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가서 눕는 곳
거기로 가 허물어짐으로써 편안해지는 곳이 있다. '곳'이라고 말했지만 장소가 아니다. 곁이고 품이다. 안이다. 나 하나 드러누우면 가득 차는 좁은 곳이라 한다. 나 하나 들여놓지 않으면 세상 모든 것을 다 들여도 텅 비는 넓은 곳이라 한다. 이제 은유를 버리고, 아예 모든 말을 다 버리고, 몸짓으로, 손짓으로, 이내 눈짓만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밝고 맑은 곳. 내가 자는 곳. 옆에 있으나 없으나 항상 내 잠이 가서 밤을 머무르는 곳.
이달 말에 만나자 하였다. 약속만으로도 즉시 하루가 더디다.


나는 내가 있던 곳에 있지 않기를 간절하게 원했다. 사실 내 문제 가운데 일부는 내가 있는 곳이 전혀 특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내 삶은 공허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으며, 그 얄팍함을 나는 부끄러워했다. 마치 얼룩진 옷이나 실오라기가 삐져나온 옷을 입고 있을 때처럼 부끄러웠다. 사라져버릴 위험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동시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너무나 생생하게 날것이고 압도적이어서, 그런 강렬한 느낌이 줄어들 때까지 두어 달쯤 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많았다. 내가 느끼던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아기 울음소리였을 것이다. 나는 혼자 있고 싶지 않아. 누가 나를 원하면 좋겠어. 난 외로워. 난 겁이 나. 사랑받고, 어루만져지고, 안길 필요가 있어. 마치 채울 수 없는 심연의 뚜껑을 들어올린 것처럼 나를 제일 무섭게 만든 것은 필요의 감각이었다.
_ 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
연애 9년, 결혼 후 1년. 우리 부부는 많은 부분을 양보했고, 타협했고, 조정했다. '바깥세상'에 기대어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도 된다. 결혼을 정말 잘했구나, 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건 저녁을 먹고 가볍게 동네를 한 바퀴 돌 때이다. 두 손을 마주 잡고,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같이 바람을 맞고, 나눠 마시는 한 잔의 물.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여서 다행이다. 새벽 3시에 나는 다른 이유로 깨어 있다. 피가 도는 사람이 옆에서 잠들고, 나는 책을 읽다 잠든다.
_ 조안나, 『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