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잠깐이나마 스쳐간 두 개의 별은 서로의 궤적에 향기를 남긴다. 낱낱이 들추어 태워도 결코 낱낱이 타지는 않는 이름을 남긴다. 별은 스쳐온 것들의 이름이 무거워 떨어진다. 우리가 그 별을 무엇이라 부르건 그것은 우리 자신의 메타포이고, 그 단어에 우리 마음이 비친다. 달무리를 머리에 이고 서서 이름을 센다. 사랑이었던, 미움이었던, 사랑이면서 미움이었던, 사랑도 미움도 아니었던, 오래 지고 무거워 했던 많은 이름을 센다. 기꺼워 센 이름과, 겨우 센 이름과, 미처 못 센 이름과, 차마 못 센 이름을 짚느라 하늘의 별을 빌려 쓴다. 오늘의 별은 모조리 내가 빌리고 빈자리만 남았다. 아, 밤이 와르르 쏟아진다.



현대의 경험은 파편의 경험이다. 이제 우리는 에둘러 가야만 한다. 조각난 경험의 파편들을 끌어 모아 서로 붙이고 연결하여 그 전체 모습을 유추해 내어야 한다. 느낌은 생각으로 정리되고, 생각은 말로 표현되어야 하듯이, 그리고 이 말은 다시 행동으로 전환되어야 하듯이, 나의 감정은 너의 감정과 만나고, 우리의 사고는 그들의 사고로 넓어져야 한다.
_ 문광훈, 『조용한 삶의 정물화』
연애는 신의 불꽃이다. 모든 것을 미화하고 정화한다. 산문적인 우리에게 시를 준다. 대지에 초목의 싹을 돋게 하는 밤이슬이다. 사람의 혼에 맥박이 뛰게 한다. 인생에 빛을 비추고 희망을 준다. 연애를 체험한 사람이 아니면 참인생의 혼을 들여다보았다고 할 수 없다. 그 사람 자신이 인생을 존귀하게 살 수 없다. 아마도 참된 사랑은 영혼만도 육체만도 아니라 영혼과 육체를 아우르며 신과 인간 사이를 왕래하는 것이다.
_ 나혜석, 『조선 여성 첫 세계 여행기』
인간은 본래 고독한 존재라지만, 인연은 곰팡이와 같아서 완전한 단절 속에서도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비록 버림받았더라도 영원히 그 상태로 살지는 않는다. 삶이 지속되는 한 인간은 누구라도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번 버림받은 짐승들이 그러하듯 버림받아본 사람 역시 제 마음을 다시 내어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은 깨달음에 도달한다. 사람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체념이요, 사람을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의지라고.
_ 전성원, 『길 위의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