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를 신고, 군화를 들고, 운동화를 메고
1
내가 얼마나 작고 모자란 인간인지를 자주 생각한다. 나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자란 친구들은 물론, 또래의 사람들 중에도 나만큼 저런 생각을 칭칭 휘감은 채 일상을 풀어나가는 이는 드물 것이다. 어느 시점을 통과하며 형성(당)한 나의 정체성이다. 나는 막을 새도 없이 불뚝불뚝 튀어나오는 내 안의 저 아이가 밉고 애달프다.
동전을 던지면 자주 뒷면을 만나서 슬프다. 어떤 인생은 계속 뒷면을 부른다. 뒷면색깔이다. 가끔씩 앞면이 나오기는 한다. 그럴 때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앞면이지만 손바닥에 맞닿은 면은 뒷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픔은 슬픔이고 즐거움은 반전된 슬픔이다.
2
보고 싶은 친구를 내가 불러내도 술과 고기는 친구가 산다. 백수생활에 들어가면서 나는 사회가 던질 모진 시선과 보편성 압력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버텨내는 마음만 겨우겨우 예비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맞닥뜨린 적들은 조금도 추상적이지 않았다. 그 수많은 구체적인 것들 가운데 하나가 ‘자존심-친구의 trade-off’였다. 자존심을 지키려면 친구를 버려야 한다. 반대로 친구를 지키려면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사람 없이 살 수 없는 나는 자존심을 버리는 쪽이었고, 성공적으로 자존심을 버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빠져나간 갯벌에는 미안함이라는 새로운 소금물이 밀고 들어온다. 그것들은 다르면서도 비슷한 감정이다. 하나는 얼굴을 붉히고 다른 하나는 얼굴을 숙인다. 그러나 어쨌든 두 놈 다 작은 사람을 더욱 작게 만든다. 월요일 밤이었다.
3
나는 한 것이 없어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역량이 없어서 당신이 공무원으로서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역량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저 뜬구름이나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대답이 내 앞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다 하였지만, 나보다 먼저, 나와 함께, 나보다 늦게 면접관을 만나러 들어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감에 찬 당당한 얼굴로 맞설 수는 없었다. 젊은이들은 밝고 힘이 있었다. 그게 젊어서 그런 것인지, 젊은데도 그런 것인지, 나는 그조차 알 수 없어서 그저 스스로의 늦됨이 부끄러웠다. 월요일 오후였다.
4
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주민센터 2층에 모여 저녁 도시락을 먹는 중이었다. 옆에 앉은 이가 말을 걸어왔다. 나보다 한두 살이 많았고, 남편이고, 두 살, 여섯 살 난 아이 둘의 아버지인 듯했다. 이야기는 진부했다. 짊어져야 할 무게에 짓눌린 인생사의 괴로움, 가지 않은 길에 남은 미련, 약삭빠른 선택과 행동으로 나보다 저만큼 앞서 나간 이들에 대한 양가감정 같은 뻔하고 흔한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늘 그러듯 나는 역시 진부하고 뻔하고 흔한 태도를 취하는 중이었다. 내 스스로 내 인생을 조롱하는 태도를. 무슨 일 하세요? 아무 일도 안 해요. 아, 그래요? 네, 제가 좀 철딱서니가 없어놔서요, 막 마음대로 살다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아, 그러시구나, 뭐, 인생은 긴 거 아니겠어요? 네. 사람 일 모르는 거니까요. 네. 저도 그냥 가끔은 일 다 때려 치고 제주도 같은 데 내려가고 싶고 그래요. 네. 근데 이미 묶인 몸이라, 그런 게 안 되는 거죠. 아시죠? 네. 화요일 밤이었다.
5
내 입이 기계처럼 그렇고 그런 대답을 내뱉는 동안, 입을 뺀 모든 기관은 그날 오후에 받은 카톡 메시지 하나에 집중하고 있었다. “크기 4-5센치. 우측 하부 요관에서부터 방광 안쪽까지. 림프절도 의심. 콩팥부터 요관, 방광 위까지 제거. 전이되면 손 못씀. 2기로 보이지만 열어봐야 알 수 있음. 3기면 항암도 필요. 일단 전이는 없음. 수술 이틀 전에 입원할 것.”
소변에 피가 비친다는 엄마가 찍어온 CT를 들고 대학병원을 찾은 것이 지난 주 목요일, 교수는 일단 방광암 소견을 냈고, 확진하기 전에 몇 가지 검사를 더 받은 다음 화요일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엄마는 다시 피를 뽑고, 소변을 받고, 내시경 카메라를 집어넣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는 동생의 손을 잡고 화요일 오후 3시에 병원을 찾아 4시쯤 방광암 확진을 받았다. 엄마는 애써 담담한 척 하려 했지만 그럴 리가 없음을 나는 안 봐도 알 수 있었고, 동생의 목소리는 떨렸다.
나는? 나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군화 끈을 조이고 있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승강기에 올라타 로비층을 눌렀다. 평소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보폭으로 주민센터로 걸어갔고, 걸어가는 동안 만난 군복 입은 사람에게 이 동네 훈련은 어떤지 물어봤다. 대기공간에서는 옆 사람과 아무 의미 없는 수다를 떨었다. 연락을 받고 뭐가 달라졌을까? 뭔가 달라졌을 것이다. 근데 그게 뭔지, 얼마 만큼인지, 알 수가 없었다.
6
20년 전쯤이었다. 엄마는 이가 아파서 며칠을 제대로 못 먹어 기운이 없었다. 무심하고 버릇없고 가족을 아낄 줄 모르는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엄마가 대뜸 기운 없음을 호소했다. 나는 가방에서 정석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치과 갔다 오라니까 또 안 갔지? 밥을 똑바로 먹어야 기운이 생기지. 밥을 똑바로 먹으려면 이가 괜찮아져야지. 라고 말했다. 부엌에서 열린 방문을 통해 말을 거는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엄마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방문을 닫고 정석을 풀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갔다. 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엄마는 외할머니와 함께 치과에 갔다가 거기서 쓰러졌다. 그리고 엄마가 기운이 없었던 이유는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가 아니라 ‘급성 골수성 백혈병’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음에 엄마를 봤을 때 엄마가 어느 병실에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균실 안에 들어있는 엄마와 전화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은 생생하다. 엄마는 그 안에서도 웃고 있었다. 혼자 있을 때도 엄마는 울지 않았을까?
7
나는 많이 울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어떤 장면을 생각하기만 하면 언제든 실컷 울 수 있었다.
여자는 요즘 어쩐지 몸에 힘이 없다. 어지럽다. 밥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 몸으로 장을 보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한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아이를 챙기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 그래서 견디고 또 견디지만, 어쩐지 오늘은 너무 힘들다. 저녁, 잔뜩 찌푸린 얼굴로 돌아온 아들에게 엄마가 요즘 너무 기운이 없어, 라고 말한다. 아들은 그 말을 들으면서 제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여자는 열린 방문 너머로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아들은 치과에 가라고 한다. 돌아보지도 않은 채. 교복을 벗고,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그러다 돌아본다.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여자는 아들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아들은 말한다. 엄마, 와이셔츠 빨아야 돼. 아들은 목에 때가 누렇게 끼기 시작한 와이셔츠를 여자의 손에 쥐어주고 다시 돌아서서 방문을 닫는다. 아마 오르지 않는 수학 성적을 올리느라 오늘밤도 낑낑 댈 것이다. 여자는 닫힌 아들의 방문을 바라보고 잠시 서 있다. 그리고 이내 돌아서서 화장실로 들어간다. 와이셔츠 목 부분에 비누를 묻힌다. 내일은 엄마를 불러서 치과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며.
8
수십 번 리플레이 되면서 조금씩 각색되고 착색되고 탈색된 장면이다. 저 장면을 연출하고 주연했으므로, 나는 죽어 반드시 지옥에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더 괜찮은 아들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결과적으로 조금도 그러지 못했다. 20년 전에 저렇게 손 놓고 있었듯이, 10년 전 아버지가 간암에 걸렸을 때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몇 년 뒤 돌아가실 때 역시 나는 병원비 한 푼 내놓지 못하는 밑바닥 아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다시 지긋지긋한 병마가 엄마를 한 번 더 덮쳤는데, 나는 똑같은 아들이다.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오늘이나.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_ 문태준, 「가재미」 전문
--- 읽은 ---


+ 헤겔 / 우도 티이츠 : 133 ~ 231
+ 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 / 최영기 : 151 ~ 233
--- 읽는 ---





=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심보선 : 136 ~ 221
= 처음 읽는 중국사 / 전국역사교사모임 : 131 ~ 269
= 전쟁 말고 커피 / 데이브 애거스 : 106 ~ 279
= 탈코르셋 선언 / 윤지선, 윤김지영 : ~ 70
= 미시경제학 한입에 털어넣기 / 사카이 도요타카 : ~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