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장국영 -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얼마나 좋을까 그대가 여전히 함께 한다면 아무튼 시리즈 41
오유정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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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시리즈를 간간이 계속 쭉 읽고 있다...고 써놓고 나니 음, 이런 말을 쓸 만큼 많이 읽은 건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확 스쳐갔다. 그래서 각잡고 세어보니 실제로 읽은 건 세 권밖에 없다. 스릴러, 문구, 인기가요.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생각보다(?) 열정이나 애정 같은 게 별로 없어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 같은 게 많지 않다. (1초도 되지 않아 딱 떠오르는 이승열! 말고는🤔 으음🤔🤔)


아무튼 시리즈를 읽어보려고 할 때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음 뭐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닌데...'하는 마음 때문에 주저하고 관두는 나이지만, 장국영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다른 생각이 들기 전에 손이 먼저 움직였다. 제대로 본 장국영 영화는 패왕별희뿐이고 떠올릴 수 있는 장국영 노래는 A Thousand Dreams of You뿐이지만 장국영의 이름만으로 충분하니까. 그러니까, 장국영이니까.


90년대에 10대 시절의 많은 부분을 보냈던 사람들이라면 장국영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장국영의 팬이 아니어도, 주변에 장국영의 팬은 한둘씩 꼭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장국영을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장국영은 인상 자체가 호감형이고, 무표정은 너무 처연한데 웃으면 한없이 주위가 환해지고, 연기는 뭐 말할 것도 없이 잘했으니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소년 시절에 그를 보며 장국영을 떠올렸던 한국 사람들이 꽤 많지 않았을까 싶고,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매년 4월 1일마다 장국영을 생각하고 장국영의 부고를 듣는 순간을 떠올리고 잠시 슬퍼한다. 아직도 여전히. 이 책의 저자 역시 마찬가지다.

유난히 검은색이 많이 칠해진 신문의 헤드라인.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장국영' 세 글자가 엄청난 크기로 클로즈업됐다.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울지 않아도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장 국 영.
이 이름 하나로 그해 참 많은 사람이 울었다. TV, 라디오, 잡지, 신문, 어디에서나 꺼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생애가, 그의 영화가, 그의 음악이 그리고 그의 죽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장국영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 내가 그랬고, 많은 사람이 그랬으며, 홍콩도 중국도 이 세상 전부가 그가 떠난 뒤에 그 이름의 무게를 새삼 깨달은 듯했다. 사스의 공포로 모두가 움츠러든 그때, 꺼거의 부재는 많은 이에게 상실의 고통을 깊이 각인시켰다.


그러나 저자는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후 얼마나 슬퍼하고 괴로워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대신 '장국영의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삶이 장국영의 존재와 어떻게 이어졌는지, 이미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떻게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나는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장국영의 통역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중국어 공부를 하고 중문과에 입학해서 통번역대학원까지 진학했던 저자는 통역을 해주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사라졌다는 걸 깨닫고 인생의 방향을 잃은 듯한 기분으로 취업한다. 그러다가 박사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장국영이 가장 좋아했던 중국 대륙의 도시였다는 상하이에서 박사 공부를 시작한다. 상하이에서 살아가는 동안 여전히 자신이 장국영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행복해한다.

숨바꼭질을 하듯 보물찾기를 하듯, 상하이는 내게 꺼거의 흔적을 찾는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상하이에 있는 동안 꺼거가 다녀간 많은 곳을 나도 일부러 찾아갔고, 또 무심코 돌아다녔던 곳이 알고 보니 꺼거가 다녀갔거나 꺼거와 연관된 곳인 적도 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큰 의미 없었을 공간, 그냥 무심코 돌아다니고 말았을 곳이, 그로 인해 의미 있는 곳이 되고 소중한 곳이 되는 경험. 마술 같고 기적 같은 이런 일들이 내게도 당연히 없지 않다. 홍대를 걷다 보면 수많은 공연장들 중 좋아하는 뮤지션이 공연했던 장소가 유독 눈에 띄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즐거워하다가 내 삶에 이런 즐거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어 가슴이 벅차오르곤 하니까. 일부러 시간을 내어 소중한 존재의 흔적을 찾는 것도 즐거운 일이겠지만, 의도치 않았던 순간에 끊임없이 소중한 존재를 떠올리고 발견해내면서 내 별 것 아닌 일상이 나의 소중한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의 행복함, 이것이야말로 덕질의 보람이 아닐까.


그래서 그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덕질은 계속된다.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후 비로소 그의 팬이 된 이들이 수많은 것처럼. 저자는 그들을 '후영미'라 부른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후영미의 활동이 워낙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오히려 기존의 팬들이 '노영미'로 재명명되었다. 후영미는 중국판 위키피디아라 할 수 있는 바이두 바이커와 후둥 바이커에 표제어로 등록되어 있을 정도다.
"후영미는 매우 독특한 팬덤 문화의 일종으로 장국영이 사망한 후에 그를 좋아하게 된 팬을 지칭한다."
후영미는 미디어로 접한 장국영의 영화와 노래에 매료되어 그 가치를 재평가하고 장국영을 단순한 '스타'에서 '예술가'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전통적인 남성상에 대한 관념이 무너지면서 장국영의 다양한 매력이 더욱 주목받게 되었고,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많은 작품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이들은 그 시절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던 장국영과 그의 작품이 가진 가치를 이제라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후영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인간' 장국영이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주체적 자아의식'의 메시지를 '장국영 정신'으로 이름 짓고 이를 지속적으로 계승해야 할 가치로 받아들였다. 나아가 이러한 '장국영 정신'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계승자'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를 실천해가고 있었다.

 

'아니 뭐 연예인 좋아하는 걸 이렇게 거창하게 말해?'라고 말하는 누군가도 있겠지만, 나 아닌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야말로 나의 존재가 확장되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저 분석에 크게 공감했다. 특히나 덕질로 배운 가치와 의미가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인간으로서의 실천에 큰 영향을 준다는 데. 이래서 스타는 가도 덕질은 남는 것. 그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진. 거참 쓰다보니 코코 생각나서 울컥하네. 


꾸준히 자신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아끼며 살아가다가 문득 그를 소중히 여겨온 순간들이 내 삶의 시간들을 소중하게 만들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 그래서 결국은 그를 사랑했던 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배우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 삶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믿는 나는, 장국영에 대한 덕질의 기록을 읽으며 즐거운 한편 마음이 아팠고, '건강하게 덕질하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자신의 소중한 이를 애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나 역시, 올해도, 변함없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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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채.한홍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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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발전사회학'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사회학과 수업이었는데, 그당시 필수 과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내 주변에는 사회학과 전공자들이 매우 많았었는데-정작 나는 사회학과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었지만-다들 이 수업을 들으러 가기 싫어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지친 얼굴이거나 질린 얼굴이거나 짜증이 난 얼굴이거나 화가 난 얼굴로 돌아왔다. 물론 수업을 듣는 것은 보통 지치는 일이지만, 그런 '지친 얼굴'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회의감에 가득 찬 표정들로 돌아오던 주변 사람들 얼굴이 지금도 떠오른다.


처음 수강신청을 할 때부터 이 수업을 듣기 싫어하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수업 이름만 보고 물어봤었다. "발전사회학이 뭐야? 사회학의 발전 뭐 이런거야? 아니면 뭐 사회가 발전되는 과정 같은 거야?" 어찌보면 참 무식한 질문이지만 '발전'이라는 말이 수업 이름에 들어간다는 것조차 생경하게 느꼈던 나는 이 정도의 질문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함께 있던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사회가 발전됐다는 거야. 일제강점기에서 사회가 발전됐다, 이걸 공부하는 과목 같은 거야." 


응?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데다가, 중등학교 때까지 역사시간마다 '일제는 우리 민족을 괴롭히고 수탈하고 못살게 굴었다'라는 배움만 반복적으로 들어왔던 내게 저 설명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서 사회가 발전했다면 당연히 일본사회가 발전한 걸텐데 그걸 사회학과에서 왜 배우지? 눈알을 굴리다가 다시 물었다. 식민지근대화론 같은 거야?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 그러면 식민지근대화론이 틀리다는 걸 배우는 거야? 아니지 그 반대지. 응? 일제강점기에서 조선이 발전했다는 거라니까. 응?


물론 그것이 발전사회학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지금은 안다. 하지만 어쨌든 그당시 내 주위 사람들이 들었던 발전사회학 '수업'은 그걸 공부하는 시간이 맞았고,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은 매번 스트레스를 받아 돌아오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내가 한국의 '우익'을 간접적으로나마 처음 만난 때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당연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저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고, 실리적인 목적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고 있다만, 그때의 내게는 '일제강점기 하에서 조선 사회가 발전됐다'는 개념 자체가 너무 낯설고 놀라운 것이었다. 그 정도로 나는 일본에 대해, 일본의 '지배층'에 대해, 그들의 생각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뿐만인가. 떠올려 보면 광복절 날마다 야스쿠니 신사의 이름을 들어놓고도, 그곳에 일본 정치인이 참배하는 건 '엄청 나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나쁜지, 왜 그곳에 가는 게 문제가 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인들은 왜 그곳을 광복절에 찾는 것인지 아주 오랫동안 몰랐다. 그냥 맹목적으로 나쁘다고 외워버렸다. 그건 하면 안되는 건데 일본인들이 하고 있으니 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보다 했다. 그 이상의 관심을 더 두지 않았다. 이렇게나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최소한 그때보다는 더 알고 있다. 이런저런 방송을 찾아 듣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같이 반일 감정이 휘몰아치던 때, 일본 전체를 적으로 간주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음에도, '왜' 그러면 안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일본 전체'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으려면 더 알아야 했고, 더 배워야 했다. 


이 책은 그 배움에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일관계의 문제들을 '문재인 정부와 아베 내각이 사이가 나쁘기 때문' 같은 식으로 이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알려준다. 이 문제들은 종전부터, 어쩌면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부터, 아니 어쩌면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 일본이 대륙으로의 진출을 꿈꾸면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좀더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특히 많은 도움이 됐던 건 야스쿠니 신사를 다룬 2장의 내용과 재일조선인들의 삶에 대해 다룬 7장의 내용이었다. 하나는 일본 우익들이 어떻게 평화헌법을 집어치우고 자신들이 바라는 '보수국가'로 나아가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종전 이후에도 일본에서 계속 살아온 '조선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느냐에 대한 내용이니, 그 둘이 매우 다른 내용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둘이 모두다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폭력성이 빚어낸 결과로 보였다. 고귀한 희생을 치른 것으로 포장되어 신격화되고 있는 야스쿠니 안의 사람들, 고귀한 희생을 요구하던 사회로 인해 고향도 국적도 가족도 잃어야만 했던 재일조선인들, 이 둘은 일그러진 군국주의가 빚어낸 비극의 양면 같다고 생각했다.


한홍구선생의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들이 보통 그렇듯이, 가독성이 높고 술술 잘 읽힌다. 하지만 '글자'를 걸리는 데 읽는 시간은 짧을지라도 그 글자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꽤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알아온 역사란 어쩌면 '내가 살아온 나라의 역사'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상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조차 못하는데, 무엇을 기억해서 어떻게 현재의 거울로 삼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책을 자주 읽고, 책 맨 뒤에 실려 있는 '더 깊은 공부를 위한 자료'들도 찾아 읽고,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자주 권할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그들'이 역사의 전면에서 세상의 방향을 거꾸로 흘러가게 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는 안 되니까.




영화 '주전장', '김복동', 그리고 팟캐스트 '그것이 알기 싫다'에서 2019년에 방송된 일본 관련 방송들과 함께 읽고 보고 들으면 훨씬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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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자, 동감이나 하는 듯 장작도 연기를 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오콩코의 눈이 열리더니, 그는 세상사를 선명히 알게 되었다. 불은 타오른 후 식어, 무기력한 재를 낳는 것이다.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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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해보세요! 삶이라는 게 우리가 잘못 쓰면 별 가치가 없는 것이지만, 노력해볼 가치는 있는 거니까요. (5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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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의 길은 언제나 비뚤어진 길이었고, 지금도 그래. 기운도 없고 목적도 없어.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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