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해야 syo일 뿐인데, 이론이 필요할까
지금 이 순간,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라는 거미줄처럼 약하고 조금은 비참하기까지한 방패를 미리 받쳐들고 입을 떼야만 했던 사람들의 심정을 좀 알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려고 한다.
syo는 말기 빨갱이에 열혈 맑빠지만, 솔직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엥겔스의 다소 미심쩍은 책 『가족, 사유재산(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이나 영문판으로 800페이지가 넘는 책 50권에 달하는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을 악착같이 뒤져, 여기저기에 정말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구절들을 들먹이면서 자신들의 두 성자를 페미니즘의 전당에도 은근슬쩍 밀어넣으려 분투하는 모습을 볼 때면 기가 찬다. 다 차치하고 마르크스가 살아 온 꼴을 보자. syo는 역사에 그만큼 큼지막하게 이름자를 박아 넣은 인물 가운데서 마르크스만큼이나 아내를 성적, 재정적, 직업적으로 착취한 사람을 알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의 마음이야 syo가 가늠할 수 있는 바는 아니지만, 그 모든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가치를 남편에게서 찾아냈기 때문에 버티고 살았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아, 이런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게 아니라, 다시,
syo는 말기 빨갱이에 열혈 맑빠지만, 계급 투쟁이 성공하여 모든 생산 수단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아귀에 쥐어지는 순간, 자동으로 모든 부수적인 문제, 인종 차별이나 남녀 차별이나 이런 저런 갖가지 차별들이 일거에 해결될 것처럼 부풀리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은 좀 순진하거나 기만적이라고 본다. 물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러려면' 지금 이 시점부터 혁명이 성공하는 순간까지 살아 있는 모든 차별들을 잠시도 눈 감지 말고 주시하며 가야 하는데 그건 참 어렵고, '아니려면' 그냥 지금처럼 앞만 보고 달리면 되니까, 결과적으로 아니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이론은 차별의 철폐에 불필요하거나 불편하고, 페미니즘의 이론은 혁명의 완성에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족쇄가 될까?
안태근이 '그랬던' 이유는 물론 그의 품행과 인식에서 나오겠지만, 안태근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가진 권력, 그리고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의 편이라는 데 있다. 인사권. 그리고 2차 가해를 유발하는 사회적 힘. 고은이 '그랬던' 이유 역시 그의 품행과 인식에서 출발하지만, 고은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 또한 그가 가진 권력, 그리고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의 편이라는 데에서 생겨난다. 청탁권력. 그리고 역시 2차 가해를 유발하는 사회적, 문화적 힘.
결국 이것은 다시 권력의 문제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이 문제를 '문제'로 생각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다. 쓰레기 같은 남자들이 소수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쓰레기를 치울 뜻과 힘을 동시에 가진 남자들이 너무 소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어느 소수가 더 소수인지는 명백하다. 쓰레기보다 청소부가 더 많았다면, 이 모든 폭력들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해도 최소한 발생과 동시에 수면에 드러났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나고, 몇십 년이 지나 이제야 겨우, 이렇게 힘겹게 싹을 틔어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MeToo의 융단폭격 소리를 듣고 잠자던 청소부들이 이제 눈을 떴을까? 이제껏 눈 감고 못 들은 척, 기껏 들으면 치우는 둥 마는 둥 한없이 미적거리던 청소부들이 드디어 일제히 기립하여 손에 손에 목장갑을 착용하고 빗자루를 들까? 청소를 마치면 유니폼을 갈아 입고 경찰관이 되어,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단속하고 처벌하여 아예 쓰레기가 생겨나지 않도록 열과 성을 다할까?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가 등장하면 어떨까.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모든 생산수단을 점거하고, 부르주아지들이 사라지는(프롤레타리아트가 되는 셈이다) 순간 승전보를 울린다. 그렇다면 모든 권력을 여자들에게 주면 어떨까. 그건 안 되겠다. 생산수단을 잃는 순간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부르주아와는 달리, 남자는 권력을 내려놓아도 여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별만 바뀌어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력을 반으로 나누면 어떨까. 자신을 아프게 하는 쓰레기를 치울 수 있게, 여성에게도 빗자루를 나누어주면 어떨까. 권력이라는 생산수단을 균형있게 나누어 가짐으로써 서로의 착취를 서로가 막을 수 있는 두 집단의 혁명 프롤레타리아트를 맞세워 놓으면 어떨까.
정말 어색한 비유였지만, 이 문제를 발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여성에게 권력을 주는 것 외에는 역시 방법이 없다고 syo는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면역이 떨어진 몸이다. 그래서 병까지 걸린 두 배로 불쌍한 몸이다. 우선 병을 쫓아내면, 반드시 면역력을 회복해야 한다. 대증요법으로 일관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아무리 안태근이니 최교일이니 고은이니 욕으로 두들기고 법과 도덕으로 처벌해도, 다시 그들의 자리에 그들이 가 앉을 수 있게 둔다면,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물론 단순하고 순진하며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생각이다. 그러나 당장 무엇을 행동으로 옮겨야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아니, 내가 무슨 행동을 한다고 해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오기나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syo 깜냥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겨우 이런 생각들이나 내면의 윤리학을 기름치고 조이는 소심한 노력 말고 뭐가 있을까. 그렇다면, 기껏해야 이런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하고 간단한 생각들을 하기 위해, 이런 책들이 과연 필요했던 걸까? 고작 이런 뻔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려고 저 무섭고 무거운 책들을 읽어야 했다면, 어쩌면 syo는 구제가 안 되는 덜떨이는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