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옆 발전소

 

 

1

 

자의식을 확립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일단 세상과의 다툼이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세상과의 작은 싸움에서 승리를 거듭함으로써 세상을 점차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가는 인간이 있다. 그리고 패배를 적립하면서 상처 위에 상처를 덮어 두꺼운 갑옷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기는 사람들도 지는 사람들도 영원히 지거나 영원히 이길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공히 이상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마음속에 전쟁터를 만들고 그 안에서 계속 이기거나 계속 지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과의 첫 번째 조우에서 한 방을 먹였거나 먹은 그들은, 자기 안으로 돌아와 그날의 승리나 패배를 반복재생산하며 마음의 벽돌로 자신의 성채를 쌓는다. 그러나 마음이란 취약하고 불균형한 물질이라 내 마음으로 쌓은 성벽의 안에 거주하기 적합한 사람은 대체로 나뿐이다. 마음의 모양새나 온도에 따라 아주 가까운 몇몇 이들을 포용해 마을을 만드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 마을도 대체로 작고 고립되어 있거나, 그 안에 거주하는 타인들의 굉장한 인내나 이해를 요구할 공산이 크다.

 

문제는 그들이 마음속 섀도우 복싱을 바깥세상과의 싸움이라고 착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실제로는 없었던 승리를 착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여긴다. 충분히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축적되면 내 안에 밀도 높은 분노의 원자력 발전소가 생긴다. 세상엔 그만한 저비용 고효율 에너지원이 없고, 그래서 그들은 늘 뜨겁다. 단점이라면 안전 취약성과 붕괴 시 필연적으로 찾아올 치명적인 파국을 들 수 있겠다. 반면, 실제로는 없었던 패배를 착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의 몰가치를 알아챌까 전전긍긍한다. 초과 단련한 겸손으로 상대방의 기대를 끊임없이 낮추고, 예견된 실패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핑계거리들을 미리 만들며 자기를 불구화한다. 이 경우는 폐열을 재활용하거나 쓰레기를 태워 에너지를 생산하는 열병합발전소와 비슷한 느낌이다. 저렴하고, 열효율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온도 조절에 실패해 불완전연소가 발생하면 독성이 있는 감정이 배출되어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 멍들게 하기도 한다.

 

열병합발전 시스템을 오래 운용해온 사람으로서 늘 고민이 되는 부분은, 야생의 syo에게 먹이를 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준다면 얼마나 줘야 그나마 건강한 균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따위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구걸하는 말을 선명하게 하고 있진 않지만, 그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아니에요, 별 거 아니에요, 손사래를 쳐대며 겸손의 스탠스를 취하지만 그렇다고 칭찬이 기쁘지 않은 것은 또 아니다. 그건 앞에선 별 거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뒤로는 완전히 별 거 아닌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말 허접한 글, 자기가 무식한지도 모를 만큼 무식하다는 티가 나는 글을 쓰면서 끝없이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기대를 요구하는, 어디 갖다 쓰지도 못할 생각의 찌꺼기나 계속 만드는 주제에 온 세상 다 밝힐 지혜라도 발굴한 마냥 설교하는,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전혀 인식하지 못해서 오히려 당당한 그런 사람과 나는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할 수가 있을까? 그저 기교, 지식, 눈치 같은 요소들에서 미미한 차이만 있을 뿐, 최종적으로 그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자신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한다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생김새그리고 등장으로 외부에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주변에서는 거의 눈치채지 못한다사람들은 긍정적인 면이든 부정적인 면이든 그렇게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따라서 진실은 이렇다당신은 시도 때도 없이 주목을 받고 있지 않다.

스벤야 아이젠브라운너무 재미있어서 잠 못 드는 심리학 사전 

 

사랑을 받을 만한 마땅한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을 결정하고자 대상에 탁월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그 가치가 바로 그 대상의 내부에 있는 올바름 혹은 탁월함의 정도라고 여기는 것은 문제가 된다그러면 우리를 속이는 확실한 길로 들어서게 된다우리는 바로 그렇게 소외된 대상우리가 그것을 사랑한다고 단지 그릇되게 상상하는 대상에 집착하게 된다사랑의 원인이 그 대상이라고 철썩같이 믿으면서 우리는 그 사랑을 그것에 돌려주려고 한다이때 우리가 아는 것은그 대상이 실제로 불러일으키는 정서가 아니다우리 사랑의 진정한 원인은 그 대상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그것은 단지 그 대상의 현존에 수반되는 감정일 뿐이다.

발타자르 토마스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나는 여럿이면서 하나이고동시에 하나이면서 여럿이지요파도가 조각이면서 더 큰 바다의 일부분이듯이나는 이 세계를 헤매는 자이면서 헤매지 않는 자이지요저 빈 옥수숫대를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같이만물은 증식하면서 또 다른 부분에서는 잘라내요진짜로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요.

장석주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2

 



혼자서 한 권 분량의 절반을 꿀꺽 삼킨 박상영 작가님. 쉬지 않고 내리 읽었고, 재미있었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거나 무슨 맘인지 짐작할 수 없는 대목도 하나 없었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 써보라고 하면 못 쓰겠다.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종류의 작품이라는 뜻이 아니라 syo가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리뷰가 그렇지만, 특히 소설 리뷰 하시는 분들껜 존경 말고 다른 걸 드릴 재간이 없다. 이웃님들의 훌륭한 리뷰를 읽으며 무릎을 탁탁 타타탁 치고, 너무 세게 쳐서 무릎이 아프고, 그 아픔 속에 소설 리뷰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을 새겨 넣고, 그렇다면 이다음에 나도 이런 식으로 쓰면 되겠거니 하고 돌아서고, 돌아서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으면 뭐 어떻게 써야하나 다시 깜깜해지고.....

 

 

 

3

 

자료와 통계로 무지와 편견을 조지는 책이라 소개하면 예비 독자들은 응당 딱딱하고 각진 사무실투의 문체를 예상하게 마련인데, 실제로는 이런 문장도 있다. syo는 여기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본다.

 


평일에는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지냈고토요일이 되면 아버지가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장난삼아 커다란 원이나 8자 모양을 그리며 병원으로 갔다어머니는 병원 3층 발코니에 기침을 하며 서 있곤 했다아버지는 병원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도 아플 수 있다고 했다병원 밖에서 내가 손을 흔들면 어머니도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어머니가 뭐라고 말했지만목소리가 너무 작아 바람 소리에 묻혀버렸다내 기억에 어머니는 늘 웃으려고 애썼다.

한스 로슬링 외팩트풀니스

 

반면, 갓 스물을 넘은 나이에 시조로 등단해 그 후 50년을 시작詩作으로 물들인 원로 시인의 시집이라 소개하면, 역시 예비 독자들은 저마다 시에 대해 지니고 있는 감정(대개는 애증이기 십상인)을 들추어 보며 특정한 형식을 예상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도 있다. 시가 걷지 못할 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한 권의 시집 속에 이런 시도 저런 시도 있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다.



 

지중해 연안의 주요 도시 벵가지미수라타베이다투브루크살룸아즈다비야주와라 등이 반정부 시위대의 손에 넘어간 가운데 국영 텔레비전에 나와 시위대를 향해 바퀴벌레” “살찐 쥐새끼라는 거친 표현을 써가며 순교자로서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면서 내가 명령하면 모든 게 불탈 것이다라고 외쳤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24일 다시 텔레비전에 나와 내전에 준하는 이 혼란이 알카에다의 사주에 의한 것이며, “마약과 술에 전 젊은이들 탓이라며 이 모든 상황이 코미디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카다피의 유혈진압으로 최소 230명이 숨지고 1000여 명이 부상한 민주화 시위의 진원지이자 리비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벵가지 광장엔 이날 수많은 시민들이 쏟아져나와 피의 댓가로 얻은 자유에 환호했다벵가지는 이제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꾸린 인민위원회가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병원과 정부 건물엔 1969년 카다피의 혁명 전 이드리스 왕정 때 사용했던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삼색기가 내걸렸다고 한다. AK소총으로 무장한 시민군은 곳곳에 플라스틱 폭탄로켓기관총심지어 대공화기의 공격으로 인한 인민 학살의 흔적이 남은 거리를 활보하면서 우리가 큰 싸움에서 이겼지만 아직 전정에선 이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시영, 〈2011년 2월 24리비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부분 

 

 

--- 읽은 ---

상호대차 강민선 : 74 ~ 174

+ 혁명 / A. 골드스톤 : 48 ~ 230

+ 팩트풀니스 / 한스 로슬링 외 : 108 ~ 385

+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회계책 / 권재희 : 105 ~ 355

 

 

--- 읽는 ---

= 소설보다 : 가을 2018 / 박상영 외 : ~ 71

=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 데이비드 하비 : ~ 50

= 처음 읽는 레비나스 / 콜린 데이비스 : ~ 23

= 소로의 일기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68 ~ 88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이시영 : ~ 74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 그레이슨 페리 : ~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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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14: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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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14: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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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14: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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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14: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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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17: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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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9 09: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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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9-07-12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팩트풀니스』저도 기대 안하고 봤는데 생각보다 좋더라고요. 리뷰 써야 하는데 미루다가 내용이 가물가물해져서 다시 읽어야 할 듯ㅡ.ㅜ 저는 무릎 칠 일보다 이마 탁~하게 되네요ㅎㅎ;

syo 2019-07-12 15:20   좋아요 0 | URL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독서였어요. 내용이야 금방 어딜 가고 없겠지만..... 그럼 담에 또 읽음 되죠 뭐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