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약간 씁쓸한 기분으로 읽었다. 재취업 과정에서 제일 먼저 미역국을 선사한 곳이 SC제일은행이었기에, 작품의 무대로 등장한 도쿄제일은행이라는 이름때문에 내가 떨어졌다는 것을 옆구리 쿡쿡 찔리듯이 느껴야 했고, 한편으로는 잔혹한 인간군상을 간접체험하면서 떨어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위안감도 느껴야 했다.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이 작품은 요즘 각광받는다는 일상의 미스테리 계열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미쓰비시 은행에서 근무했던 작가의 경험을 살려 도쿄제일은행(윽;;;)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은행원들의 일상을 담담해서 오히려 차갑게 느껴지는 필치로 그렸다. 제목을 반으로 나누자면 후자는 '은행원'이고 전자는 '행방'인 셈이다. 그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 '니시키 씨'인 셈이고...

엉뚱한 예시였지만, 작품도 제목처럼 츨러간다. 초반의 단편들은 격무에 시달리는 은행원의 삶에 집중한다. <88만원 세대>, <샌드위치 코리아>라는 말이 화두가 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안정의 대명사였던 은행도 예외는 되지 못한다. 학벌이 낮은 사람은 학벌 때문에, 실적이 나쁜 사람은 실적 때문에, 적성이 맞지 않는 사람은 담당업무 때문에, 노예만도 못한-노예는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나쁜 주인이 아니라면 최소한 보호를 했다.-은행원의 삶.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현실감이 그득그득 넘친다. '실적달성'이라는 표현 속에 숨겨진 은행원들의 눈물과 애환을 읽으면서 내년부터 나도 이렇겠거니 하면서 숙연해졌다. 포스코나 현대중공업 같은 거대한 장치산업의 일원이 되거나 연구직이 아닌 한 대부분의 경우 결국 '영업'과 '실적'이라는 문제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니까. 구구절절한 사연 속에 드러난 현실감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을 녹여낼 수 있다는 것. 잘만하면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하지만 <나의 미스테리한 일상>처럼,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뛰어나지 못하다는 점이 아쉽다. <나의 미스테리한 일상>은 각 단편들간의 멋진 트릭들과 행간 사이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맞물리면서 흥미진진했고, 맨 마지막의 거대한 결말 앞에서는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는데, 사건 발생-니시키 씨의 실종-결말로 이어지는 과정이 밍숭맹숭하다. 트릭, 단서 모든 것이 그저 그런 수준이다. 기대했던 만큼의 수준에 못 미친 것이 아니라 그냥 별로였다. 게다가 이 작품은 은행원들의 일상 쪽에 무게가 실려있기에 상대적으로 더 묻히는 느낌도 들고. 시놉시스를 대략 훑어보고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은 은행원들의 애환을 더 생생하게 그리기 위해서 소설은행원들의 애환을 그린 소설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일부 차용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결말 부분의 메세지를 보면 특히 그런 느낌이 든다. 말하고 싶은 것은 알겠고, 결과물도 좋은데 이왕 내가 좋아하는 부분도 차용할 바에는 좀 더 섬세하게 만들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랄까...니시키 씨가 실종되기 전의 전반부의 단편이 더 생생하고 재미있었다고 하면 작가에게 실례일려나...   

은행원들의 애환을 다루는 묘사만으로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전문적이지도 않으면서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미스테리가 약하다고 트집을 잡아서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중간에 삽입된 니시키 씨의 실종 사건이 더 세련됐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추신)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 작가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작품만 보면 뛰어난 작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재의 특이성 때문에 작가로써 그 이상을 재연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가능성을 기대해 본다. 소개를 보니 금융 미스테리에 천착한다고 하니 한 소재에 일가견을 이룬 딕 프랜시스나 에드 멕베인 같은 작가였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팬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4일간의 기적>과 <눈의 야화>의 아사쿠라 다쿠야처럼 경험을 풀어낸 것 외에는 없는 작가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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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23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복의 랑데뷰님, 인사는 처음이지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오늘까진 추석연휴라도 좀 느긋하네요^^
연휴 편안히 보내시길.. (즐찾하고 갑니다~)

비로그인 2007-09-26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추리물들이 넘쳐나지만, 추리물들에도 장르가 있지만, 좀 색깔들이 약한 것들도 마구 포함되는 거 같아요.

상복의랑데뷰 2007-10-01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 / 인사가 늦었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하구요, 별볼일은 없는 블로그지만 앞으로도 종종 들려주세요. 저도 즐찾했습니다. ^^

새초롬너구리 / 사람마다 판단기준은 다르겠지만, 전 추리소설 같지는 않고 기업소설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
 
흑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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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쉴새없이 나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호시 신이치/츠츠이 야스타카 풍의 단편집. 정확히 말하면 호시 신이치보다는 길고 츠츠이 야스타카보다는 덜 독설스럽다.(사실 쓰면서 보니 호시 신이치보다는 츠츠이 야스타카의 단편집과 유사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흑소/독소/괴소 이렇게 3편의 단편집이 나왔다.(썩소도 나올법한데...이건 단편집이 아니라 사진첩인가?) 

요즘 취업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서 두껍고 안 읽히는 책은 멀리하다 보니 졸작이라도 읽히는 힘이 최강인 히가시노 게이고만 찾게 된다.(이 직전에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을 읽어서 더 머리가 아팠는지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일종의 팬서비스라고 생각하면 편할 듯 하다. 자신의 작품을 패러디한 것도 있고, 동화를 약간 비튼 것도 있고, 앞에서 언급한 츠츠이 야스타카를 연상케 하는 섹스코메디, 문단을 비꼬는 연작 단편, 감동적인 소재를 다룬 호러 등 여러 소재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책을 덮고 생각해 보니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편에는 그렇게 장기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읽힐만 하면 끝나고 읽힐만 하면 끝나서 좀 감질맛이 낫다. 그래서 연작 단편이 재일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심각한 사회현상을 심각하지 않게 다루면서 독자를 심각하게 만드는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임계가족>이 괜찮았다. 요즘 기대치가 완전 밑바닥이라서 그런지 술술 읽히는 것 만으로도 그닥 흠을 잡지 않고 싶은 느낌이긴 한데, 그래도 몇몇 작품은 그런 기대치를 밑도는 수준이라서 살짝 아쉽긴 했다. 그러나 단편집의 편차가 고를 수만은 없으니...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팬서비스 차원에서 킬킬대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싫어하는 분들이 봐도 그렇게까지 책 잡힐 단편집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연작 단편집이라고 할 수 있는 상을 둘러싼 편집자-작가 이야기가 재미있으신 분들은 꼭! 츠츠이 야스타카의 <소설 일본문단>을 읽어보기를 권해드린다. 내가 읽어본 최고의 블랙 코메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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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과.후.(찌릿)

보석 2007-09-19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임계가족>과 출판계 이야기 괜찮았는데. 츠츠이 야스타카 체크 체크.

상복의랑데뷰 2007-09-19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초롬너구리 / 도서관에서 아직 연락이 오고 있지 않습니다...

보석 / 꼭 읽어보세요. 이 책이 재미있으시면 다다노 교수의 반란도 읽어보시구요 ^^;
 
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를 읽으면서 아니 이렇게 다작인 작가가 일정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늘 의문이었는데, 역시 그럴 수 없다라는 걸 직접 확인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사람이니 졸작이나 태작이 없겠느냐만, 우리나라에 그런 수준의 작품들까지 소개되기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집필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일본어를 배우지 않는한 접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이번에 한 번 낚였다. 더 무시무시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읽어본 작품 중에서는 가장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나마 건질 것은 트릭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랫만에 황금기의 고전추리를 읽으면서 두뇌싸움을 하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본격스럽다고 해야하나. 순수하게 트릭만 몰두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단서제공에 있어서 본격의 fair한 것 같지는 않다. 대략 결정적인 단서들은 거의 막바지에 나오게 된다. 떼어놓고 보면 별로 어색하지 않안 범인의 동기조차도 어색해져 버린 느낌이었다.

나머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평균적인 단점들이 듬성듬성 섞여있다.

남자가 보기에도 어색한 여자주인공의 묘사 :  사실 왜 여자추리작가를 내세웠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첫번째 희생자와의 관계 때문이려나.

추리소설작가로써의 인장찍기 : <붉은손가락>에서도 실소를 금치 못했던 부분. 스피디하게 잘 나가다가 막판에 나는 본격추리작가다!라는 인장을 꼭 찍고 싶으신지 분위기를 확깨는 절묘한 트릭을 구사한다. 절묘한 트릭이라는 건 비아냥이 아니다, 트릭은 감탄하게 된다. 문제는 트릭이 좋아서인지 분위기가 확 깨진다는 거다.

감동강박증 : 사실 이 느낌은 <용의자 X의 헌신> 부터 느꼈던 건데, 게이고는 독자를 울컥하게 만드려고 지나치게 애를 쓰는 경향이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 20년전의 작품도 그럴 줄은 몰랐다. 이거야 전업작가로써 독자에게 충실하기 위한 노력이니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붉은 손가락>같은 좋은 작품이라면 모르겠으나 이 작품처럼 헐거운 작품에게는 그런 태도도 버거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두 개까지 주지 않은 건, 추리소설 독자로써 본격소설을 구조를 차용하면서 트릭이 괜찮았다는 점, 워낙 심각한 악평을 많이 들어서 기대치가 밑바닥이었다는 점, 결정적으로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장 큰 장점인 술술 읽힌 것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다른 작가는 모르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라면 이 작품처럼 다른게 부족하더라도 술술 읽히는 작품이 <숙명>처럼 다른게 좋아도 잘 안읽히는 작품보다는 낫다. 어찌됐건 태작은 아니니...

옮긴이의 말을 뛰어넘는 최고의 리뷰를 쓸 글쏨씨와 통찰력이 없어서 장점은 skip. 역자분이 적절하게 장점들을 언급해주셔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추신) 표지는 여전히 달콤씁쓸(?)한데, 출판사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브루투스의 심장>도 그렇고, 이 책도 문고본의 얄팍한 느낌이 살짝 나서 좋았다.

추신2) 이 작품과 <악마의 공놀이 노래>가 합쳐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는 어느 분의 표현 대로 초딩 수준의 트릭만 불만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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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8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옮긴이의 글, 정말 핵심 잘집었고 문고판의 느낌도 좋았어요. 그나저나 방과후는 언제쯤??

하이드 2007-09-0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강박증. 풉- 난 왠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감동'에는 사람냄새가 안 나요. 그래서 나랑 안 맞나봐요.

상복의랑데뷰 2007-09-09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초롬너구리 / 방과후는 평이 좀 걸려서 자주 가는 도서관에 대출예약 걸어놓고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 백수로 너무 오래 지내서 이젠 책 살 담력이 많이 작아졌어요 ㅠㅠ

하이드 / 그러실 수도 있겠네요. 전 게이고를 읽을 때 감동적인가의 문제는 관심밖이라서, 작위적인 느낌만 적으면 그냥 그런가보다 합니다. 솔직히 <백야행>말고는 감동적인 느낌을 받은 작품도 없었구요. 그래서 전 데면데면 합니다. 작위적이더라도 <붉은 손가락> 정도의 설득력이 있다면 괜찮은것 같구요. ^^

2007-09-10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상복의랑데뷰 2007-09-1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글 / 예 알겠습니다.

2007-09-10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상복의랑데뷰 2007-09-10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글 / 답변 남겼습니다.

2007-09-10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상복의랑데뷰 2007-09-10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공개 / 아닙니다. ^^ 저도 정하신 규칙에 앞으로는 잘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2007-09-13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몰타의 매 ㅣ Mr. Know 세계문학 44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내용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몰타의 매, 말타의 매로 더 익숙한 그리고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영화로 더 유명한 대실 해밋의 작품이다. 하드보일드라는 장르를 최초로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 위대한 작품이고 처음 시공사의 시그마북스로 읽었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마이크 해머의 <내가 심판한다>이후 나의 취향에 마침표를 찍은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했고...열린책들에서 갑자기 나와서 약간 놀랐다.

워낙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니 내용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고 새로 나온 책의 만듬새에 대한 이야기만 짧게 적기로 했다.(그럼 리뷰가 아닌가...)

손에 쥐고 나서 훌훌 페이지를 넘어가면서 읽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난 느낌은 좋으면서도 아쉬웠다. 아마 이 책을 접하는 분이 추리소설애호가가 아닐수록 전자의 느낌을 받을 것이고, 500명 이내의 골수애호가라면-영미권, 그것도 하드보일드를 읽을만한 독자는 500명도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쓴 표현이니 너그러이 봐주시기 바랍니다.-(좋으면서도) 아쉬우실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만족스럽게 만들어졌다. <장미의 이름>을 제외한다면 Mr. Know 세계문학에 소개된 최초의 추리문학이라는 점에서 고마웠다. 워낙 요즘 미스터리 시작이 활황새긴 하지만 영미권, 특히 황금기 전후와 하드보일드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서 이런 문고판으로 좀 끼워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렇게 큰 출판사에서 구색을 맞춰주니 고마웠다. 르 까레의 작품집과 함께 함께 열린책들의 노력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아무리 봐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책일텐데...또 씹어서 미안하지만 <리얼 월드>가 나온 M사에서 나왔으면 볼만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도 튼실한 편이다. 워낙 짧은 소설이다 보니 불리기 위해서 그랬나 싶은 마음도 들지만, 열린책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지나치게 빽빽한 행간 편집도 상당히 순화되어 있어 눈이 피로하지 않다. <핑거스미스>때의 고역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천국이다.(결국 <핑거스미스>는 다 못 읽었다.) 그리고 역자분도 성실히 번역하신 듯, 이 리뷰를 쓰기 위해서 다른 판본이랑 일부 비교해보면서 봤는데, 의미전달에 있어서 별 차이는 느끼지 못하였다. 결정적으로 방점을 찍은 것은 역자가 역자 후기가 아닌 작품 해설을 했다는 것과 작가 연보가 실려 있었다는 것. 역자 후기의 기능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이 작가/작품을 몰랐었는데 알게 되서 좋았어요.'식이나 '제가 이걸 번역할 때는 어쩌구저쩌구~'하는 식의 상투적인 후기를 접하지 않아서 즐거웠다. 역자분이 추리, 좁게는 하드보일드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꼼꼼한 노력을 기울이신 것이 책 전반에 구석구석 드러나서 즐거웠다. 

그러나, 추리소설애호가로써의 아쉬움도 만족감 못지 않았다. 책을 보자 마자 느낀 아쉬움은 작품 선정에 대한 아쉬움이었지만, 시그마 북스는 절판되었고, 동서밖에 구할 수 없는데다가, 동서가 옛스러워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표지. 내용을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그리고 동서의 표지보다 잘 만들었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연성표지를 택한 것은 불만스럽다. 이 작품의 중량감과 진지함을 고려한다면 개인적으로 감탄했던 시배스천 폭스의 <새의 노래>나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없다>와 비슷한 느낌의 표지를 바랐는데,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표지를 실제로 보자니 못내 아쉽다. 작품의 성격을 반영할 수 있는 표지였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비열과 협잡이 넘치는 악당과 악녀들의 우울한 세계가 밝고 명랑한 세계로 보여질 때의 그 이질감이란... 마초들이 득시글거리고 악녀들이 출몰하는 하드보일드라는 장르가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취급을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살짝 서글프기도 했다. 굳이 이 표지에 맞는 해밋의 작품이라면 <여윈 남자>가 아닐까...

그리고 가장 아쉬웠던 것은 번역의 맛. 이건 북하우스에서 나온 챈들러 시리즈나 황금가지에서 나온 마이크 해머 시리즈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다. 예를 든 작품들의 번역이 별로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다만 하드보일드의 알싸한(?)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남자 번역자가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든다.(그런 면에서 황금가지에서 나온 데렉 스트레인지 시리즈는 추천하고 싶다.) 온다 리쿠의 소설이나,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고양이는 알고 있다.>등을 읽으면서 감탄했던 부분이었다, 여성들의 세계에 둔감한 내가 보기에도  역자분들이 좋은 번역을 넘어서, 여성을 주된 독자층으로 설정한 작품의 까다로우면서도 핵심적인 여성들의 미묘한 부분을 맛깔나게 살렸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는 실력을 넘어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을 알만한 남자번역가들이 했다면, 결과는 좋아겠지만 +@의 달콤쌉싸름한 맛은 없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기도 조심스럽고 나도 그만큼 이해한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없으면 아쉬운 그런 구석들이 많았다. 그런 것처럼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하드보일드라가 마초로 상징되는 과장된 남성성을 기반이니 쉬이 읽힘에도 불구하고 맥이 풀려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몰타의 매>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하이라이트라고 꼽는 후반부로 가면 아쉬운 마음도 커져 간다. 이 박력넘치던 부분이 왜 이렇게? 하는 생각을 몇번이고 했다. (오해를 살까봐서 노파심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번역이 나쁘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남자작가의 작품은 남자번역가만 해라 혹은 여자작가의 작품은 여자번역가만 해라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작품이나 장르에 따라 그럴 필요가 있는 작품들이 있다고 믿으며, 이 작품은 그럴 필요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의 가치나 책의 만듬새를 생각하면 별 5개가 마땅하지만, 2%아쉬움이 떨쳐지지가 않아서 별 4개만 주었다. 그러나 하드보일드/대실 해밋을 처음으로 접하는 분이라면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문고판이다.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 책이고, 잘 만들어줘서 기뻤다.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훌륭한 영미 하드보일드 대표작이며 좋은 문고판이 나와서 기쁘다.

추신 1) 억지 예 같아서 망설였지만, 우연히 용산도서관에서 이윤기씨가 번역한 로스 맥도날드의 <잠자는 미녀>를 읽었는데, 감탄을 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누구세요?" "루 아처올씨다."

나름 중년 남자들도 미묘한건가?

추신 2) 핑커턴 탐정사는 탐정사라기 보다는 흥신소, 그것도 기업의 노동운동 탄압-엘리아 카잔 감독, 말론 브란도 주연의 <워터프런트>에서 엿볼 수 있다.-전문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말을 듣고 부터는 더실 해밋 본인의 경험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은 <피의 수확>이 아닌가 싶 다. 그리고 두 작품을 여러 번 읽으면 읽을수록 <몰타의 매> 못지 않게, 어쩌면 보다 <피의 수확>의 현실성 짙은 질퍽질퍽한 느낌에 감탄하게 된다. 컨티넨탈 옵도 샘 스페이드 못지 않게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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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7-09-06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봐도 좀 아니다 싶네요. 요즘 소설 표지의 대세가 그림을 사용해서 화사하고 이쁘게 하는 거라서 그런가... 나름대로는 예쁜 표지이지만 말씀하시는 장르나 내용과는 많이 멀게 느껴집니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인데 읽게 된다면 말씀하시는 부분을 감안하고 보겠습니다.^^

jedai2000 2007-09-07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대말을 쓰는 샘 스페이드는 제 뇌 속에 없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7-09-08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석 / 요즘 작품의 내용에 상관없이 일러스트를 차용한 연성 표지인 점에 대해서는 이해는 아시만 아쉬움도 남습니다. 묵직한 작품들도 많은데...^^ 시간이 되셔서 이 책만이라도 보신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욕심을 내서 권하자면, 동서나 시그마북스(절판)으로 나온 것으로도 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밑의 jedai2000님이 언급하셨지만 분위기가 좀 달라져 있어서요 ^^;

jedai2000 / 저도 100% 동의합니다. 혁진님답지 않게 터프하게 말씀하시는군요 하드보일드의 제왕, 미키 제다이 등장? ^^
 
브루투스의 심장 - 완전범죄 살인릴레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 출간작. 이 작품과 <11문자의 살인>은 앞서 읽은 <ZOO>와는 반대로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기대치가 낮았는데, 기대치가 낮은 덕분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작품이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의 재미를 위해 충실히 봉사하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졸작도 졸작같이 보이지 않게 하는 필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G@me의 이름은 유괴>와 같은 도서추리에 직장인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양넘으로 삼은 스피디한 필력, 초기작이라고는 믿기 힘든 훌륭한 트릭과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과 같은 범죄자와 용의자의 대결을 그린 본격추리소설 같은 구성, 그리고 창해에서 주로 작품에서 엿보이는 나온 과학에 대한 저자 개인의 관심을 세 가지 축으로 삼아서 진행하고 있다. 

다만 초기작이다 보니 좀 어설프다. 전개가 스피디하긴 하지만 좀 뜬금없다는 생각도 많이 들고, 메디컬 스릴러라면 질색인 내 관점에서는 좋았지만, 로봇에 대한 관심도 관심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들이 고리처럼 맞물리지 못하고 엇도는 느낌이 들어서 결말까지 보면 허탈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편안하고 재미있게 일독하기에는 좋은 작품이다. 팬이 아니라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니 여유 되시는 분들께는 일독을 권한다.   

추신) 요즘 랜덤하우스의 표지는 표지들만 놓고 보면, 소설 연작인줄 알겠다.  

1부 : 종신검시관, 2부 : 나는 지갑이다. 3부 : 브루투스의 심장 4부 : 11문자의 살인 

<종신검시관> 구라이시가 시체를 발견했는데, 시체만 보고 범인을 알아맞춰서 체포하러 갔더니 용의자가 <나는 지갑이다>라고 외쳐서 혐의가 풀렸고, 피살된 <브루투스의 심장>을 확인했더니 알지 못하는 글자가 11글자가 있었다. 그래서 구라이시는 이건 <11문자의 살인>이야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뭐 이런 내용인가?(썰렁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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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7-08-2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신이 더 흥미진진한데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은 확실히 사람을 끌어당겨죠. 그래서 매번 살까 말까 고민하게 된다는..

상복의랑데뷰 2007-08-28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신은 그냥 장난이니 이해를...안녕하세요 ^^ 답변이 좀 늦었습니다. 처음 뵙네요. 문장이 평이하면서도 특유의 서스펜스를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서 계속 보게 됩니다. 이 책도 보시면 재미있으실 겁니다. 하핫

비로그인 2007-09-04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원님~~~'방과후~~~' 읽어보고 말씀해주세요~~~

상복의랑데뷰 2007-09-05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옙 알겠습니다. ^^; 근데 언제가 될런지..ㅠㅠ