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레시피
우리가 서로를 양껏 부둥켜안기 위해서 앞으로 몇 개의 봄이 더 필요할는지요. 봄은 점점 짧아져가고 서로의 빈자리가 물어뜯은 손톱처럼 삐뚤빼뚤 일상을 헝큽니다. 얕은 물 곁을 달리다 당신의 전화를 받고 봄 고양이처럼 노곤해졌지만요, 그 흔한 벚꽃놀이 한 번 같이 간 적 없어 야속하다는 말이 퍽 먹먹하여 애꿎은 벚나무 줄기만 툭툭 칩니다. 그렇다면 팔랑팔랑 떨어지는 이 꽃잎 땅에 내려 닿기 전에 잡아채어 작고 작은 편지 한 통 써볼까요. 이 꽃잎 위에 달콤 발그레한 봄 몇 스푼 담아 보내야 그 서운함 다 녹아질까요. 말과 말 사이 좁지만 깊은 그 틈을 꿀처럼 척척 메우려면 이 밤을 봄으로 얼마나 뭉근하게 조려야 할까요. 벚나무 옆자리에 물소리 두르고 서서 고개만 갸웃합니다. 이 봄은 왜 이리 따뜻한지, 이 밤은 또 왜 이리 따뜻한지. 당신을 만드는 레시피를 발명하느라 몇 개의 바람을 그냥 흘려보내고 섰습니다. 이 봄을 두드려 당신의 몸을 벼리고, 이 밤을 매만져 당신의 맘을 빚는 솜씨를 갖고 싶어요. 지난겨울 미리 온몸에 선명히 발라 놓은 당신의 지문을 이제 펼쳐 읽을 테니, 봄처럼 밤처럼 이리로 와주세요. 따뜻할 때 얼른 오세요. 여름은 금방 들이닥치니까요. 여름은 뜨거워 오래 안아주기 어려우니까요. 이 봄에, 이 밤에, 지금 바로 만나고 싶습니다.



강
-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때를 날려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_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나는."
서로의 입술이 가볍게 맞닿았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아니면 아무하고도 사귀지 않을 거예요. 다른 어떤 남자도 나에겐 아무 가치가 없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나예요."
순간 안개가 걷히듯 머릿속이 맑아졌다. 무슨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그조차 순간적으로 잊어버렸다. 매 순간마다 이게 바로 나다,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게 진정한 자기 모습이다. ..... 무엇이 옳은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건지, 모두 내다볼 수 있는 인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 있는 등장인물이나 마찬가지다.
_ 미카미 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_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