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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인생의 목적어>를 읽기 전, 내가 알던 정철은 유명 카피라이터나 몇 권의 책을 쓴 작가가 아니라 '문재인의 사람'이었다. 문재인이 부산 사상구에 출마했을 때 '바람이 다르다'라는 카피를 만들었고,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때는 그를 위한 헌정 광고를 만들었던 사람. 따라서, 지난 대선 때 결코 1번을 찍지 않았을 사람.
뼈아픈 패배로 괴로워했을 게 분명했을 그가 대선 후 1년이 지난 때 <인생의 목적어>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 자신에게 인생의 목적어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목적이 그를 '그러한 삶'으로 이끌었을까. 좀 궁금했다. 이 책에서 명징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했고, 시원하게 틀렸다. 이 책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2800여명의 사람들이 꼽은 3000여개의 단어들 중 50개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책이었으니까.
가족, 사랑, 엄마, 꿈, 행복, 친구, 믿음, 우리, 도전, 희망, 돈, 건강, 이름, 추억, 감사, 여유,웃음, 실패, 생각, 책, 여행, 변화, 다름, 만남, 매력, 그러나, 왜, 나, 너, 아버지, 자식…등 수많은 '인생의 목적'들이 다섯 개의 장에 묶여 있었다. 이 단어들을 거울로 놓고 나를 비춰 보면서 나만의 목적어를 찾아 보라는, 역시나 친절한 안내 멘트와 함께.
유명 카피라이터의 책답게 재치있으면서도 여운이 남는 문장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어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감상적이지도 않았고. 삶을 긍정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이가 쓴 글이구나 싶었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나오는 이 문장부터 그랬다.
세상에 불량품인 인생은 없다는, 따뜻한 선언.
그리고 이어진, 수많은 '휘어진 바나나' 사진들ㅋ
여유를 가르치는 선생님들로 '라면'을 꼽으면서 스프도 받아들인다. 계란도 받아들인다. 김치도 받아들인다. 찬밥도 받아들인다. 너라면 그럴 수 있니?라고 쓴 부분은, 말장난 같으면서도 신선했고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공작을 숨어서 댓글 다는 국가정보원 직원, 다람쥐를 쳇바퀴 돌고 도는 대한민국 학생, 하루살이를 내일이 없는 시간강사에 빗댄 부분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대안학교 학생들을 만난 경험을 이야기했던 글도 기억난다. 그가 만난 대안학교 아이들이 선생님에 대해 쓴 짧은 글은 이랬다.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관찰하기 참 좋은 대상이다. 저마다 다른 개그 포인트와 귀여움이 있다.
나도 아이들을 보며 이렇게 느끼는데! 하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개그 욕심을 가진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편이라. 그들은 선생님을 권위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아이들이 나를 사람 대신 권위로 봐 주길 바랐던 예전의 나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첫 출근날, 아무도 환영해 주지 않아 초조하고 황당하고 허무했던 기억을 풀어 놓은 글에서도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12개월 간 고생문이 첩첩할 것이 눈앞에 훤히 펼쳐져 어찌할 줄 모르고 머리를 쥐어뜯던, 그 겨울의 나. 그래서 직업을 선택할 땐 그 무엇보다 그 일, 재미있니?라는 질문을 해 보라는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섬뜩함을 느꼈다ㅋ
무엇보다 이 책은 친절했다. 독자에게 자신과의 인연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하고, 자신을 읽은 후의 감상 모범답안까지도 제시해 주는 책이 또 있을까.
하루에도 수백 권씩 쏟아진다는 책. 오늘 그중 한 권이 당신의 손 위에 놓여 있습니다. 결코 쉬운 인연이 아닙니다. 나무로 살다 끝날 수도 있었던 그의 인생이 당신을 찾아온 이유를 한번쯤은 생각해 주십시오.
서툰 글, 지루한 생각, 불편한 논리, 억지와 과장을 잘 참고 마지막까지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누군가, 이 책 어땠어? 정철이라는 사람 글 어땠어?라고 물으면 시시콜콜 지적하지 마시고 그냥 이렇게 헐렁하고 넉넉하고 가벼운 대답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괜찮아.
게다가 책 중간에 있는 이 페이지의 배려 돋음이란!
글자에 지친 독자를 위한, 휴식 페이지.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이걸 조용히 응시하는 게 휴식 :)
책장을 덮고 생각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99% 정도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목적어는 무엇일까. 나는 세 개의 단어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역시 나는 평범한 인간이라ㅋ 사람들이 많이 꼽은 40여개의 단어들 중 세 개를 생각해 내고 말았다. 재미, 배움, 자유. 나는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배우고, 배움을 통해 자유로워지고 싶다. 진리로 자유케 되고, 자유로 진리케 되는 과정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지금의 내게 가장 중요한 명제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결코 자유롭지 못한 존재. 내 삶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직장으로부터, 현실로부터. 그래서 '자유' 부분을 읽으며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생활인으로서는 완전한 자유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타협이라는 것을 할 수밖에 없다는 문장을 만났을 땐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타협이란 게 얼마나 비겁한지에 대해 침을 튀기며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라고 부추기는 대신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은 정말 자유롭지 못한 생각이며 현실을 쓰러뜨리는 것은 결국 타협보다 못한 굴복을 하게 만들 뿐이라고 조언하는 부분에선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울컥 하고 말았다. 부담으로 남는 '전부'를 욕심내기보다 타협이 만들어 준 51%의 자유를 100%로 누리라는, 이 현실적이면서도 따듯한 말 덕분에.
51%의 자유만으로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내일모레는 아닐지라도 내년 휴가 땐 당신도 인도를 욕심낼 수 있다. 지금 당장 부다페스트에서 하모니카 연주회를 할 수는 없지만 동네 음악학원 주말반은 등록할 수 있다. 쌀독을 채우고 남는 돈으로 아프리카에 사는 한 소녀의 저녁밥을 책임질 수 있다. 당신의 이런 불완전한 자유, 불충분한 자유, 51%의 자유를 지켜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부럽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면서도 스스로를 부자유한 인간으로 옭아매고 있었던 나에게, 지금으로도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고 속삭여 준 책.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인생의 목적을 처음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책. 이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책 덕분에, 나는 책을 읽기 전보다 아주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래서, 누가 이 책 어떠냐고, 정철이라는 사람의 글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할 거라고, 확실하게 쓸 수 있다 : 응 괜찮아, 그냥 읽어 봐.
마지막으로, '아!!'하는 느낌이 들게 했던 짧은 글 하나. 이 책에서 만난 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다. 많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드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