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사람의 저녁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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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일찍 눕잖아요. 바람이 열심히 낮과 저녁 사이를 조율하잖아요. 나무 그림자 조용히 호수 표면을 간질이면 웃음 참느라 물살 얕게 일렁이잖아요. 얼마나 좋겠어요, 함께 호숫가를 빙빙 돈다면. 하늘이나 구름이나 바람같이, 만지지 못해 아름다운 것들이나 말하면서, 오늘의 것이 흩어져가는 오늘과 그 빈자리를 내일의 것이 채우는 내일을 이야기하면서, 나랑, 당신이랑, 겹쳐진 우리의 그림자랑 이렇게 셋이서 함께 호숫가를 빙빙 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일찍 누운 해가 지평선이 친 커튼 뒤에서 천천히 천천히 우주를 돌고, 새벽을 퍼 올려 세수를 마친 지구와 산뜻하게 맑은 얼굴로 다시 만나기 전에, 그 전에 우리가 함께 호숫가를 빙글빙글 돌 수 있다면,
손잡기 좋은 계절입니다.
2


아니, 유시민이 재미없다니. 난 syo인데????
아니, 플라톤이 재미있다니. 난 syo인데??!!!!
이 가을, syo가 syo가 아닌 무엇인가가 되고 있는 것 같다.
3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한마디로 '책을 좋아한다.'라고 하지만,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1. 이것저것 끼우는 걸 좋아함
2. 냄새 맡는 걸 좋아함
3. 옆 사람이 읽는 책 보는 걸 좋아함
4. 쌓아놓는 걸 좋아함
5. 읽는 걸 좋아함
6. 일단 모으는 걸 좋아함
7.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좋아함
8. 옷 입히는 걸 좋아함
9. 바퀴를 달아 굴리는 걸 좋아함
10. 올려놓는 걸 좋아함
11. 책갈피 끈을 쭙쭙 빠는 걸 좋아함
12. 손에 들고 춤추는 걸 좋아함
_ 요시타케 신스케, 『있으려나 서점』
일이삼사오륙칠팔구십십......일?
4
"재밌었어요. 재밌고 허망했어요."
"나도."
"이제 어디로 가요?"
기대는 하지 않고, 그는 자동차를 찾으러 다시 남산으로 갈 것이라 말하며 모자를 고쳐 쓰는데 역시, 너무, 잘생겼다. 환승센터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부드럽고 단호하게 괜찮다고 말한다. 정말 괜찮은 게 맞을까? 판단력은 흐려지고 그러는 사이 간다. 그는 모르는 사람처럼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다시 올라온다.
"왜요?"
라고 묻는 내게
다가와 그는 내 볼에 아주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다시 내려가는데
너무 좋아서 광대가 아플 지경인데 그렇게 한껏 좋아지는 기분 가운데 그의 뒷모습을 본다. 어, 내 옷을 입은 당신이 저기 걸어간다. 내 옷을 입은 남자를 보는 건 언제나 행복하게 야릇하고, 이 숨 막히게 덥고 사람으로 가득 찬 광장 속에서 오직 아는 사람이 너뿐이라는 사실이 어이없게 든든한데 그가 다시 돌아 손을 흔드는 모습을 나는 언젠가 보았던 것만 같고, 그건 반복되는 토포스거나 사실 나는 당신을 이미 마흔 번쯤은 사랑해본 적이 있는 것이고, 언제나 기대했던 기시감으로 넘쳐나는 지금 이 순간, 그런 기시감과 패턴만을 사랑해왔던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사랑해버린다.
_ 김봉곤, 「디스코 멜랑콜리아」
어떤 사랑이 불편한 이유를 가장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사랑이야말로 ‘사랑 같은 사랑’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시 내가 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던 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읽은 책들 읽는 책들




김봉곤, 『여름, 스피드』
유시민, 『역사의 역사』
요시타케 신스케, 『있으려나 서점』
김혜경, 『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국가』
플라톤, 『국가』
김민섭, 『고백, 손짓, 연결』
이승우, 『만든 눈물 참은 눈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정암학당, 『아주 오래된 질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