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자리를 되돌려주자
북플이 건네주는 서재친구님들의 글을 언제나처럼 멍한 눈빛으로 훑던 중, 덜컥 눈동자를 잡아채는 한 줄을 만나 오래 멈추었다. 그 문장을 작은 소리로 몇 번 읽어 보았다. 완벽한 말처럼 들렸다. 뜻도, 리듬도, 겸허한 글투도, 그리고 지금이 바로 이 문장과 만나기에 가장 맞춤한 때라는 점에서도, 그것은 너무나 완벽한 말이고 그 결이 고와 자꾸만 다시 읽어보게 되는 말이었다.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상 열심히/많이 읽겠다고, 쓰겠다고 말해왔다. 공부라는 낱말을 선택한 적이 없다. 물론 읽고 쓰면서 우리는 경향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겠으나, 그것은 읽고 쓰는 일이 향하는 목적지라기보다는 거기까지 가는 길에 맞닥뜨리는 부수적 효과에 가깝다. 하지만 공부는 보다 본격적이다. 지금보다 지적/윤리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더 나은 인간이 되려는 마음으로 우리는 공부한다. 즐거움은 공부에 따라 오는(그러나 공부하는 모두가 다 얻을 수는 없는) 선물이지 공부가 노리는 과녁이 아니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읽는다’, ‘쓴다’는 경쾌한 말을 고르고 그 뒤로 ‘공부한다’는 묵직한 말을 숨긴 것이. 공부했어야 할 자리에서 그저 읽고 쓴다는 스탠스를 취한 것은 어쩌면 한 발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작동한 탓임을 알았다. 그렇게까지 의욕적으로, 최선을 다한 건 아니었어. 그냥 재미삼아 한 거야. 더 나은 사람? 물론 되지 못했지. 근데, 아, 그게 뭐가 중요해. 그저 지금의 행복을 찾자구. OK? why so serious?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다짐과 진지함과 몰입의 문제다. 이제껏 읽고 써 왔던 것들을 이제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거움을 따라 걸으며 부수적으로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데서 만족해 물러서지 않고, 어떤 면에서든 지금보다 한결 좋은 인간이 되는 길 위에서 즐거움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을 더는 미루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 뻔한 이야기를 또 뻔뻔하게 하였다. syo보다 더 나은 사람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더 나은 모양으로 말할 줄 안다.




나는 책을 읽는 데 필요한 태도는 왜 이 책을 읽는가에 대한 사회적 필요와 자기 탐구라는 정의감과 그 정의감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창의력이라고 생각한다. 창의력은 독서의 결과가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_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더 선명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선명해진다는 것은 투명해지는 방향. 선명해지는 것은 흐린 것들 사이에서 뼈를 세우는 것. 아니 뼈만 세우는 것. 선명해지니까 숨을 때가 점점 없어지겠지만, 얼룩은 점점 나타나겠지만, 얼룩도 선명함의 안이라면 뼈를 다시 간추리는 소리도 손도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_ 이원, 『최소의 발견』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부족한 지식과 모자란 경험을 채우고 자신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요량이 있기에 책을 읽고 배우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버릇처럼 책을 읽습니다. 근사한 제목에 끌려서 읽기도 하고 남들이 읽는다니까 읽기도 하고 심심풀이로 읽기도 합니다. 저처럼 독서가 일이 되어 의무감으로 읽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책을 읽다보면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이런저런 지식과 정보로 머리를 가득 채우는 사이, 정작 내 인생에서 풀어야 할 문제는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생각도 못하고 온갖 정보들에 취해 마치 모든 걸 아는 듯이 착각하기 십상이지요.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알아야 할 것은 알지 못한 채 섣부른 지식으로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모욕하는 경우야말로 식자우환이라 할 수 있지요.
_ 김이경, 『책 먹는 법』
애석하게도 이 세계는 온갖 추상적 개념으로 가득해서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갖은 의문을 풀어 줄 답은 책에 있지 않다. 자신에게 무심히 묻고, 서툴게 대답하다 보면 연결된 매듭이 풀리듯 해답이 하나둘 떠오른다.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 이루고자 하는 목표, 지키고 싶은 자존심, 내 편과 경쟁자,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느끼는 순간순간...... 이처럼 실제로 존재하진 않지만, 각자 알아서 규정해야 할 가치가 모두에게 숙제처럼 주어진다. 사색의 시간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런 추상적 가치를 당돌히 규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 세상을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_ 이지원,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