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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1
장미셸 게나시아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대학 시절 근현대 문학을 공부할 때, 창조니 폐허니 백조니 시문학파니 카프 등등을 나열하는 교수님의 목소리를 배경음악삼아 나는 종종 공상에 빠지곤 했다(확실히 훌륭한 학생은 아니었다). 함께 글을 쓰고 나누며 세계를 이야기하고 서로의 문학과 자신의 문학을 만들어갔을 그들. 그 곁에 관찰자로서 그들과 함께 경험과 감정을 공유했던 누군가가 분명 있지 않았을까. 만약 내가 그 관찰자로 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특히 내게 흥미로웠던 존재는 9인회였고 관심 깊게 들었던 건 이상과 그 친구들의 뒷이야기였다. 이상과 김기림과 이태준과 정지용과 김유정과 박태원 등등이 함께 다방에서 MJB의 미각을 향유하는 모습이나 명동 거리를 함께 걷는 모습, 농담을 툭툭 건네고 있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을 읽으면서 그런 상상을 오랜만에 다시 했다. 저쪽에서는 사르트르가 담배를 피워대며 글을 쓰고, 이쪽에서는 전직 소련 의사와 전직 소련 공군 조종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체스를 두고, 전직 헝가리 유명 배우는 전직 자신의 매니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그 사이를 전직 체코 외교관과 현직 경찰관이 지나가는 가운데, 소년 하나가,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는 장면이라…왠지, 그 시절 공상의 순간처럼, 또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는 살아 있고 우리는 자유롭다. (1권, 124쪽)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은 페이지마다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들이 가득가득 들어 있는, 백화점 같은 책이다. 서술자인 미셸은 물론이고 미셸의 가족들, 친구들(사실 니콜라 말고는 또래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이 등장하진 않지만, '발토'의 이고르와 파벨과 블라디미르와 임레와 레오니트 등등도 나는 미셸의 '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왜 아니겠는가?)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없다. 그러면서도 '아 나 이거랑 비슷한 사람 어디선가 봤는데…'하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주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개성이 지나쳐서 너무 이상하거나, 현실감이 전혀 없거나, 누가 봐도 '헛 이거 지어낸 티 너무 남-_-'하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으니까.

게다가 재미있다. 특히 재미있는 장면은 역시 싸움 장면인데(이게 참 어쩔 수 없는 거다),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의 멤버들끼리 흥분해서 모국어를 주고받으며 싸우는 장면이라든지 미셸네 가족이 소리소리 질러가며 싸우는 장면이라든지 프랑크와 세실이 개와 고양이처럼 싸우는 장면은 대부분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이 책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던 것도 혈연의 기적, 이를테면 다른 관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화, 절대적인 신뢰, 본능적인 융합 따위 전혀 없는(!!!!!) 미셸의 생일 잔치 장면에서부터였다. 오, 이 작가, 유머를 아는 사람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었으니까. 예를 들면 이런 느낌.

그들이 함께 어울리는 시간은 천국이 아니면 지옥이었다. 어중간한 것은 없었다. 자기들이 떠나온 체제를 혐오하는 사람들과 인류에게 미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 느닷없이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두세 사람이 언성을 높이는 게 신호탄이었다. 그들이 이고르가 세운 규칙을 어기고 프랑스어 대신 각자의 모국어로 말하기 시작하면, 모두가 말싸움에 끼어들었다. 무엇 때문에 언쟁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조차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여러 언어가 뒤섞이는 그 바벨탑의 혼란은 대개 십 분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굵직한 성인 남성들의 목소리가 쨍쨍 부딪치며 난장판을 되어가는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움찔했다. 이런 장면을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모른 척하는-물론 소년 시절의 미셸은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을지 모르겠지만-미셸의 목소리가 어찌나 의뭉스럽게 느껴지던지!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을 겪었는지 내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그것을 알겠니? (1권, 423쪽)

하지만 당연히도, 그리고 조금은 서글프게도 이 이야기가 마냥 재미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 클럽의 멤버들은, 미셸의 설명을 빌리자면 대부분 비극적이거나 기괴한 상황에서, 대개는 외교를 위한 여행 도중에 서방으로 넘어옴으로써 고국으로 도망 난민들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난민에게 매우 우호적이고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별 생각 없이 믿어 왔었는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난민으로 인정받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아니었던 아니었던 거시다-_-(아무래도 이 편견의 근본 원인은 홍세화씨인듯…으잉?).


공산주의자였거나 여전히 공산주의자인 그들이 여전히 공산주의에 대해 얘기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부딪히고 부딪치는 모습이, 조금은 서글퍼 보였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사상이 용도폐기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나, 고난을 감수해야만 그 사상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고난을 선택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나, 현실이 녹록치 않은 건 마찬가지이니까.


자신들의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짙은 비애가 묻어 있었다. "사람들은 멍청해.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걸."이라고 투덜거리는 임레의 목소리에조차. 클럽 멤버들에게 배척당하고 형인 이고르에게 욕을 얻어 먹으며 죽는 순간까지 용서란, 화해란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사샤의 존재는 이러한 비애감을 더욱 강화한다. 사샤가 했던 일이 존재했던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음은 특정한 세력의 조직적인 조작이 국가를 위한 일로 정당화되고 당연시되었던 어두운 시대의 모습을 그림처럼 담아내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존재했던 것의 순간을 아름답게 담아내려던 미셸과 사샤가 소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사진이었다는 것은, 그들의 만남이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행인 건, 그들이 과거로 인한 고통을 되새김질하듯이 씹고 씹고 또 씹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그들은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無)로 화하고 말 것이라는 것 역시 잊지 않고 지낼 만큼의 현명함을 함께 갖춘, 낙천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이고르의 이 말처럼 : "우리가 낙천주의들이 아니라면, 누가 낙천주의자이겠소?" 물론 여전히 외롭게 떠나야 했던 사샤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사샤의 장례식에서 그들은 증오와 잘못을 마음속에 두지 말자고 다짐했으니까, 너무 슬퍼하지는 말아야겠지.



미셸,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1권, 27쪽)

아쉬운 점은, 책을 다 읽은 이후에도 '그 이후에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궁금증이 계속 남아, 뭔가 이야기가 더 이어져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랑크와 세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프랑크가 세실에게 한 말은 정말이었을까? 세실이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게끔 거짓말을 한 건 아닐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이후로 영영 갈라져 버린 걸까? 쥘리에트는 계속 말 많은 여자 어른이 되어 남들의 골치를 아프게 했을까(사실 나에게는 이 소설에서 가장 불쌍한 캐릭터가 쥘리에트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응답'을 받지 못하는 소녀라니, 얼마나 외로울까ㅠ). 사샤를 보낸 후 이고르는 어떻게 살았을까? 레오니트와 밀렌은? 마들렌은? 자키는? 빅토르는? 그 외 클럽의 또다른 인물들은? 이거 진짜 이렇게 끝나면 안되는 거 아냐? 외전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러나 이러한 상상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 나는 어디선가 새카맣게 탄 얼굴로 뙤약볕 아래에 앉아 있을 프랑크를 상상해 보고, 이고르와 레오니트와 파벨과 블라디미르와 임레가 체스판을 사이에 두고 둥그렇게 둘러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고, 택시 운전석에서 또다시 사기를 치고 있을ㅋㅋ 빅토르를 상상해 보고, 엔조 할아버지 옆에서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고 있는 미셸의 아버지를 상상해 보고, 카미유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가는 미셸을 상상해 본다. 그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어쩄든간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모두 낙천주의자이며, 우리가 낙천주의자라는 사실은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임이 분명하니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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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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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퇴근길에 이 책을 읽으려고 직장에 가져 갔었다. 출근길엔 신문을 읽느라 못 읽었고, 집에 갈 때 읽어야지 하고 책상 위에 올려뒀다. 다른 부서의 부장님 한 분이 우연히 이 책의 제목을 보시고 "재밌어?"라 물으시더니 얼마나 재미있는지 잠깐만 보시겠다고 하셨다. 한 시간 후, 도저히 손을 놓을 수가 없다며 빌려 가셨고, 그 주에 2권까지 독파하셨다. "나는 소설 별로야. 지어낸 얘기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그런가, 읽다보면 다 거짓말 같고 재미가 없어."라고 자주 말씀하시던 분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이 책, 확실히 재미가 있긴 있나보다, 그렇다면 띠지의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이야기!(명조체)'가 완전한 허위과장광고카피는 아니군…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2. 초반부를 읽을 땐 좀 집중이 좀 덜 됐다. '아서'는 '아서 코난 도일'일 거라는 사실이 너무 당연하다보니까 아서에 대한 서술 부분을 읽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조지에 대한 서술을 읽을 때는 '이 사람은 아서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언제 만나는 거야?'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정신이 흐트러졌었다. 게다가 조지가 파르시라는 사실을, 샤푸르지 목사가 명백하게 짚어주기 전까지는 제대로 눈치채지 못한 터라 도대체 주변 사람들이 조지를 왜이렇게 괴롭히는 건지 이해가 안 가 답답하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1892년 6월 6일을 기억하라고 샤푸르지가 말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제까지 뭘 본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 페이지 앞쪽을 넘겨 보니, 시드 헨쇼가 조지를 보며 새끼손가락으로 양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엄지로 귀를 펄럭이며 원숭이 얼굴을 한다는 내용에다가 윌리 샤프(세상에나!)가 조지에게 다가와 "넌 우리랑 어울리지 않아."라고 말하는 내용이 자그마치 23페이지에 있었다. 아, 완전히 속은 듯한 기분. 실제로는 속은 게 아니라 예민하지 못했던 스스로가 짜증스러웠던 거겠지만.


그 기분으로 다시 페이지를 슬슬 넘겨보니 모든 게 이해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조지를 보며 비웃는 아이들, 조지 앞에서 원숭이 얼굴을 흉내내는 아이들, 침대에 누워 호주와 인도와 캐나다 등등을 대영제국과 연결하는 동맥과 정맥을 생각하는 조지, 시드니와 봄베이, 케이프타운, 혈통,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는 조지, '에들지'를 제대로 발음하지도 쓰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례하고 뻔뻔하게 구는 경사 시절의 업턴 등등. 젠장. 샤푸르지의 말처럼 주님의 피조물은 모두 동등한 축복을 받지만, 그럼에도 조지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미개한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다른 독자들과 동등하게 활자로 줄리언 반스의 이야기를 읽었지만, 그가 뿌려둔 힌트의 조각들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눈을 가린 채 헤매고 있었던 게다.



3. 그때부터는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아서의 삶은 아서의 삶 나름대로 흥미로웠고 조지의 삶은 또 조지의 삶 나름대로 파란만장(!)해서, 1권이 끝나가도록 둘의 접점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다지 초조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누명을 쓰고 재판에서 패소한 후 감옥에 갇히는 조지의 이야기를 쭉 읽어치우면서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본 것과 같은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 홈즈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듯이, 조지가 자신의 억울함을 '셜록 홈즈의 아버지'에게 호소하고, 아서가 그 호소에 마음이 움직여 사건에 대해 알아보고, 홈즈처럼 조지를 만나고, 사실을 파헤치고, 조지의 누명을 벗겨주지 않을까…하고 대충 짐작했던 것. 다행히도 그 짐작은 거의 틀리지 않았다ㅋ


조지의 재판 이야기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건 아서의 이야기였다. 코난 도일이 의사 출신이었고 강령회에 관심이 많았으며 셜록 홈즈 얘기로 세속적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추리소설보다 역사소설을 더 쓰고 싶어했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었지만, 아내 투이와 애인 진 사이에서 왔다갔다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진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유명인의 스캔들을 훔쳐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읽는 내내 '으엉 이거 어떻게 되는거지'와 '아, 왠지 진이 아깝다'와 '아, 투이 좀 안됐다'와 '그러고 보면 아서도 좀 안됐다' 사이에서 갈팡질팡. 지금은 메리가 가장 안됐다 싶기도 하지만…모든 사람에게는 그 사람 나름대로의 상황과 사정이 다 있는 거니까, 다들 조금씩은 안쓰럽다고 생각한다. 역시 사랑은 타이밍인 것인가!



4.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조지가 자신이 괴롭힘을 당한 원인을 인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매우 단호하게 밝히는 부분이었다. 파르시 이야기를 꺼내는 아버지에게 자기는 영국인이라고, 대영제국의 일원이라고, 나를 파르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당당히 말하던 어린 조지가 그대로 어른이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만약 내가 조지처럼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 때문에 협박을 당하고 피해를 입는다면 어떨까. 내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면 겉모습이 문제인 것이리라 여기고 자신의 외양을 추하게 여기며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어릴 적부터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친한 친구 하나 없이 평생을 보내고, 제대로 연애 한 번 하지 않았던 조지의 자아는 어쩌면 이렇게 강하고 단단해졌을까.


그러다 문득 이것은 자아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항상 진리를 말하는 삶 속에서 길을 가야 한다."는 샤푸르지의 말을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듣는, 어린 조지가 떠올랐던 것이다. 자신의 삶을 통해 진리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조지. 그래서 자신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아서 앞에서도 '아서의 말은 과연 진리인가'를 계속 따지던 조지. 명백하게 참이고 진실된 그 무엇을 찾으려 애썼던 조지. 눈으로 감각할 수 없는 것들, 상상력의 영역에 있는 것들은 '보려고 들지 않았던' 조지…가 한꺼번에 와르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그렇다면 아서는 어떤가. 어릴 적부터 상상력이 뛰어났던 소년. 자기의 상상력을 통해 부귀와 명예를 누리고, 다른 이들의 삶을 '올바로' 돌려놓는 데 기꺼이 참여했던 유명 작가이자 저명한 인사.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추론하면서 남들이 볼 수 없었던 진실을 세상에 바로 보였던 사람. 하지만 자신이 본 것을 '아는 것'이라 완벽하게 믿게 된 사람. 그래서 조지의 인종이 괴롭힘을 당하게 된 원인이라고 확신했을 사람.


나는 그 둘 사이 어디에 있는가. 나는 조지처럼 명백하고 확실한 것만을 보려고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내가 본 것에 불과한 그 무엇을 진실이라 확신하는 사람인가. 결국 이 소설은, '본다'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보는 세상의 그 어떤 진실도 완전한 진실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그러니 모든 것을 의심하지도, 완벽하게 자신하지도 말라는 것인가.


사실은,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특히 조지가 아서와 진의 결혼식에 참석하던 부분은 조금 감동적이기도 했으니, 그걸로 됐다.



5. 아서만큼이나 진이 매력적이었고, 조지만큼이나 모드가 매력적이었다. '남편이 하자는 대로 따라하고 가자는 대로 따라가는 부인이 된다는 것'을 못할 것만 같던 젊은 진이 '레이디 코난 도일'로 바뀐 것도, 병약하고 보살핌 받아야 하고 모두의 걱정을 한 몸에 받던 모드가 오빠의 결정 장애를 책임지는 든든한 동반자로 자란 것도 흥미로웠다. 이 두 여인의 이야기가 아서와 조지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조금 들긴 하지만, 뭐, 이것 역시, 됐다. 아서나 조지의 세계와는 또다른 그녀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 역시, 내가 볼 수 없는 세계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반증일테니.


하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본 것일까? 내가 본 것은 맞는 것일까?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른 무언가가 또다시 보일까? 그렇다면 내가 이전에 읽었을 때 본 것은 뭐였던 걸까?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볼 것인가?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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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1. 무라카미 류, 라는 이름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둘 있다. 하나는 친구와 328번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교코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에 대해 흥분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고(친구와 내가 교코에게 꽂혔던 부분은 달랐지만, 어쨌든 둘다 '저렇게 사랑스러운 여자라니, 현실에 있을 수 없다'는 잠정적 결론에 도달하긴 했었다) 또 하나는 중앙도서관의 커튼 뒤에서 류 책을 쌓아놓고 읽다가 잠들던 기억. 둘 다 스무 살 때의 일. 눈을 그믐달 모양으로 만들며 웃던 친구의 상기된 얼굴과 들뜬 목소리, 도서관의 묵은 책 냄새와 나른하던 공기가 왜 이리도 오래 남아 있을까.


그런 이유 때문인지, 무라카미 류를 '젊은 글을 쓰는 소설가'로 인식하고 있던 내게, 이 책은 제목부터 충격이었다. 55세라고? 교코식스티나인의 무라카미 류가? 류는 핏속에서 팔딱팔딱 끓는 청춘의 기운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때에 읽을 법한 글을 쓰는 사람 아니었나? 그런 그가, 55세의 사람들 이야기를 썼다고? 뭐지, 야마다 에이미나 다나베 세이코 같은 느낌이려나…하고 추측하다가 깨달았다. 내가 무라카미 류의 글을 얼마나 오랫동안 읽지 않았는지. 


오랫동안 한 소설가의 책을 꾸준히 읽는다는 건 참 어렵지만, 그래도 꽤 즐거운 일임에 틀림 없다. 어, 이건 예전의 거기에서 본 거랑 비슷한데, 이 사람은 그 때 그 소설에서 봤던 그 사람과 비슷하고…하며 기억을 더듬으면서 예전 책을 오랜만에 들춰볼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소설가와 소설이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는 동시에, 그를 따라 읽는 나 역시 계속 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예전에 꽂혔던 문장이 꽂히지 않기도 하고, 예전엔 의미 없이 넘겼던 페이지에서 멈춰버리기도 하고, 예전에도 좋다고 생각했던 문장 앞에서 '역시로구나!'하고 무릎을 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신간보다 예전 책을 더 오래 붙잡고 있게도 된다.


그러나 나는 무라카미 류의 글을 꾸준히 찾아 읽지 못했기에, 무의식적으로 지금의 무라카미 류가 쓰는 글 대신 20년 전, 30년 전의 무라카미 류가 쓴 글을 '무라카미 류'와 동일시하고 있었던 거다. 교코식스티나인이 무라카미 류 글의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왔고, 실제의 그가 교코식스티나인의 무라카미 류와는 꽤 많이 변해왔을 거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던 거다. 어리석게도.



2. 줄줄 넘쳐 흐르던 에너지로 가득찬 청춘들의 이야기 대신, 그의 말마따나 체력도 약해지고, 경제적으로도 만전을 기하지 못하고, 이따금씩 노쇠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든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후기 중)에 대해 써내려간 이 소설은-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류가 후기에서 '신뢰'라는 말과 개념을 이토록 깊이 의식하며 소설을 쓴 것도 처음이라고 쓴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삶이 잔뜩 주름져 있다는 걸 알아채고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져버렸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연히, 자신을 세상에 붙여둘 수 있는 '신뢰'였을 테니까.


다섯 편의 소설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었는데, 하늘을 나는 꿈 다시 한 번펫로스가 꽤 슬픈 얘기였다면 결혼 상담소캠핑카, 여행 도우미가 긴장을 이완시켜 주어 소설의 배치가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이상 남편이 필요 없어진 여자 이야기(결혼 상담소)는 정말이지 유쾌해서 계속 낄낄대며 읽었고, 삶이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게 된 남자 이야기(하늘을 나는 꿈 다시 한 번)의 마지막 장에서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축 처진 어깨를 늘어뜨린 사람들에게 보내는, 무라카미 류의 응원 같았달까.


나 역시 불안으로 가득 차 있고, 사는 게 고통스럽다. 하지만 적어도 가족이 있고 아직 살아 있지. 맛있는 물도 마실 수 있고. 그리고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다시 하늘을 나는 꿈을 꿀 수 있을 지도 모르지. (167쪽)


은퇴 후 세일즈맨으로서의 커리어와 자신감으로 기세등등하던 토미히로가 '도대체 내 인생은 무엇이었던가?'하는 고민 앞에서 주춤거리는 이야기(캠핑카)나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블로그를 하느라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있는 남편의 이야기(펫로스)를 읽으면서는 나의 아버지가 떠올라 마음이 짠했다. 한낮 내내 창문 밖 공원을 바라보며 한숨조차 못 쉬고 멍하니 있던 아버지의 옆모습, 독수리 타법으로 컴퓨터 앞에서 끙끙대며 단축키 하나로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고민하던 뒷모습. 그때 내 아버지도 블로그를 했었지. 


일을 그만두고 일 외의 무엇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전긍긍하던 아버지의 심정을, 두 딸이 졸업하고 취직할 때까지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하던 아버지의 고뇌를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그 철없음이 후회되고, 죄송하고, 슬프다. 하지만 나카고메 시즈코의 말처럼 인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라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에 더 가까울테니, 그때의 잘못을 되새김질하기 보다는 지금의 시간을 충실히 채우는 게 낫겠지. 내가 그때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다른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고 해서 단순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순간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중략) 돈이나 건강 등에 대한 불안감은 있다. 불안투성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건 후회하면서 사는 것이다. 고독은 아니다. (76쪽)



3. 사실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땐 '노년의 내 모습'을 계속 상상했더랬다. 애도 남편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고, 쭉 없을 계획인지라(!) 나카고메 시즈코의 맞선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나중에 저런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나마 시즈코는 딸이라도 있지, 나는 딸 따위도 없을 텐데 하는 생각에 심란함이 더해졌고. 어쩌면 시모후사 겐이치처럼 장래의 암울한 전망을 그려 보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게 55세 이후의 내 모습이겠거니 싶어 울적하기도 했다. 류가 그리는 일본의 지금 모습이나, 한국의 지금 모습이나, 거의 다르지 않다 싶어서.


시모후사 겐이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은 30년 전이나 40년 전에 비하면 월등히 풍요로워졌는데도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돈이 돌아가지 않는다. 춘계 임금 인상 투쟁에서도 대기업 노조는 경영진에게 굴복했고, 요 근래 급료가 전혀 오르지 않았다. 아니, 오르기는 커녕 실적이 부진한 가전제품 회사에는 구조 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대기업이 그런 상황이니 중소기업 사원이나 파견 직원,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비참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중략)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인데, 대다수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허덕이며 단 20엔이든 10엔이든 저렴한 편의점 도시락을 사 먹고, 1엔이라도 싼 선술집을 찾고, 맛있는 식사도 맛있는 술도 애초에 포기하며 살아간다. (313쪽)


물론 개인적으로는, 차를 준비해놓고 작은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사는 삶도 크게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지금보다 더 쪼잔해지고 치사해지겠지. 인간의 가치를 돈보다 아래 두고 복지라는 말이 도둑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스리는(!!) 이 나라에서, 늙어가는 내가 평안하게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지. 근데 나보다 이 세상을 오래 살아가야 하는, 더 젊고 어린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삶을 살아가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같이 잘 살기 위해서, 몇 개 없는 걸 두고 힘 없는 이들끼리 개싸움하지 않도록,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넉넉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잘' 살아가야겠지. 나 늙으면 어떡하지? 힘 없고 돈 없을 때 어떻게 살지? 하는 걱정으로 벌써부터 동동거리며 치사하게 내 것만 챙기면서 살지 말고. 그래야 다시 하늘을 나는 꿈이든 캠핑카를 타고 여행하는 꿈이든 근사한 여자/남자를 만나는 꿈이든, 그게 뭐든간에 '꿈'이란 걸 꿀 수 있을 테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을 땐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을 마시며.


뭔가 괴로운 일이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먼저 천천히 물을 마셔라. 그러면 일단 마음이 차분해지지.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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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아이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9
나지브 마흐푸즈 지음, 배혜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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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월 17일의 기억


밤이 지나면 낮이 되듯 불의는 반드시 사라져. 우리는 우리 동네에서 압제가 멸하고 기적과도 같은 날이 훤히 밝아 오는 것을 분명 보게 될 거야. 

-우리 동네 아이들 2권, 358쪽


마지막 장을 읽은 날은 4월 17일이었다. "나도 이거 주면 안 돼?"라고 말하는 직장 동료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었던 노란리본 뱃지가 마침 다 떨어져 버린 날이었다. 좀 더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란리본 뱃지를 만들어주시는 분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찾았다. 영상 하나가 업데이트되어 있었다(http://on.fb.me/1JhCG5G). 

클릭한 영상 속에서는, 노란 옷을 입으신 여자분이, 마이크를 잡고 말씀하셨다.

저희 가족들이 항의의 뜻으로 지금 광화문, 바로 정문 앞, 그러니까 경복궁 입구 쪽에서 벌써 2박 3일째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경찰 병력이 대거 출동하여 저희들을 무 뽑듯이 끌어내고 있습니다. 지금 일부 가족들은 버스 위로 올라가서 시위를 하고 있고, 부모들, 그리고 부모들은 저처럼, 지금 사방으로, 여러 명이서 감싸서 끌어내고 있습니다. 거의 전쟁터와 같은 상황입니다. 여러분이 가셔서 야유라도 보내주시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여러분이 얘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가셔서 이야기 좀 해주십쇼. 가족들이 혼자서 싸우기에는, 너무나 많은 경찰 병력이 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셔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라도, 한 번 외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몇 분 후 또다른 사진 세 장이 올라왔다(http://on.fb.me/1FWq8xx). 사진 속에서는 무표정한 얼굴의 경찰 다섯 명이 파란 패딩 점퍼를 입고 빡빡머리를 한 남성 한 명을 붙잡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삭발하신 유가족 중 한 분이리라는 걸, 아무 설명 없이도 알아챌 수 있었다.

문득 우리 동네 아이들 1권에서 본 문장이 생각나 책을 뒤적였다.

"우리 구역 사람들은 끼드라의 실종과 함단이 관련되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함무다가 말했다.
"천치 같은 놈들아, 알아듣겠어! 사람들이 끼드라를 죽인 놈이 함단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살해했을지도 생각해 봐야 해."
"만일 살인자가 알아투프 사람이라면요?"
"살인자가 카프르 알자가리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다른 놈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데 관심 있지, 범인을 처벌하는 것에는 관심 없다."
"훌륭하십니다!" 아부 사리으가 탄성을 질렀다.
라이시는 화로를 비우고 담뱃대를 바라카트에게 건네며 말했다.
"불쌍한 함단 놈!" 
-우리 동네 아이들 1권, 209쪽


깊은 한숨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저절로.




2. 세상은 점점 나빠져만 가고 있는 게 아닐까?


때때로 생각한다. 세상은 점점 나빠져만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수십 번은 완전히 무너졌어야만 맞는 것 같은 이 사회가 오늘도 짐짓 차분하고 뻔뻔한 얼굴로 꾸역꾸역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세상이 전혀 좋아지지 않고 있다는 증좌는 아닌가? 그래도 예전보다는, 그래도 그때보다는, 이라는 생각은 너무 나이브한 것이지 않나? 김연수소설가가 눈먼 자들의 국가에 쓴 이 문장에 백퍼센트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과연 있나?


인간은 저절로 나아지며,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역사는 진보한다고 우리가 착각하는 한, 점점 나빠지는 이 세계를 만든 범인은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 오이디푸스의 망각과 무지와 착각은 또한 우리의 것이기도 한다. 


우리 동네 아이들을 읽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질문 역시 저것이었다. 이 이야기 속의 '우리 동네' 역시 과연 좋아지고 있는 건가? 후맘이 친형 까드리의 손에 살해당한 이후부터 인간은 이를 끝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는 천형을 지게 된 건 아닐까? 정의와 질서가 세워진 동네란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지도자가 존재하는 순간에만 가능할 뿐이다. 자발, 리아파, 까심이 대체 누구지? 이야기가 아닌 카페 밖 어디에 대체 그들의 흔적이 있다는 건가? 라는 반문에는 조소가 가득 섞여 있다. "현세에서 우리가 파리라면 내세에서 우리는 흙먼지야"라는 말에는 이번 생에 대한 기대가 먼지만큼도 없는 동네 사람들의 비탄과 절망이 묻어나온다.


같은 이유로, 우리 동네 아이들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쫓겨났던 아드함이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고, 후맘을 죽인 후 도망갔던 까드리가 다시 돌아와 동네를 이루고, 자발과 리파아와 까심이 평화와 사랑과 평화와 형제애와 평등을 전파함으로써 동네를 변화시킬 때마저도 그랬다. 그 변화가 찰나에 불과하리라는 걸 너무 쉽게 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발과 리파아와 까심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넘쳐흐르던 기쁨과 희망은 금세 지나가고, 잠시 후의 어두움은 더 짙게 칠해졌으니까.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너무 힘이 들어서, 김수영의 시를 읽었다.


우리는 무슨 적이든 적을 갖고 있다

적에는 가벼운 적도 무거운 적도 없다

지금의 적이 제일 무거운 것 같고 무서울 것 같지만

이 적이 없으면 또 다른 적ㅡ내일

-적1 중에서




3.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문득 궁금해졌다. 왜 이 책의 제목은 우리 동네 아이들일까. 우리 동네 '이야기'가 더 적당한 것 같은데. 책을 덮고 표지를 바라보았다. 종이를 넘겨 보는 남자, 그 앞에 앉아 있는 어린 아이.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이어지는 이야기. 과거 어른들의 것이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나와 미래를 살아가게 될 너의 것이기도 한 이야기. 갑자기 아득해졌다.



이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는 이야기일 테다. 이것을 끝없이 이어가게 될 이들은 탐욕으로 눈이 멀어 미래를 보지 않는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니, 나 역시 아이들로서 존재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다. 자발이나 리파아나 까심 같은 사람은 되지 못할지언정 이드리스나 자끌루트나 하자즈 같은 사람이 되어선 안 되니까.


그러니 아랍의 어느 작은 동네에서 벌어졌다가 이미 종료되어버린 '옛날 이야기'가 아니란 거다. 자발라위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가족을 이루고 그 가족들의 후손이 이어지면서 되풀이된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쓰이고 있는 역사인 게다.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시간의 모든 공간이 곧 자발라위의 동네일 테니, 나의 동네 역시 자발라위의 동네인 게다. 


나지브 마흐푸즈는, 인간이라면, 자신이 존재한 모든 장소의 모든 시간을 기록하고 기억함으로써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 피묻은 이야기로써 전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자발과 리파아, 까심에게 전해진 자발라위의 말을 구현해내자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힘으로 억압과 맞서 이기고 너희들의 권리를 찾아서 행복하게 살면 된다.

-우리 동네 이야기 1권, 261쪽


'사랑을 받고 싶으면 행동으로 옮기거라.'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이렇게 약한 제가 무슨 수로 저 수장들을 물리칠 수 있나요?' 그러자 그분은 '나약한 자는 잠재된 자신의 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이고 나는 어리석은 자들을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 동네 이야기 1권, 356-357쪽


그분은 당신에게 동네 사람들 모두가 그의 자녀고, 그의 재산은 그들 모두의 재산이고, 수장들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사악한 존재라고 말하실 겁니다. 거기다 동네는 틀림없이 그 저택이 증축된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하실 겁니다.

-우리 동네 이야기 2권, 70쪽




4. 그리고 나에게.


물론 쉬울 리 없다. 오늘 포털사이트의 초기화면에는 4월 16일에 맞춰 콜롬비아로 간 그녀가 "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없다"고 말했다는 뉴스가 버젓이 떠 있었다. 유가족을 광화문 앞에 가두고 찬 땅바닥 위에 누워 노숙하게 하더니 차벽으로 겹겹이 포위하고 무차별적으로 연행하던 경찰은 세월호 추모 집회가 폭력 집회로 변질됐다고 발표했단다. 2008년의 데자뷰 같은 느낌이다. 물론 그 전에도, 그 전에도, 그 전에도, 비슷한 광경이 있어 왔었지. 보네거트는 그랬다, 내 늙어가는 것이 끔찍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끔찍할 줄은 몰랐지, 라고.


그렇기에 나는 또다시 김연수소설가의 문장을 다시 찾아 읽는다. 그가 인용한 테이레시아스의 말을. "그대가 바로 그대가 찾고 있는 범인이란 말이오." 


이 끔찍함과 고통스러움을 배태한 세상이 나의 세상이라면, 나 역시-어느 정도는-그 끔찍함과 고통스러움의 창조자이자 동조자. 사람들이 아주 사소한 실수를 범해도 무자비하게 응징하고, 웃고 농담하고 쳐다보았다고 몽둥이찜질을 가하는 관재인과 그의 첩자들 앞에서 한 마디 말도 못한 채 고개 숙였던 적이 정말 없었던가. 폭력 행위가 난무하고 증오와 공포가 팽배한 험악한 분위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겠냐고, 나는 그와 상관 없고 싶다고 고개 돌린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견디고 버틴다는 게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걸,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실감한다. 그러니 수많은 이들이 잊고 보지 않고 뒤돌아서버리는 거겠지. 나 역시 자주 그러고 말겠지. 그렇게 악령으로부터 잡아먹히고 말겠지. 고개 돌리지 말고, 바로 보고,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일 텐데.


왜 망각은 전염병처럼 우리 동네를 휩쓸고 지나가는 걸까?

-우리 동네 이야기 1권,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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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족.


해설을 읽지 않고서도 성경에서 모티프를 따왔다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자발라위의 권위는 신의 것과 다름 없었으니까. 아드함과 이드리스, 까드리와 후맘, 자발과 리파아의 이야기를 읽으며 만약 이런 얘기가 우리 작가의 손으로 쓰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봤다. 마흐푸즈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공격받았듯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엄청난 고초를 겪었겠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리파아였다. 폭력적 권위 대신 사랑을 통해 힘을 가진 자와 싸웠고 약한 자를 위해 살려고 했던 리파아는 예수님을 바로 연상시켰다.



1권의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 수록 두려웠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글로 옮겨져 있을 리파아의 죽음을 확인하기가 겁났다. 리파아의 죽음이 서술된 페이지 앞에서 몇 번을 주저했고, 읽는 내내 한 글자 한 글자가 참 아팠다.


리파아는 절망스러워 물었다.

"왜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바유미가 몽둥이로 리파아의 머리를 가격하자 그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붵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발라위!"

그다음 쿤피스가 몽둥이로 그의 목을 내리쳤고 이어서 몽둥이찜질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의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손으로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 이야기 1권, 424-425쪽


저 부분을 읽던 때의 고통 덕분에 오늘날의 답 없는-_-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야말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저런 죽음을 온몸으로 맞은 그분의 가르침은 당신들이 지금처럼 힘을 가진 자 앞에서 비굴하고 약한 자 앞에서 기세등등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당신들이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팔고 다니는것이야말로 신성모독이라는 걸 알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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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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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해질녘. 빛이 스러져가는 시간. 세상이 어두워지기 직전.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그 이름을 단 열차가 있다. 선셋 리미티드. 시속 130킬로미터로 달리는 급행열차. 그 열차에 한 남자가 자신의 몸을 부딪쳐 산산조각내려고 한다. 플랫폼에 뛰어든다. 투신하기 직전, 누군가 그를 붙잡는다.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에 지하철역에서 선생더러 내 품으로 뛰어들어달라고 내가 부탁한 게 아니잖아. (13쪽)

자신을 죽이려 한 이는 사는 동안 아주 약한 것을 믿고 의지해왔노라고 말한다. 그것들이 다 무너졌다고 느낀 이상, 더 살 마음이 없다고. 포기하는 것만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그에게, 그를 붙잡은 이는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네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건 이미 잃어버린 것 때문이 아니라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것 때문일 수도 있다고.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고 싶은 것 때문일 수도 있다고.

이제는 포기하겠다고 하는 남자는 백, White이고 포기하지 말라고 붙잡는 남자는 흑, Black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더미 속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하는 백인 교수와 진창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를 먹이고 달래는 전과자 출신의 흑인 목사. 다분히 의도적이다. 더 많이 가졌고, 더 많이 대우받고, 인종적 차별의 대상이 되거나 편견 어린 시선을 받는 데서 더 자유로울 이가 죽음과 고통과 절망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아주 약했어요. 아주 부서지기 쉬웠지요. 나는 그걸 몰랐습니다. 절대 파괴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한데 그렇지가 않더군요. (27쪽)

비록 네가 내 형제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거기 서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지나치지 못하겠다며 계속 말을 거는 Black과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며 자신을 내버려두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White. Black은 White의 삶을 계속 땅 위에 붙잡아두려 하고, White는 그런 Black에게 세상이 얼마나 살 필요 없는 곳인지를 끊임없이 역설한다. 차를 마시고 밥을 먹으며 마음을 가벼이 해보려 하지만, 말과 말은 부딪치고, 마음은 깨어진다. 애원하고 부탁해도 White는 떠난다. 무너진 채로 문간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Black을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누구나 우연히 사람들을 만나고, 그중에 어떤 사람은 곤경에 처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우리가 그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8쪽)

아무리 단순한 것이라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기 마련이지. 아침에 열차 플랫폼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어. 일하러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거지. 백 번은 그랬을 거야. 어쩌면 천 번인지도 몰라. 그건 그냥 열차 플랫폼일 뿐이야. 달리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게 없어. 하지만 그 플랫폼 가장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 통근자에게는 그게 다른 걸 수도 있지. 어쩌면 그게 세상의 맨 가장자리일 수도 있단 말이야. 우주의 가장자리일 수도 있고. (84쪽)

이것은 신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구원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그것도 아니라면 고통에 대한 이야기일까? 어쩌면 그 세 가지가 모두 다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완전히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그를 지켜 보다가, 어떻게든 크게 한 걸음을 떼지 않으면 안 되는(51쪽) 상태가 되었을 때 말을 거는 신이라니. 이것은 구원인가, 아니면 고통인가.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사실은 나도 White처럼 생각할 때가 많다. 삶이란 고통과 동의어라고.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고통이 길어진다고. 늙고, 결리고, 부서지고, 퇴화되고, 삐걱거리고, 아프고, 피흘리고, 산산조각나는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잊고, 잃고, 실패하고, 부딪히고, 갑갑하고, 얽매이고, 벗어나지 못하여 스스로를 죄수로 만드는 정신적 고통까지. 살아 있는 이 순간은 죽어 가는 순간이니까, 때로는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 대신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나 더 죽어가야 죽음에 도달할 수 있을까 궁금해한다. 

그래서 또 자주 생각한다. 나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도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 같다고. 그리고 꿈꾼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끝나버렸으면. 죽어가는 순간이 길지 않았으면. 

세계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유혈과 탐욕과 어리석음의 대하소설을 읽는 겁니다. 그 의미는 아주 분명하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든 달라질 거라고 상상합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해요. (108쪽)

그렇지만 나는 안다. 이런 내 말이 얼마나 비겁한지를. 조금이라도 더 사는 것처럼 살아보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고통을 몰라서 싸우는 것인가, 고통스럽지 않아서 싸우는 것인가. 그들이 도달할 곳 역시 패배라면, 질 것이 뻔한 싸움을, 유혈과 탐욕과 어리석음에 조금이라도 덜 잡아먹히려고, 그토록 치열하게 하고 있는 것인가. 죽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철탑 위에 올라가고, 굴뚝 위에서 밥을 먹고, 차가운 땅바닥 위에 세운 천막을 지키고, 송전탑이 들어설 자리에 당신의 몸을 사슬로 묶고, 자신을 쓰레기처럼 질질 끌고 가려는 이들의 손아귀에 붙잡혀서도 저항하고, 두들겨 맞아도 계속 소리지르고,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하고 있는 그들은, 살아 있는 것인가 죽어가고 있는 것인가.

삶은 긴 가뭄 같거나 긴 빗속 같다. 하지만 그 가뭄이 매일 똑같지도 않고, 그 빗줄기가 매일 똑같지도 않다. 잘 안다. 그래서 나 대신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그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것이 나의 삶이다.

그냥 긴 가뭄 같은 거 말이야. 어쨌거나 내 말은 말이오, 설사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해도, 그래도 해가 매일 똑같은 개의 궁둥짝을 비추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거요. 내 말이 이해가 되쇼? (43쪽)

나의 삶 역시 White의 말처럼 고통의 유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White에게 그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무無의 희망에 매달리게 된 건 어쩌면 그의 곁이 무無였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 정말 이건 바보같은 생각이지만, Black의 작은 아파트를 뛰쳐나간 White의 마음 속에 아주 미미하게라도 균열이 일어나진 않았을까. 자신이 나간 뒤에도 "내가 거기 있을 거야"(138쪽)라고 되뇌이는 Black의 목소리가, White의 머릿속 깊이 자리잡고 있던 무無의 희망에 금을 내진 않았을까.

비록 Black은 White를 붙잡지 못했지만, 그래서 무릎을 꿇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울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Black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보 같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는 알고 있으니까. 두 번 다시 자신에게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자신이 신의 말을 충실하게 지킬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러면 되는 거다. 유대는, 연대는, 함께 한다는 것은 위대하니까. 결국 인간은 함께 해야 하고, 지금 싸우고 있는 이들이 나를 대신해 싸워주고 있음을 알아야 하고, 그러니 함께 싸워야 하고, 그래서 살아야 한다는 걸, Black은 알고 있을 테니까.

댁이 말하는 건 고통의 유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133쪽)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아니면 죽는다. (117쪽)


이 책 덕분에 나를 대신해 싸우고 있는 수많은 분들을 떠올릴 수 있어 기뻤고 또 슬프다. 수많은 곳에서, 고통 속에서도 삶을 계속해가고 있는 그들의 시간을 존경한다. White처럼 고통의 유대조차 갖지 못한 채 외떨어진 누군가가 내 주위에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겠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나아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확신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이들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해 본다. Black의 이 말이 맞다, 인간이라면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으니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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