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 후반부의 테마는 행복입니다

 

 

1

 

단어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첫 위기가 왔다. 단어를 잃어간다는 건 손가락이 모래로 바스라져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다음은 문장이었다. 간명한 문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간명한 문장이고 다른 하나는 간명해서 아름다운 문장이다. 어차피 후자를 구사할 수 없다면 차라리 문장의 꼬리를 끝없이 길게 잡아당겨서 일종의 퇴폐미라도 첨가하고 싶은, syo가 또 그런 인간이다. 간명하기만 한 문장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봤자 월급이 시키는 일은 해야지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망해가고 있었다.

 

이런 거, 누군가에겐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이게 아무것도 아닌 일은 아니지만 네가 뭐 시인도 소설가도 아닌 마당에 그리 큰일도 아니지 않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말해오면 이쪽에서는 덧붙일 말이 없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고. 그러나 내가 지닌 단어가 협소해지고 문장이 흩어진다는 느낌 앞에서 생이 덜컹덜컹 흔들리는 사람도 있다. 누구에게나 이것만큼은 도저히 견딜 수 없겠다 싶은 저마다의 퇴락이 있는 법이다. 그게 단어고 문장이어서 syo는 내 인생이 좋고 또 싫다.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다. 그러나 좋건 싫건 어쨌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내 안에 나의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만의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점차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쓸 수 없는 인간 쪽으로 떠밀려간다는 느낌이 들 때, 인생이 바뀌거나 인생을 바꾸거나 하는 놈이 있다. 여기 있다. 것참 세상엔 희한한 인간도 많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고가장 추악한 모습은 자기를 모를 때 나타난다대부분의 인간은 자기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산다.

정희진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이원하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부분

 

 

 

2

 

모든 마주침을 마주침으로, 돌아섬을 돌아섬으로 그저 그렇게 흐르도록 둘 수 있다면.

 

 

 

3

 

이제, 다시 읽고 쓸 것이다.

 

 

 

--- 읽은 ---

·


94. 논어를 읽다

양자오 지음 / 김택규 옮김 / 유유 / 2015

 

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어느 위대한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위대함에 걸맞은 위대한 말들을 그는 남겼고, 제자들은 그를 섬기듯 말을 섬겼다. 섬김은 끊어질 듯 이어지며 긴 세월을 어찌저찌 건넜으나 위대함은 시간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마모되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위대한 인간의 위대한 말이 아니라 위대했던 인간의 위대했던 말과 마주한다. 섬길 것인가. 섬긴다면 말은 우리 안에서 다시 위대함을 찾을 것이다. 말의 후광에 힘입어 우리도 얼마쯤 위대해지거나 위대해졌다고 착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대했던 말을 위대한 말로 섬기기 위해서는 방법이 필요하다. 2500년 전에 죽은 위대함의 시체를 벌떡 일으켜 내게로 뚜벅뚜벅 걸어오게 만들 주문이 필요하다. 힘을 잃은 말의 힘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95.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이즐라 지음 / 큐리어스 / 2019

 

허영을 위해 필요한 것이 이 정도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입문자여, 더 늦기 전에 허영의 길에서 발을 빼기를. 지금이라면 당신은 치유될 가망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몇 발만 더 허영의 심연 속으로 발을 들인다면, 당신은 이 정도 책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입문서를 찾아 아무도 읽지 않는 책들의 산기슭을 어슬렁거리게 될 것입니다.

 

 

--- 읽는 ---

어려웠던 경제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 가미키 헤이스케

미셸 푸코 1926~1984 / 디디에 에리봉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 캐슬린 배리

혼밥생활자의 책장 / 김다은

프로이트 패러다임 / 맹정현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 채사장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철학수업 / 박홍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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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8-14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써요. 쓰고 읽겠습니다.

syo 2020-08-14 08:14   좋아요 1 | URL
쓰고 읽어요. 제가 읽고 쓸게요.

2020-08-14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4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4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4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4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