는 기분이 좋고, 좋아하지 않는 소설을 추천했을 때는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문제는 선후가 바뀌었을 때, 그러니까 좋아하는 작가가 좋다고 한 소설을 읽을 때다. 그분이 좋다고 했으니까 나도 이 책이 좋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이 책이 재미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뭔가 대단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할 것 같은데…하는, 참으로 이상한 부담감에 나도 모르게 압도당하는 것이다-_- 게다가 그런 책들의 대부분은 끝까지 읽지 못하게 되니, 더 슬픈 일이다.


『플래너리 오코너』를 읽기 전에도 그랬다. 이 책은 소설리스트(sosullist.com)의 '금요일의 리스트'에서 이 주의 책으로 당당히! 선정된 책이다(그 주의 '표지갑'에도 선정됐다ㅎ). 김연수소설가님을 비롯한 여러 소설리스트의 필진들은 이 책을 '2014년의 소설 베스트 3' 중 한 권으로 꼽았다. 정이현소설가는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출판된 플래너리 오코너의 소설집을 극찬했다(팟캐스트 낭만서점에서). 



믿을 만한 작가들이 이렇게까지나 입을 모아 칭찬한 책인데, 당연히 나도 '참 좋은 책이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틀린 거 아닌가. 만약에 틀려버리면 어쩌나. 이번에도 끝까지 못 읽으면 어쩌나…하면서 책 표지를 덮었다 폈다 한 게 삼일쯤. 어쩌긴 뭘 어째,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하며 '제라늄'부터 읽기 시작했고, 두 번째 소설인 '이발사'를 다 읽어갈 때쯤 이 책이 마음에 들어 버렸다. 성급하게도.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시간 동안, 나는 자주 불편했고 자주 머리칼이 쭈뼛 섰다.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내 얼굴이 계속 비쳐보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들은 어딘가 일그러지거나 균형을 잃은 것이어서 나는 자꾸만 부끄러워졌다. 깜둥이 옹호자냐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던 이발사와의 바보 같은 대화를 계속 되새기면서 '자신이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대응했을 말들'을 밤새도록 떠올려 보는 '이발사'의 레이버, 어머니가 들으면 머리를 후려갈길 말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에게 들려 주며 폭소하는 '칠면조'의 메이슨, 뒤집혀진 자동차 밖으로 나가서는 신이 난 목소리로 "사고가 났어요!"라고 소리치다가 절뚝거리며 차에서 나오는 할머니를 보고서는 "하지만 아무도 안 죽었어."라며 실망하는 '좋은 사람은 드물다'의 준 스타, 계단 꼭대기로부터 곤두박질쳐 중간 즈음에 거꾸로 뒤집힌 노인을 그대로 두고 지나간 '심판의 날'의 '뉴욕 사람'…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곤혹스러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등골이 서늘했던 것은 도덕적 우월감으로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인간들이 인정사정없이 파헤쳐져 있는 것을 보아야만 헀을 때였다. 책 속의 구절을 빌리자면, 이런 인간들 말이다.


어머니의 행동은 한결같았다. 그것은 좋은 의도로 세상의 미덕을 우롱하는 것, 미덕을 너무도 생각 없이 추구해서 거기 힌 모든 사람이 바보가 되고 미덕 자체도 빛을 잃게 만드는 것이었다.

-'가정의 안락' 중, p.516


친절한 말투와 표정으로 선의에서 비롯해 보이는 행동을 한 후에 나 지금 지나치게 친절했어, 사실은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하고 깨달을 때가 있다. 하고 싶지 않았던 행동을 적극적으로, 심지어 친절하게 해치워 버린 내 마음의 바닥에 '나는 이 정도의 친절을 아무렇지 않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면 두려워진다. 남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크지 않은 내게 가식적인 행동을 했다는 죄책감은 거의 없다. 남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든지 말든지 나는 선하고 정의로우니까 상관없다는 도덕적 우월감이 내겐 더 가깝고, 그렇기에 더 무섭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작품을 읽는 내내 이런 종류의 공포를 맞닥뜨려야만 했다. 조금도 기쁘지 않은 표정과 말투로 '불쌍하고 배고픈 아이들'이 찾아와 기쁘다고 말해 놓고는 그 아이들이 자신에게 끼칠 피해와 불편함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불 속의 원'의 코프 부인을 보면 너그러운 척 친절을 베풀고는 후회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총을 든 부적응자를 "당신은 좋은 핏줄이에요! 숙녀를 쏠 사람이 아니에요!"라며 다독이다가 "너도 내 아기들 중 하나야. 내 새끼들 중 하나!"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총에 맞아 죽은 '좋은 사람은 드물다'의 할머니를 보면서 다른 이의 아픔이나 상황을 공감하는 척, 이해하는 척 하다가 진실을 알아챈 상대의 반응에 난감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주변을 보세요, 지금 어머니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

-'오르는 것이 한데 모인다' 중에서, p.547


31편의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다. 플래너리 오코너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이 책을 찾아 읽게 되리라는 예감이 강하게 드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떤지, 얼마나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지, 얼마나 남을 속으로 깔아뭉개고 있는지, 얼마나 겁먹고 있으면서 안 그런 척 허세를 부리고 있는지, 똑바로 고개를 들어 직시하라고 뒷통수를 한 방 갈겨준 게, 이 책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자주 읽을 생각이다. 길게 시간을 두고 한 편씩 천천히 다시 읽을 생각이다. 다시 읽을 때는 어떤 인물이 또 나를 부끄럽게 만들까 싶어 기대나 설렘 대신 두려움이 먼저 일어나지만, '진짜 현실'에서 뒷통수를 맞는 것보다야 플래너리 오코너를 읽으며 부들부들하는 게 낫겠지. 아직 출간되지 않은 것 같은 그녀의 장편소설과 전기도 곧 읽을 수 있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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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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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팟캐스트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한 가수가 공연을 하러 갔는데 공연장에 어려 보이는 관객들이 많더라고. 몇 살인지 물어봤더니 열 다섯 살이란 대답이 돌아왔다고. 그 대답을 듣고 나니 이 관객들이 이제까지 살아온 만큼을 더 살아도 지금 내가 살아온 것보다 많이 산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도대체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온 건가 싶어 아찔했다고. 


지평을 읽는데, 이상하게 그 얘기가 자주 떠올랐다. 그와 몇 살 차이나지 않는 나도 자주 내가 너무 오래 살아왔구나 싶어 아찔함을 느끼기 때문일까. 희미해진 날짜들, 장소들, 얼굴들, 소리들, 냄새들이 이 긴 시간 속에 묻혀 있겠지. 그만큼의 날짜들과 장소들과 얼굴들과 소리들과 냄새들을 앞으로도 기억해야 할 지 모른다는 게 문득 버겁게 느껴지곤 한다.



2. 소설 속의 시간은 잔뜩 주름져 있다. 주름 사이사이에는 잊었던 이름들이 묻혀 있다. 메로베, 즐거운 도당, 세르슈 미디 가, 리슐리외 대행사, 세비녜 호텔, 이본 고셰, 꼬맹이 페터…수많은 별의 파편과 부스러기들이. 질질 늘어난 현재는 잔뜩 구겨져 있다. 뚝뚝 토막난 과거는 현재 주변에 흩어져 있다. 보스망스는 수첩에 메모를 하며 과거의 조각들을 모은다. 될 수 있었거나 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며 현기증을 느낀다. 너무도 많은 길이 나타나는 까닭에 어디를 골라야 할지 몰라 당황하게 되는 그런 시기를 떠올린다. 지금의 내가 때때로 열 넷의 나를, 열 일곱의 나를, 스물의 나를, 되새기는 것처럼. 그 때 내 주변에 있었던 이름들을 찾으려 애쓰는 것도 어쩌면 그와 같을까?

 

그리고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를, 마르가레트 르 코즈를, 찾아 헤맨다. 한때는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자취를 찾아 다닌다. 빨간 머리에 매정한 눈빛을 가진 여자와 환속한 신부의 꼴을 한 남자를 피해 다니던 자신이 부아야발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서리치던 그녀와 거리를 걷고, 페른 교수의 집에 가고, 푸트렐 박사와 점심을 먹고, 페터와 더불어 산책을 하던 그 때를. 그녀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살아갈 힘을 얻던 그 때를.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들의 이름을 알면 위험에 맞설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가 생겨나던 그 때를.



3. 삶은 녹록치 않다. 그 모든 잘못된 만남을 잊을 수 있을 것이라는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의 믿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의 한 교차로에, 보다 정확하게는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한 경계에 도달한 느낌으로 자신들은 파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산속에, 앙가딘 어디쯤에 들어와 있다고 느꼈던 그들의 평온함은 일순간 깨어진다.


마르가레트는 그에게 연거푸 손을 흔들던 그날 밤 후 지평 너머로 사라졌고, 보스망스 역시 어수선한 시절을 살아가며 마르가레트를 찾지 못한다. 그러니 조만간 그녀와 새로운 지평을 찾아 파리를 떠날 수 있을 거라고, 두 사람은 자유롭다고 마르가레트를 설득하던 보스망스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보스망스의 지평에서 마르가레트는 사라졌다. 스무살에 가까웠을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들 앞에 놓인 현재는, 왜그리도 그들에게 가혹했을까.


그러니 누군가는 보스망스를 어리석다고 할 것이다. 과거에 얽매여 방황하고 있다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서로를 사랑했다고 말하지도 않고, 마르가레트가 자신의 연인이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보스망스가 왜 마르가레트를 찾고 있는지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마르가레트는 보스망스 앞에 놓여진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했었고 그 가능성은 현실의 옷을 입지 못했으니, 결국 보스망스에게 마르가레트는 한 때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4. 어쩌면 시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지나온 길을 돌아봤을 때, 박제된 과거를 비집고 나온 누군가의 이름을 발견한다면, 그 이름과 맞닥뜨린 순간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보이지 않는 벽을 서서히 통과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면, 일종의 희망이, 먼 지평을 향한 탈주로가 남아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과거의 기억에 묶여 지평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살아남은 기억 그 자체가 어쩌면 나의 지평이자 미래인지도 모른다고.


그러므로 보스망스는 과거에 얽매여 어리석은 방황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믿는다. 그의 삶은 마르가레트를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을테니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던 마르가레트를 기억 속 어딘가에서 끄집어내 찾아낸 사람은 결국 보스망스였고,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 보스망스는 자신이 떠나온 그 장소 그 지점으로 같은 시간 같은 계절에 돌아온 것이니까.



5. 로드 밀러의 안부를 가지고 마르가레트의 서점을 방문한 보스망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반은 깨고 반은 잠든 듯한 상태로 부유하듯 걸어 가는 보스망스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며 생각했다. 밤늦도록 문을 열어둔다는 마르가레트의 서점이,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가 젊은 날 함께 있던 구 사블리에 출판사의 서점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들이 태어나던 그해에도 공원 저 구석 폐허 사이에서 꽃을 피웠던 라일락의 향기가, 그들의 재회에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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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주세요!


14기 신간평가단 마지막 페이퍼를 이제야 쓰고 있다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쓰기 전엔 13기 신간평가단 마지막 페이퍼를 썼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한심하지만 그동안 갖고 있었던 마음의 부담-'언젠가 저걸 다 써야 하는데'-을 떨칠 수 있게 되어!!!! 시원하기도 하다!!!!!!!!!! 15기 신간평가단 첫 리뷰를 쓰기 전에 활동 마감 페이퍼를 쓰는 거니까 뭐 괜찮겠지? (괜찮긴 뭐가 괜찮…쯧;)


여튼간.


사실 2014년에는 책을 많이 못 읽었다. 고3 때 이후 제일 적게 읽었던 것 같다. 한 번 집어든 책도 끝까지 읽질 못했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삶은 가라앉고 마음은 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간평가단 활동을 한 덕분에 여섯 달 동안 좋은 책들을 계속 만날 수 있었다. 첫 달부터 그랬다. 마스다 미리의 책도, 레이먼드 챈들러의 책도, 계속 낄낄거리며 어찌나 즐겁게 읽었는지.


솔직히 12기 때나 13기 때에는 읽기 싫은 책을 억지로 읽은 적도 있었고(뭐 다 지나간 일이니까 어떤 책이었는지도 그냥 쓰자면ㅋㅋㅋ 지옥설계도밀수꾼들…하아…읽기 싫었다囧) 읽고 나서 '아 별로다 이거…'하는 생각에 허탈했던 적도 있었다(남자를 위하여끝까지 연기하라를 읽고 그런 기분이 엄청 많이 들었다고 절대 말할 수 없다!!! 절대로!!!!!!!!!). 근데 14기 때는 그런 적이 거의('전혀'는 아니었다ㅋㅋ) 없었다. 대부분의 책이 마음에 들었고 그 책을 읽는 순간들이 행복했다. 읽고 나서 이건 나만 읽을 수 없다!! 며 새 책을 새로 사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베스트5를 꼽는 게 참 힘들다. 이 책도 좋고 저 책도 좋고, 그 책은 재밌었고 저 책은 기억에 오래 남고, 이 책은 사진이 예뻤고 그 책은 문장이 아름다웠고…아아아아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섯 권을 힘들고 힘들게 꼽아 본다.



앞의 네 권은 '이 책 읽고싶어요읽고싶어요엉엉엉'하며 주목신간 페이퍼에서 추천했던 책. 마스다 미리도, 레이먼드 챈들러도, 정유정도, 헤르만 헤세도, 다 믿을 만한 작가들이라 고민 없이 골랐다(저 네 작가 중에서는 레이먼드 챈들러를 가장 좋아한다. 챈들러와 필립 말로는 정말이지ㅠㅠㅠ 애정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마지막 한 권은 큰 기대 없이 읽었다가 무릎을 치며 '역시!!!! 세상엔 나보다 훠어어어얼씬 훌륭한 심미안을 가진 분들이 많아!!!!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했던 책. 어느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는 따뜻했고, 나는 어떻게 글을 쓰기 시작했나는 엄청 재미있었고,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감동적이었고, 헤세의 여행은 역시나 아름다웠다. 흐엉.


마지막 책은 대충 몸을 구기고 앉아 몇 쪽 읽다가 '역시!!!! 너의 추천 따위!!!!!!!!!!! 세상엔 너보다 훠어어어얼씬 훌륭한 심미안을 가지신 분들이 많다는 걸 잊지 마라!!!!!!!!!!!!!!!!!!!! 이 책을 추천해주신 신간평가단님들 감사합니다ㅠㅠㅠㅠ'라며 스스로를 꾸짖은 뒤 자세를 바로잡고 정좌하여 읽었던 윤대녕소설가의 에세이. 윤대녕소설가의 소설을 하도 어렸을 때 읽어서, 그리고 사실 몇 편 안 읽어서;; 별 기대가 없었는데 '윤대녕 뭐 별로-_-'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부끄러운 무지의 소산이었는지 이 에세이 덕분에 깨달았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윤대녕소설가님(__)


저 책 중 한 권을 굳이 꼽아야 한다면, 아, 정말 어렵지만, 절대 쉽지 않지만…그래도 골라야 한다면…입술을 물어뜯으며 마스다 미리의 어느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를 꼽겠다.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책을 읽으면서 걸어가던 봄날의 퇴근길이 아직도 기억난다ㅎ 힘들게 봄을 나던 내게 위로가 되어 주던, 평범하지만 유쾌하고 소박한 만큼 귀여운 이야기. 작년에 쏟아진(!!!) 마스다 미리 언니의 수많은 책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을 만 하다고 주장해본다ㅋ



이제, 15기에서는, 어떤 책을 또 만나게 될까? 첫번째 페이퍼에서 추천한 책은 몇 권이나 선정될까? (전망은 밝지 않다ㅋㅋㅋ) 설레는 마음으로, 첫 선정도서가 발표되기를 기다려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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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 주세요.

13기 신간평가단 때는 에세이 부문에서 활동했다. 소설만 평생(!!) 줄창(!!!!!!!) 읽어왔던 내가 소설 아닌 다른 책들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마도 삶에 여러 가지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었을 게다. 처음엔 에세이를 읽는 게 좀 어색했지만(워낙 에세이를 잘 안 읽어왔었다;;;) 첫 번째 리뷰도서로 선정된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므너므너므너므 마음에 들어서!!!! 첫 달에 바로 에세이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한 보람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ㅋㅋ 헤세의 저 책은 정말이지 너므너므너므너므너므 감명받으며 읽어서(강조강조강조강조)!!!!!!!!! 선물도 많이 했더랬다. 


반전의 순간은 몇 달 후 찾아왔는데,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레출판사 판 정원 일의 즐거움을 발견한 것. 엉 이건 뭐야? 내가 좋아하는 책이랑 비슷하잖아? 하면서 쉬리릭 읽었는데 아아…저 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는 것. 게다가 저 책은 품절됐다는 것. 이레출판사가 문을 닫으면서 정원 일의 즐거움의 판권을 웅진에서 사서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새로 낸 게 아닌가 하고 추측한다. 


이레에서 참 좋은 책이 많았었는데 안타깝다. 이레에서 나왔던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들도 이제는 시공사에서 나오던데, 전두환 때문에-_- 시공사에서 나온 책은 절대 안산다!!!! 아무리 좋아도 빌려볼테다!!!!!! 라는 신조(라 하니 좀 쑥스럽군)가 있어 한 권도 사지 못하고 있다. 최일구 앵커 생각하니까 더더욱 안타깝고ㅠㅠ 근데 뭔가 글이 점점 산으로 가는 느낌? 그만 정리하고 13기 신간평가단 때의 베스트5를 꼽아봐야겠돠하하하하하;;;






가장 좋았던 책을 꼽는 건 쉬웠다. 고민도 하지 않고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헤세의 저 책이 정말이지 너므너므너므너므너므너므 아름다웠으니까…벌써 세 번째 강조ㅋㅋㅋㅋ


그 다음 세 권을 꼽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김중혁소설가및에세이스트및카투니스트및방송인(으엥?)의 모든 게 노래는 나올 때부터 엄청 기대했었고 예약판매로 구매했었고 사인본을 받고 신나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간평가단 추천도서로 꼽았던 책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 (김중혁소설가님 어디서 보고 계십니꽈? 네?? 이렇게 충성심이 강합니돠!!!!) 인생의 목적어를 읽을 때는 삶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눈물을 읽을 때는 죽음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다. 두 책 다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마지막 한 권을 꼽는 게 제일 어려웠다. 책으로 가는 문도 좋고 작가의 얼굴도 좋고. 리뷰를 쓸 땐 책으로 가는 문에 별 네개를 주고 작가의 얼굴에 별 다섯 개를 줬으니 그걸로만 비교하자면 책으로 가는 문보다 작가의 얼굴에 더 높은 점수를 줬던 건데…한참 시간이 지나 생각하니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참 힘들었다. 그렇다고 BEST 5를 6으로 살짝 바꿔치기하기도 좀 찝찝해서, 결국은 책으로 가는 문을 선택. 책으로 가는 문에 실린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담 내용이 인상적이었고 오래 기억난다는 이유 때문에. 


13기 신간평가단 때의 마지막 페이퍼를 이제야 쓰고 있으니 참 한심하지만ㅋㅋㅋ 지금에라도 썼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편 드는 건 그동안 이게 마음 한 켠에 숙제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겠지? 이제 14기 신간평가단으로서의 마지막 페이퍼를 써 보자ㅋㅋㅋㅋ 아이고 계속 한심하여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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