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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1
장미셸 게나시아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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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근현대 문학을 공부할 때, 창조니 폐허니 백조니 시문학파니 카프 등등을 나열하는 교수님의 목소리를 배경음악삼아 나는 종종 공상에 빠지곤 했다(확실히 훌륭한 학생은 아니었다). 함께 글을 쓰고 나누며 세계를 이야기하고 서로의 문학과 자신의 문학을 만들어갔을 그들. 그 곁에 관찰자로서 그들과 함께 경험과 감정을 공유했던 누군가가 분명 있지 않았을까. 만약 내가 그 관찰자로 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특히 내게 흥미로웠던 존재는 9인회였고 관심 깊게 들었던 건 이상과 그 친구들의 뒷이야기였다. 이상과 김기림과 이태준과 정지용과 김유정과 박태원 등등이 함께 다방에서 MJB의 미각을 향유하는 모습이나 명동 거리를 함께 걷는 모습, 농담을 툭툭 건네고 있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을 읽으면서 그런 상상을 오랜만에 다시 했다. 저쪽에서는 사르트르가 담배를 피워대며 글을 쓰고, 이쪽에서는 전직 소련 의사와 전직 소련 공군 조종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체스를 두고, 전직 헝가리 유명 배우는 전직 자신의 매니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그 사이를 전직 체코 외교관과 현직 경찰관이 지나가는 가운데, 소년 하나가,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는 장면이라…왠지, 그 시절 공상의 순간처럼, 또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는 살아 있고 우리는 자유롭다. (1권, 124쪽)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은 페이지마다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들이 가득가득 들어 있는, 백화점 같은 책이다. 서술자인 미셸은 물론이고 미셸의 가족들, 친구들(사실 니콜라 말고는 또래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이 등장하진 않지만, '발토'의 이고르와 파벨과 블라디미르와 임레와 레오니트 등등도 나는 미셸의 '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왜 아니겠는가?)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없다. 그러면서도 '아 나 이거랑 비슷한 사람 어디선가 봤는데…'하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주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개성이 지나쳐서 너무 이상하거나, 현실감이 전혀 없거나, 누가 봐도 '헛 이거 지어낸 티 너무 남-_-'하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으니까.

게다가 재미있다. 특히 재미있는 장면은 역시 싸움 장면인데(이게 참 어쩔 수 없는 거다),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의 멤버들끼리 흥분해서 모국어를 주고받으며 싸우는 장면이라든지 미셸네 가족이 소리소리 질러가며 싸우는 장면이라든지 프랑크와 세실이 개와 고양이처럼 싸우는 장면은 대부분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이 책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던 것도 혈연의 기적, 이를테면 다른 관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화, 절대적인 신뢰, 본능적인 융합 따위 전혀 없는(!!!!!) 미셸의 생일 잔치 장면에서부터였다. 오, 이 작가, 유머를 아는 사람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었으니까. 예를 들면 이런 느낌.

그들이 함께 어울리는 시간은 천국이 아니면 지옥이었다. 어중간한 것은 없었다. 자기들이 떠나온 체제를 혐오하는 사람들과 인류에게 미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 느닷없이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두세 사람이 언성을 높이는 게 신호탄이었다. 그들이 이고르가 세운 규칙을 어기고 프랑스어 대신 각자의 모국어로 말하기 시작하면, 모두가 말싸움에 끼어들었다. 무엇 때문에 언쟁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조차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여러 언어가 뒤섞이는 그 바벨탑의 혼란은 대개 십 분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굵직한 성인 남성들의 목소리가 쨍쨍 부딪치며 난장판을 되어가는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움찔했다. 이런 장면을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모른 척하는-물론 소년 시절의 미셸은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을지 모르겠지만-미셸의 목소리가 어찌나 의뭉스럽게 느껴지던지!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을 겪었는지 내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그것을 알겠니? (1권, 423쪽)

하지만 당연히도, 그리고 조금은 서글프게도 이 이야기가 마냥 재미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 클럽의 멤버들은, 미셸의 설명을 빌리자면 대부분 비극적이거나 기괴한 상황에서, 대개는 외교를 위한 여행 도중에 서방으로 넘어옴으로써 고국으로 도망 난민들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난민에게 매우 우호적이고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별 생각 없이 믿어 왔었는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난민으로 인정받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아니었던 아니었던 거시다-_-(아무래도 이 편견의 근본 원인은 홍세화씨인듯…으잉?).


공산주의자였거나 여전히 공산주의자인 그들이 여전히 공산주의에 대해 얘기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부딪히고 부딪치는 모습이, 조금은 서글퍼 보였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사상이 용도폐기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나, 고난을 감수해야만 그 사상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고난을 선택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나, 현실이 녹록치 않은 건 마찬가지이니까.


자신들의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짙은 비애가 묻어 있었다. "사람들은 멍청해.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걸."이라고 투덜거리는 임레의 목소리에조차. 클럽 멤버들에게 배척당하고 형인 이고르에게 욕을 얻어 먹으며 죽는 순간까지 용서란, 화해란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사샤의 존재는 이러한 비애감을 더욱 강화한다. 사샤가 했던 일이 존재했던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음은 특정한 세력의 조직적인 조작이 국가를 위한 일로 정당화되고 당연시되었던 어두운 시대의 모습을 그림처럼 담아내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존재했던 것의 순간을 아름답게 담아내려던 미셸과 사샤가 소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사진이었다는 것은, 그들의 만남이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행인 건, 그들이 과거로 인한 고통을 되새김질하듯이 씹고 씹고 또 씹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그들은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無)로 화하고 말 것이라는 것 역시 잊지 않고 지낼 만큼의 현명함을 함께 갖춘, 낙천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이고르의 이 말처럼 : "우리가 낙천주의들이 아니라면, 누가 낙천주의자이겠소?" 물론 여전히 외롭게 떠나야 했던 사샤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사샤의 장례식에서 그들은 증오와 잘못을 마음속에 두지 말자고 다짐했으니까, 너무 슬퍼하지는 말아야겠지.



미셸,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1권, 27쪽)

아쉬운 점은, 책을 다 읽은 이후에도 '그 이후에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궁금증이 계속 남아, 뭔가 이야기가 더 이어져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랑크와 세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프랑크가 세실에게 한 말은 정말이었을까? 세실이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게끔 거짓말을 한 건 아닐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이후로 영영 갈라져 버린 걸까? 쥘리에트는 계속 말 많은 여자 어른이 되어 남들의 골치를 아프게 했을까(사실 나에게는 이 소설에서 가장 불쌍한 캐릭터가 쥘리에트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응답'을 받지 못하는 소녀라니, 얼마나 외로울까ㅠ). 사샤를 보낸 후 이고르는 어떻게 살았을까? 레오니트와 밀렌은? 마들렌은? 자키는? 빅토르는? 그 외 클럽의 또다른 인물들은? 이거 진짜 이렇게 끝나면 안되는 거 아냐? 외전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러나 이러한 상상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 나는 어디선가 새카맣게 탄 얼굴로 뙤약볕 아래에 앉아 있을 프랑크를 상상해 보고, 이고르와 레오니트와 파벨과 블라디미르와 임레가 체스판을 사이에 두고 둥그렇게 둘러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고, 택시 운전석에서 또다시 사기를 치고 있을ㅋㅋ 빅토르를 상상해 보고, 엔조 할아버지 옆에서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고 있는 미셸의 아버지를 상상해 보고, 카미유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가는 미셸을 상상해 본다. 그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어쩄든간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모두 낙천주의자이며, 우리가 낙천주의자라는 사실은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임이 분명하니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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